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1 - 인생을 결정 짓는 시간
신세용 지음 / 유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에서야 조기 유학이 글로벌 시대에서의 경쟁을 대비하는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겪는 하나의 평범한 과정이 되었지만, 제가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오스트리아로 갔던 98년 초,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보호자 없이 유학길에 오른 저는 참 희안한 취급을 받곤 했으니까요. 조기 유학이라는 것은 양날의 칼 같아서, 보다 넓은 세계를 몸소 체험하면서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는 반면, 무분별하게 좋지 않은 문화를 받아들이고 탈선할 수 있는 위험이기도 합니다. 텔레비젼이나 다른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소위 "성공한 유학 케이스"는 굉장히 소수에 불구하며 그 사람들의 그림자 뒤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유학"이라는 음지에서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성공적인 유학 생활이 무엇이냐를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누구든 "정말 훌륭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왔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신세용씨의 자서전입니다. 제목이 특이한데요 "13-21"은 저자의 인생에 있어 대단한 터닝포인트였던 열세 살에서 스물 한 살까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결정짓는 시간" - 벌써부터 많은 것을 약속하는 듯한 제목입니다!  

 

 

 

 

 

 

책과 함께 동봉되있던 UE (United Earth 의 약자) 홍보물입니다. 유이는 신세용씨가 직접 발간하는 잡지인데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구와 인류를 잇는 잡지]라고 합니다. 이처럼 전 지구적 이슈를 모두 다루는 잡지는 거의 유일무이할 것이라고 하네요.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는 만큼 유이의 활동 역시 다양합니다. 역시 신세용씨가 설립한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 은 전 세계적으로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 단체로서 자세한 활동 내역은 www.uhic.com 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 1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13세~17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1992년 "나는 한국인이야"라는 제목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고 하네요. 개정증보판이라는 설명 외에는 정확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만, 문체나 내용으로 보았을 때 당시 만 17세의 저자가 썼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이야" 외에도 신세용씨는 13-21이 나오기 전까지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했는데, 바로 "그래도 나는 태양을 향해 날 것이다 (1999년)"와 "꿈 그리고 나의 선택 (2004년)" 입니다. 13-21의 제 2부는 18세~21세의 이야기인데, 짐작해보건데 아마도 저자가 24세 때 출간했던 "그래도 나는 태양을 향해 날 것이다" 의 개정증보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2부에서 특히 이카루스 (단 한 순간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책 제목이 잘 맞아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원했던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학에서 겪었던 일 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한가지 의아했던 것은 어째서 2012년 출간된 13-21 의 저자가29세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인가 입니다. "나는 한국인이야 (13~17세)"를 만 17세에 집필하고 "그래도 나는 태양을 향해 날 것이다"를 만 24세 때 출간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개정증보판을 재발행 하면서 굳이 현재가 아닌 29세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이유가 궁금해지더군요. "미처 풀어내지 못한 풀스토리를 소개하기 위해" 출간된 개정증보판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검색 조사를 통해서 얻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유학을 떠나 갖은 고생을 하며 결국은 원하던 꿈을 이룬 신세용씨. 하지만 그의 삶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옥스포드 석사 졸업 후 창립한 금융회사는 좋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만 서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추구해왔던 "구호사업"으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가 어느 계기로 인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 결국 옥스포드라는 큰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쳐온 길은 옳고 그름, 빠르고 느림, 효과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은 것을 떠나 참 특별했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이겨나가려는 그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 스스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자 낙원은 도리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늪이자, 나를 의욕도 없고 힘도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지옥으로 변했다." (179 페이지)

 

환경과 개인의 발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던 부분입니다. 결국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조건인 것을, 아무리 최선의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내적 동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들어온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말합니다. 그 곳에서는 발전에만 집중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국에서는 이것이 나쁘고 저것이 좋지 않아 힘들다고…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하지도 않는답니다.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질적인 문제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환경이나 도시에 따라 해결되거나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특별히 좋은 환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봄이 오고 나니 이맘쯤 줄기차게 다녔던 재즈 공연들이 참 그리워지네요. 그 때만 해도 매일 저녁 세계적인 밴드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멋진 것인줄은 잘 몰랐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 환경이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요소로 각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는 것이 쟁점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 의문. 그것은 바로 영감을 이끌어 내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가 비롯되는 원천이다. 의문과 영감과 지혜는 결국에는 모두 같은 것이다. 의문이 있어야 답을 찾아가며 영감을 떠올리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으면서 생기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232 페이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눈에 확 띄었던 다른 문구입니다. 우리나라와 중유럽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대학 입시라는 크나큰 목표를 향해 교육받는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달리, 중유럽에서는 "꼬마 이단아"가 환영받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하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엉뚱한 질문에 요상한 관심분야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대로 용납해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희안한 것은, 학창 시절에는 유난히 성적도 좋지 않고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을 남발하던 학생이 졸업 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탁원한 재주로 오히려 우등생들보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에서도 언급했듯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노력하고 배워야 한다"는 단순명료하고도 아이러니한 원리죠. 신세용 씨의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보면 그 역시 학교에서 사랑하는 모범생이나 우등생은 아니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 쇠고집이었지만 결국 그의 그런 신념이 그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도록 도와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가 만약 처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을 만족시키는 모범생이 되려고 노력했더라면 과연 이런 파란만장하고도 흥미진진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무래도 UE가 전문 출판사가 아니다 보니 전반적인 제본 상태나 종이의 질감은 좋다 하더라도 책 안의 Editorial Design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한글/영문 폰트의 선택 (특히 영문 폰트)도 탁월하지 않았던 데다가 여백이 많은 위아래옆과는 대조적으로 줄간이 작아 가독성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본문의 정렬이 left 가 아닌 justify로 되어 있었다면 보기 훨씬 좋지 않았을까요?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작가가 어렸을 때 쓴 글이라 지금의 연륜을 반영시키지 못한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소 과장되고 너무 멋을 부린 듯한 문체가 처음에는 부담스럽더군요. 차츰 읽어나가면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서른 일곱의 연륜으로 다듬어 고쳤더라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고 객관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유학을 계획하거나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13-21은 큰 설레임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훌륭히 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유학을 가려고 하는 대다수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들이 구체적인 계획이나 각오보다는 막연히 외국으로 나가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다는 무책임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공부도 하던 사람이 하는 것이고, 연습도 하던 사람이 하는 것인데, 자신이 실패하는 이유를 환경으로 돌린다면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멀어지는 것이겠죠. 환경이 바뀐 후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참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던 학생은 오히려 부모님의 지도나 직접적인 관여가 덜한 외국에서 더 나태해지고 탈선하는 것을 곧잘 보게 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할당되는 자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어디에, 얼만큼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는 하지요. 아마도 신세용씨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청소년들은 도전을 받으며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그의 결단력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세용씨가 스스로 "인생을 결정짓는 시간"이라고 이름붙인 열세 살에서 스물 한 살의 시기가 이미 지나가버렸다 해도 낙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일, 해야하는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늦은 타이밍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구차한 변명이 전부일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