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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 근대형성기에 대한 미시적 접근의 한계

빈약한 실증 빈곤한 해설...구성주의에 포획된 과거

2003년 11월 13일   강성민 기자

근대 형성에 관한 미시적 탐구들이 젊은 국문학자를 중심으로 활발하다. 권보드래 서울대 강사가 펴낸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 刊)는 1920년대 초반 이 땅을 물들인 연애사건들을 추적했으며,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소명출판 刊)은 애국계몽기 지식인들이 새로운 국가에 무엇을 채울 지 상상하고 실천했던 모습을 주목했다.

'연애의 시대'는 올초에 출간된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 및 김진송 씨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이상 현실문화연구 刊)의 계보를 잇는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몸과 욕망의 근대를 끌어당긴다는 데 있다. 신문잡지의 잡스러운 사건사고와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을 통해 당시 대중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앎을 보충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지난 1999년 '딴스홀…'의 이런 시도는 신선했고, 그 안에 담은 근대의 실물들 또한 '근대적 자기인식'의 다른 측면에 대한 충분한 응답이 돼줬다.

 *1928년 조선일보에 실린 '모던걸의 장신운동'이란 삽화. 여성들의 몸치장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의 두 책은 물음표를 찍지 않을 수 없다. '연애의 시대'는 '戀愛'라는 박래품이 조선반도에 불어닥친 과정을 따라가고 있지만, 자료확보의 미흡과 그에 따른 해석의 빈곤을 초래하고 있다. 저자가 특히 추적하는 것은 기생과 여학생, 가정부인들의 삶에 나타난 변화다. 3·1운동 이후 급격히 늘어난 교육열풍으로 거리를 온통 여자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신문에는 이들 '신여성'에 대한 당혹스러운 관람기가 실리기 시작하더니, 신여성과 서울로 유학온 유부남과의 불륜이 대대적으로 퍼지면서 조선반도는 연애의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연애편지라는 새로운 소통방식, 독서를 통한 연애의 내면화, 비극자살로 인한 삶과 죽음의 관념에 나타난 변화는 이 지점에서 던져볼 수 있는 질문들이고 저자 또한 챙기고 있는 주제들이다.

식민지 근대를 읽어내는 편향성

하지만 이 책엔 중요한 게 하나 빠져있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이 줄 수 있는 재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연애의 치마밑을 긴장되게 엿보고 조선팔도 구석구석을 헤집는 博覽의 교차점에서 생길 만한 것이다.

이 책은 근대에 '연애'라는 근사한 거푸집을 덮어 씌울뿐 전혀 잘 빠진 결론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문 사회면의 표면을 계속 미끄러져나가면서, 어디서 한번 본듯한 이야기들을 열거하고 이미 일본에서 수없이 다뤄온 연애개념의 수용경로를 모방적으로 재구성한다는 느낌이다.

이것은 신문읽기의 한계가 아닐까.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刊)이 '文化史' 서적으로서 자신의 경쟁력을 온갖 공문서, 비밀문서, 증언 등을 통해 확보한 점은 유명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신문'만' 읽고 쓰는 글은 결코 풍부해질 수 없는 것이다. 

3편의 중편논문을 모아 낸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에 오면 부작용이 더하다. '위생담론과 신체에 대한 인식틀의 변환', '전쟁서사와 국민국가의 프로젝트', '꿈-서사의 민족담론과 계몽의 수사학' 등 그 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국민국가의 프로젝트라는 문제설정부터 문제다. 일본이라면 이런 문제설정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국민국가를 통해 동아시아 제국으로 성장하고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야심을 세웠고 실천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고작 10여년의 애국계몽기 동안 그런 소망을 품어봤고, 이후는 식민지의 길을 걸었다. 이 책은 그런 역사적 맥락과 전혀 상반되는 건국의 흥분감을 내내 연출한다. 안해도 되는 연구를 한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계몽지식인들의 국가기획이, 해방 이후의 건국기획과 맺는 연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국민국가 프로젝트를 살펴야 하는가. 다만 당시 지식인들이 그렇게 근대를 내면화했고, 그게 지식인 주체구성의 한 형식이었다고 말하면 충분한가. 당시 지식인들은 과연 그토록 치밀하게 지도를 그리듯 근대를 준비했을까. 근대적 매체의 마술에 의해 계몽된 건 지식인이었을까, 대중이었을까.

이 책의 첫번째 글은 신체를 위생적으로 관리해 국가에 적합한 국민을 생산키 위한 계몽의 실천과 그에 따른 여러 인식의 변화를 추적한다. 소제목은 '질병의 발견, 위생의 정치학', '구습의 타자화, 서구적 매너의 형성', '욕망포획과 정절의 내면화', '훈육되는 신체와 정신' 등으로 흘러간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과도한 구성주의적 용어들이다. 로고스 패러다임을 깨려고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어렵게 발명해낸 그 전략적 용어들이 여기선 거의 자동녹음기처럼 연발되고 있어서 낯이 뜨거울 정도다. 특히 국가 안에 국민을 '배치'한다는 식의 용어들은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 지도 대충 짐작이 갈 만큼 식상함을 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무비판적 同人主義 문제

또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글의 전반에 등장하는 주체와 타자,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구별이 전혀 현실 고려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령 신체를 통제하는 생체권력의 형성을 말하는 부분은 전근대와의 단절을 강조하고 있다. 근대적 교육, 인구조사 등을 통해 파놉티콘이 형성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유교적 신체규율이 엄연히 있었다. 최소한 그 두개의 규율을 다른 것으로 보려면 서로 치밀하게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것은 가볍게 생략될 뿐이다.

