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가의 상자 -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만화 영화 같은 일상
스즈키 마미코 지음, 전경아 옮김 / 니들북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요즘 유난히 지브리 관련 신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브리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 아닐까요.

오늘은 지브리의 대표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의 딸, 스즈키 마미코의 에세이 <스즈키 가의 상자>를 소개하려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평범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스즈키 가족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아버지 스즈키 도시오가 이 책에 대해 “이딴 글을 쓰다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 라는 한 줄평을 남겼는지 절로 이해하게 될 거에요.

이번 에세이의 저자 스즈키 마미코는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외동딸로, 영화 <귀를 기울이면>의 주제곡 “컨트리 로드” 일본어 가사를 썼습니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그녀는 주인공과 같은 또래라는 이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작사 제안을 받았고,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몇 시간 만에 써낸 가사가 거의 그대로 영화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연주곡 “또 다시”가 콘서트용 노래로 재편곡되면서 그녀가 다시 한번 작사 작업을 맡게 되었고, 거장 히사이시 조가 그녀의 가사에 맞춰 곡을 수정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일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책에서 지브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개인적인 경험에 집중되어 있거든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유별나고 독특한 성향을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에 몰래 탈색제를 뿌려 자신의 머리카락도 갈색으로 만들려고 했던 일화, 지나치게 커진 가슴을 줄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감행했던 이야기, 같은 남학생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는 여학생을 오히려 흥미롭게 여겼던 일까지.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에 대한 폭로(?)도 거침없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괜찮은 걸까?’ 싶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적나라한 내용이 많아 읽는 내내 놀라웠어요.

지브리 팬이라면 아마도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이미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도 말이죠. 실제로 그는 지브리에 입사한 후 굵직한 작품들에 참여하며 크고 작은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일부 지브리 팬들은 그의 독단적인 행보가 지브리의 쇠퇴에 한몫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의 외동딸 사랑이 유난하기로 유명한 만큼, 스즈키 마미코의 활약 역시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었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상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의 솔직함과 자신감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제 가슴에 와닿았던 부분은 마지막 장 “어느새 엄마가 아니었던 나”였어요. 그전까지는 ‘다른 나라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 대목에서 갑자기 현실적으로 다가와 먹먹해졌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녀의 아들이 불과 1년 만에 엄마의 품에서 완전히 독립해버린 이야기였는데, 마침 제 아들도 같은 나이라 더욱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마지막으로 귀여운 시기”를 아쉬움 없이 보내기 위해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지브리의 팬이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회사의 프로듀서 가족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에는 참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 같아요. 이 책은 단순한 지브리 비하인드 스토리를 넘어, 한 가족의 특별하고도 솔직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씁쓸하며, 때로는 깊이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 별나고 톡톡 튀는 삶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윌리엄
메이슨 코일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


메이슨 코일의 첫 번째 SF 호러 소설, 《윌리엄》.

궁금한 마음에 ‘메이슨 코일’을 검색해 보면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의 본명은 앤드류 파이퍼로, 이미 열 권이 넘는 장편소설을 발표한 베테랑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은 그가 새로운 필명으로 집필한 첫 번째이자, 결과적으로 마지막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의 성공을 채 누리지도 못한 채, 그는 지난 1월 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죠. 그의 SNS에는 아직도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추억들이 남아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래서 윌리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는 앤드류 파이퍼. 아니, 메이슨 코일.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로봇공학자 헨리는 ‘타고난 기업가’인 아내 릴리,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럭셔리한 대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앤틱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는 달리, 모든 것이 최신 기술로 움직이는 '스마트 홈'이에요. 겉보기에는 모든 걸 갖춘 완벽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려는 듯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로봇 ‘윌리엄’을 만드는 데 몰두합니다.

하지만 헨리는 심각한 광장공포증과 불안증을 앓고 있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선한 공기에 감염될 것 같다”는 이 증상은 소설 내내 지속되며, 그를 집 안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릴리의 옛 직장 동료 두 명이 저택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특히, 남성미와 자신감이 넘치는 동료 데이비스에게 위기감을 느낀 헨리는 충동적으로 ‘윌리엄’을 그들 앞에 내보이게 되고, 이 선택은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서막이 됩니다.

소설 중반까지도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저자의 의도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의 이야기에서는 보여지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큽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기에 독자는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떨어진 듯한 혼란을 느낍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전 공포영화처럼 ‘고대의 악의 축’ 혹은 ‘전설 속 악마’의 짓일까? 아니면 등장인물 중 누군가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는 걸까?

그렇게 흠뻑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아, 한숨에 읽어 내려가기 딱 좋은 소설입니다.

《윌리엄》은 총 50개의 짧은 챕터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궁금한 순간에 장이 끝나는 탓에,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엔딩도 매력적이고요.

