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협력자 문제 논쟁 재연 [한겨레]

 "친일변호, 죽은 자 아닌 산 자 위한 일" 친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드물긴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와 친일행적을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로 평가하는 `옹호론’에서부터 엄밀한 의미의 친일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실증론’, 엄혹한 식민통치 시대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민족정기론’ 등 다양한 생각이 뒤섞여 있다.

복거일씨 "가혹한 제국주의 통치로 선택 여지 없었다" 주장에 고종석 위원 "피하기 힘든 상황 면죄부 될 수 없어" 정면 반박

이런 가운데 고종석 <인물과사상> 편집위원이 친일파를 변호하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계간 <인물과사상> 최근호에 실었다. 한국의 대표적 자유주의자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복거일씨가 최근 펴낸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이하 <변호>)에 대한 반론이다. <변호>는 당시 인구통계와 외국 식민지 사례, 외국학자들의 문헌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고 있는데다, 분량도 무려 530여쪽에 이를만큼 긴 글이어서 `친일 변호’ 논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친일파에 대한 변론은 “일제 식민통치가 더 할 나위 없이 가혹했”으며 “따라서 조선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친일행위에 대한 비난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또 일제의 식민통치 자체에 대해서도 “조선의 근대화가 이뤄졌으며, 일제 말기의 인구가 초기의 2배에 이를만큼 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시대가 그런대로 살아갈만한 세월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주장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며,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터”라는 `인과율적 운명론’으로 이어진다. 고 위원은 반론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친일문제를 묻어두자는 것은 `과격한 상황론’”이라며 “그런 환경결정론을 다른 수많은 범죄들, 특히 궁핍에 기인한 범죄나 이념 범죄들로까지 넓혀 적용”해 볼 것을 권고했다.

그는 또 복씨가 당시 인구통계를 식민통치 옹호론의 논거로 삼은 데 대해서도 “인도·방글라데시·중국의 인구증가율이 20세기 후반에만 2~3배에 이르지만 이 시기 세 나라의 통치가 부럽지 않다”는 말로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드러내보였다. 고 위원은 이어 “<변호>의 저자는 일본이 조선을 `추출’ 식민지가 아니라 `정착자’ 식민지로 삼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으나 “저자가 인용한 서양학자들이 대표적 정착자 식민지로 꼽은 미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들의 입지가 조금이라고 남아있느냐”고 반문했다. 고 위원은 친일파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도 “`친일’이 명망가에서부터 필부까지 누구도 쉽게 피하기 힘든 덫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이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변호>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 그 중에도 `힘센 자’들을 위한 변호”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복씨가 `재변론’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조일준 기자

--------------------------------------------------------

일제 식민통치 미화 ‘식민지조선…’ 출간 (문화일보)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일제 식민 통치 옹호론’이 되살아나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과 거리가 있 는 민족 정기론’에 눌려 있던 ‘실증론’이 고개를 드는 것인가 . 지난 여름 복거일씨가 일제 시대 친일파를 옹호하며 펴낸 ‘죽은 자를 위한 변호’(들린 아침)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 일본인이 일제 식민지 통치를 옹호한 책 ‘식민지 조 선의 연구’(변영호 옮김·춘추사)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제 식민통치는 인치주의(人治主義)에서 법치주의(法治主義)로 바꾸는 등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었다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일본은 한국에 사죄할 이유가 없다 ”고 강조하고 있다. 고문, 3·1운동 무차별 진압, 토지의 약탈, 일본어 강제 사용, 창씨개명, 징병, 경제 착취 등 한국에서 주 장하는 일제 식민 통치의 학정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일본은 조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정도의 선정을 펼쳤다는 주장이다.

책을 쓴 스기모토 미키오씨는 엔지니어로 은퇴한 뒤 지난 93년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가 방한, 일본 통치에 사죄하는 것에 의문 을 품고 60세의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가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일본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이사. 책에 따르면 천안 독립기념관에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 재현되고 있는 일제의 참혹한 고문 장면 등은 일제가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는 일제보다 훨씬 가혹한 행형제도를 유지했던 조선의 유물로 , 오히려 일제에 들어와서 가혹한 고문과 태형등을 없앴다는 것 이다. 또 창씨개명의 경우, 조선인 말단관리가 실적과시를 위해 무리를 하는 바람에 일부 문제가 있었을 뿐 중앙 정부 차원의 문제는 없었으며, 조선인 지원병도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7.7대1~ 62.4대1에 이를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원, 기쁘게 출정했 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처럼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한 책에 대해 학계는 지난해초 친일 파를 미화한 책 ‘친일파를 위한 변명’을 냈다가 벌금형을 선고 받은 김완섭씨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며 무시하는 분위기. 하지 만 김씨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일본은 엄청난 인력과 자원, 재 정을 투입해 미개한 땅을 정성스럽게 개발했다”는 예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복거일씨의 ‘죽은 자를 위한 변호’에 대해 계간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인 고종석씨 등이 반론을 폈으나 복씨는 이에 대해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

근대의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독일 나치즘 -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포이케르트의 <나치시대의 일상사>에 대한 서평 중에서

