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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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한 분야 속하는 노벨문학상은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 수상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년 이어지고 있다. 2023년에는 노르웨이 희곡 작가 욘 포세가 선정됐고 수상 이후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는 그가 쓴 작품이 하나둘 출간됐다.

평소 책에 관심이 많고 그만큼 도서를 많이 구매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여 따로 찾아보거나 하진 않았으나 평소 북유럽 작가의 소설에 관심이 있었고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 찾아보다가 장편소설 책 '아침 그리고 저녁'을 발견해 주문하고 읽었다.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쓴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 헤우게순에서 태어나 1983년 당시 장편 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 후 1989년에 쓴 '보트 창고'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후 '병 수집가', '납 그리고 물', '멜랑콜리아', '저 사람은 알레스',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을 발표했고, 1994년에는 첫 희곡 작품인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를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췄다.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노르웨이 늬노르스크 문학상, 스웨덴 도블로우그상,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브라게상 명예상,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국제 입센상, 북유럽이사회 문학상을 수상받았고, 2003 프랑스 공로 훈장, 2005 노르웨이 세인트 올리브 훈장을 수훈받았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다.




욘 포세가 2000년 당시 출간한 책 '아침 그리고 저녁'은 2023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여러 도서 매체에 소개됐다. 총 페이지 135페이지로 장편소설이라기엔 짧은 편이지만 누구나 읽기 쉬운 문체로 번역되어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일반 소설과 다르게 문장 끝 마침표가 없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10번 남짓 마침표가 붙은 문장이 있는데 마침표의 유무에 대해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라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 주인공은 노르웨이 어부의 아들인 요한네스로 책 초반에는 그의 아버지 올라이가 나온다. 아내 마르타가 요한네스를 낳고 있는 시점에서 아버지가 태어날 아들을 향한 묘사는 다른 책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문장을 나타낸다.

이후 2장에서부터 주인공 요한네스의 시점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홀멘이라는 섬에서 이미 죽은 아내인 에르나를 그리워 하는 늙은 어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어 다 밝히진 못하지만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작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한 사람의 인생을 135페이지에 녹여냈으며, 한 평생을 살면서 만나왔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요한네스를 보며 후회없는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특히 책 후반 부분에 막내 딸 싱네와 요한네스가 서로 교차되며 말하는 부분에서 그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고, 한 사람이 태어나 인생을 살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죽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욘 포세가 쓴 다른 작품도 모두 찾아 읽어보고 싶었다.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작 책 '아침 그리고 저녁'은 초반을 제외하곤 어렵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없이 읽을 수 있다. 책 뒤편에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 작품에 대해 더욱 상세히 알 수 있기에 읽을 만한 장편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스포일러)

지금 이게 뭐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군. 오늘 페테르와 밖으로 나가 게방을 끌어올리지 않았나 그리고 꽃게를 팔러 시내에도 갔었는데, 하나도 팔지 못하고, 페테르가 안나 페테르센에게 선물로 꽃게가 가득 든 비닐봉지 하나를 넘겨준 게 다지,

그러니까 페테르가 봉지를 부두에 놔두고 왔고, 한참 후 그녀가 와서 가져갔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조금 지나서 안나 페테르센이 왔었지, 그 모든 일이 생생한데, 지금 내가 죽었다니 - 130

