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 아이의 힘 - 이해하는 만큼 발견하는 아이의 잠재력
이정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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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아들이 내성적인 아이구나"라는 확신 아닌 확신에서 시작되었답니다. 누구보다 잘 웃고 장난이 가득한 아이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금방 힘들어하고 조금이라도 갈등이 생기거나 낯선 상황에서 도망가고자 하는 때가 많았거든요. 넘어지거나 다쳤을 땐 오히려 울음이 짧은데,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노는 환경을 무서워한다거나, TV에서 조금만 긴장 상황이 연출되면 보고싶지 않다고 하니... 내성적인 아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들은 내성적이고 이런 아들의 힘을 찾아야겠구나 ㅋㅋ) 이 책의 제목에 매료되었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으면서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도해주고자 읽게 되었답니다. 물론 첫 1/3을 읽기 전에 "아, 우리 아들은 내성적(내향적) 아이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지만요.


제목은 "내성적" 아이이긴 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내향적" 아이와 "외향적" 아이를 구분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두 기질의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양쪽 성향의 일반적인 모습이나 특징을 많이 설명하는 편인데요, 자세히 읽다보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엄마 입장에선 "도대체 그래서 우리 아이가 내향적이라는거야 아니면 외향적이라는거야?"라고 할만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저자는 저명한 심리학자 융(Jung)을 인용하여 내향적 성향(혹은 기질)과 외향적 성향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외향성과 내향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에너지의 방향성'으로 결정된다. 
외향성은 에너지가 외부로 흐르는 특성이고,
내향성은 에너지가 내부로 흐르는 특성이다.

이 전제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아이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파악하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 같아요. 물론 아이들 중에는 양쪽 성향을 동시에 가진 "양향성" 아이들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아들의 행동과 패턴을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니, 아들은 확실히 외향적 성향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일부 아이들처럼 어느 상황에서나 능숙하게 대처하거나,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율동을 따라하지 않는 것이 내향적이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단지 쑥스럽거나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더라고요. 아들이 평소에 보이는 반응이나 행동을 보면 스스로의 생각에 잠기는 것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끝없이 말을 걸고, 물어보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외향적 아이의 특성을 보이는 것 같았답니다.

이 책이 정말 유용했던 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육아서들이 "아이를 충분히 기다려주라"고만 했다면, 이 책을 통해 "왜 기다려줘야 하는지,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무것도 못하는 꼬꼬마 시절에는 그렇게 관대한 엄마일 수 없었는데, 제법 말도 하고 논리도 생기고 나니 저도 모르게 바라는 것이 점점 많아지게 되더라고요. 예전같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갔을 법한 일인데 "왜 이렇게 꾸물거렸어! 멍하게 있으면 안되잖아" 하고 잔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와요. 돌이켜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하는 걸 멈추고 싶었는데, 이 책으로 제대로 동기부여가 되었답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은 것을 흡수하고 전반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유아기의 경우, 자신의 성향과 기질을 양육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피드백을 주었느냐에 따라 아이의 자존감은 물론, 정서적 건강과 앞으로의 발달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습관적으로 "왜 이렇게 느려터졌어?", "그러면 그렇지. 또 잃어버렸지." 혹은 "하여간 불같은 성격은 누굴 닮아가지고" 라는 말을 들은 아이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존감이 낮아질 것이라는 건 아마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죠. "뭘 하고 싶었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중한 것도 좋지만 우리 몇 시까지는 이걸 끝내볼까?" 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정서를 위한 양육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들, 그리고 당연하지만 아빠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요즘 흔히 "구나" 체라고 해서, "아~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등의 어투가 유행하곤 하죠. 잘 모르고 따라만 했다가 머리에서 스팀이 나는 경험을 하신 분이라면, 아마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가 내향적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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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 사용설명서 - 2nd Edition
홍순성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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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의 초록색 코끼리와 만난 건 거의 10년이 다 된 일입니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유료 사용자가 된 것도 어느덧 8년차네요. 

공부하거나 일하는 데 있어서 저에게 가장 드라마틱했던(!) 변화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1) 아이패드와 2) 에버노트와의 만남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의 "외장두뇌"라고 할만큼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어떻게 앞가림하고 살까(?) 생각마저 들거든요.


