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오은영 선생님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

검증도 안된 별의별 육아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요즘, 오히려 인터넷이 엄마들을 더 혼미하게 한다. 무슨 패션도 아니고 육아방식도 어찌나 유행에 민감한지 언제는 북유럽식 육아였다가, 전통육아였다가, 언제는 또 프랑스식 육아법이란다. '새로운 트렌드가 좀 더 좋겠지' 하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리다 보면 일관성은 고사하고 아이는 커녕 엄마까지도 정체파악이 어려운 짬뽕 육아가 탄생한다. 어쩔 때는 이랬다가, 이게 아닌가 싶으면 금방 다른 곳으로 갈아탄다. 엄마들이 모자라거나 변덕이 심해서가 아니다(물론 그럴수도 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이다.


남 이야기하듯 잘난척 하며 썼지만, 내가 바로 줏대없는 초보 엄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합치면 약 7-80권의 육아서를 읽었지만(사실 이렇게 육아서가 많은줄도 몰랐다!) 그 중 95%는 차라리 읽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다. 책이 나쁘거나 내용이 틀려서라기보다는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생아 아기에게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가르쳐주는 베이비 위스퍼는 안 읽는 편이 나았다. 특히 "평균 월령대 아이들의 수유량" 따위는 눈길도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최대한 쉬면서 편안하게 키우는 데 집중했어야 했다. 지나고 보니 책의 내용 중 틀린 것이 없었지만, 그 당시 나에겐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왜 네 시간마다 수유가 되지 않는지, 왜 정해진 양을 다 먹지 못하는건지, 하루 수면량을 채울 수 없는건지 고민하다보니, 정작 내 아이와 교감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의 "제2장"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다시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이 바로 육아서였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알려주었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놀리는 것이 전부였다면 18개월에 들어선 아들은 새로운 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위 "첫 반항"이 시작된 것이다.


주위 엄마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대부분은 "그 땐 욕이 바가지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시기니(그래서 이맘때를 욕개월이라고 한다고) 냅두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미운 세 살, 죽이고 싶은 네 살, 왜 안죽였나 싶은 일곱 살"이라고 한댄다. 엄마들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 살벌한 말이 아닐까.

두 번째로 많은 부류가 "초장에 아주 확 잡아야지, 아니면 평생 끌려다닌다"이다. 이 부류의 엄마들은 특전사를 방불케 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아이들을 "잡는다". 아이가 복종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인것마냥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에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아이를 무조건 이해해주세요. 냅두세요. 사랑해주세요" 부류가 있다. 내 나이 또래의 엄마들에게서 크게 유행하는(?) 육아방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억압받고 많은 것을 제한당한 세대인만큼 자기 자식은 다르게 키우겠다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뭐가 됐든 이 세 가지 방법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극단적이다. 아이와의 갈등을 무조건 덮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이를 억압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오냐오냐하며 스스로 깨닫길(?)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하루하루 아들의 고집이 커가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닥칠 어마어마한 미래에(?) 걱정 역시 커지던 그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




350쪽에 육박하는, 묵직한 이 책을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가볍게 읽기를 시작했다가 한참 눈물을 흘리며 읽고, 밑줄 쳐가며 읽고, 여백에 나의 느낌과 책내용을 정리하며 반복해 읽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이 책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더 읽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서론과 첫 장을 읽었을 땐 그저 이 책이 내게 정말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내 상황과 대부분 맞아들어갔고, 내게 필요한 조언들이 있었다. 지금과 앞으로의 육아 인생(?)에 있어 내가 명심해야 할 부분들이 참 많았다. 그러다가 마주하게 된 "욱 지수 테스트"는 지금 내 상태를 단적으로 알려주었다.

스스로 (나름)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표현하지 않을 뿐 내 안에서는 수시로 욱이 치밀어올랐다. 너무 사소해서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도 온갖 감정이 쏟아져나왔다.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났다. 너무 속이 상하고 원망스러워 어쩔 줄 모를 때도 많았다. 책 속의 인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겉으로(심지어 내 가족에게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난 큰 소리를 내거나, 욕설을 하거나, 가족 혹은 남들 앞에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을 가장 끔찍해했다. 때문에 표현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욱 덩어리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썩어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난데없이 우울증에 괴로워했고 그 시기가 끝나면 다시 긍정적인 파이팅이 시작됐다. 나도 내 감정을 이해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사사건건 나와 부딪히는 아들과의 관계를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해결해야 할 것은 아들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들의 고집이나 짜증은 너무도 미미하고 사소한 것이어서 신경쓸 이유조차 없었다. 오히려 월령대의 다른 아이들보다 순하기 짝이없는 고마운 아들이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아들의 (당연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조급해지고, 짜증이 나고, 조바심이 났다. 다행스럽게도(?) 단 한 번도 아들을 때리거나, 윽박지르거나 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 치솟는 화를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버릇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이런 막연한 걱정이 아이에게 건설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치미는 화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오늘도 화가 났지만 난 잘 참았어. 난 나름 괜찮은 엄마야'라고 생각하곤 했다. 내 안에 있는 욱은 뚜껑만 덮어버린 상태인데 말이다.

