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 내 안에 숨은 1%를 깨우는 마법의 힘
은지성 지음 / 황소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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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쉽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걔는 원래 그래… 걔는 이런 타입이야… 걔는 그럴거야… 그럴 때 마다 내색은 않지만 "어떻게 자신이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하며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고는 합니다. 평생 함께 해온(?) 나 자신의 속도 잘 모르겠는데, 하물며 남의 마음이나 성격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기계발서들을 열심히 읽다 보면 이 분류의 책들을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부류는 그야말로 "스파르타" – 달리는 말에 더 채찍질을 가하고, 불가능을 뛰어넘어 가능하게 만드는 지침서들이죠. 더 일찍 일어나고, 더 잠을 줄이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하는… 다행스럽게도(?) 자기계발서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점점 이런 부류의 독단적인 책들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의 경쟁시대에서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계발서들입니다. 일상의 긴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시금 자신을 통찰하게 하는 책들은 각박해져가는 현실을 반영해주는 듯 하나의 큰 유행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발간된 많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 세번째 부류는 이 두 극적인 부류를 이어주는 책들입니다. 마치 양 극이 표시된 스케일 (자) 처럼 어떤 책들은 첫번째 부류에, 다른 책들은 두번째 부류에 가깝곤 하죠.

상당히 극단적인 분류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아마도)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뻔한" 분류에도 불구하고 책 한 권 한 권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은 (좋은 책의 경우) 결론을 이끌어내는 관점이 독창적이며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론이 조금 길어졌는데, 오늘 소개할 책 역시 하나의 자기계발서입니다. 하지만 왠지 이 책을 단순히 "자기계발서"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깊이에 있어 적당하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 방법에 있어 참 많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죠.

 

 

 

 

 

 

마음이 뇌에게 말을 걸게 하라

 

아까 제가 "나 자신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안다고 생각할까" 라고 물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이 책에서는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소리 (아마도 우리의 "자아"겠죠) 에 귀를 기울이며, 그 자아를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직관"에서 말하고 있는 "자아"는 참 특별한 존재인데, 우리의 뇌가 알 수 없는 것 – 가령 어떠한 선택에 기로에 섰을 때라던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소명 등 – 을 알고 있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초월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의 직관을 발전시켜 마음과 진정한 소통을 나눌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해답을 스스로의 안에서 찾는다는 면에서 상당히 플라톤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직관"이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여러 설명을 시도합니다.

 

직관은 우리 안에서 탄생한 보물이다 (11 페이지)

직관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단련되는 것이다 (23 페이지)

직관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사고능력이며 짐승들도 가지고 있는 직감을 초월한 상태를 말한다 (41 페이지)

어느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마라. 자신을 의심하지 마라. 두려워 말고 행동해라. 돈보다는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라 (205 페이지)

 

또한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총 열 여섯 명의 "직관적인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익히 알려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에이브러헴 링컨 전 미국 대통령,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신용호 회장 (교보생명 창업자), 블로그 하나로 매년 수억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블로거 스콧 슈만,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까지 시대적으로도, 분야면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역경을 딛고 직관을 사용해 성공하게 되었는지 알게되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16인 16색의 진부하지 않고 독창적인 라이프 스토리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지금 어떤 상황이건,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어떤 취미나 꿈을 가지고 있건 분명히 자신의 삶에 직접 적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작가 은지성 씨가 위인들의 삶의 공통적인 (하지만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직관과 그들의 본받을 점을 소개하는 방법 또한 흡수하기 좋습니다. 지나치게 찬양하지도 않고 자신의 논리에 끼워맞추기 위해 단적인 면을 강조하지도 않기 때문에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받는) "가르침받는 느낌" 보다는 "당장 실행에 옮기고 싶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보처럼, 우직하게

 

스티브 잡스의 이 연설을 들었던 것이 저자에게 있어 이 책을 쓰게 된 큰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니 타인의 삶을 살며 낭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지십시오.

언제나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

 

살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참 사람에게는 수 없는 이유와 수 없는 핑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 없는 무덤 없다" 라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이유를 대려고 마음을 먹으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이유,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사업이 실패한 이유, 자신의 천직을 찾지 못한 이유, 결혼하지 못한 이유 등등… 스스로에게 또 주위 사람들에게 수 많은 이유와 핑계를 대던 우리들은 가끔씩 촌철살인 같은 몇 마디에 무안을 당하고는 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탓하지 마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81 페이지)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 여섯 명의 위인들은 모두 "실패할만한 요인"들을 서너 개 씩은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실패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조건은 풍족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루고자 하는 꿈이 터무니 없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모두가 우러러 볼 수 있을만한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일까요? 기회? 타이밍? 아니면 적절한 인맥?

