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말 잘하는 비결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8
정복현 지음, 송진욱 그림 / 서유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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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 4학년이 된 아들은 아직도 말하는 게 서투릅니다.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끔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육하원칙에 맞춰서 중요한 것부터 이야기해 봐’라고 매 번 이야기해도 개미코딱지만큼씩 나아지는지라 아직까지도 아들과 대화하려면 많은 인내심과 추리력이 필요합니다. 이러다가 제가 코난이 되겠어요. 


<술술 말 잘하는 비결>.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이런 불순한(?) 의도가 다분했어요. 이 책을 읽고 제발 말 좀 잘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첫 장에서부터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나오는데다가 주인공인 은우가 자신과 동갑인 초등학교 4학년이라서 아들은 금새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답니다. 말주변이 없어 손해를 보고 사는 은우, 반대로 사람을 구워삶는 언변 덕분에 인생 참 쉽게 사는 우성이. 극과 극의 성향이지만 둘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적어도 은우는 그렇게 생각해요. 은우에게 연이어 예상못한 위기가 닥치게 되면서 우성이는 자신의 “술술 말 잘하는 비결”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하고, 은우가 이를 수락하면서 “진짜 위기”가 시작됩니다. 


책 소개만 읽었을 땐 조리있게 말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초반부터 말 잘하는 우성이가 탐탁찮게 그려져 좀 쎄(?)했어요. 우성이는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성이가 살아가는 곳은 도덕심이나 정직, 성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합리화가 가득한 거짓 세상’이었거든요. 우성이가 설파하는 이론도 꽤나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리는지라 ‘허, 이거 진짜 따라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고요. 


다행히 결국엔 은우도 우성이가 말한 방법이 눈가리고 아웅일뿐,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잠시 상황을 모면할 순 있고, 원하는 대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끝은 오히려 더 큰 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요. 진짜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게 이 책이 주는 교훈인데, 앞의 전개에 비해 결론이 좀 가쁘게 지나간 느낌이 들었답니다. 많은 어린이책들이 그렇지만 갈등 90%에 해결 10% 비중이다보니 갈등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들과 함께 내용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저 역시 ‘아들이 말 좀 잘했으면 좋겠다’ 하며 이 책을 집어든 사실이 부끄러워졌어요. 말주변을 키우려 하기 보다 서로 마음을 전하는 노력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쓰여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책이에요. 이맘때 아이들이 가장 관심있는 분야와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에다 그림도 정말 재미있게 들어가있어 생동감을 더합니다. 중간이 읽다 관두면 우성이의 궤변(?)에 멈출 수 있으니, 꼭 끝까지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네요.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참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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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들의 거침없는 수학 연애 - 이과남과 문과녀의 로맨스 방정식
라이이웨이 지음, NIN 그림, 김지혜 옮김 / 미디어숲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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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하게 수학에 관심이 생겨 이 책 저 책 둘러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지금쯤 뭐라도(?) 되어있을텐데 가뜩이나 안 돌아가는 머리로 알아가려니 답답할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래오래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수학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들을 찾아 읽는 중입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수포자들의 거침없는 수학 연애>도 이렇게 만나게 되었어요. 수학을 싫어하는 이과생이 수학을 사랑하는 문과생을 만나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수학의 매력을 찾아가는 이야기랍니다. 