治道(깨끗한 거리)를 위생적 신체와 일치시키는 은유적 논의전개 방식은 글을 흐름화하지 못하고, 끝없이 분절시키고 있다. 이것은 근대성 연구의 후발주자로서 외국의 선행연구자들의 관점을 일종의 '선입견'으로 갖고 연역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니 강박이 생긴다. 앞의 글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삶은 기획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근대에서 서구이성에 포섭되지 않는 미적 주체의 기획논리를 발견하자는 과도한 의욕 말이다. 물론 그런 식의 기획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과연 그게 우리 삶의 본질이었을까.

이들 연구자들이 수시로 참조하는 일본 근대의 탈전통과 문명의 재배치는 국가권력의 구체적 실천과 당대 지식인들의 긴밀하고도 거대한 연계 아래서 이뤄졌던 것이다. 한국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중요한 차이는 왜 무시되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볼 때 최근 근대에 대한 미시적 탐구서들은 구체성을 잃고 수입개념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성 연구의 '同人主義'에서 그 원인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현재 국민국가, 계몽근대에 대한 연구자 집단은 상호간의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상호인용은 충분히 하지만 서로의 견해에 대한 메타견해나 비판은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마치 일심동체인 것처럼 똑같은 주제와 소재, 관점과 기술법으로 앞으로 밀고 나가기만 한다. 과연 이런 식의 학문접근이 성찰성과 객관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해나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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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 교수와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만남

신화의 興起, 인류의식의 패러다임 변화 의미
 
                                                 2003년 12월 31일   정리 강성민 기자

 

신화가 문화적 기득권을 쌓아감에 따라 그것의 본질적인 의미와 부정적 기능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교수신문은 신년을 맞아 비판적 신화논의의 새로운 담론의 장을 여는 의미에서 ‘한일석학 E-메일 신화대담’을 준비했다.일본의 대표적 종교철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와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가 대화를 나눴다. 두번에 걸친 대담은  이번에 첫번째를 싣고, 다음호에 나머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신화의 본질과 역사, 동양에서의 신화논의의 방향 등 주요한 화두들이 제시됐다.[편집자주]


나카자와 신이치 : 현대일본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종교학자로 탁월한 인문학 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도쿄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9년 네팔에서 전승밀교를 연구하고 수행했다. 1982년 일본으로 돌아와 '티베트와 모차르트'를 써서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다. 현재 中央大學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무지개의 논리', '악당적 사고', '숲의 바로크', '불교가 좋다' 등이 있다.

 

정재서 : 서울대 중문과에서 '신선설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 국제일본문화연구소 객원교수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한 '不死의 신화와 사상'을 비롯해 '山海經譯註', '동양적인 것의 슬픔', '道敎와 문학 그리고 상상력' 등이 있다.

 

정재서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이메일로나마 만나뵙게 돼 반갑습니다. 이른바 신화의 귀환이 운위될 만큼 오늘날 신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로는 아마 낭만주의 시대의 신화에 대한 열기를 재현한 것과 같은 그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최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중심으로 한 신화서가 출판시장에서 크게 호황을 누렸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와 같은 판타지 문학이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 전세계적 현상의 일환이라 할 것 같은데 이제 대중적 열풍을 잠시 뒤로하고 신화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카자와 선생님의 저작 '신화, 인류 最古의 철학'은 시의적절한 책이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신화의 의미와 가치를 잘 각인시킨 훌륭한 신화입문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자인 나카자와 선생님과 함께 인류 공통의 관심사인 신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이하 나카자와) : 저의 책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제1권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의 한국어판이 출판돼 다행히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일본열도의 최초의 국가가 이미 고도로 발달된 상태였던 한반도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탄생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초기의 국가가 편집한 '古事記'나 '일본서기'와 같은 신화집의 소재 대부분이 한반도 사람들 사이에서 전승되던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신화집의 편찬과정에도 한반도 출신의 지식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 역시 역사학에 의해 입증된 바 있습니다.
  우리 일본인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신화를 통해 한반도 사람들과 깊이 연결돼 있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렇게 신화를 화제로 정 선생님 같은 한국의 대표적 학자와 대담하게 돼 감회가 깊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신화를 정치적으로 왜곡시켜 이용하려 했던 이데올로기로 인해, 양국의 국민 사이에 형성돼야 할 우애가 오랜 기간에 걸쳐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순수한 마음으로 신화를 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화를 무조건 부정해온 근대의 사고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해졌습니다. 신화에는 '현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도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내포돼 있습니다.

용은 동양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서양에서 용은 악의 힘으로 여겨지는 반면, 동양에서는 공정하고, 인정 많고 길조를 나타내는 동물로 통한다. ©

 