 

저자는 그것이 "직관" 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직관은 단순한 감이나 느낌이 아닌, 오랜 시간동안 많은 노력을 거쳐 쌓인 하나의 능력,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넘어지고 무릎이 깨져도 다시 일어나 한 곳을 향해 뛰는 투지이며 (53 페이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눈 팔지 않는 우직함입니다 (63 페이지). 또한 자신의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기 위해 연습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77 페이지) 노력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이처럼 자칫하면 추상적이 되어버릴 수 있는 "직관"을 최대한 구체화시켰다는 것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 외에도 직관을 트레이닝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전진하는 사람.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기쁨으로 노력하는 사람 – 그것이 자신의 기쁨인 줄을 알기에 그 과정도 즐길 수 있는 사람.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주의적인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다시한번 투지를 태울 수 있는 즐거운 느낌이었기에,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과 함께 다시한번 마음 속 소리를 들으며 꿈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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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 - 인생을 결정 짓는 시간
신세용 지음 / 유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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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조기 유학이 글로벌 시대에서의 경쟁을 대비하는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겪는 하나의 평범한 과정이 되었지만, 제가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오스트리아로 갔던 98년 초,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보호자 없이 유학길에 오른 저는 참 희안한 취급을 받곤 했으니까요. 조기 유학이라는 것은 양날의 칼 같아서, 보다 넓은 세계를 몸소 체험하면서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는 반면, 무분별하게 좋지 않은 문화를 받아들이고 탈선할 수 있는 위험이기도 합니다. 텔레비젼이나 다른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소위 "성공한 유학 케이스"는 굉장히 소수에 불구하며 그 사람들의 그림자 뒤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유학"이라는 음지에서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성공적인 유학 생활이 무엇이냐를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누구든 "정말 훌륭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왔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신세용씨의 자서전입니다. 제목이 특이한데요 "13-21"은 저자의 인생에 있어 대단한 터닝포인트였던 열세 살에서 스물 한 살까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결정짓는 시간" - 벌써부터 많은 것을 약속하는 듯한 제목입니다!  

 

 

 

 

 

 

책과 함께 동봉되있던 UE (United Earth 의 약자) 홍보물입니다. 유이는 신세용씨가 직접 발간하는 잡지인데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구와 인류를 잇는 잡지]라고 합니다. 이처럼 전 지구적 이슈를 모두 다루는 잡지는 거의 유일무이할 것이라고 하네요.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는 만큼 유이의 활동 역시 다양합니다. 역시 신세용씨가 설립한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 은 전 세계적으로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 단체로서 자세한 활동 내역은 www.uhic.com 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 1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13세~17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1992년 "나는 한국인이야"라는 제목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고 하네요. 개정증보판이라는 설명 외에는 정확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만, 문체나 내용으로 보았을 때 당시 만 17세의 저자가 썼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이야" 외에도 신세용씨는 13-21이 나오기 전까지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했는데, 바로 "그래도 나는 태양을 향해 날 것이다 (1999년)"와 "꿈 그리고 나의 선택 (2004년)" 입니다. 13-21의 제 2부는 18세~21세의 이야기인데, 짐작해보건데 아마도 저자가 24세 때 출간했던 "그래도 나는 태양을 향해 날 것이다" 의 개정증보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2부에서 특히 이카루스 (단 한 순간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책 제목이 잘 맞아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원했던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학에서 겪었던 일 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한가지 의아했던 것은 어째서 2012년 출간된 13-21 의 저자가29세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인가 입니다. "나는 한국인이야 (13~17세)"를 만 17세에 집필하고 "그래도 나는 태양을 향해 날 것이다"를 만 24세 때 출간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개정증보판을 재발행 하면서 굳이 현재가 아닌 29세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이유가 궁금해지더군요. "미처 풀어내지 못한 풀스토리를 소개하기 위해" 출간된 개정증보판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검색 조사를 통해서 얻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유학을 떠나 갖은 고생을 하며 결국은 원하던 꿈을 이룬 신세용씨. 하지만 그의 삶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옥스포드 석사 졸업 후 창립한 금융회사는 좋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만 서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추구해왔던 "구호사업"으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가 어느 계기로 인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 결국 옥스포드라는 큰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쳐온 길은 옳고 그름, 빠르고 느림, 효과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은 것을 떠나 참 특별했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이겨나가려는 그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 스스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자 낙원은 도리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늪이자, 나를 의욕도 없고 힘도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지옥으로 변했다." (179 페이지)

 