책으로 읽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영상화된다면 상당히 수위 높은 장면들이 많아 조마조마할 듯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류의 소설을 읽어서인지 더욱 몰입하며 즐길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설정과 매력적인 플롯으로 몇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드는 《윌리엄》. 킬링 타임용 소설을 찾고 계신다면 추천드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 레인보우 시리즈 4
스티브 토메섹 지음, 존 디볼 그림, 김정한 옮김 / 놀이터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어느새 저의 지식 수준을 넘어서는 듯합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요. 제가 어렸을 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는 세대라서인가 관심있는 분야에선 순식간에 박학다식해지더라고요. 이대로 둘 수 없겠다 싶어 아이와 함께 기초지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는 물론 어른도 흥미롭게 읽으며 배울 수 있는 책들이 많아 다행이에요. 오늘은 개성있는 구성과 일러스트로 우리 주변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초등 고학년부터 두고두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놀이터 출판사의 네 번째 '레인보우 시리즈'인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물건(Stuff)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물질과 에너지를 다루는 첫 번째 파트와 지구를 이루고 있는 천연자원과 생태계를 다루는 두 번째 파트, 마지막으로는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는 '인간이 만들고 사용하는 것들'을 다룬 세 번째 파트에요.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다루는 범위가 넓어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각 개념과 파트가 짧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라 이 책의 내용만 가지고서는 충분히 알아내기 어렵거든요.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트에서는 서두에 저자가 말한 것처럼 '아,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 넘어가며 놀라운 과학의 세계를 가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파트는 우리 생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을 다루고 있어 특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현재 사용하는 물건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어떤 형태였는지도 설명해 자연스럽게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과 옷 등이 어떤 발전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위험과 위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폭넓은 지식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과 읽을 때는 사전이 필수입니다. 저도 한 번에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와 개념들이 꽤나 등장하거든요. 아이가 지금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읽으며 과학 상식을 쌓기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엄마인 제가 읽기에도 재미있고 말이에요. 놀이터 출판사의 다음 레인보우 시리즈도 기대가 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쥐 소소 선생 1 -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 책이 좋아 1단계
송미경 지음, 핸짱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아이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동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재미가 있어 읽고, 어른들은 그 안에 숨겨진 위로와 감동에 젖어드는 동화요. 송미경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 <생쥐 소소 선생>이 딱 그렇습니다. 이미 사전 서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출간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동화라 기대가 되었어요. 그 첫 번째 이야기,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매일매일이 재미있는 날은 아니거든요. 조금 지루한 날도 있어요.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 매일 있을 순 없다는 걸 아니까 기다릴 수 있어요."


'작가의 자전적 동화인가?' 싶은 <생쥐 소소 선생>의 주인공 소소 선생님은 동화 작가입니다. 한때는 베스트셀러였지만 어느새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로 혹평을 받는 동화 시리즈 <딩동 놀이공원>의 저자지요. 1권에서 5권까지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6권에서 10권은 관심은 커녕, 항의편지가 빗발치는 '실패작'이 되었다고 하네요. 연이은 실패에도 10권까지 출간한 것을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ㅎㅎ 


자신감을 상실한 그녀는 매너리즘과 번아웃에 빠져 월세조차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타르트 가게를 운영하는 봉봉 씨의 응원에도 소소 선생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던 바로 그 때 그녀는 매일 왔음에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졸졸 초등학교'의 편지를 읽습니다. 전교생이 12명인 작은 학교인 졸졸 초등학교에 그녀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망설이는 소소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봉봉씨 덕분에 어찌어찌 졸졸 초등학교로 향하게 되죠.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말입니다. 


"매일매일 지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내일을 기다려요. "


동화의 시작부터 소소 선생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 건, 그녀가 가진 문제를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어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노력과는 관계없이 어긋나고 무너져버리는 일들, 다시 도전할 에너지의 고갈, 무기력감과 자기 비하,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박까지. 아이들이 읽는 동화속 주인공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와닿는 상황입니다.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수용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 답보 상태가 계속될수록 소소 선생은 더욱 위축되어 갑니다. 급기야는 동화 작가를 그만두어야겠다 생각도 하죠. 


하지만 우연한 - 혹은 필연적인 - 기회에 졸졸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면서 소소 선생의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 내가 겪는 일, 내가 느끼는 감정에서 벗어나 순수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는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너무나도 강력해서, 조금만 긴장을 하면 바지에 실례를 하던 그녀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상황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질 만한 지혜 말이에요.


"엄청나게 기쁜 일도, 엄청나게 화나는 일도 이렇게 멀리서 보면 다 놀이 같답니다. "


소소 선생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또 다른 학교에서, 또 다른 아이들과 만나면서 소소 선생이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궁금해집니다.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가 동화 속 어딘가에 사는 생쥐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함께 울고 웃으면서 공감할 따뜻한 이야기일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아들도, 40대에 접어든 저도 행복하게 읽은 <생쥐 소소 선생 1 :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를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대학원 재학 시절, 미학이라는 과목은 저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미학은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이죠. 언어로 담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미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렵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궁금하고 끌리기도 해요. 어쩌면 그래서 <애도의 미학>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을 읽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도’와 ‘미학’ - 두 가지 모두 깊이 알고 싶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한 세계니까 말이죠.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 밀려옵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세계 - 어쩌면 일부러 알지 않으려 했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공존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표현을 선택한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에는 미술, 행위 예술, 연극,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동시대의 아픔을 알리며 위로와 치유를 제안하는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혹자는 예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본질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이 말하는 비극은 인과가 아니라 그 크기와 정도에 대한 체험과 대입”이라고요.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예술을 통해 어떤 사건을 접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그 사건을 함께 경험하는 ‘동참자’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실질적인 방안과 대처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사건(혹은 문제)이 결국 ‘내 이야기’, 아니 적어도 ‘나와 가까운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사람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당신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당신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화합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가 “노래소리로 비명을 숨기는 미혹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끔찍할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포장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폭력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약한 사람들이 괴롭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역사는 거의 언제나 강한 자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바뀌어 왔습니다. 당장 내 주변이 평화로워 보여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난무합니다. 계속 모르는 척 외면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인지 - 저자는 ‘애도’의 길을 선택하며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가 슬픔의 합창을 외치듯 우리 사회 역시 “비극이 발생하기 전부터 고통의 이른 징후를 응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당신’을 지키는 길이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며, 상호 의존적인 우리가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