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한 스푼
유헌식 지음 / 이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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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거나, 영화와 음악, 미술 같은 예술 작품을 보거나, 여행, 운동 등 모든 것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철학은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서평을 쓰는 것, 이것도 하나의 생각이고 철학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현재 단국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신 유헌식님이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K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일곱 통의 편지이다. K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씨가 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독자에게 보내는 철학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말하는 것은 세상은 '나'와 '나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철학적인 용어로 바꾸면 '자기'와 타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자기'와 '타자'의 초점에 맞추어 우리 일상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과거의 유명한 서양 철학자의 생각을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다양한 예를 들며 쉽게 가르쳐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르키메데스, 뉴턴, 칸트, 니체,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헤겔, 블로흐, 루카치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이 담겨 있고 어린왕자, 피노키오, 로빈스 크루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재미있게 풀이한다. 이를 통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어 철학에 입문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형이상학, 이데아계, 로고스, 사유, 모나드, 물자체(物自體), 유물론과 같이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려웠을 법한 전문 지식을 쉽게 설명하고 있고, 더불어 그러한 생각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철학적인 관점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이 '철학 한 스푼'인 것처럼 저자인 유헌식 교수님이 독자들에게 떠먹여 주는 한 스푼을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철학자들이 어떻게 세계를 경제적으로 이해했느냐고?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은 세계를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갈라놓고 이해했던 거야. 너를 중심으로 보면 세계는 'K'와 'K 아닌 것'으로 나뉠 수 있지? 수학의 벤다이어그램에서 전체는 어떤 한 집합과 그 여집합을 합친 것이잖아. 이런 식으로 철학자들에게는 "세계 = '나' + '나 아닌 것'"이야.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는 '나'이기 때문에 각자를 중심으로 보면 이 공식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셈이지. 이 공식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좀 더 철학적인 용어로 바꾸면 '자기'와 '타자'라고 해. 그래서 '세계 - 자기 + 타자'라는 아주 단순한 공식을 얻게 되지. '자기'와 '타자'라는 말을 잘 기억해두렴! 이 용어들은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거든. - p.11


타자의 정체를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틑 상태는 일종의 '혼돈' 상태라고 할 수 있어. 보통 우리는 무언가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를 '혼돈'이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타자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곧 혼돈을 극복하는 일인 셈이지. 그 일은 아주 단순하게 'X is p'라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 왜 하필 p냐고? p는 '술어'를 뜻하는 영어 'predicate'의 머리글자야. '그것은 이것이다'라는 주술 관계의 기본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문장으로 내가 타자인 X를 무엇이냐고 술어화한다는 것이지. 여기서 '술어화'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다시 말해 규정되지 않은 '무규정적인 것'을 '규정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활동이야. 'X is p'는 그러니까 정체불명의 타자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활동인 셈이지.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나에게로 와 '꽃'이 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p.14


'인신론적'이 대상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면 '존재론적'은 인간을 벗어나 그 밖의 것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인간을 포함한 존재 일반을 설명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저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신론적인 성격을 띠지만, '저것은 어디에서 생겨났어?'하는 물음은 존재론적인 성격을 띠게 되지. 어린아이가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 엄마에게 "엄마, 저게 뭐야?" 하고 묻는다면 인신록적인 질문이 되지만, "엄마, 기차는 누가 만들었어?" 하면 존재론적인 물음이 되는 것이지. - p.16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니? 나는 볼펜을 쓸 수 있는데 왜 볼펜은 나를 쓰지 못할까?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라고? 그럼 이건 어때? VIP의 경호원들이나 조직 폭력 집단의 행동 대원들이 하나같이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뭘까? 이들 현상은 모든 지식 관계의 불평등에 근거하고 있어. 무슨 말이냐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볼펜이 무엇인지 알지만, 볼펜은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우리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건 눈을 통해서잖아. 그러니 누군가가 몰래 다가서면 경호원은 그의 움직임을 보지만, 그는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이 무얼 보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없다는 말이지. 그럼, 누가 유리한지는 말 안 해도 뻔하지? - p.24


타자의 정체를 규정하는 문제에서 제시했던 'X is p' 기억하지? 이제 'is'에 주목해야 할 때가 온 거야. 'is'는 물론 여기에서 아무 뜻 없이 문법적으로 주어와 술어를 연결하는 be 동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는 달라. 위 문장에서 'is'는 연결사 또는 매사로서 기능하고 있어. 인간은 자기와 세계 사이에 항상 연결 끈을 개입시킨다는 거야. 인간은 중간항 또는 매개자 없이 세계와 관계하지 않아. 이 중간항, 매가자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니? 바로 '문명'이라는 거야. '문화'도 마찬가지고 - p.44


불의 사용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식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야. 익혀 먹는다는 것은 자연물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는 행위이고, 이 거리는 '불'이라는 중간자를 통해 확보된다고 볼 수 있어. 그뿐이 아니야. 기후의 변화에 무관하게 늘 안온한 거주 공간, 즉 집을 만들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칸막이를 만드는 행위도 중간자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어. 이와 마찬가지로 옷도 맨살이 바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인간의 피부와 자연 사이에 있는 인공의 막이지. 이렇게 인간은 자연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고 항상 간접적으로, 즉 매개적으로 관계한다는 거야. - p.46


아쟈수 열매에 맞은 멧돼지가 쉽게 기절하겠니? 멧돼지는 왜 야자수 열매에 맞고도 끄덕하지 않을까? 야자수 열매는 멧돼지를 쓰러뜨릴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는 건데, 이 '강력함'이란 무얼 의미할까? 그건 매개자인 야자수 열매의 속성이 타자인 멧돼지의 속성과 만나는 데 실패했다는 거야. 더 정확히 말하면 야자수 열매의 속성은 멧돼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속성과 연결되지 못했다는 뜻이지. 요즘 말로 하면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았던 거야.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자기가 듣고 싶은 방송을 들을 수 없듯이 코드가 맞지 않으면 자기와 타자는 서로 만날 수 없어. - p.50


인간은 동물과 달리 매개자를 필요로 하고 고안해내는 존재야.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으로서' 산다는 것은 매개항과 관계하면서 산다는 것을 뜻해. '매개항과 관계하는 삶'이란 문화적인 것과 관계하는 삶을 뜻해. 이 사실은 인간이 세계의 알맹이와 직접 만나지 않고 항상 그것과 만날 수 있는 통로, 즉 문화적 장치를 갈고 다듬는 데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야. - p.69


철학은 세계와 우주의 끝까지 생각하는 학문이야. 세계와 우주에 대해 더는 생각할 수 없는 마지막 단계까지 사고를 밀고 가는, 그래서 세계와 우주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닫혀 있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지. 물론 물리학, 특히 이론 물리학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만, 철학은 물리학처럼 물리 현상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물리 현상을 넘어서 작동되는 우주의 근복적인 요소나 원리를 찾고자 하는 데에서 철학은 출발했다고 할 수 있어. 동양의 '오행설'에서 金, 木, 水, 火, 土를 삼라만상의 운행의 기본 요소로 삼는다거나 서양의 '사원소(四元素)설'에서 물, 불, 흙, 공기를 우주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보는 것, 그리고 동양의 음양의 원리와 서양의 수의 원리 등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 p.75


형이상학을 뜻하는 meta-physics의 meta는 '~다음에'라는 본래의 뜻을 넘어 그 이후에는 '~을 넘어서' 그리고 '~에 대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철학의 이러한 메타적 특성은 철학의 본령을 이루게 되었어. 따라서 형이상학은 경험적인 현상과 지식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함으로써 이들이 진실로 무엇에 근거하고 또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그래서 경험적인 세계의 설명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세계관에 입각해 있는지, 이러한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사실을 검토하지. 이를 통해서 형이상학은 경험적인 현상과 지식의 위상과 정체를 밝혀 이들이 총체적인 세계 안에서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는 거야. - p.77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용어'가 이데아의 성격을 띠지는 않아. 로고스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이데아의 성격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야. 무슨 뜻이냐고? 그러니까 세계에 특정한 질서를 부여하는 우주적인 영혼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에는 이데아가 상응하지 않는다는 거야. 세계의 합리적인 질서에 부합하는 현상에 대해서만 '이데아'라는 말을 붙일 수 있어. 이를테면 '크다' '작다'는 지각적인 사태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이데아가 상응하지 않지만, 어떤 것을 '크다' '작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인 '비교'나 '성질'에는 이데아가 상응한다는 거야. - p.82