정재서 : 작금의 신화 열기(중국의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정말 神話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가 과연 어떤 원인에서 생겨났으며 이것이 과거 사조에 대한 반동으로 반짝 일어난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에 중요한 작용을 미칠 사안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신화의 興起가 이른바 문명의 전환기라 할 현 시점에서 인류 의식의 패러다임의 변혁과 긴밀히 상관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일시적 반동 현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근대 이래의 과학적, 기계적 사고에 대한 반동으로 신화적 감수성이 반사적으로 필요해진 측면도 없지 않으나 그것은 문제를 너무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죠.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신화의 도래가 필연적이었고 앞으로도 불가결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첫째는 앞으로 인류의 의식이 보다 통합적이고 전일적인 사고를 지향할 것이라는 예측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향후 인류를 둘러싼 매체 환경이 신화적 상상력의 활발한 작동에  온상을 제공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다시 말해 정신적, 물질적 양 차원에서 신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호황(?)을 누릴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서입니다. 신화가 이미 기득권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할 때 차제에 필요한 것은 신화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냉철한 검증과 비판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자세만이 향후 신화의 범람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빚어질 오용과 남용을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의 신화에 대한 대중적 열기에는 어딘지 냉정한 인식이 결여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나카자와 : 중국의 최근의 출판현황을 보면, '神話考古'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많이 눈에 띄게 됐습니다. 그리고 쓰촨(四川)성이나 칭하이(靑海)성과 같은 지방의 출판물에서는 도교나 라마교 등에 대한 뜨거운 '종교열기'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는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일본에서 그와 유사한 '신화열기'가 일어난 것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진행중이던 때였습니다. 당시의 진취적인 일본의 대학생들의 머릿속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반동적이라며 평가 절하해왔던 신화나 민속문화에 대해 열광적인 관심을 갖는 것과, 근대의 상식에 반항하는(듯이 보였던) 중국의 젊은이들의 정치운동이 하나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겠지요.
  당시의 젊은이들은 대규모의 자연파괴를 수반한 일본열도의 도시화와 공업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서 신화나 민속문화에 대해 열광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경제의 고도성장과 정치운동의 수많은 좌절에 의해, 이런 '신화열기'는 문화의 표면에서는 냉각되어 점차로 내면화돼 갔습니다. 그런 정열은 정치로부터 멀어져서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가고, 표현영역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서브컬처로 옮겨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역에서 되살아난 신화적 사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여러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키면서, 동시에 환상에 사로잡힌 채 개인의 밀실 속에 갇혀 지내는 많은 어린이들을 위험한 정신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뇌공도 ©

그렇기 때문에 정 선생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현대의 우리 사회도 신화적 사고를 추구하고자 하는 깊은 충동을 느끼면서, 그런 충동의 발산으로 야기되는 정신적 황폐를 지켜보며 신화가 갖는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해가야 합니다. 과연 현대의 우리들은 신화에 대한 관심을 통해 무엇을 회복하고자 하는 걸까요. 저는 그게 '대칭성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의 제2권 '곰에서 왕으로'와 현재 집필 중인 제5권 '형이상학혁명'에서 상세히 논했으므로, 여기서는 요점만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신화는 레비-스트로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항대립 논리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리한 것과 날 것, 연속적인 것과 비연속적인 것 사이에 발견되는 차이를 이용해서, 이것을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의미가치를 갖는 이항대립으로 만들어, 우주의 의미를 둘러싼 복잡한 사고를 전개하려 한 것이 신화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신화의 사고와 오늘날의 컴퓨터로 대표되는 과학의 사고는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신화에는 과학과는 이질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항대립의 논리를 사용하면서, 신화는 과학에서는 절대로 거론하지 않는 것을 거론한다는 점입니다. 과학은 이 세계가 비대칭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간과 곰 같은 동물을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이런 비대칭적인 상황이 뒤집혀, 곰과 인간의 동질성을 주장합니다. 신화의 시대에는 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말을 했으며, 인간도 원하면 동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신화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대칭적인 관계가 성립돼, 그런 대칭성을 근거로 한 논리에 의해 사람들은 현실 세계로부터 보이지 않게 된 진리에 대해 생각하려 했던 셈입니다.
이런 '대칭성의 논리'는 우리 현생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서 활동하게끔 하는 '무의식의 논리'를 의미합니다. 무의식이 억압을 받거나 부분적으로 개조된 부분에 의식이 탄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신화열기'를 통해 표면화되고 있는 신화적 사고에 대한 관심의 저변에는, 생명활동에 직결된 무의식의 활동 사이에 막혀 있던 회로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충동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무의식은 반성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신화에 대한 대중적 열기'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의 원천입니다.

정재서 : 다음으로 신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리스 초기에 뮈토스는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로고스는 허구성을 띤 이야기였습니다. 이 관계가 정반대로 역전되는 것은 플라톤 이후입니다. 인문주의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신화는 허구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죠. 이후 신화는 寓意說 등에 의해 겨우 존재를 유지해오다가 근대 이후 셸링, 카시러 등에 의해 내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러 自明性을 획득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특히 레비-스트로스에 주목해 구조주의의 길을 따라 신화적 논리가 갖는 힘을 잘 설명하셨습니다. 신데렐라 민담을 통해 양극적인 것들을 매개, 결합시키는 신화적 논리의 특성을 웅변한 것은 정말 압권입니다. 신화적 논리가 갖는 통합적인 힘, 그것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세계를 조화롭게 만들고자 하는 원시 인류의 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화적 사고가 초래할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위험도 간과할 수 없지 않나 합니다. 우리에게는 나치와 一國主義의 광기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한 광기가 신화적 사고의 오용에서 비롯됐음은 이미 많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저는 신화가 인류의 집단무의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종족의 서사이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점은 신화가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만 언제라도 편파성으로 치달을 소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화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신화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몸통에 뱀 꼬리를 단 여왜와 복희가 별의 무리 속에 서로 엉켜 있다. 손에 쥔 컴퍼스와 삼각자는 둥근 하늘과 사각형의 땅을 상징한다. ©
나카자와 : 신화의 사고가 무의식의 영역에 직결된 논리과정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 사고는 '種' 내지는 '계급'은 인식할 수 있어도, '個'를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종은 대립하는 힘들이 서로 싸우는 여러 종류의 多樣體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부터 '개'가 탄생하게 되는데, '종의 논리'(이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니시다 기타로와 동시대인이었던 다나베 하지메라는 교토대의 철학자였습니다)인 무의식의 사고로는 '개'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신화가 근대정치에 이용됐을 때 발생하게 될 엄청난 참화가 예상됐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파시즘과 파시즘의 현실화에 대성공을 거둔 독일의 나치즘에 의해 역사적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를 인식하지 않는 무의식적인 '종'의 사고의 횡포로 인해 비참한 상황이 초래됐습니다. 이처럼 신화적 사고에는 인류의 희망인 '대칭성의 논리'와 표리관계에 있으면서, 엄청난 참화를 초래할 가능성이라는 마이너스적인 측면이 잠재돼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런 양면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로 21세기의 신화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본래 희망은 위험과 이웃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바와 같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신화는 양날의 칼입니다. 함부로 다루면 인류는 또다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도 모릅니다.

