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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 청소년, 인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ㅣ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1
김경집 외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평점 :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잘 알고 있는 우화입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조금은 특이한 제목 –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 을 읽는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곧장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약삭빠르지만 자만심에 빠졌던 토끼와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거북이의 이야기는 줄곧 "게으름 피우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긴 세월동안 수 많이 이 우화를 들어왔던 당신, 거북이와 토끼 사이에 어떠한 윤리적 문제가 존재했다고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열린 "청소년 인문학 강연"의 내용을 토대로 출간된 것입니다. 저도 생소한 도서관이었는데 이곳은 역삼1동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소속이라고 하네요. 원래는 학위논문관으로 운영되었다가 2006년 6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 새롭게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청소년 인문학"을 위한 강연이 열렸다는 것인데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홈페이지(http://www.nlcy.go.kr) 를 방문해보면 다른 여러가지 이벤트와 강연과 함께 인문학 강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자녀가 있으신 부모님들께서는 꼭 한번 참석을 권유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덟 개의 주제, 여덟 개의 구성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이 책의 구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총 여덟 가지의 주제 (윤리, 문학, 서양철학, 과학, 역사, 동양철학, 롤모델 그리고 음악) 를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직접 듣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역시 여덟 분입니다. 한 분 한 분이 강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글을 쓰신 것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체와 진행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실제로 강연을 듣고 있는 듯 말하는 듯한 문체와 학생들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를 함께 수록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의 형식을 토대로 하나의 레포트처럼 정리하신 분도 있습니다. 공통적인 것이라면 이 책이 청소년을 위한 것이니만큼 읽기 쉽고 지루하지 않은 문체로 어려운 테마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죠.
각 챕터는 제목과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됩니다. 읽을 내용도 중요하지만 때때로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고는 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강사에 대한 소개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떠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일 때에 그가 그 의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살펴보는데는 살아온 발자국을 살펴보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챕터의 첫 장에 등장하는 쪽지. 강연의 주제와 내용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의 흥미로운 이슈를 제기한 다음 앞으로 있을 강연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무작정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가지고 읽을 수 있게 되죠. 챕터를 공부하기 전 어떠한 내용이 기다리고 있는지 준비하고 시작 할 수 있습니다.
읽는 중간 중간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사진과 그림들이 실려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다시한번 시각화 하여 반복하는 것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사진과 그림들은 강연 때 파워포인트로 제공되었던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보는데요, 강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우리들 역시 책을 통해 강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답니다.
처음에 언급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대해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강사의 질문에 기발하게 대답하는 학생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챕터 역시 바로 이 "윤리" 챕터인데요 (책의 이름도 이 강연의 제목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했던 문제들을 하나 하나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사고하고 그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연이 인상깊었답니다. 결국 내용 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흔히 부모님과 다른 선생님들에게 충분히 들었던 "잔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상투적이지 않고 효과적인 방법이 강연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분야가 여덟 개인 만큼 새로운 용어들도 많이 배우게 되겠죠. 중요한 용어나 인명은 따로 박스 안에 설명해주고 있어 큰 무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연에서 작곡가 리스트와 시벨리우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습니다.
교과서나 인터넷 등에서 이미 익숙해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하지만 이 그림의 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제스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고령의 플라톤과 젊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당을 들어오면서 취한 제스처와 그들이 들고 있는 책들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이 명화를 좀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즐겁게 입문하는 학문 - 정말 어렵지 않아요!
학사 학위를 세 개, 석사 학위를 한 개 받으면서까지도 철학에 입문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막연히 머릿 속에 "철학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고, 음악을 하는 나로서는 아마도 필요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생각은 확실히 틀린 것이었는데 첫째,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철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둘째, 철학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생각을 바꾸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친절한 철학 입문서 들입니다. 철학에 입문하기로 한 시점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권하는 철학책 20권을 목표로 독서를 시작했죠. 물론 지금도 "철학에 대해서 무언가를 안다"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되게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입문서들은 적어도 철학에 관한 궁금증과 큰 그림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읽었던 책은 50%도 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에는 55%, 60%... 이렇게 점점 성장해나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또한 좋은 책은 어떠한 분야에 관해서 궁금하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 때문에 앞으로의 학업 과정에도 대단한 밑거름이 됩니다. "응? 이런 것이 있었군. 조금 더 알고 싶은데?" 라는 궁금증이 연구하는 자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는 앞으로의 주인공들에게 보다 빨리 보다 가깝게 이러한 궁금증을 던질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특정 학문에 대한 위압감이 없었다면 보다 폭넓게 배우고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대학입시라는 규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획일화 되어있는 주입식 교육은 결국 비슷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마스터키 학생들을 만들 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외우고 공부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지식을 가지려면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저는 그 연구의 시작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학문이죠. 논술을 위해 문학작품은 읽어야 하겠지만,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고전이나 철학 혹은 클래식 콘서트 등은 시험을 준비하거나 공부하는데 있어 번거로우니까요. 하지만 남보다 뛰어나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문학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외우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누구나 푸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궁금해하고 사고하고 그래서 새로운 발상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누구나 바라는 "특별함" 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를 수 있는데 자기 틀에서 판단하는 건 독단이 아닐까요? 라고 저자는 묻습니다 (36 페이지). 그리고 이런 독단들이 모이게 되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되고 규범이 되며, 이것을 강요하게 될 때에 텍스트 추종의 악습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18페이지).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선하다는 뜻이 아닌, 모든 사람이 노력으로 선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263 페이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부동심과 호연지기. 즉 스스로 반성하여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270 페이지) 이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 답답한 일도, 끔찍한 일도 많습니다. 또한 실력을 쌓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불공정한 일도 많습니다. 이런 세상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역사"장의 저자 김육훈 선생님은 역사를 통해 의미를 되짚어보라고 충고하고, "과학"장의 저자 전중환 교수님은 자기 전공분야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인문학과 사회/자연학과를 어우르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동양철학"의 김선희 선생님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는 오래된 사상들과 고전을 통해 인문을 넓히는 것을 권유하죠. "서양철학"에 대해 강연하신 박승찬 교수님은 배우는 것을 외우는 것은 발전이 없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서로 동떨어져있는 것 같은 학문들을 통해 한 가지의 질문과 논제에 대한 여러가지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애매하고 오래걸릴 수 있지만, 그렇게 얻은 것은 남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수확한 나만의 것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죠. "하나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윤리" 장의 김경집 교수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큼 간단한 주장이지만, 그만큼 실생활에서는 잊혀져버리는 안타까운 일이죠.
청소년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훌륭한 강의들을 단 한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니 참 즐거운 일이었어요. 때로는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때로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에 궁금해지기도, 때로는 조금 더 디테일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주위의 청소년들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360페이지의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방대한 분량이라도 쉽고 이해하기 좋은 문체와 여러 사진과 그림을 참고하다 보면 어느 새 다 읽어버리게 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