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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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이 바라는 바는 책(텍스트)을 본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인데, '본래 자리'란 "당대 인류의 생활세계"(p.5)로서의 콘텍스트이다. 그러나 난처하게도 우리는 그 콘텍스트마저 텍스트의 일부임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강유원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불가능하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음이 인간에게 주어진 또 다른 진실인 듯 하다. 인간은 텍스트로 자유롭도록 저주받았기 때문이다.

이 자그마한 책은 그런 저주받은 운명에 묵묵히 순종하는 짧은 제스쳐같다. 그는 텍스트라는 허구들을 재료로 삼아서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자기의 콘텍스트를 미련스럽게 건립하려 한다. 이 건물에 굳이 이름을 달자면 "쓸쓸함"이 될 듯 하다. 그에게 인류사는 "쓸쓸한" "행복"과 의미있는 "불행" 사이의 왕복 운동이고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다시 '쓸쓸함'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본다. 길가메시 서사시 시절에는 그 쓸쓸함을 아는데 단순명쾌한 직관으로 충분했다면 지금은 그 쓸쓸함이 과학적 인식으로도 보좌받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인류사의 이러한 계통적 반복은 결국 인간의 개체적 반복의 반영이 아닐까? 인간은 밥벌이의 삶과 밥너머의 삶이 서로 뒤엉켜 있다. 밥벌이의 삶은 철저하게 무의미하여 쓸쓸하다. 그러나 밥너머를 떠올리지 않으면 졸라 행복한 것이 또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존재인 모양이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죽음을 능가하는 '명예'로, [오딧세이아]의 오딧세우스와 [외디푸스 렉스]의 외디푸스는 는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모험으로, 플라톤은 '유토피아'와 '국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De Civitate Dei)로 쓸쓸함과 무의미함에 대적했다.

이런 모든 대적 행위는 대체로 이원론적이다. 죽을 운명의 존재와 역사 속에 길이남을 명예, 더러운 몸과 순결한 영혼(혹은 주체), 열등한 현실과 우월한 이상,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신 따위의 이원론들이다. 강유원도 이와 유사한 이분법을 세계와 책이란 대립을 통해 반복하고 있으며 그것의 부질없음도 반복해서 독자에게 주입시켜 저마다의 불일치, 분열, 불행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나선 독자들을 그냥 방치한다. 맘대로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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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4-05-0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뜩 강유원은 철학계의 김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는 몸과 힘에 대한 책, 글, 텍스트의 절절한 질투가 느껴진다.

로쟈 2005-03-1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서평을 보면 강유원이 가장 혐오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김훈이던데요...

노량진김씨 2008-07-0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유원은 김훈 스토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수십차례에 걸쳐 그렇게 비난해대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