정재서 : 앞에서 신화가 갖는 국한성에 대해 말했는데 이와 관련해 저는 신화 담론 곧 신화학의 국한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세계 각국에 있는 개별 신화의 가치는 평등하다 하겠으나 사실 신화학의 세계는 평등하지가 않습니다. 근대 이후의 신화학은 인도 유러피언 민족의 기원을 탐색하고 문화적 우월성을 보증하기 위한 의도와 긴밀히 상관돼왔습니다. 신화의 개념, 분류 등 신화일반론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표준으로 결정됐으며 이 잣대는 세계 모든 지역의 신화에 일률적으로 적용돼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지역의 신화에 비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일찍부터 원시성을 상실하고 훨씬 인문화되고 문학화 돼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한 지역의 신화에서 도출된 코드로 타문화를 해석할 때 생겨납니다. 가령 오이디푸스 유형은 인도 유러피언 민족 이외의 종족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역적 국한성을 지닌 신화입니다. 그러나 이 신화에서 도출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코드로 우리는 모든 문화를 다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상상해왔습니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도 같은 이러한 일방적인 잣대에 의해 비서구 문화의 특성은 捨象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 초기에 중국은 서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신화부재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중국에는 서구처럼 서사체계가 완전하고 창조적 의미가 풍부한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견이었는데 사실 오늘날의 중국신화학에서도 서구 신화학의 정의나 분류법이 과연 중국에 들어맞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상술한 이러한 문제들을 신화학자 혹은 문화연구가로서 선생님은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나카자와 : 그것은 아시아인으로서 신화를 연구하는 연구자 모두가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레비-스트로스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대지로부터 탄생한 존재인 인류가 안고 있는 최대의 모순"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습니다. 다리를 끌며 걷는 오이디푸스 일족은 대지에서 탄생한 인류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간직해 왔습니다. 게다가 모든 인류가 동일한 '대지의 어머니'로부터 탄생한 존재라면, 모든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며, 모든 남자는 여자들의 아들이 되는 셈이죠(이것이 앞에서 서술한 '대칭성의 논리'의 超논리적인 귀결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결혼, 모든 성의 결합은 '근친상간'이 되는 셈입니다.
  현생인류가 구석기를 사용한 시대부터 이미 이런 식의 사고를 한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모성을 지닌 '대지'에 대한 사고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大地性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의 불가능과, 근친상간으로서의 결혼의 모순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인의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런 모순에 대한 일종의 재치 있는 신화적 해결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여러 해결책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에서 전승돼 온 '道祖神'의 기원설화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도조신은 도로에 서 있는 신인데, 그 신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형과 여동생이 있었는데, 둘 다 결혼상대를 찾아 멀리 길을 떠났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둘은 다시 만나는데, 서로 오누이 사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관계를 갖게 됩니다. 무척 기뻐하며 둘은 서로의 고향으로 향하게 되는데, 고향이 서로 같고 헤어진 오누이라는 걸 알게 되자 절망해서 자살하고 맙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을사람이 세운 것이 지금 '도조신'이라고 불리는 도로의 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오이디푸스 신화를 "대지로부터 탄생한 존재인 인류가 안고 있는 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신화로서 이해한다면, 이 '도조신 신화'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변형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방향으로 신화연구를 해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근대에 분에 넘치는 권세를 부려온 서구형 신화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은으로 물결 무늬를 상감한 이 청동 괴물은, 악을 압도하는 것으로 믿어지던 중국신화 속의 날개달린 고양이과 동물이다. ©
정재서 : 저의 일본문화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일본은 신화가 살아있는 나라다"라는 말입니다. 지난 일년간 일본에 가있으면서 줄곧 느낀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일본이 전통적인 상상력과 이미지의 유산을 바탕으로 오늘날 애니메이션, 영화 등 문화산업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이룩한 것은 진정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문화산업에서의 신화 수용을 환각제에 비유하면서 진정한 신화의 힘과는 거리가 먼 유사 신화적 행위로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신화적 상상력의 무대가 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은 가상현실의 공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펼쳐지는 신화적 상상력도 유사 신화로서의 작용밖에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향후 싫든 좋든 우리의 삶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현실 위에서 진정한 신화의 힘을 체득하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 가상현실 속에서의 재신화화(Remythologization)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 방안을 듣고 싶습니다.