 [...] 필자의 생각으로 포이케르트의 책은 한국사 연구, 특히 일제시대의 역사화를 위해 독일 일상사가 줄 수 있는 의미를 점검해보는 중요한 전거이다. 우리는 포이케르트의 문제의식을 쫓아서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이 아닌 동야에서 나타난 근대 문명의 병리적 표현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는 없을까? 일제시대는 식민지와 근대가 중첩된 시대이다. 김진송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책에서 잘 그려냈듯이, 일제시대는 일상적 삶의 측면, 곧 신여성, 하이칼라, 철도, 라디오, 축음기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의 측면에서의 근대화가 일어났던 시기이다.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일제 식민지의 역사화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범주에 입각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역사에서 주된 관심은 제국주의 국가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함으로써 어떤 수탈을 했으며 이에 대항한 조선인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어떤 운동을 벌였는지에만 주로 집중됐다. 이에 대해 일상사는 일상이라는 범주로 당시 조선인들이 식민지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기술한다. [...] 연구의 시각을 전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식민지라는 모순을 덮어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근대화의 모순을 아래로부터 근본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일상사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일제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를 일본 근대 사회가 메이지 유신 이후 겪었던 위기의 증상으로 곧 일본의 근대성의 병리와 왜곡이 각별하게 표출함으로써 발생했던 것으로 보는 해석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식민지 조선은 일본 근대화의 '실험실'이었다. 일본이 자신의 근대화의 위기를 해소할 목적으로 조선을 자신의 근대화 기획 속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바로 이런 일본에 대한 한국의 근대화를 공식화하는 표현이다. 이른바 '나치 혁명'이 목적에서는 반동적이었으나 수단에서는 혁명적이었으며, 그 혁명적 수단의 결과로 나치즘은 독일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데이비드 쇤봄(David Schoenbaum)의 테제와 같은 의미로, 수탈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조선의 근대화라는 수단을 사용했다는 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재해석할 수는 없을까?

출처 - 당대비평 2003년 겨울호

-----------------------------------------------------------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우물이 있는 집, 2003) 중에서

저 이토 히로부미부터 오늘의 수많은 일본인까지, 조선말의 선교사로부터 오늘의 교황대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조선침략을 미국의 필리핀침략으로 상계(相計)한 대사들로부터 오늘 한국인 들쥐론을 편 미국대사까지 바로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였고 존 스튜어트 밀의 후배였다. 만일 영문학이나 영국의 사회과학에 탐닉하면서 일본의 조선침략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밀의 <자유론>을 들먹이면서 한국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논한다면 그것은 밀의 의도를 착실히 따르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일제를 비난하는 정치학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숭상하며 일제의 경제침략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일제도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 속에 있었고, 우리는 그 지배권 속에 있었다. 일제란 그런 의미에서 현대 한국의 기본이요, 모델이다.

우리는 그 시대의 연속선상에 살고 있다. 바로 일본이 그러하고 한국이 그러하다. 만일 일제를 부정하려면 현대의 한국도 부정해야 하고 나아가 서구를, 아니 세계를 부정해야 한다. 흔히들 독일의 전후 참회와 일본의 전후 반동을 비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야기로서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일본이 갖는,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침략에 대한 무반성과 반동인데 그것은 오늘의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완전히 동일하다. 따라서 사실상 제국주의사상에 기초한 영문학 내지 영국학문을 탐닉하면서 일제의 침략 운운하는 것은, 인디언을 멋지게 학살하는 보안관에 열광하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것과 같다.                                    

 p.103 - 104

-----------------------------------------------------------------------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한겨레신문사, 2003) 중에서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는 세계사의 필연적인 귀결도, 어떤 역사 법칙의 반영도 아니며 단지 자본 증식을 유일한 도덕률로 아는 특정 지역의 관료-자본가들이 건설하고 유지하는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구조물일 뿐이다. 우리 역사를 그들의 척도로 재는 것은 최악의 폭력이 아닌가? 어디까지나 유교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던 조선 후기 상인들을 '자본주의의 맹아'로 보려는 것도, 세계 체제에 재빨리 편입해가고 있었던 개화파를 '선각자'로 보는 것도, 목숨을 내걸고 유교적 전통을 지키려는 의병장들을 근대적 '민족주의자'의 틀에 뜯어맞추는 것도, 우리 안에 내재된 옥시덴탈리즘의 발로일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일본에 의한 식민화가 조선의 내재적 근대화를 막았다는 '내재적 발전론/식민지 수탈론' 지지자들도, 이론에 의한 자본주의의 이식이 한국 자본주의의 '기적적' 발전의 밑천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적인 근대를 조선을 포함한 모든 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하거나, 어떤 야만적인 억압을 수반해도 유럽형 자본주의적 근대라면 무조건 善으로 보는 것도 같은 본질의 옥시덴탈리즘에 걸려 있다고 봐야 한다. 식민지 시대를 악으로 보든 선으로 보든 간에 서구적인 근대가 무조건 기본 척도가 되는 것이다.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