환경과 개인의 발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던 부분입니다. 결국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조건인 것을, 아무리 최선의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내적 동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들어온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말합니다. 그 곳에서는 발전에만 집중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국에서는 이것이 나쁘고 저것이 좋지 않아 힘들다고…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하지도 않는답니다.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질적인 문제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환경이나 도시에 따라 해결되거나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특별히 좋은 환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봄이 오고 나니 이맘쯤 줄기차게 다녔던 재즈 공연들이 참 그리워지네요. 그 때만 해도 매일 저녁 세계적인 밴드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멋진 것인줄은 잘 몰랐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 환경이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요소로 각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는 것이 쟁점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 의문. 그것은 바로 영감을 이끌어 내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가 비롯되는 원천이다. 의문과 영감과 지혜는 결국에는 모두 같은 것이다. 의문이 있어야 답을 찾아가며 영감을 떠올리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으면서 생기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232 페이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눈에 확 띄었던 다른 문구입니다. 우리나라와 중유럽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대학 입시라는 크나큰 목표를 향해 교육받는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달리, 중유럽에서는 "꼬마 이단아"가 환영받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하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엉뚱한 질문에 요상한 관심분야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대로 용납해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희안한 것은, 학창 시절에는 유난히 성적도 좋지 않고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을 남발하던 학생이 졸업 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탁원한 재주로 오히려 우등생들보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에서도 언급했듯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노력하고 배워야 한다"는 단순명료하고도 아이러니한 원리죠. 신세용 씨의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보면 그 역시 학교에서 사랑하는 모범생이나 우등생은 아니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 쇠고집이었지만 결국 그의 그런 신념이 그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도록 도와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가 만약 처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을 만족시키는 모범생이 되려고 노력했더라면 과연 이런 파란만장하고도 흥미진진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무래도 UE가 전문 출판사가 아니다 보니 전반적인 제본 상태나 종이의 질감은 좋다 하더라도 책 안의 Editorial Design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한글/영문 폰트의 선택 (특히 영문 폰트)도 탁월하지 않았던 데다가 여백이 많은 위아래옆과는 대조적으로 줄간이 작아 가독성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본문의 정렬이 left 가 아닌 justify로 되어 있었다면 보기 훨씬 좋지 않았을까요?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작가가 어렸을 때 쓴 글이라 지금의 연륜을 반영시키지 못한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소 과장되고 너무 멋을 부린 듯한 문체가 처음에는 부담스럽더군요. 차츰 읽어나가면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서른 일곱의 연륜으로 다듬어 고쳤더라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고 객관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유학을 계획하거나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13-21은 큰 설레임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훌륭히 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유학을 가려고 하는 대다수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들이 구체적인 계획이나 각오보다는 막연히 외국으로 나가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다는 무책임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공부도 하던 사람이 하는 것이고, 연습도 하던 사람이 하는 것인데, 자신이 실패하는 이유를 환경으로 돌린다면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멀어지는 것이겠죠. 환경이 바뀐 후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참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던 학생은 오히려 부모님의 지도나 직접적인 관여가 덜한 외국에서 더 나태해지고 탈선하는 것을 곧잘 보게 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할당되는 자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어디에, 얼만큼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는 하지요. 아마도 신세용씨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청소년들은 도전을 받으며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그의 결단력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세용씨가 스스로 "인생을 결정짓는 시간"이라고 이름붙인 열세 살에서 스물 한 살의 시기가 이미 지나가버렸다 해도 낙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일, 해야하는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늦은 타이밍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구차한 변명이 전부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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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별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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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지나고 난 어느 날서부턴가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10대 후반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진부한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스럽지 못한 캐릭터 설정이라던가 억지스러운 상황에 빠져들지 못하게 되자 지루해졌던 것 같아요. 20대에 들어서면서는 거기에다가 허접한 회의주의자(?)가 되어버린 바람에 드라마나 예능과는 더더욱 멀어지게 되었죠. 이제 20대를 마무리 하는 지금, 예능은 가끔 보고 즐기기도 하지만 드라마와는 아직까지도 친하지 않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의 별"은 저에게 있어서 몇 십 년 만에 제대로 본 드라마 한 편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SBS 주말 드라마 "바보엄마"의 작가 최문정 씨의 신작소설인 "아빠와 별"은 "바보엄마"와 마찬가지로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 그리우면서도 상처를 줄 수 있는 예민한 관계,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이 주목할만한데요, "바보엄마"에서 삼 대에 걸친 모녀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면 "아빠의 별"에서는 결코 가까워지지 못했던 부녀관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등장인물과 복잡한 관계도가 그려지지만 소설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중심인물은 바로 군인 출신의 아버지와 프리마 발레리나, 수민입니다.

 

 

 

 

 

 

서로 먼 길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217-218 페이지)

 

작가가 소설에서 인용한 초등학생의 "아빠는 왜?"라는 시입니다 (이 시가 인용된 것인지 창작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읽은 순간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너무도 어린아이다운, 솔직한 발상이 씁쓸하기까지 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아직까지도 아이들은 아빠보다는 엄마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직장에 출퇴근 하는 아버지라면 서로 생활리듬이 같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같은 집에 살면서 마주치지 않을 때도 있고요.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뭔가 "무언의 끈끈한" 관계라고 하지만, 아버지와 딸의 경우는 조금 달라서 크면 클 수록 점점 아빠와 서먹서먹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오른 저 역시 그 때부터 아빠와는 자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방학 때 잠깐 한국에 들어올 때 같은 집에서 식사하고는 했지만, 매 년 올 수도 없었고 언제나 바쁘신 아빠의 스케쥴 덕분에, 함께 놀러간다거나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은 무리였으니까요. 그렇게 15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아빠와 저 사이에도 표현하기 어려운 벽이 생긴 것 같아요. 장애물 개념의 벽은 아니라 할지라도 소통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빠의 마음에는 아직도 열세 살 어리기만 한 딸 같은데 현실에서는 어느새 20대 후반에 접어든 주부가 되어있으니까요^^