누구나 욱하고 있어서 우리는 서로 묘하게(?) 이해한다. '욱'은 감정 조절이 미숙한 것이고, 심하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분노조절장애임에도, 그것이 보편적인 감정인 양 이상스러운 이해(?)를 하고, 욱한 자신에게도 면죄부를 준다. (43 페이지)

그러고보니 주위에서 심심찮게 아이를 때리거나 화가 나서 혼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비슷한 월령대의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많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100% 내가 보살펴주고 돌봐주어야 했던시절은 지나고, 이제 이 녀석들이 스스로 고집을 부리고 의견을 표시하기 시작한 이 시기에 말이다.


대부분 그렇게 혼을 낸 뒤에 엄마들은 미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았다. 소리 질러서, 이해해주지 못해서, 혹은 때려서,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실망했다, 자괴감이 느껴졌다 말하기도 했다. 만약 정당한(?) 이유로 화를 내고 훈육을 한거라면 이런 감정이 들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내가 옳았는데(?) 아이에게 화를 낸 뒤엔 끝없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엄마라서 그런가보다'라고 애써 합리화하며 넘기려 했지만 상황이 반복될 수록 점점 더 답답해졌다. 이건 아니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걸까? ... 그리고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훈육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218-219 페이지)

어쩌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진짜 그랬다. 훈육은 감정적인 폭발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는 혼을 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가르쳐야 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간단한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도무지 이상대로 가질 않는다. 아이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엄마들은 하루종일 잔소리를 입에 달고, 소리지르고, 윽박지르게 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지만 흔히들 "훈육"이라고 하면 소위 "아이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가 꼬리를 내리고 복종하는 것이 엄마의 권위가 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가 얼마나 아이에게 영향력이 있고 잘 "잡고 있는지" 자랑하는 엄마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까지 날 지켜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엄마가 나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다 널 위해서야"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있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더럽게 말 안듣는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소리지르고, 때리고, 욕을 하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엄마들의 잘못일까? 나름대로 희생하고, 애쓰고, 자신을 내어주며 육아를 한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고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엄마들 입장에선 억울할 뿐더러 눈물나는노릇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육아를 하며 어떻게 이성적으로, 이론적으로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단 말인가. 글로 읽으면 이해가 되는데 실제상황과 마주하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우리 사회 전반에 '욱'이 만연해 있다고 해도, 정말 내 아이에게만큼은 욱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욱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부모와의 문제' 때문이다. (46 페이지)

원부모와의 갈등과 해결되지 않는 상처는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원부모와의 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렸을 적부터 켜켜히 쌓인 서운함과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평소엔 별 탈 없이 잘 살다가 유독 자식을 키울 때 쌓여왔던 감정이 아이를 향해 폭발한다는 것이다. 원부모의 싫은 모습으로 인해 무조건 반대로 한다던가, 자신도 모르게 원부모의 잘못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엄마 (그리고 아빠)가 이를 깨닫고 인정하지 않으면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점점 더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이렇게 치닫는 관계는 결국 사춘기가 들어서며 넘기 힘든 담을 쌓게되기도 한다.

욱을 다스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화살이 되어서 내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한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오롯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된다. 타인에게 자극을 받아 더 예민해질 수는 있다. 그래도 그 출발은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290 페이지)

밑줄치며 읽어야 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은지라 일일히 다 언급할 수가 없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과연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까 막막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어 엄청나게 길기만 한 두서없는 글이 탄생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는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아빠들에게 강제로라도 읽게 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치유받고, 가족 안의 여러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참 많은 육아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변화했던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 나의 변화는 곧바로 아들의 변화로, 우리 둘 사이의 관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더이상 아들의 징징거림에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다. 실제로 아들의 징징거림도 줄었고, 혼자 육아를 할 때도 더이상 하루가 힘겹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이 편하고 즐거운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도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한번도 화가 나지 않는다. 분명 이전에는 온갖 서러운 것과 서운한 것, 짜증나는 것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삼키고 분을 삭혀야 했는데 말이다.

"아이가 좀 크면 괜찮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돌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세 살 되면 괜찮다던데... 막상 그 때가 되어 나아지지 않으면 엄청난 실망감이 밀려오곤 했다. 백일의 기적, 6개월만 지나면, 걸을 수 있게 되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에게서 들은 좌표를 정해두고 그날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언젠가는 수유텀도 벌어질 것이고, 아기가 더 크면 혼자 밥도 먹을 수있을 것이다. 분명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18개월동안 질풍노도의(?) 육아를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커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 욕심과 아이에게 필요한 훈육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원부모에게서 비롯된 나의 상처를 아이에게 투영시키지 않으며,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해프닝으로 인해 변덕스럽게 행동하지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끊임없는 자각과 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성장할 때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기만 하고 참 두서없는 서평이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미리 정해두었다. 오은영 선생님이 강조하는 세 가지 도덕적 가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세 가지만 아이에게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성공한 육아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우리 세대가 가진 미숙한 자아와 분노, 욱으로 인해 다음 세대가 더 각박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명문대나 특별한 재능, 명예와 부귀영화보다도 더 간절히, 더 열심히 가르쳐주어야 할 것들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읽고, 또 읽으면서 내가 더 변해야겠다. 아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만큼, 두 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조만간 오은영 선생님의 다른 저서도 꼭 읽어보아야 겠다.


[세 가지 도덕적 가치]

1.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3.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 그것이 나의 손해와 이익에 위배된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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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우마 2016-07-2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끝까지 제 이야긴가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리뷰예요. ㅠㅠ 얼른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