나카자와 : 지적하신 부분은 현대문화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에서 제시했던 제 개념을 사용한다면, 경제원리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의 문화는 '비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구석구석까지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신화적 사고나, 혹은 그와 동일한 장소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원리와는 이질적인 '증여의 논리' 등은 전부 '대칭성의 논리'로부터 탄생합니다. 오늘날 '가상현실'로 불리는 감각과 사고의 영역은 원래 이 '대칭성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곳이 신화적 사고의 활동에 적합한 무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거기에 지금은 '비대칭성'을 원리로 하는 경제원리가 작용함으로써, 오늘날 거대한 애니메이션과 게임산업이 형성된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문자를 갖지 않은 사회'라고 하고, 제가 '국가를 갖지 않은 사회'라고 했던 사회에서는 현실과 신화, '비대칭성의 논리'와 '대칭성의 논리' 사이에 언제나 타협이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신중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균형이 생명과 사고와의 모순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윤추구를 제1원리로 삼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새로운 개척자로서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선발대로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산업이 발달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윤추구형 자본주의는 신화를 이야기하던 사회처럼, 균형이나 공생을 배려하지 않은 채 무의식 영역의 개발(착취)을 촉진시켜 가겠지요. 신화학자는 그 점에 대해 경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이 실현시켜가고 있는 '가상현실'을 통해서, 아마도 인류는 신화가 이미 알고 있던 무의식 영역과의 감동적인 재회를 해가게 되겠지요. 그것을 건전한 형태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도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자본주의는 근본적인 원리부터 다시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의 의미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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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협력자 문제 논쟁 재연 [한겨레]

 "친일변호, 죽은 자 아닌 산 자 위한 일" 친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드물긴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와 친일행적을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로 평가하는 `옹호론’에서부터 엄밀한 의미의 친일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실증론’, 엄혹한 식민통치 시대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민족정기론’ 등 다양한 생각이 뒤섞여 있다.

복거일씨 "가혹한 제국주의 통치로 선택 여지 없었다" 주장에 고종석 위원 "피하기 힘든 상황 면죄부 될 수 없어" 정면 반박

이런 가운데 고종석 <인물과사상> 편집위원이 친일파를 변호하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계간 <인물과사상> 최근호에 실었다. 한국의 대표적 자유주의자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복거일씨가 최근 펴낸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이하 <변호>)에 대한 반론이다. <변호>는 당시 인구통계와 외국 식민지 사례, 외국학자들의 문헌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고 있는데다, 분량도 무려 530여쪽에 이를만큼 긴 글이어서 `친일 변호’ 논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친일파에 대한 변론은 “일제 식민통치가 더 할 나위 없이 가혹했”으며 “따라서 조선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친일행위에 대한 비난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또 일제의 식민통치 자체에 대해서도 “조선의 근대화가 이뤄졌으며, 일제 말기의 인구가 초기의 2배에 이를만큼 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시대가 그런대로 살아갈만한 세월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주장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며,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터”라는 `인과율적 운명론’으로 이어진다. 고 위원은 반론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친일문제를 묻어두자는 것은 `과격한 상황론’”이라며 “그런 환경결정론을 다른 수많은 범죄들, 특히 궁핍에 기인한 범죄나 이념 범죄들로까지 넓혀 적용”해 볼 것을 권고했다.

그는 또 복씨가 당시 인구통계를 식민통치 옹호론의 논거로 삼은 데 대해서도 “인도·방글라데시·중국의 인구증가율이 20세기 후반에만 2~3배에 이르지만 이 시기 세 나라의 통치가 부럽지 않다”는 말로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드러내보였다. 고 위원은 이어 “<변호>의 저자는 일본이 조선을 `추출’ 식민지가 아니라 `정착자’ 식민지로 삼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으나 “저자가 인용한 서양학자들이 대표적 정착자 식민지로 꼽은 미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들의 입지가 조금이라고 남아있느냐”고 반문했다. 고 위원은 친일파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도 “`친일’이 명망가에서부터 필부까지 누구도 쉽게 피하기 힘든 덫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이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변호>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 그 중에도 `힘센 자’들을 위한 변호”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복씨가 `재변론’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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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통치 미화 ‘식민지조선…’ 출간 (문화일보)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일제 식민 통치 옹호론’이 되살아나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과 거리가 있 는 민족 정기론’에 눌려 있던 ‘실증론’이 고개를 드는 것인가 . 지난 여름 복거일씨가 일제 시대 친일파를 옹호하며 펴낸 ‘죽은 자를 위한 변호’(들린 아침)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 일본인이 일제 식민지 통치를 옹호한 책 ‘식민지 조 선의 연구’(변영호 옮김·춘추사)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제 식민통치는 인치주의(人治主義)에서 법치주의(法治主義)로 바꾸는 등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었다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일본은 한국에 사죄할 이유가 없다 ”고 강조하고 있다. 고문, 3·1운동 무차별 진압, 토지의 약탈, 일본어 강제 사용, 창씨개명, 징병, 경제 착취 등 한국에서 주 장하는 일제 식민 통치의 학정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일본은 조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정도의 선정을 펼쳤다는 주장이다.

책을 쓴 스기모토 미키오씨는 엔지니어로 은퇴한 뒤 지난 93년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가 방한, 일본 통치에 사죄하는 것에 의문 을 품고 60세의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가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일본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이사. 책에 따르면 천안 독립기념관에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 재현되고 있는 일제의 참혹한 고문 장면 등은 일제가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는 일제보다 훨씬 가혹한 행형제도를 유지했던 조선의 유물로 , 오히려 일제에 들어와서 가혹한 고문과 태형등을 없앴다는 것 이다. 또 창씨개명의 경우, 조선인 말단관리가 실적과시를 위해 무리를 하는 바람에 일부 문제가 있었을 뿐 중앙 정부 차원의 문제는 없었으며, 조선인 지원병도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7.7대1~ 62.4대1에 이를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원, 기쁘게 출정했 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처럼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한 책에 대해 학계는 지난해초 친일 파를 미화한 책 ‘친일파를 위한 변명’을 냈다가 벌금형을 선고 받은 김완섭씨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며 무시하는 분위기. 하지 만 김씨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일본은 엄청난 인력과 자원, 재 정을 투입해 미개한 땅을 정성스럽게 개발했다”는 예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복거일씨의 ‘죽은 자를 위한 변호’에 대해 계간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인 고종석씨 등이 반론을 폈으나 복씨는 이에 대해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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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독일 나치즘 -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포이케르트의 <나치시대의 일상사>에 대한 서평 중에서