 

 

수민과 그녀의 아버지 사이는 하지만 이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너무 닮은 두 사람이기에 오히려 더 어울리기 힘들었던 것일까요? 인생의 가장 큰 상처이자 그리움인 "어머니 (아내)" 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었던 둘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 견디어내기 위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사람은 한없이 따뜻해질 수도, 한없이 잔혹해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였던 수민은 아버지가 아들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몸이 아픈 엄마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오열합니다. 이미 두 딸이 있었음에도 불구, 셋째 아이를 가지게 했기 때문이죠. 어린 수민을 상대로 아버지 역시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쳐버리게 됩니다. 네 시험을 따라가느라고, 추운 데서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느라고, 그래서 아이가 죽은 것도 알지 못하고 그렇게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모두가 패자일 수 밖에 없는 부녀의 싸움은 외가 식구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남 부러울 것 없던 부잣집 딸이었던 수민의 어머니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한 탓에 자신의 가족과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하던 상태였기 때문이죠. 애지중지 키운 딸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비보를 접한 외가 친척과 수민 그리고 아버지의 격정으로 얼룩진 사랑하는 어머니의 장례식은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트라우마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분노를 쏟아낸 만큼 자신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은 자신만큼이나 무능력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을 알기에 결국은 서로에게 계속하여 상처만 주게 되는 관계로 전락해버린 것이죠.

 

 

언제나 뛰어났던 수민과는 달리 여동생 수지는 말 그대로 "평범한 주부"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다가 교사가 되어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평범한 회사원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죠.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도 그야말로 "평범"해서 좋을 때는 좋았다가도 한번 나빠지면 서로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곤 합니다. 수민과 수지가 대조를 이루는 또 한가지는 원치 않는 혼전임신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수민에 반해 남편과 자신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들어서지 않는 아이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으며 불임치료를 받는 수지의 모습입니다. 자매는 이렇듯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합니다. 자신의 문제가 워낙 크게 생각되다보니 자신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있는 상대방의 걱정은 우습게만 보이죠. 세상에서 가장 아픈 병이 "내가 걸린 병"이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내가 당한 일"이라고 했던가요.

그런 면에서 이 두 자매는 결국 화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입니다. 감옥보다 심한 끔찍한 환경에 지칠대로 지친 수민이 이혼을 결심하고 그 사실을 털어놓자 수지가 소리칩니다.

 

"언니, 그딴 게 이혼 사유가 된다고 생각해? 뭐? 자신이 점점 초라해진다고? 결혼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다른 여자들도 다 그렇게 살아.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이 바람피워도 모른 척 혼자 삭이고 넘어가. 주구장창 때려? 그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면서 살아. 시댁에서 구박한다고? 친정 식구랑도 지지고 볶고 싸우는데 남남 사이에 당연한거 아니야? […] 그런 여자들 다 이혼하면 이 세상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벌써 사라졌어.

그 여자들은 언니보다 못난 인간이라서, 그런 대접 받아도 싼 인간이라서 참고 사는 줄 알아?" (356-357 페이지)

 

수지의 말을 듣다 보면 수민의 고민 따위는 호강에 초를 친 소리처럼 들리기 마련입니다. 프리마돈나의 연봉 정도는 용돈으로 줄 만큼 부자인 시댁에 평생 돈 걱정 하지 않고 살 수 있고, 시댁 식구로부터, 친구들로부터 무시 당하기 일쑤지만 그거야 이쪽에서도 무시하면 그만이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수지의 발언은 얼핏 들으면 지혜롭고 논리적으로 들릴 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도 이렇게 고생하고 사니 언니 역시 그런 고생을 견디는 수 밖에는 없어!" 라는 어린아이 같은 보상심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더 커보이기 때문에 남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수지가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툭하면 자신의 가족까지 걸고 넘어지는 시어머니 때문입니다.

 

"수지가 은근슬쩍 수민이 이혼 얘기를 꺼냈다가 시어머니한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들었나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 가정교육까지 물고 늘어졌던 모양이야." (367 페이지)

 

동생은 자신의 걱정보다 언니의 걱정을 가볍게 여겨 함부로 논리를 논하고, 언니의 선택은 동생의 가정평화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리고 어떠한 선택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관계. 그것이 가족의 이름일까요.

 

 

 

 

아버지조차도 언제나 우러러볼 수 밖에 없던 자랑스러운 수민의 결혼, 그리고 이혼은 그들 모두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지만, 그고통은 "신이"라는 한 아이로 승화되는 듯 싶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흔히 "사랑의 열매"라고 부르곤 하죠. 하지만 반 쪽의 열매인 신이는 태어나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렵고 꺼리게 되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빠의 별"의 결말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과정들이 결국 먼 길을 돌아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다시 돌아오게 된 세 부녀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가까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극적인 계기를 통해서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관계.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유치해도, 어설퍼도, 억지스러워도 해피엔딩

 

수민은 드라마가 싫었다. 음모, 오해, 그 모든 것들로 시작되는 비극, 그게 싫었다. 음모를 파헤쳐 해결하고 오해를 깨닫고 화해하는 결말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스럽고 험난한 과정의 여운은 해피엔딩을 즐길 수 없게 만들었다.

