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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확장판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조기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1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이 책의 저자 에드 캣멀은 그야말로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연결조차 생각하지 않던 시절부터 그는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꿈을 꿨고, 수많은 난관과 굴곡을 딛고 결국 <토이 스토리>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영화의 만남은 영화사를 영원히 바꾸어놓았고, 오늘날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 영화조차도 CG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창의력을 지휘하라>는 그 변화와 혁신의 한가운데 있었던 에드 캣멀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역사’ 같은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목표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동경하던 저자는 ‘언젠가 디즈니를 위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과감하게 모험을 택하지요. 선구자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조지 루카스를 거쳐, 후에 스티브 잡스와 함께하며 픽사라는 전무후무한 회사를 만들어가고, <토이 스토리>의 경이로운 성공을 시작으로 <몬스터 주식회사>, <인사이드 아웃>, <겨울왕국> 등 수많은 명작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흥미롭게도 픽사는 디즈니를 동경하던 인재들이 모여 디즈니를 능가하는 스튜디오로 성장했고, 지금은 다시 디즈니에 인수되었지요. 이들은 침체되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이끌며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어 냅니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닙니다. 천재들이 모인 픽사라는 조직에서 창의성을 어떻게 발견하고, 장려하고, 유지해왔는지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에요. 영화 제작은 수십, 수백 명이 함께하는 작업이기에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며, 창의적인 인재들은 동시에 가장 쉽게 상처받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반 기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고 해요.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픽사의 ‘브레인 트러스트’와 ‘노트 데이’입니다. 두 시스템 모두 픽사의 핵심 창작 프로세스이며, 수십 년의 시행착오에서 탄생한 독특한 접근 방식입니다. 이런 노하우를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서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어요.
이번에 새로 출간된 <창의력을 지휘하라>는 10주년 확장판으로, 본문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포스트 스크립트’와 몇 개의 장이 추가되었어요. 특히 10년 전의 자신에게 덧붙이는 저자의 시선과 보완이 흥미로웠는데, 그때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조금은 달라진 시각이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챕터, 그가 누구보다 오래 함께 일했던 스티브 잡스에게 헌정한 부분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벌써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1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애플과 픽사의 거인으로 남아 있지요.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고, 그의 부재에 대한 진한 그리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탄생과 발전, 찬란한 성공까지의 여정을 담아낸 <창의력을 지휘하라>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살아 있는 역사서입니다. 번뜩이는 통찰과 함께 두고두고 소장하며 읽고 싶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