무려 8년을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며 웬만한 기능은 다 알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노트 사용설명서 2nd Edition>의 출간 소식에 "어멋, 이건 꼭 읽어봐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 에버노트가 생소할 때부터 에버노트와 함께하는 스마트 라이프를 설파하던 저자가 10년간의 에버노트 사용기를 담아 두 번째 집필한 책이니까 말이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년에 잠깐(?) 외도 아닌 외도를 했었어요.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iOS의 에버노트 앱이 지나치게 무거워졌었거든요. 물론 그 전에도 점점 속도가 느려진다거나, 갑자기 튕긴다던가 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여름 즈음 되었을 때는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답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 이야기한다면앱을 실행시켜놓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노트를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ㅎㅎ
그래서 "에버노트와도 여기까지야!"하고 아주아주 예전에 쓰던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DEVONthink로 돌아갔었답니다.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무려 몇 십만원을 주고 구매했던 프로그램이었죠. 맥을 쓰시는 분들(그리고 맥으로 논문이나 책을 집필하시는 분들)은 아마 대부분 아실거에요.

그러다가 운명의 그 날(?), 미처 해지하지 않았던 에버노트 프리미엄 연간(!!!) 멤버십이 결제되었고 허무하게 날아간 돈 55,000원이 너무도 아까워 다시 에버노트로 돌아온,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답니다. 뭐, 결론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요.
왜냐. 에버노트만큼 제게 꼭 맞는 프로그램이 없었으니까요 ㅎㅎㅎ


에버노트의 "사용설명서"답게 이 책은 에버노트 회원가입부터 앱 설치 방법까지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제 기준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친절했던 것 같아요. 책 상당부분이 스크린샷을 동반한 설치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그것도 윈도우와 맥, 안드로이드와 iOS, 그리고 웹이라는 다섯 개의 버전으로!!) 내용에 집중하기 좀 어렵다는 느낌도 들었답니다. 에버노트가 영어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글 패치가 완벽하게 되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실을 필요가 있었나...하는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하지만 에버노트 안에서 유효한 검색 Query라던가 더욱 스마트하게 검색 폴더나 바로가기를 생성하는 방법은 정말 유용했어요. 이 책을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책장에 꼽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이유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물론 에버노트 헤비 유저들은, 필요한 페이지만 사진으로 찍어 스캔한 뒤 에버노트에 저장한다는 옵션을 선택할 것입니다만 ㅎㅎ;;). 
특히 자신에게 특화된 검색어를 조합한 검색 폴더를 잘 활용하면 트리 구조로 되어있는 에버노트의 한계를 넘어 좀 더 유연한 사고와 아이디어를 조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윈도우즈와 안드로이드에서 에버노트를 사용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 책이 이번에 업데이트 되어 출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이폰/맥용 에버노트 설명에 오류가 있었어요(대부분이 기능을지원하는데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소개하시는 부분이었죠). 한 가지 예를 들자면 128 페이지에서 아이폰에서는 첨부파일 기능이 제공되지 않아 공유방식 중에 Evernote로 가져오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폰에서도 아이폰 혹은 외부 저장소에 저장된 파일들을 첨부할 수 있습니다.


일반 노트에서 +를 터치하면 맨 아래에 "첨부파일 삽입" 메뉴가 있답니다. 이것을 클릭하면 아이폰 안의 파일은 물론 iCloud나 Dropbox, Google Drive, OneDrive 등 아이폰에 설치되어 있는 외부 클라우드 서비스의 파일들을 불러올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또 하나의 즐거움(!). 별책부록으로 온 "최적의 생각 정리 도구" Workflowy랍니다. 
처음 Workflowy라는 이름을 보고 "어랏, 내가 모르는(?!) 어플이 있었나" 싶었어요. 생각을 정리하는 마인드맵부터 브레인스토밍, 카드로 정리하는 앱 등 다양한 앱들을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앱스토어의 Productivity 카테고리는 줄줄 꿰고 있거든요 ㅎㅎ 

얼른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 다운받아 썼던 앱이더라고요.

그때는 워낙 심플한 레이아웃과 커스터마이징이 거의 불가능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별 매력을 못 느꼈었는데, 저자의 매뉴얼을 읽고나니 에버노트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훌륭하게 커버할 수 있는 협력툴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다시 설치했답니다. 며칠 쓰면서 나름의 생각 구조를 정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아주 만족스러워요!


