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 내인생의책 그림책 60
낸시 틸먼 글.그림, 이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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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동화책을 사주기 전엔 그저 동화책 하면 콩지팥쥐나 '엄마 말씀 잘 들어라'는 창작동화 정도를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책에는 참 욕심이 많았는데 유난히 동화책엔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과,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아이들의 머리에 주입하고 싶은 상투적인 교훈이 담겨있을 것 같다는 거부감에서였다.


하지만 아들이 4개월 될 무렵, 책과 먼저 친해지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그리고 책을 읽어주면서 즐겁게 애착형성을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첫 전집을 구매하였고, 그 때 들었던 생각은 "헉, 내가 어렸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잖아!"라는 놀라움과 경악스러움(?)이었다. 물론 아직도 두 손 두 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대놓고(?) 바른행동을 강요하는 동화들이 있긴 하지만,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게 프뢰벨 영아다중 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내 꼬리방울이 없어졌어>인데, 무작정 친구의 물건을 뺏지 말라는 일차원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친구가 물건을 빼앗겼을 때 얼마나 슬픈지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내용에 괜히 눈물이 찔끔 나고 코끝이 찡해졌다 (이놈의 감수성..).


그 후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멋진 동화책들! 수많은 동화책 중 대부분이 즐겁고 좋은 내용이지만, 그 중에서도 "왠지 이 책은 아들이 정말 정말 클 때까지 간직하고, 아들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때가 되면 내가 보관하며 읽다가 나중에 손자/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책들이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동화책이 그렇다. 바로 카드 디자이너였던 낸시 틸먼의 새로운 작품, <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이다. 


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아름다운 그림들. 그림 그릴때 만큼은 두 손이 손이 아니라 앞발인지라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카드 디자이너였던 낸시 틸먼이 동화를 쓰기 시작한 것은 유난히 감수정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네가 어디에 있든 너와 함께 할거야>, <숨지마 텀포트 - 우린 널 사랑해> 등 제목만으로도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 역시 길고 긴 제목이 동화의 내용을 짐작케 한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선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슬픈 이야기가 동화속에서나마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들(혹은 딸)을 사랑하시나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엄마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이 사람, 제정신인가?'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네, 당연하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굳이 말로 해야 할 필요도 못 느끼는 사실인데 말이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아들(혹은 딸)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나요?"

엄마로써, 아빠로써 내 자식을 사랑하는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내 사랑의 방식은 어떤 방식일까 묻게 되면 아까 질문처럼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부모의 사랑을 "조건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 제발 날 사랑해주세요" 하며 부탁하지 않아도 엄마는 아기를 사랑한다. 아기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활패턴이 완전히 무너지며 체력적 한계에 놓일 정도로 고단한 하루하루가 이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특별히 엄마의 희생에 보답해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주고, 때때로 엄마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하다. 다른 곳에선 찾을 수 없었던 행복감과 기쁨이 밀려온다. 진짜 이럴까? 정말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건적으로 그렇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는 참 변덕스러우면서도 엉뚱한 아이인가보다. 어떤 때는 코뿔소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낙타, 돼지, 야생 조랑말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아이의 "진짜" 모습은 동화 속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는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며 

그 때마다 엄마는 코뿔소의 멋진 미소에서, 낙타의 씩 웃는 웃음에서, 돼지의 귀여운 턱에서, 야생마의 발소리에서 아이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아무리 자기의 모습을 바꾸어도 엄마는 아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기발하다고 느낀 것이 이 부분이었다. 겨우 만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실감했다. 그 정도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장의 과정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엄마로써 느끼는 것은 확실히 "아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고, 얼마 후 다시 좋아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노는 것도 패턴이 수시로 바뀌곤 한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커버리기도 하지만 신생아 꼬꼬마적 모습이 문득 스쳐지나가는 것. 그것이 육아의 마법같은 순간들이 아닐까. 

아들이 좀 더 자라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며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언제 무엇이 변했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갈지도 모른다. 하루는 조랑말로, 하루는 올빼미로, 하루는 사자로 변신을 거듭하더라도 언제나 그 안에서 아들의 고유한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것, 어쩌면 이 세상에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엄마와 아빠 둘 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들이 어떤 모습이 되길 원했을까? 

