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 지음, 박규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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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독일 방송 RTL에서 방영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고 결국 최후의 한 명이 계약과 상금을 타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이런 식의 포맷이 흔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방송의 성공 이후 셀 수 없는 수 많은 아류들과 비슷한 성격의 포맷들이 홍수처럼 밀려나오는 바람에 요즘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덮어놓고 보지 않기도 한답니다.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찾으면 찾을 수록 뛰어난 사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실력은 물론이고 외모, 경제적인 조건과 인생스토리까지 갖춘 사람들이 즐비하다 보니, 이제는 왠만큼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텔레비젼에 나와도 별로 감흥이 없어지게 되었지요. 예전에 가수 콘테스트에서 여러 출연자들을 보면서 감탄했다면, 이제는 (이미 후작업을 거쳐 "최적화"된)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저 심사위원으로 빙의해 이런 저런 비판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러한 "수요의 급증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하나의 극적인 예에 속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에서도 그렇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정보화 시대"라는 말은 이미 진부해져버렸고, 이제는 유용한 정보를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그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이 패배입니다. 인터넷의 보급과 SNS 돌풍으로 정보는 더이상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아니 (경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져야만 하는 그런 것이 되어 버린 것이죠.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완벽주의의 함정" 의 테마와 완벽하게 맞아들어가는 시대적 현상입니다.

 

독일어 원제는 Der Perfektionierer, 즉 "완벽주의자"라는 뜻인데요, 원본의 부제는 "Warum der Optimierungswahn uns schadet – und wer wirklich davon profitiert (최적화의 광기가 우리에게 해로운 이유 –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입니다. 다소 두꺼워보이는 320 페이지의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이 부제 안에 완벽하게 들어가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말 그대로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자"가 어떠한 사람들인지 먼저 알아야겠죠.

 

 

완벽주의자 – 그들을 낱낱이 파헤치다

 

"당신은 완벽주의자입니까?"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에이, 저같은 사람이 무슨…", "아니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라는 대답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의 표지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어떤 일에 실패할 바엔 차라리 도전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고 싶다" 따위의 설명을 듣게 되면 "어머, 저건 완전 내 이야기잖아?"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끝없는 자유"라는 사탕을 선물하면서 덤으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개발하려는 자유의지까지 얹어주었는데, 이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라 오히려 말을 꺼내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입니다. 각자의 어린시절에 따라 그 강약의 정도가 있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학교에서 습득하는 여러가지 지식들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정한 채점방식으로 숫자로 평가됩니다. 이것은 비단 지식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데, 심지어는 우리가 움직이는 것 (체육), 감성을 표현하는 것 (음악, 미술 등) 그리고 행동하는 것 (생활) 까지 모두 평가대상입니다. 그 룰은 참으로 간단한데 점수를 많이 받을 수록 우등생에 가까워지고,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하면 열등생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런 채점방식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반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인기가 있고 싶어서" 등 다양하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완벽주의자"는 이렇듯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애쓰고 날마나 나아지기를 원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주의"라는 말은 이 단어 안에서 그것의 의미만큼이나 반어법적인 용도로 쓰이는데, 이 완벽주의자들은 말 그래도 완벽한 사람들이 아닌 "완벽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남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도록 스펙을 쌓고 차별화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정작 실수하는 것이 드물어 외국인 앞에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기보다는 남들이 모두 한다고 해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는가 하면, 패배를 극도로 두려워하여 찾아온 기회마져 놓쳐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많은 "완벽주의자"들이 발견되는 곳은 엘리트 학교입니다. 아무리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획일화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학교에서는 학생이 학교가 선택하고 정한 규율과 잣대에 평가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엘리트 학생들은 과연 진짜로 재능있고 혁신적인 학생들일까요? 아니면 학교가 그들에게 명령하는 조건을 훌륭히 이수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학교에서는 칭찬받던 우등생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는데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공통적으로, 이들의 목표의식이 지금까지 타자 (여기서는 학교, 선생님 혹은 부모님) 에 의해 정해져온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착실히 공부하고 좋은 시험성적을 거두며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지도교사의 조언처럼 공부해온 그들은 사회에 나오자 마자 자신들을 인도해온 "가이드라인"의 부재에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다양한 "완벽주의자"들의 맹점에 대해서 논하며 그 실태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완벽주의에게 던지는 질문

 