'생각하는 나'가 있다. 사유가 자아의 존재를 결정짓는다 이 사실은 '생각하는 나' 밖에서 아무것도 끌어들이지 않고도 '나의 존재'를 정립한다는 점에서 소위 '주체 철학'의 여명을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던 것이지. 데카르트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이 신에게 물려받은 것으로서 그 자체로 객관적인 존재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미 그렇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그냥 믿을 수 없었던 데카르트는 이제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전히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 자기가 사유함으로써 사유의 존재를 확보하게 되었어. 그는 인류에게 '사유의 사유', 즉 사유가 자기 자신을 사유한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거야. - p.107


고양이가 고양이이기 위해서는 개와 구별되는 특성을 지녀야 하고, 이를 개에게 양보하거나 개와 공유해서는 안 되잖아. 그렇지 않을 경우, 고양이의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세계는 혼란에 빠지겠지. 그런데 K!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봐. 각자는 자기 자신만의 모습으로 자기의 자태를 뽐내면 진행되고 있잖아. 그 이유는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야. 이렇게 넘어설 수 없는 마지막 선에 의해 닫혀 있는 각자의 자기동일성이 곧 모나드야. - p.114


이성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하는 데에서 필수불가결한 매개자다. 그런데 그 매개자는 인간의 주관적인 능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성격을 띤다. 그 이유는 사유의 원리-질서가 사물의 원리-질서와 일치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신은 세계를 지을 때 자신의 로고스를 사용하는데, 그 로고스를 인간의 이성에 부여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 자체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의 보편성'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성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성만을 잘 들여다봐도 그 안에서 세계의 기본 원리를 찾을 수 있다. - p.124


헤겔은 이성을 그 자체로 완결된 원리가 아니라 완결을 기다리는 가능태로 보았으며 완결은 가능태가 현실태로 전환될 때에만 성립한다고 생각했어. 가능태와 현실태에 대한 발상을,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빌려 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기본 운동으로 파악했지. 꽃씨가 나중에 꽃이 되는 것은 꽃씨 안에 꽃이 될 가능성을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식이야. 꽃씨가 가능태라면 꽃은 현실태라는 말이지. - p.129


인정을 통해 타인의 삶에 내가 관여하게 되는 일 자체가 실은 앞에서 말한 '자기 되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어. 나를 '나'뿐 아니라 다른 '나들'도 인정할 때 참된 '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자기는 결국 자기 자신만으로는 자기가 될 수는 없어. 그런 점에서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거쳤던 '자기 되기' 전략은 일면적이라고 할 수 있지. - p.148


무한정 열려 있다는 것은 실은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가 과연 참된 의미의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니? - p.158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의 불행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조장되는 거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존재의 불행은 개인적인 성향이나 능력이라는 자연적인 조건, 그리고 운명과 같은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서 기인하지 않고, 특정한 집단의 부조리한 지배에서 생겨나지. 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어서 특정 집단의 부당한 처사에 집단적으로 항거함으로써 불행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지. 역사란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인간의 실천적인 의지와 행동이 곧 역사의 내용을 구성하도록 해야 해. - p.188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어. 사유하는 활동 자체는 정신이지만, 그 정신의 배후에는 항상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거지. 보통 정신 활동을 그 자체로 독자적인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그 정신 활동의 뒤에는 항상 감성적인 의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거야. 이 감성적인 의지는 생명체의 자연적인 속성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고 삶의 다양한 활동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어. 그것은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고 추진력이야. 이러한 '힘에의 의지'는 선과 악 같은 도덕적 판단 이전에 삶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욕구야. 선악의 도덕 판단은 힘에의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는 양태에 지나지 않아. 생명체의 본성에는 본래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게 없어. 있는 것은 오직 힘에의 의지뿐이지. 의지는 이성 이전에 모든 생명체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감성이야.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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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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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철학에 문외한인 나에게 있어 니체는 단지 철학자로만 알았을 뿐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여러 학문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많은 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에도 관심이 많지만 니체에 대해 따로 찾아보거나 그가 쓴 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난 것은 어려운 니체의 철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 역할을 하기를 책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했다.


이 책을 쓰신 저자 고병권님은 2003년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후 딱 11년 만에 니체의 또다른 책인 <서광>이라는 5권의 책에 대해 쓰셨다. <서광>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펴내기 2년 전 1881년에 쓴 책으로써 책 속에서는 대지에 의해 삼켜져 대지의 목소리를 전하는 지하의 인간이 침묵 속에서 날이 밝아오자 지나온 밤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한다. 그 책 속에서는 우리의 삶과 도덕, 종교, 정치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렵기 소문난 <서광>을 그나마 쉽게 풀이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책 속에서는, 니체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니체가 말하는 도덕과 삶에 대해 저자 역시 하나의 독자로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리스인과 독일인에 관한 이야기와 정치, 기독교의 정신에 관해 말하고 있다. 중간중간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도 많았지만 니체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이 책을 읽는 내내 과거 한 철학자의 삶에 잠시나마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라는 의문도 많았고, 철학을 배우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 있어서는 이 책이 정말 어려울 것이로 생각했다. 니체의 <서광>에서 말하는 지하 속의 인간과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니체라는 한 인물에 관해 관심이 갔다.


니체의 철학, 그것은 무엇보다 타자로서의 철학이고, 타자가 되는 철학이며, 그 전에 철학을 타자로 만드는 철학이다. 니체의 철학은 자기 시대와 공동체를 찬양하는 어용성을 탈각할 때 시작된다. 니체는 그것을 '미래의 철학'이라 했고, 자기의 날이 '내일 이후'에 있다고 했다. - p.21


니체를 알지 못한 나에게 있어서는 이 책은 정말 미궁 속의 책이지만, 니체를 알고 그에 대해 배워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전에 읽었던 것과는 달리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하다. 철학을 배워 그의 책 <서광>을 읽을 수 있다면, 그와 함께 과거 유럽인의 삶과 인간 니체에 대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니체와 철학'이라는 말에서 니체와 철학은 서로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와'라는 접속사를 통해, 말 그대로 접속해 있다. 이 말에는 '니체의 철학'이라고 했을 때 풍기는 '소유' 내지 '소속'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철학은 니체에 속하는가(더 나아가 철학자는 철학과 소유 관계를 맺는가). 그리고 니체는 철학에 속하는가(우리는 니체를 철학 공동체에 소속된 자로 보아야 하는가). 내 생각에 '니체'와 '철학'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서로의 소유물도 아니고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우리가 '니체의 철학'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니체'와 '철학'이 맺는 어떤 관계를 통해서이다. - p.14


니체는 도덕에 대해 "그것은 단지 특정 현상들에 대한 해석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릇된 해석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도덕 판단은 증후학semiotik으로서는 대단히 가치가 있다."고 평한다. 그것은 "자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해서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 문화나 내면세계의 가장 귀중한 실상을 알려준다. - p.19


니체의 철학, 그것은 무엇보다 타자로서의 철학이고, 타자가 되는 철학이며, 그 전에 철학을 타자로 만드는 철학이다. 니체의 철학은 자기 시대와 공동체를 찬양하는 어용성을 탈각할 때 시작된다. 니체는 그것을 '미래의 철학'이라 했고, 자기의 날이 '내일 이후'에 있다고 했다. - p.21


우리는 해석된 사물을 체험하므로 우리 세계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그 무엇보다도 해석자인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우리를 폭로하는 것이 아닐까?" 니체는 친구란 "면이 울퉁불퉁하고 온전하지 않은 거울에 비친 네 얼굴"이라고도 했다. 아마도 우리는 이를 우리가 마주하는 사물들 일반까지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나타난 사물들은 결국 우리에 대해 말해준다. "모든 사물을 완전히 인식했을 때에야 인간은 자신을 인식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인간의 한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 p.49


예컨대 논리학에서 말하는 '동일성'이란 지나치게 엄격한 눈을 통해서는 파악될 수 없다. 세계에는 두 개의 먼지조차 서로 같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성'을 사유할 수 있으려면 대강 '유사한 것'에서 '동일성'으로 나아가는 어떤 감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니체는 어떤 존재가 '대강 유사한 것'에서 '동일성'으로 넘어가는 '환원적' 추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자연에서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 p.55