뭐가 되었든지간에 푸른발부비새는 아니었을 것이다. 집에 들어오게 하기도 부담스러운 코뿔소나 냄새나는 낙타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겉모습은 귀엽지만 고집세고 사나우며 제멋대로인 너구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밀림의 제왕이고 힘이 센 영웅같은 사자도, 막상 함께 한 집에서 살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어쩌면 엄마는 그저 "말 잘 듣고 자기 방을 깨끗하게 치우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아들"이 가장 편할지 모른다. 


내가 느끼는 이 동화의 핵심은 여기 있었다. 엄청나게 귀엽게 표현된 동물이라 하더라도 엄마가 원치 않았던 모습일 수 있다. 시시각각 제멋대로 변신해버리는 아들이니 엄마가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원할지 생각할리 만무하다. 그저 내키는대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런 저런 동물로 변신하고 있을 것이다. 질릴 때까지 변신하고 또 변신하다가 언젠가(?) 다시 사람으로 오는 그 때까지 말이다. 


"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


동화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널 알아볼거야. 그리고 우린 널 사랑한단다. 엄마아빠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 중,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을까.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려면 아이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말을 잘 들을 때만, 내 눈에 찰 때만, 자랑스러울 때만, 남들에게 칭찬받을 때만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혀 바라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도,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도, 원치않는 길을 가고 반항할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네가 내 아이라는 것을 알아. 네 모습을 인정해. 그리고 널 사랑해. 조건없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엄마와 아빠, 단 두 사람일테니까 말이다. 


엄마는 온 마음으로 널 알고 있어.

그러니 널 못 알아볼 리가 없지.

- 본문 중 



지금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참 쉽다. 엉뚱한 말을 하거나 학교에서 욕설을 배워와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멀리 놀러가겠다며 떼를 쓰지도 않고, 몇 십만원짜리 옷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그저 잘 때 안 자고 울거나 안 먹겠다고 짜증내는 것이 전부이니,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애교 수준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아들을 향한 내 마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정말 드러나는 순간은 아마도 아들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때일거라고. 나는 토끼, 고양이, 강아지, 사슴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티라노사우르스, 하마, 시조새와 하이에나가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 말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는 엄마아빠가 바라는대로 자라주는 다마고치 인형이 아니니까 말이다. 


뭔가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 아들이 잊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네가 기린이 되더라도, 곰이 되더라도, 냄새나는 낙타나 시끄러운 푸른발부비새, 얍삽한 너구리가 되더라도

엄마아빠는 한결같이 너를 알아보고,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할 것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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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만난 예술 교육 - 예술이 교육이다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총서 3
곽덕주.남인우.임미혜 지음 / 이안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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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문화기본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화기본법이란 "교육을 받을 권리나 직업을 가질 권리처럼 문화권, 즉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도 국민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것이다(157페이지). 하지만 아마도 국민 대부분은 이런 법안이 제정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건, 이런 법안이 제정되었다고 할지라도 "문화예술"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답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것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기 만무하다. 특히 아직까지도 문화예술을 사치스러운, 일부 부르주아 층의 것으로 인식하거나, 10대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콘서트 정도로 오인하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가 넘어서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저자가 책 서두의 여는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 때문에 가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혁신의 프론티어들을 만나 영감을 얻는 것(6페이지)"이라니,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교육학자와 프로듀서 그리고 실무자들이 미적체험을 위해 떠난 유럽 여행의 보고서이다. 실제로 이 책을 집필한 사람은 세 사람인데, 같은 재단이나 교육 시스템에 각각 두 사람씩 따로 글을 적고 있어 색다른 공동집필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쓰여진 것이 이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함께 여행하고 인터뷰한 두 사람이 각각 같은 정보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같은 것을 보고서도 어떤 면에 중점을 두는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시선과 글로 두 번 접하게 되기 때문에 마치 책을 두 번 읽은 것같은 '복습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대상이 된 것은 핀란드와 스웨덴, 영국 그리고 벨기에이다. 처음 "유럽에서 만난 예술 교육"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흔히 우리가 예술 교육의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반드시 등장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경험한 교육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옮겨왔을지가 궁금했었으니까) 조금은 의아했던 부분이었다. 영국이야 워낙 오랜 전통으로 유명한 것을 알고 있었는데 핀란드와 스웨덴, 그리고 벨기에라니! 패션에도, 라이프스타일에도 어김없이 불고 있는 스칸디나비안 열풍이 교육에선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15년간 유럽에 살았던 내게도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핀란드의 아난딸로 아트센터(Annatalo Arts Center), 스웨덴의 서커스 시르쾨르(Cirkus Cirkoer), 영국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그리고 벨기에의 ABC(Art Basics for Children)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는 당장이라도 이 네 곳의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고, 우리나라의 답답한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나야 그렇다 치지만 이제 무럭무럭 자라나 '교육'을 받아야 할 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우리나라가 무조건 나쁘고, 잘못되었고, 열등하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그저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그들의 성숙한 예술의식이 부러웠고, 그것으로 인한 풍부한 지적, 감성적, 그리고 예술적 교육이 탐이 났던 것이다. 

