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 - 피아졸라, 에런 코플런드 등 수백 명의 음악가를 길러낸 20세기 음악의 여제
브뤼노 몽생종 지음, 임희근 옮김 / 포노(PHONO)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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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와 한없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역사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시간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 때문일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시대의 역사를 분석하려는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시간의 벽은 우리로 하여금 극복하기 어려운 좌절감을 안기고는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거의 생활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기록과 문헌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말 "그 시대 그 자체"를 전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있는 수 많은 학생들에게는 대부분 제대로 지각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만, 우리가 말하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생각처럼 길지 않습니다. 사실은 드문드문한 머리를 가진 바흐가 숱 많은 곱슬가발을 쓰고 초상화에 걸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살았던 시대가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건반 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그야말로 "메피스토" 같은 연주를 들려주던 리스트 역시 옛날 어느 시대에 존재했던,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전음악 역사가 불과 400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순식간에 흘러갔다고 한다면 대부분은 깜짝 놀라곤 합니다. 사실 말이 400년이지 앞서 말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경우 175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60년 전에 사망하였습니다. 리스트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27년 전 사망하였고요. 음악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알렉산더 대왕 (기원전 365년 출생) 만큼이나 오래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토록이나 멀게 느껴지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더이상 "산 증인"이 없이 문헌 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400년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하였고, 10년마다 강산이 변하는 지금, 3,400년 전 이야기는 그야말로 "원시" 수준이 되었습니다. 음악은 언제나 유효하고 살아있는 것이어야만 할텐데 유적을 탐문하듯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모리스 라벨, 피아졸라, 비제, 부조니 등 이름은 수없이 들어봤지만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을 조금 더 생생하게 만나보고 싶다면, 단언컨데 꼭! 읽어야 할 책을 오늘 한 권 소개하려 합니다. 앞에 나열한 이름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공통분모, 20세기 최고의 음악교육자 나디아 불랑제 여사에 관한 이야기,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를 소개합니다. 

 


역사의 산 증인, 나디아 불랑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클래식 음악을 전공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나디아 불랑제"라는 이름은 (그때만해도) 생소하다못해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곤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그녀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빈에서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였는데, 우연히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 친구들은 제가 그녀의 이름을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에 대단히 놀란 눈치였습니다. 



나디아 불랑제. 그녀는 1887년 태어나 1979년에 9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녀 역시 상당히 고령의 나이까지 활동을 하였고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지만, 그녀의 아버지 에르네스트 불랑제도 1815년에 태어나 1900년 사망하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장수한 두 아버지와 딸이 살았던 세기는 무려 3세기! 1815년부터 1979년까지 그 두 사람이 겪은 햇수는 무려 164년에 달합니다. 이렇다보니 그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음악사의 중심에 서서 수많은 "역사 속의 인물"들과 만나게 되고 그들을 겪으며 역사의 산 증인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선천적으로 천부적이었던 그녀의 음악적 소질은 보다 깊고 풍부한 교류로 이어질 수 있었고, 어떤 문헌이나 기록도 가질 수 없었던 지식과 지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업적, 기술적 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도 20세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기술과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음악의 발전에도 큰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데, 지극히 시대적,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던 음악가들의 활동은 순식간에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고, 예전 같았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며 서로가 서로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가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책의 내용이나 전개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녀의 증언을 듣고 있노라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론적으로는 베토벤과 동시대 사람이었던 그녀의 아버지, 학교 선배였던 모리스 라벨, 가브리엘 포레에게 작곡을 배우는가 하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레나드 번스타인을 가르쳤던 그녀. 한 사람의 인생으로 연결시키기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했던 음악가들이 나디아 불랑제의 삶을 통해 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도 특별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들과 직,간접적 교류를 하며 그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그녀가 존경스럽고,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부러워지는 순간이었죠. 


