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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예술견문록 - 중국 현대미술을 탐하다
김도연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1월
평점 :
최근에 가장 떠오르는 국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누구든지 중국이라고 할 것이다. 언론이나 방송,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를 읽으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강대국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 시장을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 그것도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미술 작가인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이 250억 원에 낙찰된 것만 봐도 중국이 왜 최고의 예술 시장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쓴 저자인 김도연 님은 이화여대에서 한국화와 서양화를 공부한 후 중국 중앙미술학원 예술 관리학과에서 아시아 예술시장으로 석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다. 현재 크로스오브센터와 ICA 예술 마케팅 아트 매니저로 예술 기획을 하고 있는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예술을 알라기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림과 예술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미술 애호가처럼 미술관을 찾아가거나 미술 작가들에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여기에 소개 된 작가들 또한 처음 봤으며, 중국의 예술이란 이렇게 거대하고 놀라운 곳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끼게 되었다.
책의 시작은 중국 북경에 있는 798 예술구의 소개로 시작한다. 798 예술구라는 곳을 알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서는 저자 김도연 님의 소개와 관련 사진들을 볼 때면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한때 공장이었던 그곳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간이었다.
798은 예술동네다. 길을 지나가면 작가들이 인사를 건네고 카페에 앉으면 옆자리에서 방금 시작한 전시의 큐레이터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구 저편 아프리카에 불어 있는 섬만큼이나 생경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798 예술 마을이다. 처음 798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뉴욕의 소호와 첼시를 이야기한다. 거친 공장과 창고에서 에술의 생산기지로, 그리고 상업화되는 그 과정과 변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자유로운 면에서 798은 소호, 첼시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변한다 해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골목 사이에 반짝 하고 빛나는 그 시간과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철저히 대형 브랜드숍, 고급 디자이너 부티크들과 레스토랑으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된 트렌디한 소호에 비해 798은 아직 바깥 세계와는 분리된 특수한 공간이다. 밀려드는 상업자본 안에서도 798은 아직 여전히 예술을 중심으로, 이를 위해 움직인다. 이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현실적인 공장의 담,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담 안에서 예술가들은 이를 뛰어넘기 위해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꿈을 꾼다. - p.50
798 예술구의 소개 다음으로는 차오창띠에 대해 설명해준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구로 알려진 차오창띠는 자본주의가 들어간 798 예술구과는 다르게 상업화가 되지 않아 진정한 예술구라고 불리는 곳이다. 차오창띠를 소개하며 그곳에 있는 화랑들과 미술관을 통한 현대 미술의 관점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는데, 예술을 잘 몰랐던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설명을 해주어 예술에 문외한이더라도 예술구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중국에 있는 유명한 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미술학원 미술관부터 금일 미술관, 국가 미술관, 중국 미술관까지 다양한 미술관을 소개하며 전시하는 갤러리들을 통해 중국 현대 미술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작가들의 생각 또한 읽을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괜찮았던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은데 그림체와 그들의 말한 내용을 읽을수록 예술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내가 중국 예술 문화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팡리쥔 - 시리즈2
저는 예술가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죠. 저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작가들은 예술이란 삶과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아주 숭고하며 고립된 것이라고 생각하죠. 예술가들에게는 종종 자신을 대중에서 떼어놓고 마치 '비인류'처럼 생각하는 큰 병이 있어요.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저와 대중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똑같아요. 상하이 사람이든, 베이징 사람이든, 랴오닝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들의 욕망, 좋고 나쁨은 99% 다 똑같아요. 만약 이 공통점을 모르고 대중을 그저 바보 취급한다면 그건 마치 눈만 있고 마음이 없는 것과 같아요. - p.192

팡리쥔 - 홍색 기억
저는 항상 제 주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아요. 90년대 샤면에서 그 아이들이 제 현실이었다면 지금은 제가 생활하는 이 도시가 저의 현실이죠. 베이징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어요. 마치 생명체처럼요. 그 안에 파이프도, 큰 벽들도, 창문도, 매화나무도, 물도 있어요. 나는 내 작품이 좀 더 열려 있기를 바래요. 언젠가 나에게 '모호하다는 것은 더 열려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죠? 나는 그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더 확장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나는 마음에서 본 것을 늘 갖고 다니는 드로잉북에 그려요. 그것은 내 상상이면서 진실이죠. - p.174