책 제목이 이미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술이 교육이다". 사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정의를 내려도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응 그럼 그럼 예술 배우면 좋지 그럼. 교육이고 말고. 근데 먹고 살라면 뭔놈의 예술이야. 수능 공부는 제대로 했니? 영어 토익 점수는 어디까지 올려놨고?' 정도일까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예술이 '시간 남는 사람들(혹은 어리석게도 예술가로 성공해보겠다는 불쌍한 중생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때 피아노나 미술을 배우다가도 학교 공부가 어려워지면 곧장 그만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인식에 정면으로 맞서듯 저자들은 여는 글에서부터 "예술이 어떻게 교육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방문한 네 나라에서 그들이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으로서 일상적으로 특별한 예술 경험(11페이지)"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우리가 미처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여러 사실이 숨겨져 있다.


1. 예술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이다.

2. 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이다.

3. 예술은 경험이다. 


간단하게 비교해보자면,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어쩌면 의무적으로)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미술을 배우게 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굳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행해지는 교육은 아니다. 좀 배웠다 소리 들으려면 악기 한두개 정도는 다뤄야 하고, 그림 좀 그려봐야 오감이 발달된다는 생각이 팽배한데, 이 오감이 발달되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감이 빨리 발달하여 머리가 좋아지고, 영재가 되고,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승전명문대라고 할까나. 아니, 좀 더 긴(?) 시선으로 보자면 기승전대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헌데 이런 이유에서 배우기 시작한 예술에서 아이들이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어머나, 우리 아이가 제2의 김연아가 되려나 봐'하는 마음에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나 피겨스케이팅, 미술, 발레는 갑자기 "목숨걸고 해야 하는 일"로 바뀐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학원에 다니느라 고달팠다면, 이젠 하루에 어느 정도의 연습량을 채우지 않으면 엄마와의 전쟁이 일어나곤 한다. 경험을 쌓기 위해 나갔던 대회에서 좋지 않는 성적이라도 거두게 되면 집안이 초상집 분위기가 되기도 한다.


너무 자극적인 비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은 그저 남들 다 하니까 구색을 맞추어야 하는 장단 정도로 치부되거나, 죽어라고 노력해서 탑이 되어야 하는 끔찍한 고난의 길이 되기도 한다. 굳이 양쪽 다 아니더라도 몇 년 레슨비를 내가며 가르쳤는데 피아노는 여전히 바이엘 하권을 떼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난해한 선과 원으로 점철된 그림을 집에 가지고 온다면 '그래, 그래도 네가 좋아한다니 정말 기쁘구나. 계속 하렴'이라 말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예술을 가르치는 순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계속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과 돈을 좀 더 실용적(?)인 곳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난딸로 아트 센터의 설립자 마리안나에게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예술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이유는, 예술교육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교육입니다. 예술교육에서 실패자란 있을 수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예술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답이 있지도 않고, 또 잘 배웠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예술은 진정한 배움을 스스로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누구에게나 제공할 수 있습니다." (39-40 페이지)


저자는 덧붙인다.


"아이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든지 판단 받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움을 배우게 되고, 또한 어른들이 자신들을 존중해주는 방식을 통해서, 이 자유로움의 표현이 무엇이든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성인들의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 그런만큼 자신들의 자유로운 표현은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 그리고 진지한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을 꺠닫게 되는 것이다."(35 페이지)


