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특별보급판) - 사유와 열정의 오선지에 우주를 그리다 문화 평전 심포지엄 3
마르틴 게크 지음, 마성일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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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쉽지 않은 책입니다. 아니,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이 어려움이 텍스트 자체의 난해함 때문인지, 제 지식의 부족 때문인지, 혹은 번역 탓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확실한 건, 이 책은 음악과 역사, 철학과 사상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책이라는 점입니다.


책은 불멸의 작곡가 베토벤을 “열두 개의 시선(키워드)”으로 조명하며 그의 삶과 음악을 다각도로 풀어냅니다. 그런데 이 키워드들과 내용이 대부분 예상 가능한 주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베토벤은 전무후무한 음악적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수많은 메모와 편지를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토벤”이라는 우주는 상당 부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음악학자는 물론 철학자와 작가, 역사가들까지 그의 음악과 사상을 해석하며 끝없이 탐구를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15년 전, 박사 논문 주제를 정할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담당 교수님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베토벤이라고 말씀드리자, “베토벤만은 꿈에서라도 주제로 삼지 말라”고 단호히 만류하셨어요.

이미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영역도 초심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는 이유에서였죠. 이 책을 읽으며 당시 교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차려진 밥상조차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다니, 만약 그때 베토벤을 고집했다면 저는 아마 영영 논문을 끝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쉬어가는 페이지’ 같은 챕터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절망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격동의 유럽을 살아간 베토벤과 동시대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예를 들어 도시 전설처럼 전해지는 프란츠 리스트와의 만남, 그리고 클라라 슈만 - 요하네스 브람스 - 아르투어 슈나벨로 이어지는 연주자 계보는 서양음악사가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격렬하게 발전해왔는지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베토벤에 관한 주요 서적은 거의 빠짐없이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지난 20년 동안 새롭게 밝혀진 연구와 발견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다수 얻을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물론, 진입 장벽이 높고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과 당대 유럽의 음악사, 독일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한 번에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두고두고 읽으며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탐험해보실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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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의 유쾌한 세계 경제사 탐험 - 5학년 0반의 비밀 수업
석혜원 지음, 이갑규 그림 / 다섯수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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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 

“예술인들은 경제 관념이 없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딱 들어맞는 말인데요. 어린 시절 경제에 관심이 없었던 데다 기초 지식도 부족해, 어른이 된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변명하자면, 그때는 어린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제 서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면, 이렇게까지 무지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릅니다. 석혜원 작가의 《좀비들의 유쾌한 세계 경제사 탐험》을 읽고 나서야 ‘이거다!’ 싶었어요.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은 경제 개념을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더라고요. 내용에 비해 제목이 오히려 너무 평범하게 느껴질 만큼, 한 번 잡으면 놓기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농경 시대부터 자본·정보화 시대까지, 경제 개념의 변천사를 다섯 개의 챕터로 다룹니다. 이야기의 시작도 흥미진진해요. 어느 날, 주인공 은우의 반에서 500원 동전만 골라 없어진다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우연히 사건을 쫓던 은우는 도둑이 다름 아닌 ‘다른 시공간에서 온 좀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서 온 네 명의 좀비들은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은우와 함께 경제사를 배우기 시작하죠. 경제 수업은 미스터리한 존재인 ‘마스터 선생님’이 이끄는 5학년 0반 교실에서 펼쳐지는데, 이렇게 재미있게 경제를 배운다면 좋아하지 않을 아이가 없을 것 같아요.

좀비들의 이름과 특징을 통해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 유추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스토리가 진행되며 단서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모든 퀘스트를 완료한 뒤에는 에필로그에서 주인공들의 뒷이야기가 쿠키 영상처럼 펼쳐집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좀비 캐릭터와 미스터리한 이야기, 역사적 배경을 결합해 경제 개념과 흐름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이 책. 《좀비들의 유쾌한 세계 경제사 탐험》은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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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글댕글~ 갯벌 한 바퀴 - 갯벌 유형에 따라 만나는 생물 댕글댕글 9
심현보.정재흠.이학곤 지음 / 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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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 


어느 날, 아들이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엄마, 갯벌은 이름이 왜 갯벌이에요? 왜 개랑 벌이 들어가요?”

궁금한 마음에 함께 찾아보니, “조류나 강에 의해 진흙이 쌓인 습지”를 뜻하더라고요. 여기서 “개”는 조수가 드나드는 곳을, “벌”은 넓게 펼쳐진 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어원을 설명해 주자 아들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아, 나도 갯벌에 가고 싶다.”

그렇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구나.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마냥 신나기만 한 곳. 여름이면 갯벌은 아이들의 놀이 천국이 됩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갯벌만큼 다양한 생물이 모여 살아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는 곳도 없습니다. 마침 우리나라 갯벌을 다룬 신간이 나왔다기에 읽어보았습니다. 바로 지성사에서 출간한 《댕글댕글~ 갯벌 한 바퀴》입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감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요.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생물들을 서식지에 따라 흥미롭게 소개합니다. 특히 갯벌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어요. 염습지, 펄 갯벌, 혼성 갯벌, 바위 해안, 해안 사구, 모래 갯벌까지 모두 갯벌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각 환경마다 서식하는 생물과 생태계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생물도 흥미로웠지만, 저는 초반에 실린 갯벌의 전체적 소개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조차 쓸데없는 일은 없다.”

이 한 문장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닷속 생물에게는 산소가 공급되고, 따개비는 영양분을 얻고, 어린 생물들은 필요한 곳으로 흩어진다고 해요. 자연은 결코 무의미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갯벌 도감은 많지만,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한 국내 갯벌을 다룬 책은 《댕글댕글~ 갯벌 한 바퀴》가 거의 유일한 것 같아요. 이전에 출간된 《댕글댕글~ 왜일까요》도 유익했는데, 이번 책 역시 모르는 세계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친절한 안내서였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도 기대하게 되네요.