펑쩡지에의 작품
저는 염속을 염染과 속俗이라는 두 글자의 뜻으로, 즉 두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어요. '염'이란 시작적인 것이예요. 이 글자는 원래 색이나 빛이 선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즉 색채를 포함한 표현 언어 그 자체의 강렬함을 이야기해요. 그 반면 '속'이라는 것은 그 안에 반영하고 있는 내용을 말하죠. 세속적인 생활이나 리듬상태를 가리켜요. 그래서 염속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작품 내외에 드러나는 두 가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에요. 단순히 색깔이 화려한 작품이나 통속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세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특정한 표현 방법을 가진 일련의 작품들을 가리키는 단어예요. - p.208

샹징의 작품
혹시 중국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그들이 다 커플이라는 거예요. 더구나 작가인 남편도 거의 대부분 유명한 작가들이죠. 저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언젠가 미국의 평론가가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정말로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그렇더군요. 저 또한 그렇고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아요. 중국에서 여성 작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 p.272

쉬빙 - 지서
<지서>는 완전히 표식문자 아이콘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천서가 글자처럼 이루어진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은 반면, <지서>는 글자가 하나도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죠. 그리고 이 책은 어떤 문화, 언어와 상관없이 현대인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처음 이 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비행기 안이었어요. 공항과 비행기 안은 언어와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그림과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죠. 예를 들면 비행기 안에 있는 안전 설명서도 불과 몇 개의 그림으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았잖아요? 사실 몇십 년 전의 안전 설명서는 이렇게 간단하고 쉽지 않았어요. 점점 편하고 알아보기 좋게 변한 것이죠. 우리의 생활은 변하는데 언어는 그만큼 변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류는 아이콘을 더 증가시키고 있어요. 바로 이런 아이콘으로 만들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랫동안 우리가 쓰는 아이콘을 수집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했는데 최근 컴퓨터와 핸드폰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모티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우리는 사실 매일 '그림을 읽으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예요. - p.296

까오위 - 호랑이를 때리다
내 꿈은 디즈니가 되는 거예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좀 더 재미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디즈니는 디즈니랜드를 만들었잖아요. 정말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 거예요. 저도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 p.319
이 외에도 중국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긋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인터뷰가 나오며, 쉬빙과 까오위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젋은 예술 작가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미래에도 최고의 예술 부흥 나라가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대한민국 역시 정부와 국민들이 예술에 관해 관심을 가져 중국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나라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보는 내내 중국의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언젠간 꼭 한 번 중국의 798 예술구와 차오창띠, 유명한 미술관들을 관람하고 떠나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나는 중국의 젊은 작가들을 만나며 이 단단한 거품, 그리고 그 거품이 낳은 힘찬 파돌르 느낀다. 중국 미술의 푸요로움이 이들을 키운다. 중국의 젊은 작가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대학 졸업전시는 데뷔전과 같다. 매년 각 미술대학의 졸업전시는 갤러리들과 컬렉터들이 새로운 작가를 찾는 모색과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이 졸업전 작품들은 학생 작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완성도와 수준을 갖고 있다. 이런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보고 나올 때면 중국 미술을 믿지 않을 수 없다. - p.19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다. 그리고 그 작가를 만드는 것은 그가 먹는 밥과 다니는 학교와 만나는 친구들까지, 그가 생활하며 만나는 모든 것이다. 즉 작가 주변의 모든 공기와 소리와 온도가 작가를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작가가 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도 작품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사회의 소리만이 들리는, 그런 특수한 시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더 그러하다. 작가들은 아직 언어로 변하지 않은 눈물, 절망과 희망을 작품에 담아내는, 형形이 없는 것을 형形으로 옮기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22