칼을 맞았던 자리는 칼을 뽑아내면 더 많은 피를 토해낸다. 상처가 아물어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흉터는 그 자리에 남아 날카롭던 칼날의 흔적을 되새겨준다. 그래서 가끔은 억지스럽고 때로는 유치한 해피엔딩이 오히려 더 싫었다. 차라리 완벽하게 처절한 새드엔딩이 좋았다.

하지만 어쩌면 유치해도, 조금은 어설퍼도, 간혹 억지스러워도 아버지와는 해피엔딩이고 싶었다. (456-457 페이지)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 중 하나입니다.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해피엔딩보다는 차라리 감동이 가시지 않는 새드엔딩이 낫다고 저 역시 생각하고는 했거든요. 선택과목으로 듣던 "연출론" 수업에서도 교수님은 항상 "주인공들을 충분히 괴롭히고 그들을 곤경이나 비극에 처하도록 두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못한 것이다" 라고 강조하시곤 했죠. 다소 극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을 겪어가고 있다면, 더이상 앞으로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때는 정말 "유치하거나 어설퍼도" 간절하게 해피엔딩을 소망하게 되지 않을까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솔직한 수민의 고백이 참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빠의 별"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사실 수민과 수지 그리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새로운 시작이며 출발점이 되겠죠. 새로운 환경과 회복된 가족 그리고 새로운 구성원 신이와 함께.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커다란 굴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그들 각자의 인생이, 이제는 마치 흰 도화지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새로운 도약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드라마 같았던 독서 산책

 

초반에 한 번 언급했듯 "아빠의 별"을 읽은 후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최소한의 시나리오 작업만 거치고도 드라마로 만들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드라마에 최적화 된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격 드라마 소설" 이라고 할까요? 그런만큼 몰입도 쉽고 가독성도 좋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있었는데요.

가장 아쉬웠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극명하게 갈린 편과 선입견을 그대로 반향하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재벌들은 하나같이 서민들을 무시하고 사람 취급 하지 않으며 예술가들은 까다롭기 그지 없고,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미워하고 구박하는가 하면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어 양면이 존재하는 법인데 지나치게 희극화 된 상황과 캐릭터들에 의해 전형적인 흑백논리로 마감된 것은 아닌가 아쉬움이 남네요. 물론 안방극장에서 흑백논리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상황에 쉽게 몰입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요소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소설에서도 조금 더 많은 레이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마치 "스토리에 꼭 필요한 상황"만 모아 스토리를 더 극으로 치닫게 하는 극적 요소들을 강조한 것은 마치 "나 악역이야. 내가 악역이라고 말했나? 나 진짜 독한 악역이야" 라고 말하는 듯 오히려 그 신빙성을 약하게 하는 설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고,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아빠의 별"은 누구든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가족이라는 감성적 주제를 논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또한 드라마에 익숙하고 선호하는 독자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이후 꽤 오래간만에 읽었던 소설이라 하나의 쉼표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답니다. "바보엄마"의 성공처럼 "아빠의 별"도 안방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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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 청소년, 인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1
김경집 외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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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잘 알고 있는 우화입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조금은 특이한 제목 –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 을 읽는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곧장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약삭빠르지만 자만심에 빠졌던 토끼와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거북이의 이야기는 줄곧 "게으름 피우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긴 세월동안 수 많이 이 우화를 들어왔던 당신, 거북이와 토끼 사이에 어떠한 윤리적 문제가 존재했다고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열린 "청소년 인문학 강연"의 내용을 토대로 출간된 것입니다. 저도 생소한 도서관이었는데 이곳은 역삼1동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소속이라고 하네요. 원래는 학위논문관으로 운영되었다가 2006년 6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 새롭게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청소년 인문학"을 위한 강연이 열렸다는 것인데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홈페이지(http://www.nlcy.go.kr) 를 방문해보면 다른 여러가지 이벤트와 강연과 함께 인문학 강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자녀가 있으신 부모님들께서는 꼭 한번 참석을 권유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덟 개의 주제, 여덟 개의 구성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이 책의 구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총 여덟 가지의 주제 (윤리, 문학, 서양철학, 과학, 역사, 동양철학, 롤모델 그리고 음악) 를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직접 듣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역시 여덟 분입니다. 한 분 한 분이 강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글을 쓰신 것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체와 진행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실제로 강연을 듣고 있는 듯 말하는 듯한 문체와 학생들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를 함께 수록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의 형식을 토대로 하나의 레포트처럼 정리하신 분도 있습니다. 공통적인 것이라면 이 책이 청소년을 위한 것이니만큼 읽기 쉽고 지루하지 않은 문체로 어려운 테마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죠.