이어지는 스웨덴의 서커스 시르쾨르, 영국의 로얄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벨기에의 ABC 프로그램도 각각의 개성과 고유한 예술철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교육적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즉, 이들에게 예술은 진정한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정신적 풍요로움을 알려주는 중요한 매개체였고, 그러함에 있어 타인의 판단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네 단체를 막론하고 이렇게 멋진 프로그램과 예술적 바탕을 누리는 아이들의 실력이 "그렇게 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프로그램들은 "실패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지원과 재정적 도움을 받으면서도 결론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즉 "특출나지 않은" 아이들을 배출해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리안나의 설명을 듣고는 오히려 슬퍼졌다. 예술에야말로 실패자가 있고, 예술이야말로 객관적으로 잘 배웠는지 증명해야만 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쟁 이후 어마어마한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하다. 안타까운 것은 기술적, 경제적 성장만큼 정서적, 예술적 성장을 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배경이다. 마치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졸부(?)의 느낌일까나. 기회는 많지만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이 책을 집필한 사람들, 이러한 경험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사람들이 다름아닌 서울문화재단의 실무자들이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온 그들의 경험을 책으로나마 우리가 만나보면서, 간접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러한 작고 큰 움직임들이 모여 사회를 다시 빚어나간다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우리나라의 저력으로 보건데,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서는 조금 더 나은 것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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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해결 프로젝트
에릭 메이젤 지음, 안종설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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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서평에서 이 책을 "창작자들의 필독서"라고 표현한 데 십분 공감한다. 더불어 예술가 전문 상담가가 있다는 사실(저자는 이것을 "크리에이티브 코칭"이라고 부른다)에 놀랐다. 예술가에 특화된 상담이라니, 비용이 얼마이건 한번쯤은 받아보고 싶었을만한 일인데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정말 기뻤다. 이 책은 전문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 그리고 예술가 지망생 스물 세 명의 상담 기록이다.


대학 시절 매일 만나도 유쾌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매사에 심각할 것이 없던 그는 학업이라던가 장래 역시 고민하는 법이 없어보였는데, 누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학업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어떻게 하면 수업을 빼먹고 재미있게 놀러다닐까" 연구하는 것 같았다. 간신히 낙제만 면하게 수업을 듣는 것은 기본, 과제나 세미나 논문을 베끼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한번은 내게 돈을 줄테니 세미나 논문을 대필해달라고 부탁했다 폭풍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무튼 인생의 역경(?)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가는 이 녀석에게 나는 "인생예술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인만큼 그의 한심한 학습태도를 아낌없이 질타하곤 했다.

지금와서 갑자기 이 친구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이 친구야 말로 진짜 "예술가 기질"이 있는 친구가 아니었나 하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안 하고, 늘 감정과 자아가 이끄는 대로 흘러다니던 녀석. 하지만 내가 정말 부러웠던 것 한 가지는, 자신의 (예술가적인) 고민에 있어 한 치의 거짓이나 위선도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담담함이었다.

"내 연주가 구려."
"곡이 써지질 않아."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니까."
"나같은 놈은 그냥 음악을 하면 안되나봐"

등 쉽사리 입밖으로 내지 못할만 고백(?)들을 서슴없이 내뱉던 그. 어린 시절의 나는 뭔 이고(Ego)가 그렇게 셌던지, 이런 그의 솔직함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난 절대 저러지 말아야겠다'란 다짐을 하곤 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30대에 접어든 나는 과연 예술가로써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을 읽으며 십수년 전 그가 했던 고민(이라고 쓰고 푸념이라 읽는다)이 지금 나의 고민과도, 저자 에릭 메이젤의 클라이언트들의 고민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에 피식 웃었다. 장르를, 연령대를, 장소를, 문화를 불문하고 예술가들이 하나같이 하는 고민은 똑같은걸까. 총 스물 세 개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마치 내 이야기 같아 무릎을 칠 때도 있었고, 별로 공감가지 않아 스윽 지나가버린 이야기도 있었다. 뭐가 되었든 한가지 깨달은 것은, 창작하는 사람들치고 이 스물 세 명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이미 글쓰기 코치로, 상담가로, 작가로 유명한 저자인만큼, 그에게서 카운셀링을 받는 데는 엄청난 경제력이 필요할 것이다 (문득 "베이비 위스퍼"로 유명했던 고 트레이시 호그가 아기를 돌봐주는 댓가로 일주일에 5만불씩 받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특수한 기술과 능력이 일반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를 창출해내는 미국의 특성상 메이젤에게 상담을 받는데도 비슷한 정도를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상담 "따위에" 그런 큰 돈을 쓴다는 것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창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창작 고통의 늪(?)"에서 건져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음(??)이자 매력적인 제안이다.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예술가를 상담해왔고 지금도 상담하는 에릭 메이젤이 자신의 상담 내용을 책으로 엮어낼 생각을 했다는 것은 쌍수들고 환영할 일일 뿐만 아니라 고개 숙여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에 파묻혀 오히려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가며 창작을 미루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 평가받고 알려지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하는 사람, 정리할 수 없는 주변 환경 때문에 창작 활동에 몰입하지 않는 사람,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 부문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물론 각자의 환경과 성격, 특성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결국은 다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예술가인가보다.
먼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자신의 목표를 메이젤에게 전달하면, 메이젤은 그 목표를 향후 2주일동안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묻고 조언을 해준다. 2주일 동안 클라이언트는 자신의 생활을 가능한한 자세히 기록하여 되돌아보고, 메이젤은 그것을 토대로 또다시 3주 동안의 계획 세우기를 격려한다. 이 책에서는 첫 2주 동안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3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저자가 이미 머릿말에 언급했던 내용도 있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신기한 부분이 몇 개 있었는데,