경건하고 고귀한 것들이 인간적 덕성을 말해주기는커녕 어떤 오류와 기만에 기초한 경우도 많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인간에 대한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요구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결혼제도에서 니체는 그것을 본다. 정열에 불타올라 사랑한 두사람에게 영원한 사랑, 영원한 열정의 의무를 지우는 결혼제도는 그 자체가 얼마나 정열의 본질을 거스른 것인가. 정열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생각은 정열의 본질에 반한다. - p.58


'힘의 감정'은 우리가 <서광>을 읽으며 여러 번 마주하게 될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이 개념은 '힘에의 의지'의 선구적 개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힘의 감정'이란 힘에 대한 감각이자 평가이며, 힘을 받을 때만큼이나 행사할 때도 느끼는 감정이다. 니체에게 '강자'와 '약자'란 '힘에의 의지'에 따른 구분이기 이전에 '힘의 감정'에 따른 구분, 즉 서로 다른 감각 내지 감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p.70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지배할 수 있고 지배함으로써 힘의 감정에 정통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독교는 덕을 드러내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고, 반대로 죄를 드러내는 것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 현실의 불행과 고통을 죄와 연결 지었다. 죄의 크기와 불행의 크기를 연계하는 계산법, 즉 '고통과 불행이 클수록 지은 죄가 큰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 p.71


도덕적 행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종종 중첩된 오류에서 나온다. 우리는 우선 그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주목한다. 우리에게 이로웠는지, 해로웠는지, 그다음 우리는 그 행위가 행위자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고는 그런 의도가 그 행위자의 지속적 성질, 다시 말해 행위자의 본질적 측면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이를 "삼중의 오류"라고 불렀다. - p.85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일생 동안 "자아의 환영을 위한 일만 한다." 이 자아의 환영이란 '타인에 비춰진 나'이고, 사이비 이기주의란 이 환영에 대한 나의 동일시라고 할 수 있다. - p.89


우리는 태양이 솟아오를 때 방에서 나와 "나는 태양이 뜨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비웃을 것이다. 또 우리는 바퀴를 멈출 수 없으면서도 "나는 바퀴가 구르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격투에서 져 쓰러진 사람이 "나는 여기에 누워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누워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비웃는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렇게 비웃지만, 우리가 '나는 원한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 저 세 사람과 다른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가?" - p.102


니체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벽돌'을 '신의 사랑'과 연관 짓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 때가 뭔가를 깨달을 기회라고 말한다. 목적과 이성이 미치지 못한 영역만을 '우연'이라고 말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자. 혹시 목적이나 이성 자체에도 '우연'이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지와 목적이란 없는 것이며 그것들은 우리가 상상해낸 것"이 아닐까. - p.109


동정은 또한 동정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정을 받는 이를 불행하게 만든다. 동정을 구걸하는 이는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그것을 얻는다. 바로 타인과 자신이 동등하다는 긍지를 포기한다. "동정을 받는다는 생각은 야만인들에게는 도덕적 전율을 일으켰다. 동정을 받을 경우 사람들은 모든 덕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동정을 베푸는 것은 경멸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경멸할 만한 인간이 괴로워하는 것을 그들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어떤 적이 자신과 동등하게 긍지를 포기하지 않으며 동정을 받는 것을 가장 치욕적이고 가장 심한 굴욕으로 간주하면서 거부한다면, 그런 적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 p.114


우리는 왜 이렇게 타인의 감정을 모방하는 데 숙달되었을까. 그것은 앞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가 '타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라서, 무리 속에서만, 통계적 평균인 뒤에서만, 혹은 '세인' 뒤에서만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시대라서 그런지 모른다. 아니면 종種적 특성으로서 인간이 갖고 있는 '겁 많음' 때문일 수도 있다. - p.118


강자의 말과 약자의 말이 가장 큰 차이는 진실함에 있다. 여기서 진실하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다는 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자신에 부합하다는 말'을 한다는 뜻이다.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자신의 말이 아닌 말,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말을 하는 것이다. 근대의 '냉소주의'를 비판하고 그것을 고대의 '견유주의'와 대비했던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우리는 계몽되었고 우리는 무감각해졌다"고 했다. - p.128


"그리스인들이 삶에서는 커다란 위험과 전복을 가까이에 두고, 숙고와 인식에서 일종의 안도감과 초종의 피난처를 찾는 것"과는 달리 근대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안전한 상태에서, 위험을 숙고와 인식으로 옮겨버렸다." 그래서 생각으로는 온갖 위험한 것을 공상할 수 있지만 행동이나 실제 삶에서는 그것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 p.132


우리는 여러 곳에서 니체가 어떤 것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 니체가 말하는 기다림이란 승강장에서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같은 게 아니다. 니체는 우리가 '시도'와 '실험' 속에서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음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다음 아포리즘들을 보자. "삶과 사회에 대해 무수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실험이 여전히 행해져야만 한다." - p.148


'민중 정치'에 대한 니체의 비판 역시 마찬가지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는 니체가 목격한 19세기 민중 정치의 문제점이 역으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약자 민중이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민중이 강자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중은 복종하는 법이 아니라 명령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자신의 삶과 정치에 대한 고귀한 취향을 가져야 한다.(민중-귀족) 그렇지 않으면 민중은 '술고래들'이 들이붓는 술에 도취되어 놀아나는 어릿광대가 되고 말 것이다. - p.156


니체는 가난한 이들에게 어느 길을 갈 것이냐고 묻는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독립적이라는 것! 그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노예라는 것! 이것도 가능하다." 어느 쪽인가? 당신은 어느 쪽인가? 아마도 당신이 "지금의 상태처럼 기계의 나사로, 또 말하자면 인간의 발명품에 대한 보완물로 소모되는 것을 치욕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높은 급여를 통해.. 비참한 삶의 본질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후자의 삶을 택한 것이다. "돈 많은 노예 상태'를 치욕으로 경험하느냐 행복으로 경험하느냐. 그 힘의 감정에 따라 우리는 아주 다른 체제, 아니 '다른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니체는 다시 묻는다. "인격이 아니라 나사가 되는 대가로 하나의 갑을 가질" 것인가? - p.157


여성은 남성의 성급함과 허영심을 이용한다. 이를테면 남성들은 여성을 부양하는 것으로 자신의 허영심과 명예욕을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여성이 더 현명하다. 남성의 허영심과 명예욕을 활용해 그를 이용하고 부려먹을 줄 아는 여성 말이다. "여성들은 종속됨으로써 압도적 장점은 물론이고 지배권도 확보하게 될 것을 안다." 이들은 종속을 감내하는 것은 겸손해서가 아니다. 이는 "최고 지배자"의 "영리하고도 냉혹한 요구"이다. 참고로 데리다는 여기서 '소유'와 '지배'의 어떤 결정 불가능성을 발견했다. "여성은 줌으로써, 몸을 내맡김으로써, 소유의 지배력을 위장하고 소유의 지배력을 확실시한다." 주는 것과 획득하는 것, 소유한 자와 소유당한 자의 어떤 결정 불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 p.178


예술은 배후에 진정한 '존재'를 둔 일종의 '가상'으로 존재하는 한 '도덕'의 추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이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귀중한 선물 하나는 우리의 삶이 '무구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음악가들은 위대한 발견을 했다. 즉 그들은 흥미로운 추함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설령 음악가 자신들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내면적 인간의 나쁜 행위와 이 행위의 무구함을 포착할" 소중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 p.182


니체는 고독 속에서 나는 임신한 자의 몸가짐을 본다. 신체가 아주 민감해지면서,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에 큰 역겨움과 구토를 느끼는 것. 그것은 자기 안에 새로운 뭔가가 자라고 있다는 임신의 징후일 수 있다. 고독한 자는 몸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고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활 습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이는 뭔가 피하고 떠나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돌보고 가꾸는 일이다. 자기 안에서 새로운 진리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 p.202


우리의 능력이나 위대함 역시 단번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잘게 부서져 내린다. 모든 것 속으로 들어가 자라고 어디에나 달라붙을 줄 아는 식물,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위대한 것을 파멸시킨다. 그것은 매일, 매시간 간과되고 있는 우리 주변의 비참함이며, 이런저런 작고 소심한 감각의 수천 개의 작은 뿌리가 되어 우리의 이웃, 직장, 교제, 일상의 일에서 자라난다. 우리가 이 잡초를 조심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 때문에 몰락하게 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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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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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읽었던 책과 문서를 계속해서 기록하여 10~20년이 지난 후 다시 그 글을 읽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부분 어렸을 적에 학교 숙제로 썼던 일기를 시간이 지난 후에 읽어보면 창피하거나 '내가 정말 이랬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기록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아는 일본의 소설계의 거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뽑혔던 그의 소설 1Q84를 쓰신 작가인 그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에 한 분이시다.


