어제 화포 라브리 카페에서 주관하는 달밤음악회에 갔다. 우리를 지도하는 교수님의 초대에 응해
서 였다. 교수님은 가곡을 부른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화포에 갔던 것은 바다와 보름달
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라브리에 도착하였을 때 플룻인가 섹스폰 인가가 연주되
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음악을 듣는 사람들, 배레모를 삐딱하고 쓰고
식사를 하며 빼갈을 마시는 사람, 분주히 주문한 차를 배달하는 여급들......,
마음이 밖에 있는 바다와 보름달에 쏠려 있었던 탓인지 이 모든 광경들이 부르주아를 흉내내는 자
들의 역겨운 퇴폐로 보였다. 달도 바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를 초대한 분의 가곡 세 곡만을
들은 후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왔다. 그리고 순천에 도착하여 가볍게 맥주 한 잔 씩 했다. 이성, 현
실감각, 또 이성, 현실감각. 말말말말들! 오직 보지못한 바다와 보름달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 따
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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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현실감각 이성 현실감각....... 이즈음 내 주위를 휘돌아 다니는 이러한 말들에 숨이 막힐 지
경이다. [데리다평전]을 읽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글귀에서 어떤 위안을 얻는다.
데리다가 이제까지의 공식적 시험에서 실패를 맛보면서도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계속해서 자
기 방식대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데리다가 과묵함을 지키고 떠벌리지 않는 편에 더 자
부심을 느꼈으며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데리
다는 잘 참고 견뎌내면 이러한 결단이 언젠가는 보답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이성 혹은 현실감각에 대한 그들의 발언은 신념에 차 있다. 나는 그것이 살아가기 위한 어떤 옅
은 술수와 처세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럴 때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들에게 나의 말은 먹
히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설득하고자 뱉은 나의 말에 내 스스로 허탈해할 것임을 아는 탓이다. 나
또한 내가 옳다라고 믿는 나의 신념에 대하여 위의 데리다처럼..,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