1. 저자의 글(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은 놀랄만큼 적다는 것.
2. 대부분 예술가 스스로가 자신의 일지를 기록하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3.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방향이 (서로 다른 성격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
4.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2주일간의 일지를 기록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아들이 태어난지도 이제 만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은 육아에 정신이 없어 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제 슬슬 육아도 안정되어가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도전이고 전쟁이지만) 하나하나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10개월동안의 공백은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조차 망각하게 했던 것 같다. 하루종일 음악을 듣지 않아도, 오랜 시간 곡을 쓰지 않아도, 선율을 떠올리지 않아도, 건반을 연주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생활. 물론 엄마가 되었기에, 집안일이 바빴기에, 아이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그랬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내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육아는 단지 "핑계"임을 말이다. 예술가라는 것은, 예술을 한다는 것은 상황이 맞춰주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물론 예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아, 참 그 때는 창작하기 좋았는데" 추억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고, 미치도록 피곤하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아예 창작을 하지 않는다면, 후에 아들이 커서 학교에 들어가고 내 시간이 생겨도 창작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시간이 남아서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니까.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한번 깨닫고 나니 갑자기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창작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굳이 자기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영향과 힘이 되어줄 그런 책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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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신 - 천만 방문자를 부르는 콘텐츠의 힘
장두현 지음 / 책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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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들어와 한동안 미친듯이(?) 읽었던 분야가 있다. 바로 자기계발과 처세술. 처음에는 책 제목만 읽어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마치 이 책만 제대로 공부하고 나면 능력 계발과 사회생활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히 게걸스럽게(?) 다독을 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에 포장만 다르게 한 서투른 내용에 점차 진력이 났고, 언젠가부터는 자기계발서 자체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내 인생을 (조금이나마) 바꾼 멋진 책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이 더 많았기에 멋진 신간을 찾아나설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요즘 들어와 예전의 자기계발서만큼 큰 관심을 가지고 찾게 된 책은 "블로그"에 관한 책이다. 

매일매일 글감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아들 덕택에 생애 처음으로 꾸준히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다가 하면 할 수록 욕심도 나고, 좀 더 멋지고 알찬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소망도 생기는지라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블로그 관리법이 궁금해졌다. 

모든 분야에서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조언서들과는 달리 유독 블로그와 Web Presence에 있어서는 신간이 뜸한 편이다. 워낙에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인지라 몇 년 된 책은 다른 책들보다 빨리 그 힘을 잃곤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당장 참고할 수 있는 블로그에 대한 책들은 정말 몇 권 되지 않는다. 블로그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 깨우치며 익혀나가는 것이라지만, 공부하려고 해도 그만큼의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신간 <블로그의 신>. 감사하게도 출간되자마자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냉큼 받아보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블로거 Zet가 쓴 책이라고 하니 "어멋, 이 책은 읽어야돼!"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천만 방문자를 부르는 콘텐츠의 힘이라니! 자타공인 블로그 고수가 전해주는 블로그 운영의 비밀은 무엇일까. 



