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 대우학술총서 564
강정인 지음 / 아카넷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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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인이 범하는 듯 보이는 두가지 잘못은 극복대상인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과 (이런 자기모순의 바탕에 있는 듯 보이는) '전범(典範)중심주의'이다. 서구중심주의란 결국 서구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보편적 전범, 표준, 모델로 상정하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로, 이를 비서구인이 마치 자기 것인 양 흡수할 경우 앎과 삶의 괴리, 지적 소외 현상에 봉착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강정인은 이를 극복하는 다양한 전략들(동화적/전복적/혼융적/해체적)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후 가장 바람직한 전략으로 혼융적 전략을 제시하며, 그에 상응하는 방안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제안한다.

그러나 그가 서구중심주의의 극복방안으로 내세우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처방전과 함께 내놓은 진단서는 좀 당혹스럽다. 그는 로크가 기독교에 바탕한 왕권신수설에 대항하여 역시 기독교에 바탕한 자유주의를 내놓은 사실에 주목하면서 서구 근대가 기독교라는 전통의 내생적 현대화를 통해 이뤄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렇지 못한 한국의 역사적 사실과 비교한다. 이는 서구의 역사적 경험은 정상적인 것으로, 한국의 역사적 경험은 일탈적인 것으로 규정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전통의 현대화란 결국 또 다른 부재의 신화요, 따라잡기 전략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전개가 가능했던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좀 다른 곳에 있는 듯 하다. 나는 이를 서구중심주의 이전에 깔린 또 다른 중심주의인 '典範중심주의'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전범중심주의는 '전범'(혹은 이론)과 '경험'의 위계적 이분법이다. 전범중심주의는 사전적으로 이상적 모델을 상정하려하고 그로부터 연역하여 경험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강정인의 서구중심주의 극복전략은 서구중심적인 전범을 동서양 혼융적인 전범으로 바꾸자는 것으로 전범의 우선성, 우월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럼 전범의 적실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구체적 사실들/경험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특히 단절/외삽과 자기소외로 특징지어지는 우리의 근대경험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저자는 전범의 적실성을 우리의 역사적 경험들의 탐구가 아니라 전통과의 연속성을 복구하여 보장받으려 한다. 

저자가 한탄하듯이 전통은 이미 단절되었고, 공자나 퇴계가 로크 시대의 기독교와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한 현대 한국에서 로크가 기독교에 대해 했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가 기독교의 한국적 상응물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행했을 때 우리는 로크와 서구의 내생적(소외없는) 근대 창출에 육박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로크가 처했던 전통 쇄신의 맥락과 우리가 처한 맥락을 비교해볼 때 우리의 경우 외삽과 단절을 통해 이미 건널 수 없는 상태로 다른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과거로 접혀들어간 전통이 아니라 단절을 통해 새롭게 펼쳐진 또 다른 현실이 아닐까?  

사실 저자의 접근 방식은 일본 소화 10년대나 1980년대의 에도 붐 혹은 근대초극론 등을 연상시킨다. 이 정도의 극단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혼융적 전략'을 이야기하지만 저자 자신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듯 하고 따라서 극단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이론적으로 방어해줄 토대도 부실해 보인다. 결국은 전범집착증 때문이다. 현실을 구제불능의 병증으로 진단하고 과거에서 백신이나 치료제를 빌리겠다는 발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해체적 전략'에도 호의적일 수 없다. 해체적 전략은 바로 전범없이도 해나가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없다. 정말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자는 혼돈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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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8-04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꼐요` ^^;;

ㅂㅈㅇ 2011-02-0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되죠. 왜냐면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문화는 외면적으로는 끊어졌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의 사고구조와 세계관, 사회적 예의, 문화적 습속을 사실상 아직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식층들의 경우도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슷합니다. 다만 정도만 좀 낮아질 뿐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유교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서구인이라고 착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