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학교 폭력 어떡하죠? 사춘기 어린이를 위한 심리 포토 에세이
임여주 지음, 김예슬 그림, 김설경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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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학교가 아이들의 개구진 장난과 웃음으로 가득한 대신 따돌림과 폭력, 탈선으로 얼룩진 것이.
"모든 학교가 그렇지 않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무마하기엔 이미 학교 폭력은 너무나도 깊이 우리 아이들의 생활에 침투해버렸다. 학교 폭력을 당하거나, 가하거나, 동조하거나, 목격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일 것이다.

문득 천사처럼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군가 저 아이를 때리고 괴롭힌다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니, 아마 비슷한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내가 흉기라도 들고 쫓아갈지도 모른다. 얼마나 소중하고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아 키우는 아이인데...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행동을 하는 아이들. 이른바 "학교 폭력의 주역들" 역시 저렇게 천사처럼 곤히 잠들었던 때가 있었겠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햇살같은 미소와 해맑은 웃음으로 엄마아빠의 하루를 빛이 나게 했을 때가 있었을텐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을텐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읽고 싶지 않은 책이 내게 왔다.
제목만 읽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책이다.

스콜라에서 발간된 <열세 살, 학교 폭력 어떡하죠?>는 어느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학교 폭력의 실태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조금 특이한 것은 "심리 포토 에세이"라는 설명처럼 어른이 아닌 어린 당사자들의 시선에서 그들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얻어 맞는 것만이 학교 폭력이 아니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보다도 더 끔찍하고 괴로운 폭력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신체적인 가해만 생각하는 학교 폭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고자 학교 폭력의 네 가지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 폭력을 비롯해 마음을 멍들게 하는 언어 폭력, 이른바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간접 폭력 그리고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으로 가해지는 사이버 폭력이 그것이다.

십대 초반 아이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도록 사진과 일러스트, 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책. 앞서 소개한 네 가지의 학교 폭력은 또다시 세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그 폭력을 행사한 아이의 이야기, 당한 아이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방관했던 아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서는 해당 학교 폭력의 실태와 특성, 그리고 대처 방법에 대해 소개되어있다. 마치 청소년 상담센터 선생님처럼 친근한 말투로 쓰여있어 당사자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점이 인상깊다.

예전에 나왔던 비슷한 책들을 보면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내용 탓에 아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열세 살, 학교 폭력 어떡하죠?>는 달랐다. 때로는 십대 아이들의 적나라한(?) 문자 메시지 내용도 그래도 실려있었다. 물론 상황에 맞춰 각색한 것이겠지만 실제로 "믿어지는" 예였다. (모르긴 몰라도 진짜 문자 내용은 이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육두문자로 도배되어 있겠지만...) 굳이 비속어를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적절한 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대 초반 아이들의 고민은 다양하다 못해 기상천외하기까지 하다. 내일 학교에 입고 가는 옷에서부터 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예능 프로, 요즘 유행하는 춤이나 노래, 휴대폰 기종과 가방 브랜드까지... 어른들의 눈으로 보자면 쓸데 있는 걱정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시껄렁하고 말도 안되는 고민을 가지고 죽을 것처럼 화를 내고 괴로워하니 고민을 들어주겠다고 나섰던 엄마에게 오히려 핀잔을 듣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요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 역시 그 나이즈음 도무지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있었음을. 다른 사람이라면 "뭐 그딴 걸 가지고 그래"라고 쉽게 말할지 몰라도, 내게는 눈물이 펑펑 흐를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음을. 공감해주지 않고, 다독여주지 않을 수록 점점 더 소외되고 괴로웠던 것을 기억하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올챙이 때의 민감한 감수성을 놓쳐버릴까봐 말이다.

정신적 성숙기를 향해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정작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무작정 받아주어서도 안되고 무조건 안된다고 해서도 안되고, 적당한 선을 그어주고 한없는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할텐데 언제 얼만큼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더군다나 행여 내 자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면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전에 엄마아빠가 감정적으로 폭발하기 쉽기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밀려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비록 아이들의 시선에서 쓰여졌더라도, 엄마아빠가 먼저 읽고 "소화시켜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지인의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 만나보았지만 참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의아했는데 그 문제인즉슨 이 녀석이 학교에서 그렇게 아이들을 때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때린다"고만 하기엔 좀 심할 정도로 아이들을 구타하는 바람에 전학도 시켜봤지만 별 소용이 없단다. 엄마아빠도 훌륭하고 사랑 넘치는 집에서 자란 아이인데다 내가 만났을 땐 개구장이 같아도 착한 아이었어서 충격이 컸다. 엄마아빠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폭력의 주체가 되지 않는 것 역시 너무나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집안이 어렵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요즘의 사례를 보면 정말 그렇지가 않다. 멀쩡하고 좋은 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끔찍한 가해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여러 이야기와 조언을 통해 "아이들이 그 행동이 얼마나 나쁜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해 아이를 죽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해놓고도 정작 자기가 가해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자신이 가해자일 경우에 어떻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애초에 이런 책이 나올 필요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폭력 사례를 신고하는 신고서 작성 요령까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니 마음이 착잡하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만큼 이제는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다. 인정하기 싫다고, 보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다가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크면 나는 이 책을 아들에게 건네게 될까?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자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거나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의심이 든다면, 엄마가 먼저 꼼꼼히 읽어보고 자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듯 건넬 수 있는 정말 적합한 도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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