이 책의 내용이 참 방대하기 때문에 거론된 논제들에 대해서 일일히 논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서평을 읽은 뒤에 누구든지 꼭 한번정도는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에 너무 많이 스포일링(?) 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요^^ 이 리뷰에서는 책이 말하고 있는 논제들을 종합하여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금 빌 게이츠나 베컴 같은 사람들처럼 부유해지는 것은, 예전에 평민이 루이 14세처럼 부자가 될 수 없었던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다만 우습게도 우리는 그것을 더 쉽게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46 페이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을 저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실현할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예전에는 귀족과 평민으로 나뉘어 평민은 감히 귀족이 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자신의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가업을 잇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자신의 노력한 것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상 모순적이며 바로 그 모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한 패배자"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절망하고는 합니다. 부여된 자유가 커지면 커질 수록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마저 커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주위에 빌 게이츠나 마돈나 처럼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죄의식은 몇 배로 커집니다. 저 사람은 해냈는데 나는 이러고 있다니…라며 자기 자신과 남을 끝없이 비교하면서 상대처럼 자신을 개발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죠. 사실상 이러한 자책감은 자신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최적화의 방식은 결코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근 SNS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면서 요즘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혹은 미투데이나 요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문자 어플이었던 카카오톡도 최근 "카카오스토리"를 런칭하면서 이러한 SNS 추세를 따르고 있습니다. SNS는 플랫폼을 초월하여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광고하고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엄격한 경쟁사회에서의 우리들에게는 특정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페이스북 우울증" 이 좋은 예인데요, 예전에는 몇몇 지인들만 알고 있었던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도 공개하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원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빚어내는 창조자 (56 페이지)"가 됩니다. 누구든지 최적화된 자신의 모습만을 보여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그래서인가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애인과의 데이트는 즐거워보이기만 하고 저녁식사는 항상 레스토랑을 방불케 하며 가족나들이는 잡지의 화보처럼 아름답기 마련이죠.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아무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넋두리도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는 고뇌에 찬 사색처럼 들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의 모습은 자신의 초라함과 비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째서 남들은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게만 사는데 나는 이 모양이지"라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자긍심이 부족한 10대와 20대에게 이 우울증은 생각보다 심각한 장애로 다가오게 된다고 합니다 [기사 보기].

 

그렇습니다. 우리는 학교 성적을 위해 과외를 받으며 족집게 강사를 따라다닙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보다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여러 자격증을 따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며 좋은 가산점을 줄 봉사활동에도 참여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스펙을 쌓는 과정은 실로 눈물겹고 힘들기만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내용도 없고 쓸모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다 비슷한 목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66 페이지) 열심히 노력한 공든 탑은 수 많은 탑들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경쟁의 우위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혼자 갖고 있을 때 성립하는 것입니다 (96 페이지). 이렇게 간단한 원리를 잊어버린 채 너도 나도 획일화된 방법으로 최적화를 시도하다 보니 결국은 뛰어난 것이 오히려 평범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무시한 채…

 

 

누구를 위한 최적화인가?

 

최적화의 광기는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가 하면 모래를 가지고 노는 대신 영재교육을 받게 합니다. 사실 이렇게 지나친 교육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은 자신의 욕구보다도 "저 집 아이는 하는데 우리 아이가 안하면 혹시라도 뒤쳐질까봐" 라는 걱정이 더 클 것입니다. 특히 "허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강박적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마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정작 본인들은 원치도 않는 호화결혼식을 감수하는 것처럼 "뒤쳐지고 싶지 않다"라는 욕구는 우리를 최적화의 늪으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최적화는 과연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가 여러 자격증을 따고 원만한 회사생활을 위해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으며 아름다운 몸매를 관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헬스클럽 PT에게 코칭받는 이 모든 것이, 정작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한 욕망에 의한 것이라면 그 끝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정말 간단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하기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고, 가지기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제한 안에 남들에게 모든 면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고 있는 모습 뒤에는 진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터무니 없는 가격들로 학부모를 유혹하는 엘리트 유치원과 알아서 모든 스펙을 쌓아오는 직원을 부릴 수 있는 기업들 그리고 최적화의 유혹에 빠진 우리들을 일상에서 올바르게 인도해줄 코치들입니다. 이들이 이용하는 최적화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충분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
  • 모든 것에는 충족되어야 할 이상이 있다

 

바로 완벽주의의 지상명령 (247페이지) 이죠. 공식은 간단합니다. 주어진 가능성이 많을 수록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최적화시킬 수 있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됩니다. 최적화는 이제 개인에게 그의 우수성을 직접 증명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에 (260 페이지) 이런 차별화와 개인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로서 쓴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남들이 다 가진 스펙"을 나도 가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죠.

 

 

 

 

완벽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저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제 "평균"이라는 말은 사실 욕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무도 "평균"이 되고 싶어하지 않지만, 모두들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하는 이상 이 모순은 극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10페이지). 앞서 말한 오디션 참가자들은 이제는 같은 도시,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설사 그 오디션에서 최고로 잘한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다른 오디션 혹은 외국의 다른 오디션 참가자들과 비교당하게 되는 것이죠. 예전에 동네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아무리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라도 유투브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가수들의 노래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세계의 탈경계화로 인해 경쟁의 범위가 엄청나게 커져버린 셈이죠.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무작정 자신을 최적화 시키려는 노력은 고통만 수반할 뿐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이 너무도 밋밋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기대했다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이롭다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최적화는 오히려 우리의 장점을 무시하고 도달할 수 없는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대체될 수 있는 획일화된"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진정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서 가장 효과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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