이번의 더 스크랩은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약 4년 동안 <스포츠 그래픽 넘버>라는 잡지에 연재한 글이다. 그의 나이 30대 초중반 시절 미국의 유명한 잡지와 신문인 <에스콰이어><뉴요커><라이프><피플><뉴욕><롤링스톤><뉴욕타임스>를 읽으며 재미있을 법한 기사를 골라 스크랩해서 그걸 일본어로 정리하여 원고를 작성한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역사라 그런지 읽기 전부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자못 궁금하였다.


이 스크랩북은 문자 그대로 잡탕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맞아,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라든가 "오오, 이런 일이"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가까운 과거 여행'을 즐겨주신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이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가 스크랩한 글은 대부분이 어찌 되든 아무 상관없는 사소한 화제뿐이다. 다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삿짐 싸다 벽장에서 나온 오래된 졸업앨범을 무심코 넘겨보는.. 그런 기분으로 읽어주시길 - p.6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건은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한두 개쯤 기억할 테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그런지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신선함이 느껴졌다. 특히 작가였던 그가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소설로만 봐서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그의 성격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재미있게 읽혔다. 특히 그가 조깅을 좋아한다는 것과 재즈, 클래식, 고전 소설, 영화 등을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이제까지 나온 그의 소설 속에 나온 소재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다. 아마 이 스크랩 북을 꾸준히 작성하였기 때문에 최고의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는 일본 디즈니랜드가 개장하기 전 매스컴 프리뷰에 참가했던 역사적인 기사와 '올림픽과 별로 관계없는 올림픽 일기' 또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정말 새로웠다. 


나 역시 이제까지 귀찮은 성격 탓에 일기를 꾸준히 쓰거나 스크랩 북을 제작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었던 신문 기사나 칼럼 등을 스크랩하여 내 생각을 함께 남겨둔다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 서평을 남기는 것처럼 잡지나 뉴스 기사에 관한 생각을 글로 남긴다면 나도 나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대단한 소설 작품 하나를 쓸 수 있지 않을까?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사람은 모두 나이를 먹는다. 그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좀처럼 알지 못한다. 머리가 벗어진다는 건 어떤 느낌이며, 성욕은 어느 정도가 있는지, 노안은 어느 정도 불편한지,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생리적인 것인 동시에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식도 미묘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야 당연하다. 20세의 건강한 청년이 '어차피 나이 먹으면 배 나오고 머리 벗어지고 신장병으로 죽을 테니'라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일도 못 할 것이다. - p.29


<에스콰이어> 기사에 따르면 풀코스 마라톤에 출장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훈련량은 '일주일에 80킬로미터씩 두 달 동안 계속 달리는 것'이다. 하루에 약 12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마라톤에 출전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 p.48


헤르페스는 아주 흥미로운 병이다. 감염되어도 전혀 발병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혈액 내에 항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로 말하면 감염되어 발병하는 사람은 전체의 십분의 일 정도다. 그러나 십분의 일이라고는 해도 미국에서는 약 천만 명에서 이천만 명의 음부 헤르페스 환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는 해마다 이십오만 명씩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 - p.60


만약 반빙하소설이란 것이 실제로 있다면 나도 꼭 읽어보고 싶다. 반쓰나미소설, 반지진소설, 반분화소설, 반일식소설, 반폭풍파란홍수소설.. 이런 것도 소설가 쓰쓰이 야스다카 씨 풍으로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 - p.75


그리스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까다롭다. 어째서 까다로운가 하면 대부분의 그리스 영화관은 여름에는 밤 9시쯤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여는가 하면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영화관에 지붕이 없는 것이다. 지붕이 없으니 주위가 캄캄해지지 않으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 대단하지 않은지? 옛날에 학교 운동장에서 곧잘 해주던 야외 영화 감상회와 비슷한 느낌이다. 스크린은 테니스 연습용 벽을 새하얗게 칠한 것 같고, 의자는 땅바닥에 파이프의자를 늘어놓는 게 전부다. 터무니없다고 하면 뭐 터무니없기도 하지만 요금이 200엔 정도로 싸다. - p.97


어디까지나 일반론이지만, 공포 소설 작가가 진지하게 공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유머 소설 작가가 진지하게 유머란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만사가 상당히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 p.112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현대와 같은 정보 과밀 사회에서 모든 명성은 근본적으로 과대평가라고 생각한다. 과소평가의 개념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소평가라고 주목받는 것 자체가 이미 과대평가이다. 어려운 세상이다. - p.129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달리기를 위한 음악으로 가장 좋은 것은 '스타스 온' 풍의 메들리송이다. 리듬이 안정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단순해서 편하게 달릴 수 있다. 그리고 스터프나 크루세이더스 같은 심플한 퓨전음악도 나쁘지 않다. 극히 평범한 아메리칸 록뮤직도 달리기에 어울린다. - p.152


나도 고양이를 꽤 많이 키운 사람이어서, 애완동물을 잃은 사람들의 기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동물은 언젠가는 죽는 법, 그것도 대부분은 갑자기 죽어버린다. 그러니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잘 키우는 것이 애완동물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 p.173


운석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한 가지는 그 온도다. 지상에 막 떨어진 운석은 뜨겁고 연기가 풀풀 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그것은 아주 차갑다. 어쨌든 그것은 몇백만 년 동안 영하 200도에서 냉동되었던 것이니, 그렇게 쉽게 뜨거워지거나 하진 않는다. "차가워서 손을 댈 수 없을지도 몰라요"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세상은 참 다양한 일로 가득차 있구나 싶어 정말 감탄스럽다. - p.222


나는 원래 남들 앞에서 얘기하고, 개인기를 보이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 것은 팔 년 전인데, 그때 부른 노래는 '이누노오마와리상(개 순경아저씨)'이라는 동요였다. 다시 떠올려봐도 불쾌하지만, 내게 '이누노오마와리상'을 시킨 것은 '생활향상위원회'라는 재즈 그룹에 있던 하라다라는 술버릇 나쁜 피아니스트다. 하라다가 주정을 부리며 나한테 억지로 '이누노오마와리상'을 부르게 했다. 재즈 뮤지션과 어울려서 좋았던 적이 없다. - p.275


나는 부자가 되면 목소리게 예쁜 일본의 여자대학 출신의 비서를 고용하여 이발할 동안 로버트 B. 파커의 소설을 낭독하게 하고 싶다. 나는 옛날부터 비서를 고용한다면 여자대학 출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어떨까?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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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한민국 재테크 트렌드 - 저금리 저성장 고령화 시대, 돈은 어디로 흐르는가
조선일보 경제부 엮음 / 모멘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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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경제 성장과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로 중산층 사람조차도 살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무리한 대출금으로 아파트를 사서 빚을 갚지 못하는 하우스푸어는 물론, 너무 비싼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나머지, 세금 때문에 골치 앓고 있는 사람 등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사람들조차 큰 고민을 안고 있다. 나와 같은 20대들은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는 한, 집을 구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현실에서 그나마 돈을 모으기 위해 어떠한 노력과 방법들이 필요할까?