요한네스는 어부이며 에르나와 결혼했고 올라이의 아들이며 어느 순간, 일곱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중 한 아이는 할아버지처럼 올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외에도 이 책에서 열 번 남짓 마침표가 사용되는 순간들은 이렇다. 여느 때와 같이 잿빛인 하늘. 새벽의 추위. 만으로 내려가는 길. 아내 에르나가 죽은 뒤로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치받치던 욕지기. 커피. 담배. 브라운 치즈를 얹은 빵. 친구 페테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문장, 요한네스가 확실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일상이다. 환각과 비슷한 상태에서 다가오는 죽음은 그가 살아오며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확신했던 일들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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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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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0분 만에 읽었지만 힐링되는 그림 작품이 너무 따뜻하고 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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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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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남녀차별, 특히 어린시절부터 집안에서 밖에서 당연하듯 당연하지 않듯 생기는 남녀간의 차별은 셀 수 없이 많다. 무엇을 하든 남자가 솔선수범, 그러면서도 "여자들은 안돼"라는 말을 쉽게 내뱉고 이해하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나 역시도 남녀차별에 관해 많은 걸 겪었다. 특히 온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날엔 식구가 많으니 남자들부터 식사하자라던가, 남자들은 가만히 있거나 TV를 보면서 쉬지만 정작 여자들은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나 역시도 그렇게 알고 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들은 안방에서 식사를, 여자들은 부엌 한 켠에 쪼그려 밥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씨는 서른네 살에 결혼해 딸을 두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남녀간의 차별을 숱하게 겪어오다 사회 생활과 일상에서 겪는 남녀차별 발언에 대해 대꾸 하나 하지 못한다. 남녀차별이라는 게 당연했던 세대, 지금도 변함 없이 흘러가는 그런 세대 속에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 여성이다.

책 속에서는 김지영 씨의 어린시절부터 직장을 다니다가 임신을 하여 퇴사한 후 육아에 전념하기까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남성인 나조차도 알고 있었지만 당연하게 넘어갔던 성차별 발언을 보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육아에 전념하며 집안일까지 도맡는 김지영 씨를 보며 주변에 출산 후 산후 후유증을 겪는 이들이 생각났다. 그녀들 역시도 하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일명 '워킹맘'들이 얼마나 대단한 정신력으로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김지영 씨는 우리나라를 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는 여성 분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상황에 분통하기도 하고 공감도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나와 같은 남성들이라면 우리가 자칫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녀차별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벌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당연하듯이 여기고 그걸 이용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과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앞으로의 미래에는 남녀간의 차별없이 조금이라도 동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하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ㅎ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 29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 46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 68

김지영 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같은 해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설문 조사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퍼센트였고, '여성을 선호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96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태워 준다고? 김지영 씨는 순간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했다.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100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 123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힘든 나라로 꼽혔다 - 124

홧김에 김지영 씨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139

그 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 144

아기는 새벽 4시에 태어났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김지영 씨는 진통할 때마다 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예쁜 아기는 안아 주지 않으면 밤이고 낮이고 울기만 했고, 김지영 씨는 아기를 안은 채 집안일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잠도 자야 했다. 아기에게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이면서, 그래서 두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면서, 예전보다 더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고, 아기의 옷과 수건들을 빨고, 젖이 잘 나오도록 자신의 밥도 열심히 챙겨 먹으며 김지영 씨는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 무엇보다 몸이 아팠다 - 147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에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떄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149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시간 10분 정도이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고 주부가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아이 없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김지영 씨는 마음 편하게 집안일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 157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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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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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병에 걸린 주인공 선윤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책 아몬드를 읽고 난 후 저자 손원평 작가의 팬이 됐다. 그녀가 '아몬드'를 쓰기 전 발표한 '1988년생'은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는데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서른의 반격'이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에 나오는 주인공은 단군 이래 우리나라가 가장 호황기로 불렸던 88올림픽에 태어나 학창시절 어느 반에나 한 명쯤 있을 흔한 이름을 가진 김지혜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지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듯 안정과 높은 월급의 대명사인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하지만 하루종일 복사만 하고 정규직도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

