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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대학원 재학 시절, 미학이라는 과목은 저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미학은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이죠. 언어로 담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미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렵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궁금하고 끌리기도 해요. 어쩌면 그래서 <애도의 미학>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을 읽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도’와 ‘미학’ - 두 가지 모두 깊이 알고 싶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한 세계니까 말이죠.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 밀려옵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세계 - 어쩌면 일부러 알지 않으려 했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공존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표현을 선택한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에는 미술, 행위 예술, 연극,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동시대의 아픔을 알리며 위로와 치유를 제안하는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혹자는 예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본질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이 말하는 비극은 인과가 아니라 그 크기와 정도에 대한 체험과 대입”이라고요.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예술을 통해 어떤 사건을 접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그 사건을 함께 경험하는 ‘동참자’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실질적인 방안과 대처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사건(혹은 문제)이 결국 ‘내 이야기’, 아니 적어도 ‘나와 가까운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사람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당신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당신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화합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가 “노래소리로 비명을 숨기는 미혹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끔찍할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포장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폭력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약한 사람들이 괴롭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역사는 거의 언제나 강한 자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바뀌어 왔습니다. 당장 내 주변이 평화로워 보여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난무합니다. 계속 모르는 척 외면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인지 - 저자는 ‘애도’의 길을 선택하며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가 슬픔의 합창을 외치듯 우리 사회 역시 “비극이 발생하기 전부터 고통의 이른 징후를 응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당신’을 지키는 길이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며, 상호 의존적인 우리가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