싱싱화회는 해산되었지만 이들이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여전히 공기 중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중국에는 변화와 이를 저지하는 움직임이 번갈아가며, 때로는 동시에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정신을 어지럽히는 오염을 제거하는 운동'은 자산계급 사상의 침투를 경고했으며 많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현실에 실망하여 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동시에 덩샤오핑이 주장한 개혁개방에 의해 서양 문화와 정보들이 빠르게 중국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한 예로 중국 미술관은 1978년 3월 프랑스 19세기 농촌 풍경화전을 시작으로 5년 동안 인상파, 독일표현주의, 피카소 등 수많은 서양 작품들을 중국에 소개했다. 이러한 서양예술은 이제까지 중국인들이 보아왔던 '붉은 그림'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이런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자각에 의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 예술의 변화가 형상을 갖춘 것이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나타난 '85년 신조미술운동'이다. - p.34
798은 예술동네다. 길을 지나가면 작가들이 인사를 건네고 카페에 앉으면 옆자리에서 방금 시작한 전시의 큐레이터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구 저편 아프리카에 불어 있는 섬만큼이나 생경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798 예술 마을이다. 처음 798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뉴욕의 소호와 첼시를 이야기한다. 거친 공장과 창고에서 에술의 생산기지로, 그리고 상업화되는 그 과정과 변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자유로운 면에서 798은 소호, 첼시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변한다 해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골목 사이에 반짝 하고 빛나는 그 시간과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철저히 대형 브랜드숍, 고급 디자이너 부티크들과 레스토랑으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된 트렌디한 소호에 비해 798은 아직 바깥 세계와는 분리된 특수한 공간이다. 밀려드는 상업자본 안에서도 798은 아직 여전히 예술을 중심으로, 이를 위해 움직인다. 이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현실적인 공장의 담,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담 안에서 예술가들은 이를 뛰어넘기 위해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꿈을 꾼다. - p.50
2003년 미국 타임지는 798예술구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예술 중심 22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또 같은 해 뉴스위크는 그 해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베이징을 선정했는데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798의 발전을 통해 본 베이징의 문화적 잠재력이었다. 이미 798은 베이징,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예술구가 되어 있었다. 결국 2004년 5월 17일 베이징시는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798을 예술구로 지정하고 보호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 p.55
어쩌면 현대미술은 798처럼 많은 사람에게 이해받고 편안하게 알려지기보다는 아직도 차오창띠처럼 외롭고 외딴 섬처럼 허허한 것인지 모른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축제라 비판받고 오히려 대중들은 거리감을 느낀다. 차오창띠는 넓은 공간에서 상업과 섞이지 않은 더 날것의 예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외딴 세계에서 나오는 순간 마주치는 현실은 저녁이면 동네에 들어서는 시장과 야채를 싣고 달구지를 끌고 가는 지친 노인의 모습이다. 이것이 예술과 현실인 것일까. - p.96
중국에는 '가장 먼저 게를 먹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영역에 처음으로 도전하고, 그 난관을 극복해 가장 빛나는 영광과 이익을 갖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금일 미술관과 그 창립 멤버들은 중국의 미술관 영역에서 '가장 먼저 게를 먹은 사람들'이다. 금일 미술관은 베이징시 정부 어떤 부서를 찾아가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미술관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베이징 금일 미술관 유한회사를 설립했고, 베이징 문화국의 공익성 미술국 비준을 받았으며, 이를 근거로 베이징 민정국에 미술관을 등록했다. 문화국도, 민정국도 처음으로 민간에게 미술관 허가를 내주다 보니 더듬더듬 길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걸어온 길은 그 후 수많은 민영 미술관들을 위한 틀이 되었다. - p.144
국가 박물관에서 꼭 빠짐없이 봐야 할 곳이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1층 1호 전시관의 <현대 미술 중요 작품 소장전>을 권한다. 붉은 벽면에 높게 전시된 작품은 언뜻 근대 유럽의 샬롱전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데,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중국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다. 정치와 역사를 담고 있는 이 50여 점의 작품들은 처음 중국 예술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모두 비슷한 '붉은 그림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시장에 처음 방문했던 날,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대학원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웠던 그 작품들이 모두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만 보던 모나리자를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고 반가웠던 그런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작품들 속의 상징성과 역사를 생각하면 이 방 하나에서도 반나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든 작품들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150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기억해 버린 작가는 행복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기도 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 표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인정받고 소통되는 것은 모든 작가의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너무나 강렬하게 사람들을 사로잡아 그로 인해 작가를 묶어놓기도 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를 때 기대는 작가들을 묶어놓는 족쇄가 된다. - p.182