총 19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특이하게도 첫 장은 만화로 되어있어요. 챕터의 한 장면을 뽑아 한 페이지의 만화로 그려냈는데, 사실 이게 앞뒤 상황도 없이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다 말풍선이 혼잡하게 되어있어 만화만 읽으면 "엥? 무슨 내용이지?" 싶습니다. 챕터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아하, 이 장면을 그린 거구나' 싶더라고요. 말풍선이 (말하는 캐릭터를 향한) 꼭지 없이 동그랗게만 되어있기 때문에 맥락상 '아, 이 캐릭터의 대사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말풍선은 처음 봐서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한 페이지의 만화가 끝나면 주인공 민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뛰어난 언어 점수로 이과에 진학했지만 사실 수학을 싫어하는 이과생인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수학을 사랑하는 문과 소녀 혜수를 만납니다. 그녀는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민우는 "수학 청년" 코스프레를 시작하죠. 두근두근한 그들의 썸이 이어지는 동안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든 수학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커피가 식는 속도를 통해 미분을 이해하고, 삼각함수로 옷 가게의 거울이 유난히 멋져보이는 원리를 설명하죠. 우리 일상 어디에나 수학은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납니다. 이런 수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았어요. 이런 매력 때문에 자꾸 수학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책의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거에요. 제가 수학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크겠지만 본문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좀처럼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두세 번 읽어봐야 무슨 이야기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때로는 주인공 민우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이 혼재되어있어 문맥 파악이 불편했습니다. 첫 페이지 만화에서 내용을 파악하느라 애썼는데 글을 읽으면서도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참을 읽다 보면 그리 난해한 내용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민우와 혜수의 썸 스토리와 흥미진진한 주변 인물들, 그들의 일상속에 기가 막히게 녹아있는 수학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는지라 조금만 더 읽기 편하고 친절하게 되어있었다면 정말 좋았겠다 싶었어요. "도대체 수학이 어디에 쓸 데가 있다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거든요. 무엇보다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여러 수학적 원리들을 스토리에 녹여 설명해주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부담없이 수학과 친해지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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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마음챙김 - 내면을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정하나 지음 / 심야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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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끔찍한 층간소음으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던 때였습니다. 아무리 호소해도 변하지 않는 윗집, 이사 말고는 더 이상 답이 없을 것 같은데 도저히 이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어요. 불면증에 우울감이 치솟고, 아주 작은 소리까지 지나치게 크게 들리는 청각과민증까지... 참 캄캄한 시간이었답니다. 그때 HSP와 함께 마음챙김 기법을 알게 되었고 매일 밤 잠들기 전 마음챙김 시간을 가지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챙김은 명상과 깊은 관련이 있기에 많은 분들이 종교적인 의식으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꼭 그렇지 않아요. 물론 종교적 명상에서도 마음챙김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마음챙김은 기본적으로 부산스러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나 자신의 감각을 되찾아가는 과정인지라 특정 종교와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 책은 아이와 함께 마음챙김을 일상에서 연습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소개합니다. 대부분 도구나 특별한 준비 없이 곧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씩 아이와 해보면 참 좋을 거에요. 워낙 가짓수가 많아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기도 좋습니다. 아이가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순간에 필요한 마음챙김 기법들이 담겨있기 때문에 차분히 읽다보면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부터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에게도 - 대화만 가능하다면 - 도움이 될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실습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번 읽어서는 마음챙김의 기술을 체화하기 어렵더라고요. 


2024년 상반기를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막상 큰 일들이 다 끝난 지금도 마음이 참 분주합니다. 마음이 부산스러워 집중 못하는 요즘을 돌이켜보니 저자의 말처럼 감각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걸 알게 되었어요. 배고픔이라던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던가 하는 기본적인 감각도 잊은 채 그저 불안한 감정만 느끼곤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지금-이 순간'에 집중하여 내면을 들여다 보고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희안한 건, 스스로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어지더라고요. 실제로 마음챙김은 해마의 크기를 키우고 근육처럼 단련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 3~5분의 시간이라도 마음챙김을 정기적으로 한 사람들의 안녕감이 현저히 증가했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아들과 함께 마음근육을 키우는 데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뇌도 마치 근육처럼 행동이나 생각에 따라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니 말이죠. 


"최고가 아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라", "노력하되 애쓰지 않는 삶을 살라"는 저자의 조언이 무엇보다 따뜻한 위로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섬세하고 예민한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어느 환경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과 안정감을 잃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요. 지금부터 엄마와 아이가 함께 협력하며 노력한다면,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베푼 친절이 가족, 친구, 사회로 뻗어나가는 아름다운 효과가 나타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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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움이란 무엇일까요? 철학하는 어린이 (상수리 What 시리즈) 12
오스카 브르니피에 지음, 프레드 베나글리아 그림, 김수영 옮김 / 상수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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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두 살 때 벙커침대를 선물받은 아들은 이내 혼자 방에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꿈과 같은 일이었죠. 24개월 된 아기가 자기 방에서 혼자 잔다니! 그렇게 "각방독립만세"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세 살이 되고 네 살이 되면서 자기 방이 무섭다며 엄마 아빠와 함께 자겠다고 조르기 시작했어요. 더 어렸을 때는 혼자 씩씩하게 잘 잤으면서 말이죠! 언제까지 그랬냐고요?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작년까지 쭈욱 그랬습니다. 4학년이 된 올해는 조금 나아져서 혼자 자고 있지만 언제 다시 안방 침대로 쳐들어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곤 해요.

나이가 들면 더 의연하고 용감해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무서운 게 많아지고 겁이 많아집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죠. 뇌가 발달하고 쌓이는 경험과 지식이 많을수록 이전엔 알지 못했던 위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른도 그런데, 아이에게 "하나도 안 무서워. 우리 집이잖아"라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무서운 감정에 대처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읽는 철학 시리즈"인 오스카 브르니피에의 <무서움이란 무엇일까요?>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오스카 브르니피에의 "철학하는 어린이" 시리즈는 다양한 상황과 주제에 따라 각기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자유롭고 다양한 답변을 나누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번 책의 주제는 무서움이에요.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이주향 교수님의 글처럼 프랑스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이렇게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참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무서움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문화와 경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인데, 우리는 이를 굉장히 단편적으로 다루곤 합니다. "그게 뭐가 무서워", "안 무서워해도 돼"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무서움에 압도당했을 땐 어찌할 줄 몰라하죠.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가 삶을 안전하게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누구도 기꺼이 태풍의 눈으로 휘말려들어가고 싶지 않을 거에요.

