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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움이란 무엇일까요? ㅣ 철학하는 어린이 (상수리 What 시리즈) 12
오스카 브르니피에 지음, 프레드 베나글리아 그림, 김수영 옮김 / 상수리 / 2024년 6월
평점 :
만 두 살 때 벙커침대를 선물받은 아들은 이내 혼자 방에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꿈과 같은 일이었죠. 24개월 된 아기가 자기 방에서 혼자 잔다니! 그렇게 "각방독립만세"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세 살이 되고 네 살이 되면서 자기 방이 무섭다며 엄마 아빠와 함께 자겠다고 조르기 시작했어요. 더 어렸을 때는 혼자 씩씩하게 잘 잤으면서 말이죠! 언제까지 그랬냐고요?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작년까지 쭈욱 그랬습니다. 4학년이 된 올해는 조금 나아져서 혼자 자고 있지만 언제 다시 안방 침대로 쳐들어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곤 해요.
나이가 들면 더 의연하고 용감해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무서운 게 많아지고 겁이 많아집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죠. 뇌가 발달하고 쌓이는 경험과 지식이 많을수록 이전엔 알지 못했던 위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른도 그런데, 아이에게 "하나도 안 무서워. 우리 집이잖아"라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무서운 감정에 대처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읽는 철학 시리즈"인 오스카 브르니피에의 <무서움이란 무엇일까요?>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오스카 브르니피에의 "철학하는 어린이" 시리즈는 다양한 상황과 주제에 따라 각기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자유롭고 다양한 답변을 나누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번 책의 주제는 무서움이에요.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이주향 교수님의 글처럼 프랑스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이렇게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참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무서움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문화와 경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인데, 우리는 이를 굉장히 단편적으로 다루곤 합니다. "그게 뭐가 무서워", "안 무서워해도 돼"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무서움에 압도당했을 땐 어찌할 줄 몰라하죠.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가 삶을 안전하게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누구도 기꺼이 태풍의 눈으로 휘말려들어가고 싶지 않을 거에요.
이 책에서는 무서움이란 어떤 감정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무서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총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각 질문에는 다양한 답변이 제시되어 있고 이 답변은 또 다른 질문들로 이어집니다. 특이한 건 이 과정에서 어떤 답변도 가치판단적인 기준을 거치지 않습니다. 어른의 눈으로 볼땐 말도 안되는 답변인데 저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그 답변을 질문으로 이어주죠. 아이의 엉뚱한 대답에도 이렇게 사고를 확장시켜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에요.
책의 내용을 쭉 따라가다보면 가르치는 내용 없이 질문만 이어서 했는데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아이와의 대화가 전환됩니다. 굳이 피하고 싶은 무서움이란 감정을 왜 들여다봐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하는지, 나아가 왜 무서움을 뛰어넘어 용기를 내야 하는지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이 책을 펼쳐놓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의 감정(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는 저의 감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답니다. 귀여운 삽화와 짧은 내용 때문에 어린아이를 위한 책 같지만 어른들도 한 번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철학 입문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