그에 맞춰 서점가에서는 다양한 재테크 관련 책들이 하루에도 몇 권이나 쏟아지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재테크에 관해 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번 조선일보 경제부에서 엮은 2014 대한민국 재테크 트렌드 역시 앞으로의 미래에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좋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12월 20일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재테크 박람회' 현장을 담은 것이다. 그 박람회에서는 노후 설계를 받으러 온 사람부터 무려 30억이나 가지고 있는 자산가까지 세계적인 투자 귀재인 짐 로저스 회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온 것이다. 그곳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에 관해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자산이 많지 않은 사람부터 자산은 있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할 줄 몰라 전전긍긍 되는 사람들까지, 재테크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이 책에서는 부동산, 주식, 펀드, 자산 포트폴리오, 예금, 보험, 노후설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는 유명한 금융 전문가들이 토론 배틀 형식으로 재테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한은행 청담역 고준석 지점장님, 부동산 투자 전문 알투코리아의 김희선 전무님, 부동산학 박사이신 박원갑 박사님, 이월에셋 이영진 대표님,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구재상 대표이사님, 우리은행 투체어스 박승안 센터장님,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이신 박합수님, 삼성증권 투자 컨설팅 팀장인 백혜진님, KB국민은행 대체PB센터 부센터장이신 신동일님, 미래와 금융 연구 포럼의 강창희 대표님, 마지막으로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님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금융 전문가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나라 시장과 전 세계의 기업, 산업 분야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한 문제를 가지고 금융 전문가분들이 토론 배틀 형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읽는 독자들에게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가 아닌 중립적인 위치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이 책의 큰 포인트다. 5,000만 원으로 부동산 시장을 투자하는 말로만 들어도 솔깃한 방법부터, 단돈 3,000만 원으로 투자하는 방법까지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으로, 나 또한 돈을 모으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리한 투자가 아닌 안전하게 남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주식에 관해 배워보고 싶기까지 했다. 그러나 뒷장에서, 노후설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자식들이 미래에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와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에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나 역시 노후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꼭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나의 자산을 어떻게 굴리며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더욱 신중해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왜 2014년에는 부동산 시장이 나아질 거라고 보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전세난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세가가 올라도 매매가를 밀어 올리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요즘에는 전세로 살 때부터 이미 대출을 받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려고 해도 대출을 받기가 힘들다 보니 전세가가 올라도 매매가를 끌어 올리지는 못합니다. (중략) 전세가 비율이 80퍼센트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세입자가 은행에서 돈을 꿔다가 집주인게 전세금을 더 올려주는 것은 어찌 보면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 전세로 바꾸거나 아니면 집을 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입자가 맡겨놓은 전세금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세입자가 어쩔 수 없이 집을 사야 하는 서글픈 현실입니다. 이처럼 '전세푸어'들이 어쩔 수 없이 집을 사야 하는 구조가 현재 주택 시장의 상황입니다. 이것을 두고 호전된다고 표현할 수는 없죠. 단, 집값 상승 요인은 됩니다. 이런 지경인데 본경적인 상승세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 p.29


OECD 국가를 기준으로 보면 인구 1,000명당 주택 수가 400~550채입니다. 한국은 300~350채인데, 도시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평균 350채로 보면 됩니다. OECD 국가에 비해 50~150채가 부족한 겁니다. 현실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태죠. 그런데 가격은 왜 떨어질까요? 그것은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을 많이 규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만약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시장경제 원리에 맡긴다면 저는 지금이 바닥이라고 봅니다. - p.31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여행객이 중국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행인에게 목적지를 알려주고 "어디에서 좌회전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이틀 뒤에 좌회전하세요" 하더랍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면 우리가 바닥이라고 하는 것이 빗살무늬토기의 바닥처럼 뾰족한 바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집값이 오른다는 것도 이틀 뒤에 좌회전하라는 말처럼 2, 3년 뒤에 오를 거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이런 현상을 '욕조용 바닥'이라고 합니다. 바닥이긴 해도 열흘 혹은 석 달 뒤가 아니라 5년 후에 바닥이 끝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 p.34


세상사가 그리 만만치는 않죠.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저는 '바닥론'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두고 '소망적 사고'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전망과 '집값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섞여 있는 겁니다. 흔히 어떤 대통령의 지지도가 바닥일 경우 곧 올라갈 거라는 기대감을 갖지는 않지요. 그냥 '원래 지지율이 낮구나'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집값이 바닥이라고 하면 '아,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곧 오를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곤란하죠. - p.35


절대 대출을 많이 받아서 집을 사면 안 됩니다.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므로 조금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바닥록을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닥론은 집을 사라는 무언의 압박입니다. 너무 그쪽으로 빠지지 말고 주택 문제 앞에서는 항상 보수적인 마인드를 유지해야 합니다. - p.36


심리학 용어 중 '의대생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대생은 질병을 공부하죠. 그 의대생이 오늘 위의 증상을 배웠는데 그날 따라 위가 아픕니다. 그럼 '어, 이거 위암 증상인데, 내가 위암에 걸렸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일은 뇌 질병을 배웠는데 그날 따라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면 '머리가 아프면 뇌종양인데, 뇌종양 걸렸나?'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의대생 증후군입니다. 일본과 조금만 비슷해도 '혹시 일본을 따라가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본 부동산의 장기 불황은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건입니다. 저는 부동산 시장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장기적으로 조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환상에 빠지지 말고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극단론에는 절대 귀 기울이지 마세요. - p.38


한국의 가구를 중장기적으로 생각할 때 한 집에서 4~5명이 함께 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거의 3명, 2030년이면 한 집에서 2명만 사는 경우가 50퍼센트 이상일 겁니다. 즉, 대형 아파트의 수요가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소득이 늘고 가계에 경제력이 생기면 큰 집에 한두명이 살 수는 있지만 이건 예외적인 일입니다. 내가 거주할 목적으로 큰 집에 가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투자 목적으로 중대형 아파트를 사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p.40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부동산 시장 규모는 약 8,000조 원입니다. 토지 시장이 약 5,000조 원이고 수익형 상가와 중소형 빌딩이 1,500조 원 정도입니다. 아파트는 약 1,500조 원입니다. 그러니까 아파트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된다'거나 '2014년에 시장이 좋지 않다'가 아니라, 내가 어떤 부동산에 어떻게 제대로 투자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41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겁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금리 변동성 부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신규 투자를 하거나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하려는 사람은 신중하게 임해야 합니다.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보유하고 있다면 대출 압박감이 지금보다 더 높아져 서둘러 집을 매물로 내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양적완화 축소가 주택가격이 다소 하락하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게 2014년 시장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다지 비관적으로 볼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p.52


부동산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꿈과 전망을 섞어 얘기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부동산 시장 전망을 너무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은 전망과 '당위'를 섞어서 얘기합니다. 집값이 오르면 안 된다. 집값 때문에 서민이 고통받는다. 그러니 집값은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말이야 맞는 얘기지만 그런 당위적인 주장이 곧 전망이 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전망은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거기에 당위적인 주장을 과도하게 섞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 관점을 지닌 사람의 말을 종합해서 듣고 객관적, 중립적 위치에 서야 한다고 봅니다. - p.54


주택 시장에는 세 군데의 틈새시장이 있다. 그것은 급매 중에서도 아주 급한 급급매 시장, 경매 시장, 미분양 시장을 말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세에 비해 10퍼센트, 20퍼센트 또는 30퍼센트까지 가격경쟁력이 확보돼 있다. 앞으로 시장이 불투명할수록 가급적 저렴하게 주택을 구입하려는 욕구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시장이 이들 세 가지 시장 위주로 흘러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더불어 2014년에는 경매 시장에서 입찰자 수가 소폭이라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p.66


요즘엔 금리가 낮아 경매가 아닌 일반적인 방식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면 임대수익률이 적게는 3퍼센트, 많아도 5~6퍼센트밖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경매 시장에서 낙찰받으면 임대수익률이 최소한 5퍼센트에서 많게는 9퍼센트까지 나온다. 경매 시장에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부동산을 살 때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어 수익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 경우 경매가 일반 매매보다 평균적으로 2배 이상의 임대수익률은 올리는 구조가 형성된다. (중략) 2014년 말 현재 은행에 예금을 해봐야 이자율이 2~3퍼센트, 많아야 4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나 상가를 경매로 취득하면 최저 5퍼센트, 많게는 9퍼센트의 수익률을 바라볼 수 있다. - p.69


확장성을 감안해 물건을 검색해야 한다. 경매 물건을 검색할 때 내가 가능한 범위가 1억 5,000만 원이라고 해서 딱 1억 5,000만원까지의 물건만 검색하지 말라는 얘기다. 특히 토지는 2억 6,600만 원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2억 7,000만 원 혹은 3억 원까지도 물건을 검색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의 바로 경매의 큰 장점이다. 낙찰가율에 따라 범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경매가 지닌 장점 중 하나다. - p.82


미국의 제조업이 좋아진 이유 : 월가(자본 시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월급 상승, 셰일가스 직접 생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 p.93


중국은 반드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중국은 생산설비가 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투자를 많이 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었다는 것은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구조조정이 한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터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이 조선, 태양광, 화학, 철강 등을 구조조정한다는 말이 나오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투자해야 한다. - p.97


