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메이슨 코일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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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


메이슨 코일의 첫 번째 SF 호러 소설, 《윌리엄》.

궁금한 마음에 ‘메이슨 코일’을 검색해 보면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의 본명은 앤드류 파이퍼로, 이미 열 권이 넘는 장편소설을 발표한 베테랑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은 그가 새로운 필명으로 집필한 첫 번째이자, 결과적으로 마지막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의 성공을 채 누리지도 못한 채, 그는 지난 1월 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죠. 그의 SNS에는 아직도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추억들이 남아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래서 윌리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는 앤드류 파이퍼. 아니, 메이슨 코일.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로봇공학자 헨리는 ‘타고난 기업가’인 아내 릴리,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럭셔리한 대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앤틱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는 달리, 모든 것이 최신 기술로 움직이는 '스마트 홈'이에요. 겉보기에는 모든 걸 갖춘 완벽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려는 듯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로봇 ‘윌리엄’을 만드는 데 몰두합니다.

하지만 헨리는 심각한 광장공포증과 불안증을 앓고 있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선한 공기에 감염될 것 같다”는 이 증상은 소설 내내 지속되며, 그를 집 안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릴리의 옛 직장 동료 두 명이 저택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특히, 남성미와 자신감이 넘치는 동료 데이비스에게 위기감을 느낀 헨리는 충동적으로 ‘윌리엄’을 그들 앞에 내보이게 되고, 이 선택은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서막이 됩니다.

소설 중반까지도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저자의 의도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의 이야기에서는 보여지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큽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기에 독자는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떨어진 듯한 혼란을 느낍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전 공포영화처럼 ‘고대의 악의 축’ 혹은 ‘전설 속 악마’의 짓일까? 아니면 등장인물 중 누군가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는 걸까?

그렇게 흠뻑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아, 한숨에 읽어 내려가기 딱 좋은 소설입니다.

《윌리엄》은 총 50개의 짧은 챕터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궁금한 순간에 장이 끝나는 탓에,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엔딩도 매력적이고요.

책으로 읽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영상화된다면 상당히 수위 높은 장면들이 많아 조마조마할 듯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류의 소설을 읽어서인지 더욱 몰입하며 즐길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설정과 매력적인 플롯으로 몇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드는 《윌리엄》. 킬링 타임용 소설을 찾고 계신다면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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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 레인보우 시리즈 4
스티브 토메섹 지음, 존 디볼 그림, 김정한 옮김 / 놀이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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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어느새 저의 지식 수준을 넘어서는 듯합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요. 제가 어렸을 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는 세대라서인가 관심있는 분야에선 순식간에 박학다식해지더라고요. 이대로 둘 수 없겠다 싶어 아이와 함께 기초지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는 물론 어른도 흥미롭게 읽으며 배울 수 있는 책들이 많아 다행이에요. 오늘은 개성있는 구성과 일러스트로 우리 주변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초등 고학년부터 두고두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놀이터 출판사의 네 번째 '레인보우 시리즈'인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물건(Stuff)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물질과 에너지를 다루는 첫 번째 파트와 지구를 이루고 있는 천연자원과 생태계를 다루는 두 번째 파트, 마지막으로는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는 '인간이 만들고 사용하는 것들'을 다룬 세 번째 파트에요.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다루는 범위가 넓어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각 개념과 파트가 짧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라 이 책의 내용만 가지고서는 충분히 알아내기 어렵거든요.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트에서는 서두에 저자가 말한 것처럼 '아,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 넘어가며 놀라운 과학의 세계를 가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파트는 우리 생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을 다루고 있어 특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현재 사용하는 물건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어떤 형태였는지도 설명해 자연스럽게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과 옷 등이 어떤 발전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위험과 위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폭넓은 지식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과 읽을 때는 사전이 필수입니다. 저도 한 번에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와 개념들이 꽤나 등장하거든요. 아이가 지금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읽으며 과학 상식을 쌓기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엄마인 제가 읽기에도 재미있고 말이에요. 놀이터 출판사의 다음 레인보우 시리즈도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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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소소 선생 1 -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 책이 좋아 1단계
송미경 지음, 핸짱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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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아이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동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재미가 있어 읽고, 어른들은 그 안에 숨겨진 위로와 감동에 젖어드는 동화요. 송미경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 <생쥐 소소 선생>이 딱 그렇습니다. 이미 사전 서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출간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동화라 기대가 되었어요. 그 첫 번째 이야기,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매일매일이 재미있는 날은 아니거든요. 조금 지루한 날도 있어요.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 매일 있을 순 없다는 걸 아니까 기다릴 수 있어요."


'작가의 자전적 동화인가?' 싶은 <생쥐 소소 선생>의 주인공 소소 선생님은 동화 작가입니다. 한때는 베스트셀러였지만 어느새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로 혹평을 받는 동화 시리즈 <딩동 놀이공원>의 저자지요. 1권에서 5권까지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6권에서 10권은 관심은 커녕, 항의편지가 빗발치는 '실패작'이 되었다고 하네요. 연이은 실패에도 10권까지 출간한 것을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ㅎㅎ 


자신감을 상실한 그녀는 매너리즘과 번아웃에 빠져 월세조차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타르트 가게를 운영하는 봉봉 씨의 응원에도 소소 선생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던 바로 그 때 그녀는 매일 왔음에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졸졸 초등학교'의 편지를 읽습니다. 전교생이 12명인 작은 학교인 졸졸 초등학교에 그녀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망설이는 소소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봉봉씨 덕분에 어찌어찌 졸졸 초등학교로 향하게 되죠.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말입니다. 