올해 여름, 아들과 함께 갯벌로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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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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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입니다 ***


도발적인 제목입니다. 《자살수첩》이라는 네 글자는 충격적이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게조차 충격적인 통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는 매년 다양한 정책을 내놓으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그리고 벼랑 끝에서 돌아설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요?

흔히 일본의 사회적 현상을 보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곤 합니다. 버블 경제의 몰락, 고령화 사회,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일본이 먼저 겪었던 문제들이 몇 년 혹은 십여 년 후 우리 앞에 펼쳐졌으니까요. 자살 문제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자살률은 2003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해왔다는 사실입니다. 2022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15.6명으로 여전히 OECD 평균(10.6명)을 크게 웃돌지만, 2003년 24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입니다. 일본은 일찍이 ‘자살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여 자살을 보다 구체적이고 본질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자살을 개인의 문제나 치부로 여겨 쉬쉬하던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자살수첩》은 수십 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재직하며 상담과 임상 치료를 병행해온 카스가 타케히코가 자살을 둘러싼 다양한 경험과 단상을 풀어낸 책입니다. 그는 ‘자살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사람을 자살로 이끄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때로는 놀랄 만큼 담담하게 자살을 이야기합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 읽어보았습니다.

저자가 재직하는 동안 약 20명의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유명인의 자살 사건, 소설과 영화 속 자살 장면까지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며 자살의 유형을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정작 저자는 이러한 분류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살의 유형이란 결국 남겨진 사람들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반자살을 하거나, 죽음으로 속죄하거나, 세상을 비관한 끝에 철학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자살의 템플릿’이 사실은 후에 덧붙여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저자는 오히려 이런 틀이 자살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어버릴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절망이나 상실, 괴로움이 자살로 향하는 문이라 믿는다.

그러나 비슷한 경험을 하고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자살 직전의 보편적인 감정은 ‘더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시야 협착(narrowing of mental perspective)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즉, 죽지 않으면 안 될 거대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고민이 쌓이면서 정신적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결국 유일한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살에는 ‘필연적인 이유’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가설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자살을 목격해온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허망합니다. 우리는 자살한 이들이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저자는 “그냥 어쩐지”라는 말로 자살의 경과를 설명합니다. 그 말이 주는 허무함은, 때로는 모욕적으로까지 느껴진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다리만 건너면’ 자살 유가족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자살은 우리와 멀지 않은 문제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 친구,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의문은 언제나 “왜?”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무례하고 배려 없이 쓸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수학 공식을 다루듯 무미건조하게 자살을 설명하는 저자의 언어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살은 아무리 자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더라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도 속에서 무엇을 깨닫고 배워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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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가의 상자 -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만화 영화 같은 일상
스즈키 마미코 지음, 전경아 옮김 / 니들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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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요즘 유난히 지브리 관련 신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브리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 아닐까요.

오늘은 지브리의 대표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의 딸, 스즈키 마미코의 에세이 <스즈키 가의 상자>를 소개하려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평범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스즈키 가족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아버지 스즈키 도시오가 이 책에 대해 “이딴 글을 쓰다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 라는 한 줄평을 남겼는지 절로 이해하게 될 거에요.

이번 에세이의 저자 스즈키 마미코는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외동딸로, 영화 <귀를 기울이면>의 주제곡 “컨트리 로드” 일본어 가사를 썼습니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그녀는 주인공과 같은 또래라는 이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작사 제안을 받았고,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몇 시간 만에 써낸 가사가 거의 그대로 영화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연주곡 “또 다시”가 콘서트용 노래로 재편곡되면서 그녀가 다시 한번 작사 작업을 맡게 되었고, 거장 히사이시 조가 그녀의 가사에 맞춰 곡을 수정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일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책에서 지브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개인적인 경험에 집중되어 있거든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유별나고 독특한 성향을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에 몰래 탈색제를 뿌려 자신의 머리카락도 갈색으로 만들려고 했던 일화, 지나치게 커진 가슴을 줄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감행했던 이야기, 같은 남학생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는 여학생을 오히려 흥미롭게 여겼던 일까지.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에 대한 폭로(?)도 거침없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괜찮은 걸까?’ 싶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적나라한 내용이 많아 읽는 내내 놀라웠어요.

지브리 팬이라면 아마도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이미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도 말이죠. 실제로 그는 지브리에 입사한 후 굵직한 작품들에 참여하며 크고 작은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일부 지브리 팬들은 그의 독단적인 행보가 지브리의 쇠퇴에 한몫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의 외동딸 사랑이 유난하기로 유명한 만큼, 스즈키 마미코의 활약 역시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었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상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의 솔직함과 자신감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제 가슴에 와닿았던 부분은 마지막 장 “어느새 엄마가 아니었던 나”였어요. 그전까지는 ‘다른 나라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 대목에서 갑자기 현실적으로 다가와 먹먹해졌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녀의 아들이 불과 1년 만에 엄마의 품에서 완전히 독립해버린 이야기였는데, 마침 제 아들도 같은 나이라 더욱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마지막으로 귀여운 시기”를 아쉬움 없이 보내기 위해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지브리의 팬이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회사의 프로듀서 가족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에는 참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 같아요. 이 책은 단순한 지브리 비하인드 스토리를 넘어, 한 가족의 특별하고도 솔직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씁쓸하며, 때로는 깊이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 별나고 톡톡 튀는 삶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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