 [...] 필자의 생각으로 포이케르트의 책은 한국사 연구, 특히 일제시대의 역사화를 위해 독일 일상사가 줄 수 있는 의미를 점검해보는 중요한 전거이다. 우리는 포이케르트의 문제의식을 쫓아서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이 아닌 동야에서 나타난 근대 문명의 병리적 표현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는 없을까? 일제시대는 식민지와 근대가 중첩된 시대이다. 김진송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책에서 잘 그려냈듯이, 일제시대는 일상적 삶의 측면, 곧 신여성, 하이칼라, 철도, 라디오, 축음기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의 측면에서의 근대화가 일어났던 시기이다.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일제 식민지의 역사화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범주에 입각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역사에서 주된 관심은 제국주의 국가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함으로써 어떤 수탈을 했으며 이에 대항한 조선인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어떤 운동을 벌였는지에만 주로 집중됐다. 이에 대해 일상사는 일상이라는 범주로 당시 조선인들이 식민지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기술한다. [...] 연구의 시각을 전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식민지라는 모순을 덮어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근대화의 모순을 아래로부터 근본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일상사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일제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를 일본 근대 사회가 메이지 유신 이후 겪었던 위기의 증상으로 곧 일본의 근대성의 병리와 왜곡이 각별하게 표출함으로써 발생했던 것으로 보는 해석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식민지 조선은 일본 근대화의 '실험실'이었다. 일본이 자신의 근대화의 위기를 해소할 목적으로 조선을 자신의 근대화 기획 속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바로 이런 일본에 대한 한국의 근대화를 공식화하는 표현이다. 이른바 '나치 혁명'이 목적에서는 반동적이었으나 수단에서는 혁명적이었으며, 그 혁명적 수단의 결과로 나치즘은 독일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데이비드 쇤봄(David Schoenbaum)의 테제와 같은 의미로, 수탈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조선의 근대화라는 수단을 사용했다는 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재해석할 수는 없을까?

출처 - 당대비평 200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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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우물이 있는 집, 2003) 중에서

저 이토 히로부미부터 오늘의 수많은 일본인까지, 조선말의 선교사로부터 오늘의 교황대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조선침략을 미국의 필리핀침략으로 상계(相計)한 대사들로부터 오늘 한국인 들쥐론을 편 미국대사까지 바로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였고 존 스튜어트 밀의 후배였다. 만일 영문학이나 영국의 사회과학에 탐닉하면서 일본의 조선침략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밀의 <자유론>을 들먹이면서 한국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논한다면 그것은 밀의 의도를 착실히 따르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일제를 비난하는 정치학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숭상하며 일제의 경제침략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일제도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 속에 있었고, 우리는 그 지배권 속에 있었다. 일제란 그런 의미에서 현대 한국의 기본이요, 모델이다.

우리는 그 시대의 연속선상에 살고 있다. 바로 일본이 그러하고 한국이 그러하다. 만일 일제를 부정하려면 현대의 한국도 부정해야 하고 나아가 서구를, 아니 세계를 부정해야 한다. 흔히들 독일의 전후 참회와 일본의 전후 반동을 비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야기로서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일본이 갖는,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침략에 대한 무반성과 반동인데 그것은 오늘의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완전히 동일하다. 따라서 사실상 제국주의사상에 기초한 영문학 내지 영국학문을 탐닉하면서 일제의 침략 운운하는 것은, 인디언을 멋지게 학살하는 보안관에 열광하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것과 같다.                                    

 p.103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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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한겨레신문사, 2003) 중에서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는 세계사의 필연적인 귀결도, 어떤 역사 법칙의 반영도 아니며 단지 자본 증식을 유일한 도덕률로 아는 특정 지역의 관료-자본가들이 건설하고 유지하는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구조물일 뿐이다. 우리 역사를 그들의 척도로 재는 것은 최악의 폭력이 아닌가? 어디까지나 유교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던 조선 후기 상인들을 '자본주의의 맹아'로 보려는 것도, 세계 체제에 재빨리 편입해가고 있었던 개화파를 '선각자'로 보는 것도, 목숨을 내걸고 유교적 전통을 지키려는 의병장들을 근대적 '민족주의자'의 틀에 뜯어맞추는 것도, 우리 안에 내재된 옥시덴탈리즘의 발로일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일본에 의한 식민화가 조선의 내재적 근대화를 막았다는 '내재적 발전론/식민지 수탈론' 지지자들도, 이론에 의한 자본주의의 이식이 한국 자본주의의 '기적적' 발전의 밑천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적인 근대를 조선을 포함한 모든 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하거나, 어떤 야만적인 억압을 수반해도 유럽형 자본주의적 근대라면 무조건 善으로 보는 것도 같은 본질의 옥시덴탈리즘에 걸려 있다고 봐야 한다. 식민지 시대를 악으로 보든 선으로 보든 간에 서구적인 근대가 무조건 기본 척도가 되는 것이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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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금융 허브? 헛고생 마라”

2003년 12월  [한겨레21]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의 허상 폭로해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

장하준(40)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부 교수(개발경제)는 지난 10여년간 제3세계 경제와 세계화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해온 대표적인 소장파 경제학자다. 그는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가 개도국·후진국에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환상이라는 것을 지난 200년간의 선진 각국 자본주의 발전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폭로해왔다. 19∼20세기의 선진국 경제발전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국내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월 한국인 최초로 제도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뮈르달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은 개도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오르려 할 때 이 사다리를 차버리는(Kicking Away the Ladder) 수단이라고 줄곧 비판해왔다. 역사적 실증을 통해 세계화에 대한 ‘이론적 저항’을 해온 셈이다. 39살의 나이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후보 물망에 올랐던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부터 이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다. 고려대학교 교환교수로 올해 한국에 와 있는 그를 만났다.