"매일매일 지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내일을 기다려요. "


동화의 시작부터 소소 선생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 건, 그녀가 가진 문제를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어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노력과는 관계없이 어긋나고 무너져버리는 일들, 다시 도전할 에너지의 고갈, 무기력감과 자기 비하,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박까지. 아이들이 읽는 동화속 주인공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와닿는 상황입니다.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수용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 답보 상태가 계속될수록 소소 선생은 더욱 위축되어 갑니다. 급기야는 동화 작가를 그만두어야겠다 생각도 하죠. 


하지만 우연한 - 혹은 필연적인 - 기회에 졸졸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면서 소소 선생의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 내가 겪는 일, 내가 느끼는 감정에서 벗어나 순수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는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너무나도 강력해서, 조금만 긴장을 하면 바지에 실례를 하던 그녀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상황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질 만한 지혜 말이에요.


"엄청나게 기쁜 일도, 엄청나게 화나는 일도 이렇게 멀리서 보면 다 놀이 같답니다. "


소소 선생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또 다른 학교에서, 또 다른 아이들과 만나면서 소소 선생이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궁금해집니다.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가 동화 속 어딘가에 사는 생쥐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함께 울고 웃으면서 공감할 따뜻한 이야기일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아들도, 40대에 접어든 저도 행복하게 읽은 <생쥐 소소 선생 1 :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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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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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대학원 재학 시절, 미학이라는 과목은 저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미학은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이죠. 언어로 담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미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렵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궁금하고 끌리기도 해요. 어쩌면 그래서 <애도의 미학>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을 읽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도’와 ‘미학’ - 두 가지 모두 깊이 알고 싶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한 세계니까 말이죠.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 밀려옵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세계 - 어쩌면 일부러 알지 않으려 했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공존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표현을 선택한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에는 미술, 행위 예술, 연극,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동시대의 아픔을 알리며 위로와 치유를 제안하는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혹자는 예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본질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이 말하는 비극은 인과가 아니라 그 크기와 정도에 대한 체험과 대입”이라고요.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예술을 통해 어떤 사건을 접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그 사건을 함께 경험하는 ‘동참자’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실질적인 방안과 대처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사건(혹은 문제)이 결국 ‘내 이야기’, 아니 적어도 ‘나와 가까운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사람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당신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당신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화합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가 “노래소리로 비명을 숨기는 미혹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끔찍할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포장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폭력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약한 사람들이 괴롭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역사는 거의 언제나 강한 자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바뀌어 왔습니다. 당장 내 주변이 평화로워 보여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난무합니다. 계속 모르는 척 외면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인지 - 저자는 ‘애도’의 길을 선택하며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가 슬픔의 합창을 외치듯 우리 사회 역시 “비극이 발생하기 전부터 고통의 이른 징후를 응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당신’을 지키는 길이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며, 상호 의존적인 우리가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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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문장들 - 어떤 말은 시간 속에서 영원이 된다
브루노 프라이젠되르퍼 지음, 이은미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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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8장 7절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앞으로 창대해질 거라는 희망적인 의미 때문인지, 이 구절을 집에 걸어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작은 미미해도 큰 복을 받아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이 말은 욥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한 말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모든 것을 잃고 고통받는 욥에게 “분명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이라며 회개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지만 욥은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결국 이 문제는 친구들과의 팽팽한 논쟁으로 이어지지요. 성경 전체의 맥락을 살펴보면, 욥이 겪은 고난은 사탄의 시험 때문이었고, 그의 친구들은 근거 없이 욥을 정죄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호되게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이 전후사정을 알고 나면, 이 구절을 거실에 걸어두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앞뒤 맥락 없이 해석되는 문장들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의미가 변형되어, 원래 뜻과 정반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지요.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다룬 책입니다. 베를린에서 오랫동안 편집장으로 활동한 저자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놓치고 있는 열한 개의 문장을 탐구합니다. 브루노 프라이젠되르퍼의 <세상을 바꾼 문장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책이 저에게 정말 어려운 책이었다는 점이에요. 읽는 내내 네이버 사전과 지식백과를 자주 검색하며 읽었어요. 독일 특유의 문장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뉘앙스를 이해하기 위해 같은 문단을 반복해서 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요즘 책들은 한 챕터가 비교적 짧고 핵심적인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훨씬 읽기 쉬운데, 이 책은 긴 문장과 문단이 이어지다 보니 맥락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이 정도는 알겠지?” 싶었는데, 읽을수록 점점 더 깊은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머리를 쓰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한 챕터가 끝나면 해당 문장을 남긴 철학자의 시대적 배경과 인생을 종합적으로 설명해주는 페이지가 있어,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할 때는 그 부분을 먼저 읽고, 다시 앞부분을 돌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한 사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이 책 전반에 흐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장이 실제로 어떤 역사적, 시대적 배경에서 등장했는지, 후대의 철학자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했는지,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읽다 보면 저자의 독창적인 해석도 나오는데, 도발적이라 느껴지는 부분에서도 반박할 엄두를 못 내겠더라고요. 지식과 통찰력에서 저자보다 한참 부족한지라 그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내는 그런 책이 아니에요. 밑줄을 긋고, 정신없이 노트를 작성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어요. 머리는 더 아프지만,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던 문장들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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