10개월째 비정규직으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김지혜는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존재하지 않는 정진 씨를 점심시간마다 만나며 자기만의 안식을 찾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사내에서 직원에게 공짜 강의로 제공하던 우쿨렐레 강좌를 듣게 되면서 이규옥과 무인, 남은 아저씨를 만나며 모임을 결성한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함께 부조리함에 반항하듯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현재의 불만족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서른의 반격'에 나오는 김지혜는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정답이 없는 시대에 강좌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과 비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며 정규직은 커녕 취업도 힘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김지혜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내가 현 사회의 부조리함에 목소리를 얼마나 냈을지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지난 봄 장편소설 '아몬드' 이후 약 8개월이 지나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을 읽으면서 또한 느낀 것은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그녀의 필력에 감탄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인데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나 '서른의 반격'을 읽는 동안 주인공의 생각에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후 손원평 작가가 낼 작품에 기대가 모아진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신호가 왔다. 엄마는 책에서 본 대로 흡, 하고 짧고 강하게 기합을 넣었다. 흡, 흡, 흡, 세 번 만에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딸이었다. 엄마는 안도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김추봉이 될 뻔했던 나를 꼭 껴안았다. 어쨌든 내가 폐호흡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쌔근쌔근 잠든 세상의 첫 번째 밤, 엄마의 뒤바뀐 승리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백 미터 금메달리스트는 벤 존슨에서 칼 루이스로 바뀌었다. 그렇게 눈물겨운 투쟁을 거쳐, 아직 산후 조리도 채 마치지 못한 엄마가 밤을 세우고 옥편을 뒤지며 고심한 끝에 내가 얻게 된 이름은, 88올림픽을 즈음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 중 가장 흔한 이름인 김지혜가 되었다 - 11

정진 씨를 만들어 낸 건, 이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하나의 숨통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언제나 같은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숨 막히는 일이다. 매일 점심때마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오늘은 돈가스 어때, 좋아요, 메뉴는 짜장면으로 통일할까, 그러죠, 따위의 대화를 나누는 것. 나서서 냅킨을 깔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도맡아 물을 따르는 것, 다들 그런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도피처가 필요했다 - 34

다시 복사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나의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복사기 토너? 나사 정도의 부품? 문득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딱 봐도, 성실하게 야무져 보이는 여대생이다. 면접 장소가 어디냐고 조심조심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예의 바르게 묻는다. 나는 손끝으로 면접 장소를 가리켰다.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싱그럽다. 아까 본 이력서 속 경력이 떠오른다. 여기서 일하기에 너무 모자람이 없는 이력이다.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 하나의 모자람이 되어 그녀는 이곳에서 일하지 못할 것이다 - 36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그 안에 무언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내 인생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한입 머금고 목구멍 저아래에서부터 스며나오는 불안과 섞어 삼켜버린다. 연예인이 자신의 사업 실패와 바가지 긁는 마누라 얘기를 털어놓으며 눈물 섞인 웃음을 선사하다. 창밖으론 점점 화려해지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겠지. 어딘가 높은 곳에 사는 누군가의 눈에 분명 그런 그림이 보일 거다. 각자의 창으로 보이는 장면이 조금씩 다른 것뿐 - 37

나는 그의 미련함이 반갑지 않았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여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하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 가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법이다 - 43

그날 밤, 나는 알딸딸한 정신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온 국민이 광장으로 나갔던 그해 여름의 사진들을 검색했다. 광화문 거리가 촛불로 빼곡히 들어차 반짝이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놀랍다. 빛이 하나하나 모여 알고 있던 세상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꾸어놓는다. 순수하게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정말 이랬던 적이 있는 걸까. 그리고 저 수많은 불빛 중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것일까. 감동이 밀려온다. 짧고 휘발성 강한 감동이, 억울하건 화가 나건, 사람들은 세상에 비일비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꾸역꾸역 잘도 잊어버렸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아니, 살아지지 않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그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고, 통용되는 것들에 대부분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자신 없게, 네, 라고 말해버리는.. 그런 내가 규옥의 제안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규옥에 대한 이끌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번쯤은, 단 한 번쯤은 자신있게 외쳐보고 싶어서였을 거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고 - 90