글로벌 스탠다드 강요하면 안된다

-미국은 제3세계와 개도국이 성장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글로벌 스탠더드나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경제가 성숙해 선진국에 진입한 다음에 형성된 것이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입한 게 아니다. 개도국이 자신들의 경제발전 경로를 선택할 때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줘서는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면서 이것 안 하면 망한다는 식으로 처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물론 발달된 제도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발달 단계에 맞고 사회적 목표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따져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란 무엇을 뜻하는가.

=선진국들이 개도국·후진국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후진국·개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규제했다. 자유방임 시장논리를 전파하는 미국을 보자. 유치산업 보호의 원조이자 모국은 사실 미국이다. 미국은 19세기에 세계 최고의 관세율로 유치산업을 보호했는데, 1890~1910년 관세가 가장 높았던 시기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1차대전 이전까지 미국은 금융·해운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아예 금지했고, 농지·광산채굴·벌목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강력히 규제했다. 인디애나주에서는 외국 기업에 아예 법적 보호도 못 받게 했다. 미국은 지금도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정부가 개입해 산업정책을 펴고 있다. 전체 연구개발(R&D) 비용 지출을 보면 한국과 일본은 정부 지출이 20∼30%인데 미국은 70% 안팎이다. 국방·항공산업·컴퓨터·생명공학에서 미국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보잉사에 통합될 때 민간 ‘시장’에서 자유롭게 인수합병이 일어난 게 아니다. 미 국방성이 더글러스사의 납품을 3차례 연속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 개입을 통해 조용히 통합시키는 산업정책을 썼다.

-자유무역은 제국주의 팽창의 논리이고 다른 나라의 산업화를 봉쇄하려는 정책인가.

=세계무역기구는 “너희들(개도국)이 지나치게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다 다 망했잖아?”라면서 유치산업 보호는 잘못 쓰면 스스로 다치는 칼이라고 주장한다. 자기들은 그런 칼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을 잘못해서 실패한 나라도 있지만, 보호무역을 안 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 보호무역을 안 하고 더 빨리 성장한 국가도 없다. 미국이 2차대전 뒤 무역과 투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지만, 세계 경제의 최강국이 되면서 자유화를 하는 게 자국의 이익에 유리했기 때문이지, 뒤늦게 자유무역 이론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각종 규제나 노사관계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환란 이후 외국자본에 부실기업을 마구 팔 때 외국인 직접투자가 크게 늘었다. 지금와서 그때에 비해 직접투자가 떨어졌다고 난리고 또 이는 경제정책의 실패 탓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때처럼 기업을 막 팔아야 하는 상황이란 말인가?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물건 팔아먹을 시장이 얼마나 큰지,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지, 노동력의 질이 어떤지 등을 따지는 것이지 노사관계, 규제, 법인세 같은 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 인센티브로 끌어들인 외국자본은 그 매력이 없어지면 언제든 보따리 싸서 떠나버리게 마련이다. 사실 떠나는 자본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고, 나가기 어려운 외국자본만이 꼭 노사관계가 어떠니 규제가 어떠니 하고 문제 삼는다.

-자본에 색깔과 꼬리표가 있는 건 아닌데.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은 강대국 자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지만 자본의 핵심 경영진은 철저하게 국적을 따른다. 물론 기업과 은행을 무조건 한국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한국 경제 시스템을 재조직해야 하는 시점인데, 은행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펀드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재벌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명확한 청사진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세계 금융의 중심이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으로 이동한 것은 그 나라의 제조업 발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앞으로 100년간 손실을 보전해준다는 약속이 있으면 모를까, 그런 약속 없이 오랫동안 홍콩, 싱가포르에 뿌리박고 영업해온 국제금융 센터들이 한국으로 옮겨올 리 만무하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좋은 말로 헛고생이고, 자칫 남의 장단에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허망한 꿈을 좇을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곳에 우리 경제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벌체제는 어떻게 개혁하는 게 바람직한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대성공, 그리고 삼성자동차 실패는 재벌체제라는 같은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재벌체제는 자금동원력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고 계열 기업간 상호 보조를 통해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도 크다. 재벌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이나 국민경제 틀 안에서 봐야 한다. 물론 재벌총수 가족의 지배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없애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타율이다. 재벌체제 개혁은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3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 4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경영권 안정을 위한 방안은 없나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축소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투자가 갑자기 예전의 3분의 2 수준으로 뚝 떨어졌는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설비투자 감소는 노무현 죄도 아니고 북핵 죄도 아니다. 한국 경제 시스템이 바뀌면서 투자가 떨어지고 있다. 기업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단기 수익만 좇다보니 모험적이고 위험한 장기 투자는 꺼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 자유화로 적대적 M&A가 가능해져 기업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유사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비한 실탄을 내부 유보 자금으로 틀어쥐고 있다. 경영권이 불안하면 투자지평이 협소화·단기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적당히 3%대 성장하고 말 것이라면 모를까, 국민소득 2만달러의 야심이 있고 진짜 선진국으로 가려면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설비투자 확대의 전제조건으로 기업의 경영권 안정이 필요하다면 그 방안은.