지금까지 꽤 많은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에버노트를 거의 종교처럼(?) 전파하곤 했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제 주위 사람들이 그런건지 몰라도) 처음 입문하기가 좀 어려워서인가 금새 포기하고 흥미를 잃으시더라고요. 협업을 할 수 있는 최고의 툴 같은데,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해 결국 네이버 BAND나 카카오톡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참 많았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음에는 그냥 이 책을 한 권 사서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만큼 에버노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부터 고급기능까지 다양하게 소개한 훌륭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에버노트와 친해지고 그로 인해 머리를 좀 더 쉴 수 있는 순환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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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레슨 121 - 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지식
이양일 지음 / 북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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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셀 수 없는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음악이나 예술전문서는 드물기 때문에 그 제목만 읽어도 반가운 책들이 있습니다. <팝 레슨 121>이 바로 그런 책 중 하나에요.

사실 우리에게는 영원하게만(?) 느껴지는 팝 음악의 역사는 정말 짧아요. 재즈의 시작부터 계산한다고 해도 길게 잡아봐야 고작 150년 정도일테니까요. 중세시대부터 시작된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짧은 시간동안 발전해온 것이 팝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스펙터클했던 20세기를 지나면서 팝 음악은 사회와 기술(!)의 발전을 통해 폭발하듯 빠른 변화를 거듭해왔죠. 대중음악의 휘발성이 강해지면서 지금 그 발전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고요. 때문에 팝 음악(그리고 다양한 하위 장르들)을 정리하거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웬만한 음악적, 문화적, 사회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아우르는 통찰력까지 갖추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반갑기 그지없는 책이에요. “이 책이 유일한 진리다!”라고 말할 순 없어도, 팝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하여 온 지식을 정리해놓은 결과물이니까 말이에요.

총 121개의 팝 장르(물론 그 중에는 팝이라고 구분하기 애매한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만, 팝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장르들로 구성되어 있어요)를 소개한 이 책은 일종의 사전처럼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어볼 수 있어요. 처음부터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순서 또한 시간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궁금했던 부분을 먼저 읽어나가도 좋답니다. 기대했던만큼 알차고, 몰랐던 지식으로 가득한 책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하위 장르를 포함하여 월드 뮤직 장르들을 소개하고 있어 배울 것도 많았어요. DJ로 40년동안 활동하셨던 저자의 내공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었답니다. 이렇게 팝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책은 국내에 번역본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의 희소성은 더 높지 않을까 싶네요. 팝이나 록,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서재에는 꼭 있어야 할 책 같습니다.

한 가지,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도무지 적응이 안 되었던 건 바로 외래어 표기에요.
물론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Funk와 Punk를 구분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외래어 표기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임의로 발음표기를 하다보니 영어가 함께 표시되어 있지 않으면 암호를 해석하듯 힘겹게 추측해야 할 때도 있었답니다. 훵크, 칸츄리, 재스, 훠크, 두웝, 훌라멩코...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ㅎㅎ 괜히 외래어 표기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쓰신 저자도 대단하지만 이걸 그대로 출간하신 출판사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읽는 내내 신경이 쓰여 정작 본문 내용에 집중하기 어렵기도 했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이에요.

책 서두에 저자가 정리한 팝 음악 도표를 보니 대학원 시절 교실 한 켠에 붙어있던 재즈 도표가 기억나더라고요. 수많은 장르와 음악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신 저자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랍니다. 두고두고 펼쳐볼 책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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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꿈 그리고 존재
에반 톰슨 지음, 이성동.이은영 옮김 / 씨아이알(CIR)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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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가장 의아했던 문화쇼크(?) 중 하나가 신학이 철학과로 분류되어 있다는사실이었어요. 신학이 철학이라고?! 철학이 신학에서 제일 먼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하시는 분들이 철학 박사가 되어 오시는 게 적응이 안되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각성, 꿈 그리고 존재> 역시 이런 의아함 속에서 읽게 되었던 책이에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존재에 대한 답을 뇌과학과 명상(!), 그리고 철학, 마지막으로 종교에서 찾은 책이라는 설명에 굉장히 궁금해지더라고요. (서문을 제외한) 본문만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엄청난 분량이지만 용기내어 읽기 시작했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책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알지 못했던 거죠. 