2014년 일본 경제가 좋아지면 엔화 약세가 조금 멈출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일본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양적완화를 하면서, 즉 돈을 풀면서 추가 절하를 할 수도 있으므로 투자를 할 때는 엔화 약세에 주의해야 한다. - p.101


2014년 주식 시장을 바라볼 때는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짜듯 개인투자자 역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가령 곡물가가 빠지고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한국의 일부 내수산업 중 먹는 것과 관련된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 p.103


주식투자를 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저평가된 주식을 사라'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이익 방향이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라!' 당연한 얘기지만 저평가된 주식은 반드시 사야 한다. 그다음으로 종목을 고를 때는 이익 방향성이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이 좋다. 이것이 주식투자에서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요소다. 주식투자를 할 때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PER(주가수익비율)인데, 이것은 이익 대비 주가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마디로 PER이 낮으면 좋은 주식이다. 2014년 말 현재 한국의 PER은 8.7배인데 미국은 한국보다 2배다 비싼 약 15.1배다. 수치상으로 보면 한국은 여타 나라에 비해 주식이 싼 편이다. 한국의 PER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국내 투자 비중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내의 투자금은 전체적으로 은행예금 쪽으로 지나치게 쏠려 있다. 이것이 한국 시장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커다란 요인 중 하나다. - p.111


그 다음으로 봐야 할 것이 이익의 방향성인데 이때 중요한 것이 EPS, 즉 주당순이익이다. 이것은 이익이 얼마만큼 증가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대형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은 2014년 EPR 22퍼센트고 미국은 9.8퍼센트, 여타 다른 나라가 10퍼센트 정도다. - p.112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우리는 대체 뭘 알아야 하는 걸까? 간단하게 딱 한 가지 지표만 알려달라고 한다면 나는 '시가배당수익률'을 권하고 싶다. 시가배당수익률이란 배당금을 현재 주가로 나눈 수익률을 말한다. 예를 들어 KT가 배당금 2,000원을 주는데 주가가 4만 원이라면 이 회사의 배당수익률은 5퍼센트이다. 배당수익률이 중요한 이유는, 배당금을 주는 회사는 월급을 정상적으로 지불하고 세금도 제때 다 낸 회사다. 배당금을 내준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회사가 월급을 주는 데 문제가 없고 또 세금을 낼 만큼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p.127


똑같은 신문을 보더라도 증권면보다 기업면이나 산업면에 나오는 기사에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 나오는 기사를 읽다 보면 '뭔가가 잘되고 있다'거나 반대로 '뭔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더러는 좋은 숫자, 즉 PER이 낮거나 배당금을 많이 준다는 기사를 보고 '동서'같은 회사를 찾아낼 수 있다. - p.129


주식은 원래 시장이 좋을 때가 아니라 나쁠 때 사는 거다. 시장이 좋지 않을 때 투자를 하면 정말로 손해 볼 일이 없다. 주식을 모른다면 배당수익률이 높은 시점, 모든 사람이 주식을 갖고 있다가 실패한 시점, 엄청난 악재로 주식시세판에 파란색밖에 보이지 않는 시점, 하락하는 종목밖에 보이지 않는 시점에 투자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 p.134


사람들은 흔히 환율이 올라가는 것만 좋게 본다.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대형주 중에는 수출 주도형, 수출 대기업이 많다. 그러나 환율이 떨어질 때 이익을 보는 업종, 예를 들어 소비재나 내수 업종도 가치가 있으므로 여기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 늘 다양성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p.147


'앞으로 시장이 나빠질 것이다.','물가가 빠질 것이다.'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찰을 갖고 잘 지키는 것이 결국 버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만 재테크는 아닙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도 재테크입니다. 1년이 아니라 5년, 10년을 보고 투자하십시오.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종목을 선정해 투자하는 게 맞습니다. - p.166


국공채에 투자하는 상품은 5년간 매달 월급을 주고 5년 후 원금을 줍니다. 이 경우 정기예금 2.6퍼센트보다 높은 3.48퍼센트가 나옵니다. 세금도 정기예금보다 낮고요. 3.5퍼센트가 낮다고 생각한다면 좀 더 높은 수익률이 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ELS랩이 있습니다. ELS의 가장 큰 리스크는 기초 자산이 너무 많이 떨어졌을 때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기초자산을 전문가가 골라주는 ELS랩이 있습니다. - p.194


전원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보면 절대 안 됩낟. 은퇴한 이후 남성 중에는 시골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있지만, 여성은 다릅니다. 남편이 시골에 가자고 하면 아마 아내가 '혼자 가라'고 할 겁니다. 설령 같이 가더라도 1년 안에 돌아올 확률이 높습니다. 전원주택은 투자 대상이 아닙니다. 전원주택은 로망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한겨울에 전원주택에 살면 매일 눈을 치워야 하고 추워서 살기 힘듭니다. 난방비는 어떻게 할 겁니까? 추울 때 전원주택에서 갑자기 밖에 나오면 자칫 잘못하다가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 p.212


증권사의 전망이나 주가 전망에 대해 진실과 오해를 말씀드리자면 증권사가 다음 해의 주가를 전망할 때는 글로벌 매크로, 즉 거시경제부터 화폐 규모와 기업의 이익 추진력을 비롯해 경기 사이클까지 분석합니다. 단 전쟁, 지진 같은 천재지변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처럼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발생하는 것은 증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거죠. - p.214


시간이 갈수록 유산 상속형 부자가 아니라 빈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부자가 늘고 있다. 이 말은 자기만의 아이템이나 재능을 발견해 부자가 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은 맞는 얘기다. 왜 3대를 못 가느냐고? 그건 부자의 자녀들이 수준 높은 교육은 받을지언정 자산을 관리 및 유지할 만한 심적 수준은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가 2대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늘고 있다. - p.218


부자는 10원이 모여 100원이 되고, 100원이 모여 1,000원이 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담아 두고 동전까지도 귀하게 쓴다. 한국 경제게의 전설적인 인물, 고 정주영 회장도 1,000원을 쓰면서 신중했다고 하지 않던가, 반면 그 어른은 1,000억원을 쓸 때는 아주 과감했다. - p.222


100억대, 1,000억대 자산가는 철저하게 3/3/4 전략을 취한다. 만약 내 종자돈이 1억 원이라면 4,000만원은 안정형 자산에 3,000만원은 보험이나 절세 상품에, 나머지 3,000만 원은 펀드 혹윽 주식 같은 투자형 상품에 투자하는 식이다. - p.224


2014년의 화두는 바로 저금리와 과세 강화다. 이 말은 돈 모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절세형 상품을 찾아야 한다. 절세형 보험은 평범한 사람들이 종자돈을 모을 때 강력할 툴을 제공한다. 단, 절세형 보험은 10년 이상 투자해야 한다. - p.226


부자들이 돈 버는 아바타를 일곱 개에서 열 개쯤 갖고 있다. 덕분에 그들은 여유자적하며 삶을 즐기지만 그러는 중에도 아바타가 열심히 돈을 벌어준다. 평범한 사람들은 어떨까? 돈 버는 아타바가 거의 없다. 월급을 받지 않느냐고? 그건 아바타가 아니라 본인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해서 버는 돈이 아닌가. 구조조정을 당하면 그나마 그 월급도 그날로 끝이다. - p.230


여러분은 30년 혹은 40년이나 되는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통장을 쪼개라거나 어디어디에 투자하라는 조언은 이미 꽤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2순위에 불과하다. 우선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아이템을 찾아 작은 목표부터 달성해 나가야 한다. - p.234


영어와 수학은 못해도 먹고살 수 있지만, 돈 관리와 경제적 자립을 모르면 평생 고생한다. 부럽게도 미국의 고등학교 교과서는 무려 43쪽이나 항애해 돈 관리와 경제적 자립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작 1~2쪽밖에 안 된다. 그마저도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아예 맛조차 볼 수 없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저축과 투자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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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예술견문록 - 중국 현대미술을 탐하다
김도연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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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떠오르는 국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누구든지 중국이라고 할 것이다. 언론이나 방송,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를 읽으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강대국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 시장을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 그것도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미술 작가인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이 250억 원에 낙찰된 것만 봐도 중국이 왜 최고의 예술 시장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쓴 저자인 김도연 님은 이화여대에서 한국화와 서양화를 공부한 후 중국 중앙미술학원 예술 관리학과에서 아시아 예술시장으로 석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다. 현재 크로스오브센터와 ICA 예술 마케팅 아트 매니저로 예술 기획을 하고 있는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예술을 알라기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림과 예술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미술 애호가처럼 미술관을 찾아가거나 미술 작가들에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여기에 소개 된 작가들 또한 처음 봤으며, 중국의 예술이란 이렇게 거대하고 놀라운 곳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끼게 되었다.