뛰어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 음악과 사랑에 빠져 삶의 한 순간 한 순간 음악에 충실했던 나디아 불랑제. 20세기 최고의 음악의 여제라는 타이틀이 전혀 아깝거나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나디아 불랑제와 그녀의 음악가들 


나디아 불랑제가 생전 만났던, 그리고 서로 교류했던 음악가들을 세어보자면 한참의 시간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일하였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이 만난 어떤 사람들에도 격차를 두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그들이 나중에 성공했건 그렇지 않건간에 그녀는 한결같이 모두들 하나의 인격체이자 대단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음악학도로 대했고, 그녀의 일관적인 태도는 학생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휠체어에 앉은 선생님에게 찬사와 존경의 마음을 아끼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달콤하고 친절하기만 한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 그녀는 절대적으로 성실함과 진실됨을 요구하였고, 그것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을 몰랐습니다. 재능이 있건 없건, 특별히 아끼던 그렇지 않던 음악 앞에서 그들은 모두 자신의 최상의 것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것이죠. 또한 "배우려고만 하는" 학생들의 수동적 자세 역시 그녀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마치 텔레비젼을 시청하듯 주어진 것을 받고자만 하는 학생을 그녀는 따끔하게 꾸짖습니다. 


"그 학생은 내 마음에 들고 싶어 하고, 내가 자기의 화음을 좋아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연주를 하고 나서 걱정이 태산 같아 필사적으로 이쪽을 돌아보며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고 물어요.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아니 난 모르겠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나는 몰라. 네가 원하는 걸 네가 모르는 한은, 너는 내게 음악적으로는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어.'" (87 페이지) 


두려워하거나, 자만하거나. 

짧은 경험이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이 두 개의 스케일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지나치게 자만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거나, 미세한 한 부분까지도 자신하지 못해 고민하거나 하는 상태를 반복하는 것이죠. 사실상 어른이 되고 연륜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어느정도까지 (음악가로 사는 이상) 이러한 상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느 한 상태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한만큼 이쪽 저쪽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며 점점 성장하게 되는 것이겠죠.

정말 젊은 나이에도 나디아 불랑제는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자에게도 그녀의 태도가 일관될 수 있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학생들을 만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그녀를 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의 제자들은 그 만남과 수업 안에서 자신의 추구하는 것들을 마음껏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 진심으로 부럽게 느껴집니다. 



나디아 불랑제와 음악 교육 


그야말로 "멘토 홍수"인 요즘입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나고 조금이라도 성공했다 하면 누구든지 조언서를 쓰는 요즘 우리는 어떻게 보면 멘토링에 있어 상당히 무디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누구나 가르치려 하고 누구나 자신의 방법을 설파하며 성공을 약속하기 때문에 한두번 관심있게 귀를 기울이다가도 나중에는 "그 말이 다 그 말이겠거니" 지레 판단해버리는 것이죠. 게다가 자기계발서 붐이 일면서 별 것 아닌 내용을 멋진 말과 문구로 포장해내는 경우도 많아졌기에 웅변가 혹은 달변가 수준의 글에도 우리는 묵묵하게 반응하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디아 불랑제와의 대화는 한 쪽, 한 줄을 더욱 마음을 써서 읽게 됩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한 풍부한 삶을 살았지만 정작 스스로는 한없이 겸손하고 소박한 그녀의 소신있는 발언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공들여서 읽어나갔습니다. 


사실 이정도 성공적으로 유명한 제자들을 배출하였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마땅한데도 그녀의 삶은 몇십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저 같은 집에서, 같은 일을, 같은 마음으로 계속 해나갔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녀가 어떻게 제자들을 교육하였고, 어떤 것을 가르쳤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이 선생님이 엄청난 제자들을 키워냈으니 나도 그렇게 배우면 엄청나질거야!"라는 지극히 1차원적인 생각으로 교육의 비법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나디아 불랑제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보면, 어쩌면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힘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깨닫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떠한 비법을 내걸고 자신의 교육지책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에게 자신을 열고 매일 매일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듯 함께 공부해나가는 것이죠. 엉뚱한 학생이라도 그 엉뚱함을 "틀리다"라고 낙인찍지 않고,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녀만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제자가 여러 도구들을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거에요. 제자가 그 도구로 무엇을 하건, 선생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제자에게 발명의 힘을 줄 수도 없고, 또 제자가 지닌 발명 능력을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84 페이지)



흔히 훌륭한 연주자는 훌륭한 선생이 되기 어렵고, 훌륭한 선생은 훌륭한 연주자가 아니라고들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기 때문에 이런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수 맞아들어가곤 합니다). 