 



나름 소중하게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아들이 먼저 시식하시느라 표지가 구겨져버렸다. 300쪽이 넘는 묵직한 분량.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궁금해 무작정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본인을 블로그, IT 칼럼니스트, 디지털 마케터라고 소개하는 저자 Zet(장두현). 10년 넘게 블로거팁닷컴(http://bloggertip.com)을 운영하는 그는 두 평 남짓한 비좁은 고시원방에서 블로그 덕분에 취업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강의하고 심지어 정부부처의 자문위원까지 된, 그야말로 성공적인 블로거 케이스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1세대 블로거니 가능했지, 과연 오늘도 가능한 일일까?" 싶을 정도로 블로그를 통한 그의 신분상승(?)은 참 놀라운 것이었다. 몇만 명의 방문자를 거느린 파워블로거도 이젠 "파워블로거지"라 비꼬임을 당하며 비판받는 요즘인데, 과연 지금도 제 2, 제 3의 Zet가 탄생할 수 있을까? 있는대로 포화된 블로그 시장에서 블로그 포스팅은 정보가 아닌 스팸으로 간주받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무분별한 체험단과 상업적 포스팅, 리뷰로 인해 블로거들의 평판 역시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여기저기서 "클린 리뷰 운동"을 펼치며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하면 블로그 성공한다"는 성공담은 오히려 독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제목에 키워드 끼워넣어 상단에 노출시키기, 하루만에 방문자 늘리기, 자극적인 내용과 홍보로 블로그 유입을 유인하기 등은 "좋은 콘텐츠에 사람이 몰린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 위험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신>은 이와같은 위험 요소를 처음부터 배제한다.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 이 책은 "천만 방문자를 부르는 블로그"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천만 방문자를 부르는 콘텐츠"를 위한 책이다. 말 그대로,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하여 질높은 블로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그만 동네 학원에서 가르치려고 해도 스펙을 따지는 시대.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자각하기도 전에 본 게임이 끝나버리는 시대에서 블로그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블로그야말로 "모두에게 공평"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슨 자격증이 있는지, 돈이 얼마인지, 집안이 어떤지 블로그는 묻지 않는다. 열심히 땀흘려 일한만큼 쌓이고 노출되는 것이 블로그다. 변변한 졸업장이나 직장, 스펙이나 백(?)이 없었던 저자가 블로그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꾸준한 관리와 무반응과 낮은 방문자 수에도 끄덕않는 멘탈이 필요하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며 그것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저자는 바로 이것에 중점을 두고, 처음 목표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블로그를 운영하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작은 노력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방문자와 이웃 커넥트가 가능한 네이버 블로그와는 달리, 저자의 블로그가 속해있는 티스토리 블로그는 웬만해선 독자들과의 교류를 나누기 어렵다. 이웃 개념이 없는 티스토리 블로그 시스템상 "애정이웃"과 "답방" 역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소통해나가면서 지금의 블로거닷컴은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블로그를 좀 하는 사람들은 다 알만한 브랜드 말이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블로그 콘텐츠의 종류부터 글쓰는 방법, 6개월만에 파워블로그 만들기, SNS로 추가 방문객을 유입하고 본격적으로 블로그로 투잡하기까지 블로그 초보부터 어느정도 경험이 있는 블로거까지 참고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블로그 고수답게 중요한 내용은 다시한번 표로 정리하거나 새로운 색상으로 강조해주었기에 읽기도 편안하고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도 용이하다. 

물론 "6개월만에 파워블로그 만들기"가 정말 (책대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목표의식을 가지고 매일매일 꾸준히 한다면 6개월은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 파워블로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파워블로그가 목표라면 말이다. 


이젠 실행하는 것만 남은 것 같다. 비법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해봐야겠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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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학교 폭력 어떡하죠? 사춘기 어린이를 위한 심리 포토 에세이
임여주 지음, 김예슬 그림, 김설경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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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학교가 아이들의 개구진 장난과 웃음으로 가득한 대신 따돌림과 폭력, 탈선으로 얼룩진 것이.
"모든 학교가 그렇지 않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무마하기엔 이미 학교 폭력은 너무나도 깊이 우리 아이들의 생활에 침투해버렸다. 학교 폭력을 당하거나, 가하거나, 동조하거나, 목격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일 것이다.

문득 천사처럼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군가 저 아이를 때리고 괴롭힌다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니, 아마 비슷한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내가 흉기라도 들고 쫓아갈지도 모른다. 얼마나 소중하고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아 키우는 아이인데...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행동을 하는 아이들. 이른바 "학교 폭력의 주역들" 역시 저렇게 천사처럼 곤히 잠들었던 때가 있었겠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햇살같은 미소와 해맑은 웃음으로 엄마아빠의 하루를 빛이 나게 했을 때가 있었을텐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을텐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읽고 싶지 않은 책이 내게 왔다.
제목만 읽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책이다.

