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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입니다 ***
도발적인 제목입니다. 《자살수첩》이라는 네 글자는 충격적이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게조차 충격적인 통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는 매년 다양한 정책을 내놓으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그리고 벼랑 끝에서 돌아설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요?
흔히 일본의 사회적 현상을 보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곤 합니다. 버블 경제의 몰락, 고령화 사회,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일본이 먼저 겪었던 문제들이 몇 년 혹은 십여 년 후 우리 앞에 펼쳐졌으니까요. 자살 문제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자살률은 2003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해왔다는 사실입니다. 2022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15.6명으로 여전히 OECD 평균(10.6명)을 크게 웃돌지만, 2003년 24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입니다. 일본은 일찍이 ‘자살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여 자살을 보다 구체적이고 본질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자살을 개인의 문제나 치부로 여겨 쉬쉬하던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자살수첩》은 수십 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재직하며 상담과 임상 치료를 병행해온 카스가 타케히코가 자살을 둘러싼 다양한 경험과 단상을 풀어낸 책입니다. 그는 ‘자살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사람을 자살로 이끄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때로는 놀랄 만큼 담담하게 자살을 이야기합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 읽어보았습니다.
저자가 재직하는 동안 약 20명의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유명인의 자살 사건, 소설과 영화 속 자살 장면까지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며 자살의 유형을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정작 저자는 이러한 분류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살의 유형이란 결국 남겨진 사람들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반자살을 하거나, 죽음으로 속죄하거나, 세상을 비관한 끝에 철학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자살의 템플릿’이 사실은 후에 덧붙여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저자는 오히려 이런 틀이 자살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어버릴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절망이나 상실, 괴로움이 자살로 향하는 문이라 믿는다.
그러나 비슷한 경험을 하고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자살 직전의 보편적인 감정은 ‘더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시야 협착(narrowing of mental perspective)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즉, 죽지 않으면 안 될 거대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고민이 쌓이면서 정신적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결국 유일한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살에는 ‘필연적인 이유’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가설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자살을 목격해온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허망합니다. 우리는 자살한 이들이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저자는 “그냥 어쩐지”라는 말로 자살의 경과를 설명합니다. 그 말이 주는 허무함은, 때로는 모욕적으로까지 느껴진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다리만 건너면’ 자살 유가족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자살은 우리와 멀지 않은 문제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 친구,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의문은 언제나 “왜?”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무례하고 배려 없이 쓸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수학 공식을 다루듯 무미건조하게 자살을 설명하는 저자의 언어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살은 아무리 자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더라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도 속에서 무엇을 깨닫고 배워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