너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보수화되는지 알아? 명백한 자기 재산이 생길 때야. 절대 빼앗기거나 침해될 수 없는 것, 집이나 돈이나 그럴듯한 밥그릇이 생길 때. 근데 나한테 그게 얘야. 그런 게 생기면 있지. 이 세상에 갑자기 되게 위험해 보인다? 코웃음 치며 부렸던 객기는 다 증발하고, 교통사고, 전쟁, 사이코패스, 환경호르몬, 미세먼지, 그런 것만 생각하게 돼. 그리고 나는 집 밖의 몹쓸 것들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투사가 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점점 보수화되지. 나와 다른 세계에서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지거든. 기본적으로 팔짱 탁 끼고, 걸려봐, 된통 쏘아줄 테니까, 이 마인드야.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도 참 젊은 나이인데, 워홀 갔다가 웜홀에 빠진 줄 알았는데 이젠 블랙홀이다 - 101

해본 적 없는 의문들이 하나둘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먹는 모습을 찍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처음 나온 걸까. 내가 밥을 먹고 있다는 행위조차,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아야 비로서 의미가 생기는 걸까. 똥 누는 모습을 감추면서 먹는 행위는 왜 그토록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까.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무슨 심리일까. 먹고 살기 위해서, 라는 말은 왜들 그렇게 입에 달고들 사는 걸까. 먹기 위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먹는 걸까, 뺨 위로 뜨거운 게 흘러내린 걸 깨달은 후에야 나는 당황해서 창을 껐다. 이런 건 맘에 들지 않는다. 남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도 없으면서 흘려지는 눈물, 달아오른 볼을 두드리고 휴지로 물기를 찍어냈다 - 111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뻣뻣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을 뿌려도 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은 늘 깜짝 놀라면서 당황해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단어들은 이런 것들인 것 같아싿.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 129

간신히 문을 열고 신발을 팽개치듯 벗은 후 화장실로 들어가 헛구역질을 몇 차례 했다.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토하고 싶은데 게워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세상은 대체 왜 이 모양인 걸까. 이런 사소한 일까지 내 의지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게 갑자기 무척이나 서러워져 나는 엉엉 소리를 내서 울부짖었다. 너무 취해서인지 눈물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세면대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마주 봤다. 서른 살의, 젊다면 젊은 낙오자가 서 있었다. 아니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낙오한 적도 없다. 잘나갔던 적도 없기 때문에 슬럼프라는 말도 사치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을 뿐이다. 내 깜냥만큼, 내 능력만큼, 내 성격이 받쳐주는 딱 그만큼 그게 나였다 - 170

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만 반복하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 179

실연의 상처가 아니라 복합적 괴로움이다. 혹은 비밀스런 죄책감이다. 규옥과의 키스를 그만두었던 그 밤으로 수렴하는 떳떳하지 못한 죄책감, 너는 멋진 사람이지만, 너와는 내 미래를 함께할 수 없다는, 그 알량한 방어기제 내지는 허영심, 내가 함께 하는 행위에 대해 끊임 없이 의심했음에도 부룩하고 말하지 못한 가식, 그걸 거울놀이 하듯 한 때의 동지였던 무인에게서 보게 되는 아이러니, 어쩌면 처음부터 속으로는 알고 있었을 거다. 이런 행위 따위로는 세상을 바꿀 수도, 균열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걸, 다만 나는 그걸 입 밖으로 내지 못했을 뿐이다. 얕은 진심을 드러내기엔 너무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어젯밤 저 바닥까지 헤집고 쑤신 무인이 나보다는 솔직한 건지도 모른다 - 215

거리의 모습을 똑같았다. 내가 사회적으로 물의가 될 만한 사건을 벌이고 구치소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건 그 누구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하찮아서 다행이었다. 그 하찮음은 이 세상에 멀어지고 있는 더 끔찍하고 더 슬프고 더 자극적인 일들에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 일들로 시선이 돌려지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드라마는 금세 잊혀지고 만다 - 219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 있다고 가끔식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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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단단한 힘 문사철
이지성.스토리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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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홍대리 시리즈로 독서를 시작하면서 이지성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다가 ‘생각하는 인문학‘ 때부터 조금 실망했습니다. ‘문,사,철‘은 부디 하나라도 얻어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예약구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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