스콜라에서 발간된 <열세 살, 학교 폭력 어떡하죠?>는 어느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학교 폭력의 실태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조금 특이한 것은 "심리 포토 에세이"라는 설명처럼 어른이 아닌 어린 당사자들의 시선에서 그들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얻어 맞는 것만이 학교 폭력이 아니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보다도 더 끔찍하고 괴로운 폭력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신체적인 가해만 생각하는 학교 폭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고자 학교 폭력의 네 가지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 폭력을 비롯해 마음을 멍들게 하는 언어 폭력, 이른바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간접 폭력 그리고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으로 가해지는 사이버 폭력이 그것이다.

십대 초반 아이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도록 사진과 일러스트, 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책. 앞서 소개한 네 가지의 학교 폭력은 또다시 세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그 폭력을 행사한 아이의 이야기, 당한 아이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방관했던 아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서는 해당 학교 폭력의 실태와 특성, 그리고 대처 방법에 대해 소개되어있다. 마치 청소년 상담센터 선생님처럼 친근한 말투로 쓰여있어 당사자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점이 인상깊다.

예전에 나왔던 비슷한 책들을 보면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내용 탓에 아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열세 살, 학교 폭력 어떡하죠?>는 달랐다. 때로는 십대 아이들의 적나라한(?) 문자 메시지 내용도 그래도 실려있었다. 물론 상황에 맞춰 각색한 것이겠지만 실제로 "믿어지는" 예였다. (모르긴 몰라도 진짜 문자 내용은 이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육두문자로 도배되어 있겠지만...) 굳이 비속어를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적절한 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대 초반 아이들의 고민은 다양하다 못해 기상천외하기까지 하다. 내일 학교에 입고 가는 옷에서부터 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예능 프로, 요즘 유행하는 춤이나 노래, 휴대폰 기종과 가방 브랜드까지... 어른들의 눈으로 보자면 쓸데 있는 걱정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시껄렁하고 말도 안되는 고민을 가지고 죽을 것처럼 화를 내고 괴로워하니 고민을 들어주겠다고 나섰던 엄마에게 오히려 핀잔을 듣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요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 역시 그 나이즈음 도무지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있었음을. 다른 사람이라면 "뭐 그딴 걸 가지고 그래"라고 쉽게 말할지 몰라도, 내게는 눈물이 펑펑 흐를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음을. 공감해주지 않고, 다독여주지 않을 수록 점점 더 소외되고 괴로웠던 것을 기억하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올챙이 때의 민감한 감수성을 놓쳐버릴까봐 말이다.

정신적 성숙기를 향해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정작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무작정 받아주어서도 안되고 무조건 안된다고 해서도 안되고, 적당한 선을 그어주고 한없는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할텐데 언제 얼만큼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더군다나 행여 내 자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면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전에 엄마아빠가 감정적으로 폭발하기 쉽기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밀려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비록 아이들의 시선에서 쓰여졌더라도, 엄마아빠가 먼저 읽고 "소화시켜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지인의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 만나보았지만 참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의아했는데 그 문제인즉슨 이 녀석이 학교에서 그렇게 아이들을 때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때린다"고만 하기엔 좀 심할 정도로 아이들을 구타하는 바람에 전학도 시켜봤지만 별 소용이 없단다. 엄마아빠도 훌륭하고 사랑 넘치는 집에서 자란 아이인데다 내가 만났을 땐 개구장이 같아도 착한 아이었어서 충격이 컸다. 엄마아빠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폭력의 주체가 되지 않는 것 역시 너무나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집안이 어렵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요즘의 사례를 보면 정말 그렇지가 않다. 멀쩡하고 좋은 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끔찍한 가해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여러 이야기와 조언을 통해 "아이들이 그 행동이 얼마나 나쁜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해 아이를 죽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해놓고도 정작 자기가 가해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자신이 가해자일 경우에 어떻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애초에 이런 책이 나올 필요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폭력 사례를 신고하는 신고서 작성 요령까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니 마음이 착잡하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만큼 이제는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다. 인정하기 싫다고, 보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다가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크면 나는 이 책을 아들에게 건네게 될까?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자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거나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의심이 든다면, 엄마가 먼저 꼼꼼히 읽어보고 자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듯 건넬 수 있는 정말 적합한 도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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