책의 시작은 중국 북경에 있는 798 예술구의 소개로 시작한다. 798 예술구라는 곳을 알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서는 저자 김도연 님의 소개와 관련 사진들을 볼 때면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한때 공장이었던 그곳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간이었다.


798은 예술동네다. 길을 지나가면 작가들이 인사를 건네고 카페에 앉으면 옆자리에서 방금 시작한 전시의 큐레이터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구 저편 아프리카에 불어 있는 섬만큼이나 생경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798 예술 마을이다. 처음 798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뉴욕의 소호와 첼시를 이야기한다. 거친 공장과 창고에서 에술의 생산기지로, 그리고 상업화되는 그 과정과 변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자유로운 면에서 798은 소호, 첼시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변한다 해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골목 사이에 반짝 하고 빛나는 그 시간과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철저히 대형 브랜드숍, 고급 디자이너 부티크들과 레스토랑으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된 트렌디한 소호에 비해 798은 아직 바깥 세계와는 분리된 특수한 공간이다. 밀려드는 상업자본 안에서도 798은 아직 여전히 예술을 중심으로, 이를 위해 움직인다. 이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현실적인 공장의 담,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담 안에서 예술가들은 이를 뛰어넘기 위해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꿈을 꾼다. - p.50


798 예술구의 소개 다음으로는 차오창띠에 대해 설명해준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구로 알려진 차오창띠는 자본주의가 들어간 798 예술구과는 다르게 상업화가 되지 않아 진정한 예술구라고 불리는 곳이다. 차오창띠를 소개하며 그곳에 있는 화랑들과 미술관을 통한 현대 미술의 관점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는데, 예술을 잘 몰랐던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설명을 해주어 예술에 문외한이더라도 예술구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중국에 있는 유명한 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미술학원 미술관부터 금일 미술관, 국가 미술관, 중국 미술관까지 다양한 미술관을 소개하며 전시하는 갤러리들을 통해 중국 현대 미술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작가들의 생각 또한 읽을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괜찮았던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은데 그림체와 그들의 말한 내용을 읽을수록 예술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내가 중국 예술 문화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팡리쥔 - 시리즈2


저는 예술가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죠. 저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작가들은 예술이란 삶과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아주 숭고하며 고립된 것이라고 생각하죠. 예술가들에게는 종종 자신을 대중에서 떼어놓고 마치 '비인류'처럼 생각하는 큰 병이 있어요.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저와 대중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똑같아요. 상하이 사람이든, 베이징 사람이든, 랴오닝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들의 욕망, 좋고 나쁨은 99% 다 똑같아요. 만약 이 공통점을 모르고 대중을 그저 바보 취급한다면 그건 마치 눈만 있고 마음이 없는 것과 같아요. - p.192



팡리쥔 - 홍색 기억


저는 항상 제 주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아요. 90년대 샤면에서 그 아이들이 제 현실이었다면 지금은 제가 생활하는 이 도시가 저의 현실이죠. 베이징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어요. 마치 생명체처럼요. 그 안에 파이프도, 큰 벽들도, 창문도, 매화나무도, 물도 있어요. 나는 내 작품이 좀 더 열려 있기를 바래요. 언젠가 나에게 '모호하다는 것은 더 열려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죠? 나는 그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더 확장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나는 마음에서 본 것을 늘 갖고 다니는 드로잉북에 그려요. 그것은 내 상상이면서 진실이죠. - p.174

 



펑쩡지에의 작품


저는 염속을 염染과 속俗이라는 두 글자의 뜻으로, 즉 두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어요. '염'이란 시작적인 것이예요. 이 글자는 원래 색이나 빛이 선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즉 색채를 포함한 표현 언어 그 자체의 강렬함을 이야기해요. 그 반면 '속'이라는 것은 그 안에 반영하고 있는 내용을 말하죠. 세속적인 생활이나 리듬상태를 가리켜요. 그래서 염속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작품 내외에 드러나는 두 가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에요. 단순히 색깔이 화려한 작품이나 통속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세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특정한 표현 방법을 가진 일련의 작품들을 가리키는 단어예요. - p.208



샹징의 작품


혹시 중국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그들이 다 커플이라는 거예요. 더구나 작가인 남편도 거의 대부분 유명한 작가들이죠. 저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언젠가 미국의 평론가가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정말로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그렇더군요. 저 또한 그렇고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아요. 중국에서 여성 작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 p.272



쉬빙 - 지서


<지서>는 완전히 표식문자 아이콘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천서가 글자처럼 이루어진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은 반면, <지서>는 글자가 하나도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죠. 그리고 이 책은 어떤 문화, 언어와 상관없이 현대인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처음 이 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비행기 안이었어요. 공항과 비행기 안은 언어와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그림과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죠. 예를 들면 비행기 안에 있는 안전 설명서도 불과 몇 개의 그림으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았잖아요? 사실 몇십 년 전의 안전 설명서는 이렇게 간단하고 쉽지 않았어요. 점점 편하고 알아보기 좋게 변한 것이죠. 우리의 생활은 변하는데 언어는 그만큼 변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류는 아이콘을 더 증가시키고 있어요. 바로 이런 아이콘으로 만들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랫동안 우리가 쓰는 아이콘을 수집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했는데 최근 컴퓨터와 핸드폰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모티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우리는 사실 매일 '그림을 읽으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예요. - p.296



까오위 - 호랑이를 때리다


내 꿈은 디즈니가 되는 거예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좀 더 재미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디즈니는 디즈니랜드를 만들었잖아요. 정말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 거예요. 저도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 p.319



이 외에도 중국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긋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인터뷰가 나오며, 쉬빙과 까오위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젋은 예술 작가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미래에도 최고의 예술 부흥 나라가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대한민국 역시 정부와 국민들이 예술에 관해 관심을 가져 중국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나라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보는 내내 중국의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언젠간 꼭 한 번 중국의 798 예술구와 차오창띠, 유명한 미술관들을 관람하고 떠나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나는 중국의 젊은 작가들을 만나며 이 단단한 거품, 그리고 그 거품이 낳은 힘찬 파돌르 느낀다. 중국 미술의 푸요로움이 이들을 키운다. 중국의 젊은 작가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대학 졸업전시는 데뷔전과 같다. 매년 각 미술대학의 졸업전시는 갤러리들과 컬렉터들이 새로운 작가를 찾는 모색과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이 졸업전 작품들은 학생 작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완성도와 수준을 갖고 있다. 이런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보고 나올 때면 중국 미술을 믿지 않을 수 없다. - p.19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다. 그리고 그 작가를 만드는 것은 그가 먹는 밥과 다니는 학교와 만나는 친구들까지, 그가 생활하며 만나는 모든 것이다. 즉 작가 주변의 모든 공기와 소리와 온도가 작가를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작가가 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도 작품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사회의 소리만이 들리는, 그런 특수한 시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더 그러하다. 작가들은 아직 언어로 변하지 않은 눈물, 절망과 희망을 작품에 담아내는, 형形이 없는 것을 형形으로 옮기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22


싱싱화회는 해산되었지만 이들이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여전히 공기 중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중국에는 변화와 이를 저지하는 움직임이 번갈아가며, 때로는 동시에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정신을 어지럽히는 오염을 제거하는 운동'은 자산계급 사상의 침투를 경고했으며 많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현실에 실망하여 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동시에 덩샤오핑이 주장한 개혁개방에 의해 서양 문화와 정보들이 빠르게 중국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한 예로 중국 미술관은 1978년 3월 프랑스 19세기 농촌 풍경화전을 시작으로 5년 동안 인상파, 독일표현주의, 피카소 등 수많은 서양 작품들을 중국에 소개했다. 이러한 서양예술은 이제까지 중국인들이 보아왔던 '붉은 그림'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이런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자각에 의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 예술의 변화가 형상을 갖춘 것이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나타난 '85년 신조미술운동'이다. - p.34