나디아 불랑제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20세기를 통틀어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교육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소질을 가졌으며 그것을 충분히 입증하였습니다. 그녀가 석권한 어마어마한 콩쿠르들과 남다른 교육과정 역시 그녀가 보통 음악학도의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음을 말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승승장구 행진에도 불구하고 겨우 스물 세 살 그녀는 음악 교육에 힘쓰기로 마음먹고 파리음악원에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가르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빛나는 것. 모든 음악가들의 당연한 욕구를 잠재울만큼 그녀의 "교육"에 대한 의지는 대단했던 것이죠. 교육자로써, 음악이론가로써 그녀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가장 겸손한 자세에서 음악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명성이 올라가건 제자들이 성공하건 자신의 업적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건 그녀가 변함없이 겸손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기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녀와 음악의 관계" 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자주 접하는 일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라고 할 수 있어요. 음이 자아내는 현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음악이란 결국, 하나의 작은 어휘를 일정 숫자의 헤아릴 수 없는 해법들을 써서 여러 곱절로 늘린 것일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193 페이지) 




마치면서... 


잠언서에 보면 노인의 백발을 "영혼의 면류관"이라고 표현합니다 (잠언 20장 29절). 지나간 세월이 켜켜히 쌓여 지식과 지혜를 얻은 노인의 경험에 대한 더할나위 없는 찬사죠. 요즘은 이것이 와전되어 어떠한 지혜나 지식 없이 그저 나이만 먹고 나면 당연히 자신을 존중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만, 분명 오랜 시간의 경험에서 얻게 되는 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도 대체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나디아 불랑제와의 대화에서 다시한번 이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한 말들 한 문장 한 문장을 되짚어보면 그 안에 (심지어 줄과 단어 사이에도!)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풍부하고도 깊은 경험과 축적된 지식이 느껴집니다. 음악과 교육 그리고 연주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은 대단히 철학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번 한 번 읽어서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몇 번 읽은 후에라도 과연 그녀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스스로가 읽어낼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이제 그녀가 우리를 떠난지도 벌써 34년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나디아 불랑제는 없지만, 그녀와 함께 여러 시간을 보내고 그녀와의 대화를 정리한 브뤼노 몽생종이 있기에 우리는 책으로나마 그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점에 가장 기쁘고 감사하게 되더군요. 이 책이 없었다면 나디아 불랑제에 관해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를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무시하고 그저 실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 지속된 연구나 생각에는 관심 없이 그저 손가락을 돌리는 연습에만 매진하고 더 빨리, 더 크게, 더 선명하게 연주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하곤 합니다. 언젠가 그들은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테고, 그 때 처음부터 다시 음악을 배워야 할 것인데, 그 시간을 단축해주고자 몇 마디 조언을 던져도 그닥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아마 저 역시도 이런 식으로 제 선생님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되돌이켜봅니다 ㅎㅎ). 


이젠 그런 학생들을 만나면 스스로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이 책을 권유해주려 합니다. 음악에 대해서 엄청난 철학적 고찰을 하며 온갖 미사어구로 멋지게 포장해놓은 책이 아닌,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음악가들과 만나며 음악을 위해 살았던 나디아 불랑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죠. 알면 알 수록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그러나 대부분 무시받는 진실을 그녀는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저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그녀가 경험했던 지혜와 지식을 그녀의 쓰여진 말로나마 조금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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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미 2013-05-2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