=연기금이 기업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국민경제 이익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고 공기업을 끼워서 기업들끼리 우호지분을 사주는 방식으로 경영권 안정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일본처럼 가족 소유 없이 주거래은행·계열기업·대형 하청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상호간에 우호지분 보유를 통해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재벌체제 내부를 감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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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역사해석에서 탈피하라"

이슈 : 역사전쟁 부르는 '韓中 고구려사 논쟁'에 부쳐

나는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의 고구려를 둘러싼 '역사전쟁'의 일촉즉발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역사는 과연 인간의 삶을 위해 유용한가 유해한가를 물었던 니체의 문제제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렇게 내가 반시대적 고찰을 하는 이유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역사 찾기 운동'에 학계와 정치계가 가세하여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이 과연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 회의하기 때문이다.

고구려라는 과거가 현재의 우리와 중국에게 왜 중요한가. 고구려 역사를 둘러 싼 한국과 중국 사이의 역사논쟁의 진의는 과거의 인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권력투쟁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이 물음을 역사적 패배주의가 아니라 역사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현 사태의 위기를 성찰해 볼 목적으로 제기한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해 있는 한국의 역사는 중국사와 일본사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은 한국사의 결정적인 영향력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런 한국사의 구조가 얼마 전 일어났던 일본 새 역사교과서 파동의 근본원인이다. 이번의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분쟁 역시 근대이전 한국사에서 중국이라는 뇌관을 드러내는 예정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전자보다는 후자의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역사에 대한 반시대적 고찰

일본과의 역사청산은 피해의 당사자가 생존해 있는 현재의 문제이지만, 고구려사는 까마득한 고대의 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을 일본 새 역사교과서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요컨대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중국학계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결론 없는 소모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러한 소모전의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정치계는 일본 새 역사교과서 파동 때처럼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을 수 있고, 한국사학계는 침체된 고구려사를 일으키는 효과를 바란다. 하지만 중국과 전면적인 역사전쟁을 벌일 때 발생하는 손실은 없는가. 정부는 겉으로는 중국에 강력 대응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모순적인 생각으로 정부가 중국정부와 한국국민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궁극적으로 누가 피해의 당사자가 될 것인가.

우리는 중국과의 전면적인 역사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손익계산부터 해봐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불리하다. 첫째는 고구려 대부분의 유적이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다는 것이고, 둘째 남한에게는 북한이라는 또 다른 한국사의 주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남한 사학계에서 고구려사 연구가 침체된 주 요인은 연구대상의 현장이 북한이고, 또 고구려사는 북한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연구가 기피되었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현실정치에서 북한이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고구려사 문제로 남북이 공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연구 인력과 재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중국에 비해 열세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주장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나는 우리의 현실적인 대응전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한국사가 일본사와 중국사와 충돌하는 것은 한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보는 기존 한국사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역사를 '국사'로 보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해체이지, 그것의 강화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의 '국사'의 위기를 한국사를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선험적으로 설정하는 '국사'의 해체가 요청된다.

필자가 아는 한, '국사'로 씌어진 종래의 한국사는 근대 이전 한국사에서 중국이란 무엇이며 근대 이후 일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민족을 코드로 해서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결정하는 역사서술이 이런 '국사'를 낳음으로써, 고구려사를 고구려사 자체로 인식하는 것 대신에 한국사인가 중국사인가의 역사주권 싸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현사태를 초래했다. 물론 현사태 발생의 직접적인 책임은 전근대적인 중화사상을 근대적인 중화민족주의로 변용시키는 데 복무하는 중국 역사학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양의 고대와 중세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아닌 로마제국과 프랑크 왕국이 있었던 것처럼, 고구려의 역사무대는 오늘날의 용어로 동아시아이다. 만약 역사적 비교가 가능하다면, 서양사에서 전근대의 동아시아에 해당하는 것이 유럽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실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발명된 상상의 공동체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유럽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었으며, 보편적 제국으로서 로마의 멸망 이후 유럽이란 그것을 대신하는 기독교세계였다.

17-18세기 구체제 시대에서 유럽은 세력균형의 원리로 묶어지는 왕국들의 총체였으며, 19세기 민족주의 시대에는 국민국가들의 집합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은 민족주의로 고양된 국민국가들 간의 전쟁터였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에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유럽공동체의 이념이 재발견됐다. 특히 독일통일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이후 유럽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의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 같은 맥락에서 유럽 각국의 역사학은 '국사' 위주의 근대 역사학을 지양하는 유럽사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기원의 망상에서 탈피해야

서양 중세에서 유럽이 기독교를 토대로 한 보편제국이었다면, 근대 이전 동양의 보편질서는 '중화'이다. 동양 고대에서 고구려 대 수·당의 전쟁은 이러한 중화질서 성립과정의 일환였다. 고구려 멸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전쟁들은 동북아 일대에서 독자적 생존권을 보전하고 패권을 추구했던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질서로 주변의 세력들을 포섭하고자 했던 수· 당의 세계정책의 충돌로 일어났던 동아시아 전쟁이었지, 결코 민족간의 전쟁이 아녔다. 7세기 나당 연합군에게 고구려가 패배했던 것의 결과로 중화질서가 성립했으며, 근대에서 한·중·일의 국민국가의 형성은 이러한 중화질서의 해체를 전제로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한국 언론에 알려지면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제 2 나당 전쟁, 중국과의 역사전쟁이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담론에서 신라는 한국인가 중국인가. 이렇게 근대의 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의거해서 전근대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우리 삶의 현실은 날로 세계화로 나가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눈은 아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의 책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그 책임은 없는가.

이제는 민족이라는 기원의 망상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사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동아시아 관점에서의 한국사 재구성이 필요하며,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논쟁이 '국사'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는 역사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기봉 / 경기대, 서양사 (교수신문, 200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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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3-12-1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두 개의 정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학자라면 하나의 정치가 도전해 올 때 또 다른 정치로 맞짱을 뜨도록 부추켜서는 안된다.

부빠기 2004-01-0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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