 

 

각 챕터는 제목과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됩니다. 읽을 내용도 중요하지만 때때로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고는 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강사에 대한 소개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떠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일 때에 그가 그 의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살펴보는데는 살아온 발자국을 살펴보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챕터의 첫 장에 등장하는 쪽지. 강연의 주제와 내용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의 흥미로운 이슈를 제기한 다음 앞으로 있을 강연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무작정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가지고 읽을 수 있게 되죠. 챕터를 공부하기 전 어떠한 내용이 기다리고 있는지 준비하고 시작 할 수 있습니다.

 

 

읽는 중간 중간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사진과 그림들이 실려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다시한번 시각화 하여 반복하는 것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사진과 그림들은 강연 때 파워포인트로 제공되었던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보는데요, 강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우리들 역시 책을 통해 강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답니다.

 

 

처음에 언급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대해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강사의 질문에 기발하게 대답하는 학생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챕터 역시 바로 이 "윤리" 챕터인데요 (책의 이름도 이 강연의 제목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했던 문제들을 하나 하나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사고하고 그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연이 인상깊었답니다. 결국 내용 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흔히 부모님과 다른 선생님들에게 충분히 들었던 "잔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상투적이지 않고 효과적인 방법이 강연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분야가 여덟 개인 만큼 새로운 용어들도 많이 배우게 되겠죠. 중요한 용어나 인명은 따로 박스 안에 설명해주고 있어 큰 무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연에서 작곡가 리스트와 시벨리우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습니다.

 

 

교과서나 인터넷 등에서 이미 익숙해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하지만 이 그림의 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제스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고령의 플라톤과 젊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당을 들어오면서 취한 제스처와 그들이 들고 있는 책들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이 명화를 좀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즐겁게 입문하는 학문 - 정말 어렵지 않아요!

 

학사 학위를 세 개, 석사 학위를 한 개 받으면서까지도 철학에 입문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막연히 머릿 속에 "철학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고, 음악을 하는 나로서는 아마도 필요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생각은 확실히 틀린 것이었는데 첫째,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철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둘째, 철학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생각을 바꾸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친절한 철학 입문서 들입니다. 철학에 입문하기로 한 시점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권하는 철학책 20권을 목표로 독서를 시작했죠. 물론 지금도 "철학에 대해서 무언가를 안다"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되게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입문서들은 적어도 철학에 관한 궁금증과 큰 그림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읽었던 책은 50%도 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에는 55%, 60%... 이렇게 점점 성장해나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또한 좋은 책은 어떠한 분야에 관해서 궁금하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 때문에 앞으로의 학업 과정에도 대단한 밑거름이 됩니다. "응? 이런 것이 있었군. 조금 더 알고 싶은데?" 라는 궁금증이 연구하는 자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는 앞으로의 주인공들에게 보다 빨리 보다 가깝게 이러한 궁금증을 던질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특정 학문에 대한 위압감이 없었다면 보다 폭넓게 배우고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대학입시라는 규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획일화 되어있는 주입식 교육은 결국 비슷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마스터키 학생들을 만들 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외우고 공부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지식을 가지려면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저는 그 연구의 시작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학문이죠. 논술을 위해 문학작품은 읽어야 하겠지만,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고전이나 철학 혹은 클래식 콘서트 등은 시험을 준비하거나 공부하는데 있어 번거로우니까요. 하지만 남보다 뛰어나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문학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외우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누구나 푸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궁금해하고 사고하고 그래서 새로운 발상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누구나 바라는 "특별함" 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를 수 있는데 자기 틀에서 판단하는 건 독단이 아닐까요? 라고 저자는 묻습니다 (36 페이지). 그리고 이런 독단들이 모이게 되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되고 규범이 되며, 이것을 강요하게 될 때에 텍스트 추종의 악습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18페이지).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선하다는 뜻이 아닌, 모든 사람이 노력으로 선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263 페이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부동심과 호연지기. 즉 스스로 반성하여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270 페이지) 이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 답답한 일도, 끔찍한 일도 많습니다. 또한 실력을 쌓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불공정한 일도 많습니다. 이런 세상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역사"장의 저자 김육훈 선생님은 역사를 통해 의미를 되짚어보라고 충고하고, "과학"장의 저자 전중환 교수님은 자기 전공분야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인문학과 사회/자연학과를 어우르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동양철학"의 김선희 선생님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는 오래된 사상들과 고전을 통해 인문을 넓히는 것을 권유하죠. "서양철학"에 대해 강연하신 박승찬 교수님은 배우는 것을 외우는 것은 발전이 없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서로 동떨어져있는 것 같은 학문들을 통해 한 가지의 질문과 논제에 대한 여러가지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애매하고 오래걸릴 수 있지만, 그렇게 얻은 것은 남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수확한 나만의 것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죠. "하나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윤리" 장의 김경집 교수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큼 간단한 주장이지만, 그만큼 실생활에서는 잊혀져버리는 안타까운 일이죠.