이 책에서는 무서움이란 어떤 감정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무서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총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각 질문에는 다양한 답변이 제시되어 있고 이 답변은 또 다른 질문들로 이어집니다. 특이한 건 이 과정에서 어떤 답변도 가치판단적인 기준을 거치지 않습니다. 어른의 눈으로 볼땐 말도 안되는 답변인데 저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그 답변을 질문으로 이어주죠. 아이의 엉뚱한 대답에도 이렇게 사고를 확장시켜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에요.

책의 내용을 쭉 따라가다보면 가르치는 내용 없이 질문만 이어서 했는데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아이와의 대화가 전환됩니다. 굳이 피하고 싶은 무서움이란 감정을 왜 들여다봐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하는지, 나아가 왜 무서움을 뛰어넘어 용기를 내야 하는지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이 책을 펼쳐놓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의 감정(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는 저의 감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답니다. 귀여운 삽화와 짧은 내용 때문에 어린아이를 위한 책 같지만 어른들도 한 번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철학 입문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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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의 행복한 천재 교육법 - 평범한 아이는 어떻게 행복한 천재로 바뀌었는가?
임성훈 지음 / 북아지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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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과정의 사고로 인해 발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천자 학자로 키워낸 칼 비테(Karl Witte). 목사였던 그는 친구 페스탈로치의 권고로 <칼 비테 교육법(1818)>을 출간하였고 그의 교육방침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녀 교육에 있어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교육법은 국내에서 이미 여러 육아 도서를 통해 소개된 바 있지만,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책이 있다 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인문학 강연가로 활동중인 임성훈 작가의 <칼 비테의 행복한 천재 교육법>입니다. 


이 책은 예비 엄마/아빠나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위해 쓰여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0세에서 5세까지의 조기 교육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요. 자녀를 양육하면서 천재로 키울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원했던 저자는 수많은 육아 도서를 읽었고 그중 칼 비테의 교육법에 가장 큰 감명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칼 비테의 교육법을 저자의 상황에 맞춰 취사선택하여 이론과 가설을 세우고, "이렇게 하면 아이를 행복한 천재로 키울 수 있다"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실제로 저자의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으며 감명을 받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와 정서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려운 고전을 읽으며 이치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결국 모든 천재의 해답이 인문 고전 독서와 아이의 천재성을 간파한 부모의 노력이라는 단순명쾌한 논리는 이 책을 읽는동안 왠지 모를 불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 저자의 아이들이 몇 살인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험담은 초등 저학년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얼마나 열성적으로 헌신했는지 서술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3D 프린터를 구입하여 교구를 직접 만들며, 아이의 시간을 존중하여 기다려주고 호흡을 맞춰주는 부모님이라니! 그렇지만 이 부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칼 비테의 아들은 발달 장애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천재로 자랐는데) 만약 아이가 천재로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부모 탓이다'로 귀결되는 것 같아 씁쓸하더라고요. 굳이 많은 부분을 인용하지 않아도 "내 아이의 성적이 나쁜 건 부모 탓이 아니지만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부모 탓이다(p.23)", "부모의 게으름이 아이를 불행하게 한다(p.35)", "아이에게 필요한 교구는 부모가 직접 만들어 보자(p.99)", "아이의 천재성을 일깨워주는 것은 부모의 의무다(p.158)", "조기교육은 반드시 부모가 주도해서 '제대로'해야 한다(p.172)" 정도의 헤드라인만 보아도 자녀양육에 대한 저자의 기본적인 스탠스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칼 비테의 교육법을 적용하다 보니 간혹 상충되는 내용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64페이지에서는 "(칼 비테는) 아들이 잘한 것에 대해 평소에 과하게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라고 했지만 193페이지에서 "칼 비테는 아이가 어렸을 때 작은 일이라도 잘 해내면,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고 합니다. 맥락에 따라 조금씩 말이 바뀌는 느낌이 들었어요. 칼 비테의 "천재교육 비법"으로 소개된 부분(p.178)은 좀 더 의아했는데 그 첫 번째 비법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철저하게 좋은 엄마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비법도 그렇지만 나머지 비법들(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태교에 각별히 신경 썼다 등)도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쓸 만한 이야기인가 싶은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칼 비테 교육법이 뇌 과학으로도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는데(p.349) 그 근거로 꼽은 것이 뇌의 가소성으로 호기심이 뇌의 발달을 자극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을 통해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칼 비테 교육법이 뇌 과학으로도 입증되었다고 하는 건 너무 비약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천재로 키우기 위해 최고의 환경과 최선의 방법을 제시하는 저자의 노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존경받아 마땅하죠.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 부모들에게 굴레와 멍에를 씌우고, 지나치게 단순화 된 하나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35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필요했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어쩌면 제가 - 이제는 조기교육에서 조금 멀어진 - 초등 중학년 학부모의 입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어린 자녀를 키우시는 부모님들께는 분명 와닿는 게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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