팡리쥔 - 저는 예술가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죠. 저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작가들은 예술이란 삶과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아주 숭고하며 고립된 것이라고 생각하죠. 예술가들에게는 종종 자신을 대중에서 떼어놓고 마치 '비인류'처럼 생각하는 큰 병이 있어요.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저와 대중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똑같아요. 상하이 사람이든, 베이징 사람이든, 랴오닝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들의 욕망, 좋고 나쁨은 99% 다 똑같아요. 만약 이 공통점을 모르고 대중을 그저 바보 취급한다면 그건 마치 눈만 있고 마음이 없는 것과 같아요. - p.192
펑쩡지에 - 선명하고 강한 핑크와 그린, 그리고 그 안에 떠 있는 듯한 거대한 얼굴의 여인들, 그들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색 속으로 휩쓸려갈 듯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커다란 화면 안의 사람들은 '아름답다'라기보다는 '기괴하다'라는 표현이 더 적당했다. - p.198
펑쩡지에 - 저는 염속을 염染과 속俗이라는 두 글자의 뜻으로, 즉 두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어요. '염'이란 시작적인 것이예요. 이 글자는 원래 색이나 빛이 선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즉 색채를 포함한 표현 언어 그 자체의 강렬함을 이야기해요. 그 반면 '속'이라는 것은 그 안에 반영하고 있는 내용을 말하죠. 세속적인 생활이나 리듬상태를 가리켜요. 그래서 염속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작품 내외에 드러나는 두 가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에요. 단순히 색깔이 화려한 작품이나 통속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세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특정한 표현 방법을 가진 일련의 작품들을 가리키는 단어예요. - p.208
황루이 - 미술은 현실, 3차원의 것을 2차원인 평면에 나타내거나 2차원을 3차원인 입체로 나타냅디ㅏ. 어떤 형식이든 결과물은 2차원, 3차원이라는 것에 묶여 있어요. 하지만 시는 달라요. 완전히 상상의 것이죠. 시라는 것은 어떤 시간, 시대, 상황이 있을 때 꽃을 피워요. 그때의 베이다오, 망커의 시를 보면 정말 그래요 불가사의할 정도죠. 하지만 우리,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그렇지 못했어요. - p.228
황루이 - 798은 어떻게 보든 하나의 성공 사례예요. 모든 것은 변해요. 그렇지만 저는 798이 그 존재 자체로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2002년 제가 처음 798에 작업실을 만들었을 때부터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당시 798이 예술가들만을 위한, 예술계 사람들만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을 찾아요. 순수한 예술만을 위한 공간에서 상업자본이 들어오고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죠. - p.232
샹징 - 혹시 중국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그들이 다 커플이라는 거예요. 더구나 작가인 남편도 거의 대부분 유명한 작가들이죠. 저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언젠가 미국의 평론가가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정말로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그렇더군요. 저 또한 그렇고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아요. 중국에서 여성 작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 p.272
쉬빙 - <지서>는 완전히 표식문자 아이콘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천서가 글자처럼 이루어진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은 반면, <지서>는 글자가 하나도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죠. 그리고 이 책은 어떤 문화, 언어와 상관없이 현대인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처음 이 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비행기 안이었어요. 공항과 비행기 안은 언어와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그림과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죠. 예를 들면 비행기 안에 있는 안전 설명서도 불과 몇 개의 그림으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았잖아요? 사실 몇십 년 전의 안전 설명서는 이렇게 간단하고 쉽지 않았어요. 점점 편하고 알아보기 좋게 변한 것이죠. 우리의 생활은 변하는데 언어는 그만큼 변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류는 아이콘을 더 증가시키고 있어요. 바로 이런 아이콘으로 만들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랫동안 우리가 쓰는 아이콘을 수집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했는데 최근 컴퓨터와 핸드폰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모티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우리는 사실 매일 '그림을 읽으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예요. - p.296
궈홍웨이 - 예술가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을 하더라도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자랑 데이트를 해도, 도박을 해도, 영화를 봐도 그것이 작품을 하기 위한 준비며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도 그런 거예요. 사람들은 항상 고정관념을 갖고 있잖아요. 늘 보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아주 기쁘죠. 마치 어렸을 때 개미가 그냥 기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주 놀라고 신기했던 것처럼 말예요. 아마 그런 기분을 아직도 그리워하는지 모르겠어요. 바나나를 먹고 난 뒤 그 껍질 위에 아크릴 바나나 껍질로 그렸어요. 바나나 껍질이 말라 시들어버리자 결국 이 아크릴 바나나 껍질만 남는 거죠. - p.335
다른 많은 직업들처럼 이들도 처음브투 예술가로 태어나지 않았고, 시대 안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비슷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특별한 공통점을 하나 묻는다면 나는 이들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창조를 하는 것이 직업인 작가라면 사실 모든 일은 자신 안에 있다. 모든 문제도, 해결도 자기 안에 있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어쩌면 깨지기 쉬운 두 개의 유리공을 함께 놓아두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 p.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