 

 

청소년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훌륭한 강의들을 단 한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니 참 즐거운 일이었어요. 때로는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때로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에 궁금해지기도, 때로는 조금 더 디테일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주위의 청소년들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360페이지의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방대한 분량이라도 쉽고 이해하기 좋은 문체와 여러 사진과 그림을 참고하다 보면 어느 새 다 읽어버리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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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 지음, 박규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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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어느 날, 독일 방송 RTL에서 방영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고 결국 최후의 한 명이 계약과 상금을 타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이런 식의 포맷이 흔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방송의 성공 이후 셀 수 없는 수 많은 아류들과 비슷한 성격의 포맷들이 홍수처럼 밀려나오는 바람에 요즘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덮어놓고 보지 않기도 한답니다.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찾으면 찾을 수록 뛰어난 사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실력은 물론이고 외모, 경제적인 조건과 인생스토리까지 갖춘 사람들이 즐비하다 보니, 이제는 왠만큼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텔레비젼에 나와도 별로 감흥이 없어지게 되었지요. 예전에 가수 콘테스트에서 여러 출연자들을 보면서 감탄했다면, 이제는 (이미 후작업을 거쳐 "최적화"된)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저 심사위원으로 빙의해 이런 저런 비판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러한 "수요의 급증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하나의 극적인 예에 속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에서도 그렇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정보화 시대"라는 말은 이미 진부해져버렸고, 이제는 유용한 정보를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그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이 패배입니다. 인터넷의 보급과 SNS 돌풍으로 정보는 더이상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아니 (경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져야만 하는 그런 것이 되어 버린 것이죠.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완벽주의의 함정" 의 테마와 완벽하게 맞아들어가는 시대적 현상입니다.

 

독일어 원제는 Der Perfektionierer, 즉 "완벽주의자"라는 뜻인데요, 원본의 부제는 "Warum der Optimierungswahn uns schadet – und wer wirklich davon profitiert (최적화의 광기가 우리에게 해로운 이유 –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입니다. 다소 두꺼워보이는 320 페이지의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이 부제 안에 완벽하게 들어가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말 그대로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자"가 어떠한 사람들인지 먼저 알아야겠죠.

 

 

완벽주의자 – 그들을 낱낱이 파헤치다

 

"당신은 완벽주의자입니까?"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에이, 저같은 사람이 무슨…", "아니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라는 대답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의 표지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어떤 일에 실패할 바엔 차라리 도전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고 싶다" 따위의 설명을 듣게 되면 "어머, 저건 완전 내 이야기잖아?"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끝없는 자유"라는 사탕을 선물하면서 덤으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개발하려는 자유의지까지 얹어주었는데, 이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라 오히려 말을 꺼내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입니다. 각자의 어린시절에 따라 그 강약의 정도가 있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학교에서 습득하는 여러가지 지식들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정한 채점방식으로 숫자로 평가됩니다. 이것은 비단 지식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데, 심지어는 우리가 움직이는 것 (체육), 감성을 표현하는 것 (음악, 미술 등) 그리고 행동하는 것 (생활) 까지 모두 평가대상입니다. 그 룰은 참으로 간단한데 점수를 많이 받을 수록 우등생에 가까워지고,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하면 열등생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런 채점방식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반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인기가 있고 싶어서" 등 다양하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완벽주의자"는 이렇듯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애쓰고 날마나 나아지기를 원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주의"라는 말은 이 단어 안에서 그것의 의미만큼이나 반어법적인 용도로 쓰이는데, 이 완벽주의자들은 말 그래도 완벽한 사람들이 아닌 "완벽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남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도록 스펙을 쌓고 차별화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정작 실수하는 것이 드물어 외국인 앞에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기보다는 남들이 모두 한다고 해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는가 하면, 패배를 극도로 두려워하여 찾아온 기회마져 놓쳐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많은 "완벽주의자"들이 발견되는 곳은 엘리트 학교입니다. 아무리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획일화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학교에서는 학생이 학교가 선택하고 정한 규율과 잣대에 평가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엘리트 학생들은 과연 진짜로 재능있고 혁신적인 학생들일까요? 아니면 학교가 그들에게 명령하는 조건을 훌륭히 이수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학교에서는 칭찬받던 우등생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는데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공통적으로, 이들의 목표의식이 지금까지 타자 (여기서는 학교, 선생님 혹은 부모님) 에 의해 정해져온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착실히 공부하고 좋은 시험성적을 거두며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지도교사의 조언처럼 공부해온 그들은 사회에 나오자 마자 자신들을 인도해온 "가이드라인"의 부재에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다양한 "완벽주의자"들의 맹점에 대해서 논하며 그 실태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완벽주의에게 던지는 질문

 