결론만 말하자면 예전에 음악학 박사 과정에서 Ernst Kurth의 텍스트를 읽었을 때 빼고, 이렇게나 진도가 안 나가고, 어렵고, 아득해지는 책은 처음인 것 같아요. 번역이 잘못된 건지, 원서가 어려운 건지, 아니면 단순히 제가 이 책을 읽을 정도의 지식 수준이 아닌건지… 문단을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거에요. 읽으면 읽을 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랄까. 물론 지식이 전무한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라던가, 고대 인도의 철학, 복잡한 현대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쓴 책이라 더 그렇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한 문단을 그냥 넘어갔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그 다음에는 소리내어 읽어보고…;;

긴 설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종종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말이 가장 비극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하나도 안 간단하다고!) 가뜩이나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오는데 확인사살 당하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제가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전하며) 읽으면서 자꾸만 저자의 프로필을 들추어봤어요. 철학박사이면서 주로 철학, 인지과학, 불교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는 에반 톰슨. 여기서 불교는 우리나라에 퍼진 불교라기보다는 명상을 기반으로 한 인도의 종교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프로필을 확인한 건, 엄청나게 과학적으로 보이면서도 “영적인 것”을 말할 때에는 (제가 느끼기에) 한없이 주관적이 되는 모습이 굉장히 양면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에요. 음악으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어떤 멜로디를 피타고라스가 말한 수학적 원리로 한 음 한 음 분석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그러니까 이 선율에는 엄청난 영적 기운이 흐른다”라고 하는 정도랄까요. 여러 의식의 차원과 각 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그리고 우리가 그 의식에 도달하는 방법(혹은 그 의식을 의식적으로 의식하는 방법)에 있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어쩌면 이건 저의 수행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그런 걸 수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명상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나, 꿈에 대한 과학적 접근,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도 풀 수 없었던 (그래서 더욱 심오하지만 터무니없이 들리기도 하는) 죽음에 대한 분석 등 궁금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에 대해 읽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시간이었답니다. 비록 이 책의 5%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만요.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과학과 철학도 결국 어느 수준(혹은 경계)에 이르면 서로의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걸까요? 읽으면 읽을 수록 안개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던 <각성, 꿈 그리고 존재>.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만났을 땐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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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브레인스토밍 - 나 홀로 할 수 있는
윤상원 지음 / 광문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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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무서워하지도, 거북해하지도 않는 편이지만 (조그맣게나마)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기획서나 제안서를 쓸 일이 참 많아졌답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막상 컴퓨터에 앉아 아이디어를 아이템으로 만들 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해졌어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까 고민하는 동안 휘발성이 강한 아이디어는 이미 저편으로 날아가버리고... 창작을 하는 직업이라서 그런가 때로는 너무 진부해보이는 아이디어에 시작할 마음조차 사라지기도 했답니다. 뭔가 아이디어를 붙잡고 발전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저자 윤상원 씨는 발명특허의 전문가라고 해요. 창의성 및 특허 분야를 연구하시면서 많은 책을 집필하셨더라고요. 셀프 브레인스토밍 역시 저자가 기존 브레인스토밍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 시스템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발명이라던가, 상품 개발 같은 분야에 특화되어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몇 가지 좋은 팁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저의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정기적으로 출간하시는 저자들이 쓰신 책을 읽어보면 비록 그 양은 방대할지 몰라도 책의 내용을 한두 장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나아가자면 하나의 핵심 메시지로 압축할 수 있고요. 지극히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방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건데 첫 100 페이지 정도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고, 이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설득당하는 느낌이거든요.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얼른 본론에 들어가 본격적인 방법에 대해 알고 싶은데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반복해서 들어야 하고... 결국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방법이 나올때 즈음엔 이미 약간 사기가 떨어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드디어 본론이 나와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베일이 벗겨진 뒤에는 다시 200 페이지 정도 반복하는 느낌이랄까... 조금씩 새로운 내용이 나오기에 끝까지 열심히 읽었지만 100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세 배 가까이 늘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연말시상식에서 대상이 누구인지 너무 뜸을 들이는 바람에 채널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듯한...

이런 분량(?)을 제외한다면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특히 마지막에 (드디어!!) 나온 셀프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아이디어 발상 사례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런 구체적인 사례가 책을 통해 좀 더 많이 소개되었다면 이해하기도 편하고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듭니다. 

4차산업혁명, 창의성, 융합,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그리고 음양오행설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추상적이 되어버리는 많은 개념들. 셀프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메모하고, 수집하고, 정리하여 다시 조합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오늘부터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준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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