798은 예술동네다. 길을 지나가면 작가들이 인사를 건네고 카페에 앉으면 옆자리에서 방금 시작한 전시의 큐레이터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구 저편 아프리카에 불어 있는 섬만큼이나 생경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798 예술 마을이다. 처음 798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뉴욕의 소호와 첼시를 이야기한다. 거친 공장과 창고에서 에술의 생산기지로, 그리고 상업화되는 그 과정과 변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자유로운 면에서 798은 소호, 첼시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변한다 해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골목 사이에 반짝 하고 빛나는 그 시간과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철저히 대형 브랜드숍, 고급 디자이너 부티크들과 레스토랑으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된 트렌디한 소호에 비해 798은 아직 바깥 세계와는 분리된 특수한 공간이다. 밀려드는 상업자본 안에서도 798은 아직 여전히 예술을 중심으로, 이를 위해 움직인다. 이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현실적인 공장의 담,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담 안에서 예술가들은 이를 뛰어넘기 위해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꿈을 꾼다. - p.50


2003년 미국 타임지는 798예술구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예술 중심 22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또 같은 해 뉴스위크는 그 해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베이징을 선정했는데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798의 발전을 통해 본 베이징의 문화적 잠재력이었다. 이미 798은 베이징,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예술구가 되어 있었다. 결국 2004년 5월 17일 베이징시는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798을 예술구로 지정하고 보호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 p.55


어쩌면 현대미술은 798처럼 많은 사람에게 이해받고 편안하게 알려지기보다는 아직도 차오창띠처럼 외롭고 외딴 섬처럼 허허한 것인지 모른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축제라 비판받고 오히려 대중들은 거리감을 느낀다. 차오창띠는 넓은 공간에서 상업과 섞이지 않은 더 날것의 예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외딴 세계에서 나오는 순간 마주치는 현실은 저녁이면 동네에 들어서는 시장과 야채를 싣고 달구지를 끌고 가는 지친 노인의 모습이다. 이것이 예술과 현실인 것일까. - p.96


중국에는 '가장 먼저 게를 먹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영역에 처음으로 도전하고, 그 난관을 극복해 가장 빛나는 영광과 이익을 갖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금일 미술관과 그 창립 멤버들은 중국의 미술관 영역에서 '가장 먼저 게를 먹은 사람들'이다. 금일 미술관은 베이징시 정부 어떤 부서를 찾아가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미술관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베이징 금일 미술관 유한회사를 설립했고, 베이징 문화국의 공익성 미술국 비준을 받았으며, 이를 근거로 베이징 민정국에 미술관을 등록했다. 문화국도, 민정국도 처음으로 민간에게 미술관 허가를 내주다 보니 더듬더듬 길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걸어온 길은 그 후 수많은 민영 미술관들을 위한 틀이 되었다. - p.144


국가 박물관에서 꼭 빠짐없이 봐야 할 곳이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1층 1호 전시관의 <현대 미술 중요 작품 소장전>을 권한다. 붉은 벽면에 높게 전시된 작품은 언뜻 근대 유럽의 샬롱전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데,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중국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다. 정치와 역사를 담고 있는 이 50여 점의 작품들은 처음 중국 예술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모두 비슷한 '붉은 그림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시장에 처음 방문했던 날,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대학원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웠던 그 작품들이 모두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만 보던 모나리자를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고 반가웠던 그런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작품들 속의 상징성과 역사를 생각하면 이 방 하나에서도 반나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든 작품들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150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기억해 버린 작가는 행복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기도 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 표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인정받고 소통되는 것은 모든 작가의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너무나 강렬하게 사람들을 사로잡아 그로 인해 작가를 묶어놓기도 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를 때 기대는 작가들을 묶어놓는 족쇄가 된다. - p.182


팡리쥔 - 저는 예술가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죠. 저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작가들은 예술이란 삶과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아주 숭고하며 고립된 것이라고 생각하죠. 예술가들에게는 종종 자신을 대중에서 떼어놓고 마치 '비인류'처럼 생각하는 큰 병이 있어요.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저와 대중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똑같아요. 상하이 사람이든, 베이징 사람이든, 랴오닝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들의 욕망, 좋고 나쁨은 99% 다 똑같아요. 만약 이 공통점을 모르고 대중을 그저 바보 취급한다면 그건 마치 눈만 있고 마음이 없는 것과 같아요. - p.192


펑쩡지에 - 선명하고 강한 핑크와 그린, 그리고 그 안에 떠 있는 듯한 거대한 얼굴의 여인들, 그들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색 속으로 휩쓸려갈 듯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커다란 화면 안의 사람들은 '아름답다'라기보다는 '기괴하다'라는 표현이 더 적당했다. - p.198


펑쩡지에 - 저는 염속을 염染과 속俗이라는 두 글자의 뜻으로, 즉 두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어요. '염'이란 시작적인 것이예요. 이 글자는 원래 색이나 빛이 선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즉 색채를 포함한 표현 언어 그 자체의 강렬함을 이야기해요. 그 반면 '속'이라는 것은 그 안에 반영하고 있는 내용을 말하죠. 세속적인 생활이나 리듬상태를 가리켜요. 그래서 염속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작품 내외에 드러나는 두 가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에요. 단순히 색깔이 화려한 작품이나 통속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세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특정한 표현 방법을 가진 일련의 작품들을 가리키는 단어예요. - p.208


황루이 - 미술은 현실, 3차원의 것을 2차원인 평면에 나타내거나 2차원을 3차원인 입체로 나타냅디ㅏ. 어떤 형식이든 결과물은 2차원, 3차원이라는 것에 묶여 있어요. 하지만 시는 달라요. 완전히 상상의 것이죠. 시라는 것은 어떤 시간, 시대, 상황이 있을 때 꽃을 피워요. 그때의 베이다오, 망커의 시를 보면 정말 그래요 불가사의할 정도죠. 하지만 우리,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그렇지 못했어요. - p.228


황루이 - 798은 어떻게 보든 하나의 성공 사례예요. 모든 것은 변해요. 그렇지만 저는 798이 그 존재 자체로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2002년 제가 처음 798에 작업실을 만들었을 때부터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당시 798이 예술가들만을 위한, 예술계 사람들만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을 찾아요. 순수한 예술만을 위한 공간에서 상업자본이 들어오고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죠. - p.232


샹징 - 혹시 중국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그들이 다 커플이라는 거예요. 더구나 작가인 남편도 거의 대부분 유명한 작가들이죠. 저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언젠가 미국의 평론가가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정말로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그렇더군요. 저 또한 그렇고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아요. 중국에서 여성 작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 p.272


쉬빙 - <지서>는 완전히 표식문자 아이콘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천서가 글자처럼 이루어진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은 반면, <지서>는 글자가 하나도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죠. 그리고 이 책은 어떤 문화, 언어와 상관없이 현대인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처음 이 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비행기 안이었어요. 공항과 비행기 안은 언어와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그림과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죠. 예를 들면 비행기 안에 있는 안전 설명서도 불과 몇 개의 그림으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았잖아요? 사실 몇십 년 전의 안전 설명서는 이렇게 간단하고 쉽지 않았어요. 점점 편하고 알아보기 좋게 변한 것이죠. 우리의 생활은 변하는데 언어는 그만큼 변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류는 아이콘을 더 증가시키고 있어요. 바로 이런 아이콘으로 만들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랫동안 우리가 쓰는 아이콘을 수집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했는데 최근 컴퓨터와 핸드폰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모티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우리는 사실 매일 '그림을 읽으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예요. - p.296


궈홍웨이 - 예술가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을 하더라도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자랑 데이트를 해도, 도박을 해도, 영화를 봐도 그것이 작품을 하기 위한 준비며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도 그런 거예요. 사람들은 항상 고정관념을 갖고 있잖아요. 늘 보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아주 기쁘죠. 마치 어렸을 때 개미가 그냥 기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주 놀라고 신기했던 것처럼 말예요. 아마 그런 기분을 아직도 그리워하는지 모르겠어요. 바나나를 먹고 난 뒤 그 껍질 위에 아크릴 바나나 껍질로 그렸어요. 바나나 껍질이 말라 시들어버리자 결국 이 아크릴 바나나 껍질만 남는 거죠. - p.335


다른 많은 직업들처럼 이들도 처음브투 예술가로 태어나지 않았고, 시대 안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비슷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특별한 공통점을 하나 묻는다면 나는 이들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창조를 하는 것이 직업인 작가라면 사실 모든 일은 자신 안에 있다. 모든 문제도, 해결도 자기 안에 있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어쩌면 깨지기 쉬운 두 개의 유리공을 함께 놓아두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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