이 책의 내용이 참 방대하기 때문에 거론된 논제들에 대해서 일일히 논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서평을 읽은 뒤에 누구든지 꼭 한번정도는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에 너무 많이 스포일링(?) 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요^^ 이 리뷰에서는 책이 말하고 있는 논제들을 종합하여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금 빌 게이츠나 베컴 같은 사람들처럼 부유해지는 것은, 예전에 평민이 루이 14세처럼 부자가 될 수 없었던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다만 우습게도 우리는 그것을 더 쉽게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46 페이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을 저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실현할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예전에는 귀족과 평민으로 나뉘어 평민은 감히 귀족이 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자신의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가업을 잇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자신의 노력한 것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상 모순적이며 바로 그 모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한 패배자"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절망하고는 합니다. 부여된 자유가 커지면 커질 수록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마저 커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주위에 빌 게이츠나 마돈나 처럼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죄의식은 몇 배로 커집니다. 저 사람은 해냈는데 나는 이러고 있다니…라며 자기 자신과 남을 끝없이 비교하면서 상대처럼 자신을 개발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죠. 사실상 이러한 자책감은 자신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최적화의 방식은 결코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근 SNS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면서 요즘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혹은 미투데이나 요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문자 어플이었던 카카오톡도 최근 "카카오스토리"를 런칭하면서 이러한 SNS 추세를 따르고 있습니다. SNS는 플랫폼을 초월하여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광고하고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엄격한 경쟁사회에서의 우리들에게는 특정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페이스북 우울증" 이 좋은 예인데요, 예전에는 몇몇 지인들만 알고 있었던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도 공개하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원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빚어내는 창조자 (56 페이지)"가 됩니다. 누구든지 최적화된 자신의 모습만을 보여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그래서인가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애인과의 데이트는 즐거워보이기만 하고 저녁식사는 항상 레스토랑을 방불케 하며 가족나들이는 잡지의 화보처럼 아름답기 마련이죠.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아무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넋두리도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는 고뇌에 찬 사색처럼 들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의 모습은 자신의 초라함과 비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째서 남들은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게만 사는데 나는 이 모양이지"라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자긍심이 부족한 10대와 20대에게 이 우울증은 생각보다 심각한 장애로 다가오게 된다고 합니다 [기사 보기].

 

그렇습니다. 우리는 학교 성적을 위해 과외를 받으며 족집게 강사를 따라다닙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보다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여러 자격증을 따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며 좋은 가산점을 줄 봉사활동에도 참여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스펙을 쌓는 과정은 실로 눈물겹고 힘들기만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내용도 없고 쓸모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다 비슷한 목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66 페이지) 열심히 노력한 공든 탑은 수 많은 탑들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경쟁의 우위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혼자 갖고 있을 때 성립하는 것입니다 (96 페이지). 이렇게 간단한 원리를 잊어버린 채 너도 나도 획일화된 방법으로 최적화를 시도하다 보니 결국은 뛰어난 것이 오히려 평범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무시한 채…

 

 

누구를 위한 최적화인가?

 

최적화의 광기는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가 하면 모래를 가지고 노는 대신 영재교육을 받게 합니다. 사실 이렇게 지나친 교육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은 자신의 욕구보다도 "저 집 아이는 하는데 우리 아이가 안하면 혹시라도 뒤쳐질까봐" 라는 걱정이 더 클 것입니다. 특히 "허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강박적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마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정작 본인들은 원치도 않는 호화결혼식을 감수하는 것처럼 "뒤쳐지고 싶지 않다"라는 욕구는 우리를 최적화의 늪으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최적화는 과연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가 여러 자격증을 따고 원만한 회사생활을 위해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으며 아름다운 몸매를 관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헬스클럽 PT에게 코칭받는 이 모든 것이, 정작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한 욕망에 의한 것이라면 그 끝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정말 간단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하기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고, 가지기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제한 안에 남들에게 모든 면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고 있는 모습 뒤에는 진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터무니 없는 가격들로 학부모를 유혹하는 엘리트 유치원과 알아서 모든 스펙을 쌓아오는 직원을 부릴 수 있는 기업들 그리고 최적화의 유혹에 빠진 우리들을 일상에서 올바르게 인도해줄 코치들입니다. 이들이 이용하는 최적화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충분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
  • 모든 것에는 충족되어야 할 이상이 있다

 

바로 완벽주의의 지상명령 (247페이지) 이죠. 공식은 간단합니다. 주어진 가능성이 많을 수록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최적화시킬 수 있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됩니다. 최적화는 이제 개인에게 그의 우수성을 직접 증명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에 (260 페이지) 이런 차별화와 개인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로서 쓴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남들이 다 가진 스펙"을 나도 가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죠.

 

 

 

 

완벽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저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제 "평균"이라는 말은 사실 욕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무도 "평균"이 되고 싶어하지 않지만, 모두들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하는 이상 이 모순은 극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10페이지). 앞서 말한 오디션 참가자들은 이제는 같은 도시,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설사 그 오디션에서 최고로 잘한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다른 오디션 혹은 외국의 다른 오디션 참가자들과 비교당하게 되는 것이죠. 예전에 동네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아무리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라도 유투브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가수들의 노래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세계의 탈경계화로 인해 경쟁의 범위가 엄청나게 커져버린 셈이죠.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무작정 자신을 최적화 시키려는 노력은 고통만 수반할 뿐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이 너무도 밋밋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기대했다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이롭다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최적화는 오히려 우리의 장점을 무시하고 도달할 수 없는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대체될 수 있는 획일화된"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진정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서 가장 효과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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