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겨레 책을 말하다] 때문이다. 책을 구입하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많은 부분 여기서 소개되는 서평을 꼼꼼히 읽고 구입하는 편이다.
[웃음과 과학](사이언스북스)이라는 개그맨 이윤석씨의 책이 활짝 웃는 그의 사진과 함께 실려 눈에 띄었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어가다가 다음 글귀에 시선이 꽂혔다.
"웃음의 근원에는 공포, 두려움이 있다는 거예요."
이에 대한 풀이는 다음과 같다.
[그는 웃음의 기원을 설명하는 '거짓경보이론'을 소개한다. 뇌과학자 라마탄드란은 홍적세 인간이 낯선(두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가 적이 아님을 확인하고 표정을 반쯤 푸는 것을 미소의 기원으로 보았다. 미소가 표정을 풀고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올리는 것이라면 그 미소에 연이어 터지는 소리가 웃음이다.
웃음은 한 집단의 구성원이 누군가에게서(혹은 주위 환경에서) 발견한 심상찮은 비정상성이 알고보니 사소한 것이고 따라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주위에 알리는 신호로 진화했다는 것. 인류 최초의 웃음은, 자신이 발견했던 비정상성이 거짓 경보임을, 곧 안전한 것임을 깨닫곤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하고 공지하는 신호였던 셈이다.]
[아기의 사랑스런 웃음도 결국 위험(불안)과 안전(안심)의 모순 속에서 터지는 겁니다.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아기를 안고 흔들거나 까꿍 하는 행동은 아기에겐 위협적인 행동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안전한 엄마 아빠이니 위협이 아님을 파악하는 순간, 내는 소리가 웃음인 거죠. 아기는 약자이다 보니까 웃음이 권력이죠.]
이 글에 시선이 꽂힌 것은 얼마 전 병원에서 본 노모의 미소 때문일 것이다.
뼈만 앙상한 노모는 스스로 거동을 못하고 모든 것을 간병인에 의존한다. 어느 날 식사 시간에 간병인이 노모를 거칠게 일으켜 앉혔다.(치매 병원에서 발견되는 일부 간병인들의 행태는 경악스럽다) 그 거친 간병인의 과격함에 놀란 노모의 눈이 공포를 가득 담은 채 그녀를 향해 치떠졌다. 그 다음 순간 노모는 그녀를 향해 (함박) 미소를 날렸고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노모가 그렇게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핍박한 삶을 살았던 노모도 자신의 생에서 그런 미소는 어쩌면 처음이었거나 드문 현상이었을 것이다. 노모가 온전했다면 아마 그 상황에서 자신이 날린 미소에 대해 몹시 난처해 했거나 굴욕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평생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못한 노모였다. 소소한 것이나마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헛웃음 한 번 짓지 못한 노모가 그 우왁스런 간병인을 향해 날린 미소 한 방이 마음에 각인되어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그 곳에서 살아가는 노모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뇌과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발달심리학을 훑어내리는 그 책들 속에서 그가 만난 건 '공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