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 내인생의책 그림책 60
낸시 틸먼 글.그림, 이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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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동화책을 사주기 전엔 그저 동화책 하면 콩지팥쥐나 '엄마 말씀 잘 들어라'는 창작동화 정도를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책에는 참 욕심이 많았는데 유난히 동화책엔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과,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아이들의 머리에 주입하고 싶은 상투적인 교훈이 담겨있을 것 같다는 거부감에서였다.


하지만 아들이 4개월 될 무렵, 책과 먼저 친해지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그리고 책을 읽어주면서 즐겁게 애착형성을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첫 전집을 구매하였고, 그 때 들었던 생각은 "헉, 내가 어렸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잖아!"라는 놀라움과 경악스러움(?)이었다. 물론 아직도 두 손 두 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대놓고(?) 바른행동을 강요하는 동화들이 있긴 하지만,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게 프뢰벨 영아다중 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내 꼬리방울이 없어졌어>인데, 무작정 친구의 물건을 뺏지 말라는 일차원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친구가 물건을 빼앗겼을 때 얼마나 슬픈지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내용에 괜히 눈물이 찔끔 나고 코끝이 찡해졌다 (이놈의 감수성..).


그 후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멋진 동화책들! 수많은 동화책 중 대부분이 즐겁고 좋은 내용이지만, 그 중에서도 "왠지 이 책은 아들이 정말 정말 클 때까지 간직하고, 아들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때가 되면 내가 보관하며 읽다가 나중에 손자/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책들이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동화책이 그렇다. 바로 카드 디자이너였던 낸시 틸먼의 새로운 작품, <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이다. 


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아름다운 그림들. 그림 그릴때 만큼은 두 손이 손이 아니라 앞발인지라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카드 디자이너였던 낸시 틸먼이 동화를 쓰기 시작한 것은 유난히 감수정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네가 어디에 있든 너와 함께 할거야>, <숨지마 텀포트 - 우린 널 사랑해> 등 제목만으로도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 역시 길고 긴 제목이 동화의 내용을 짐작케 한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선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슬픈 이야기가 동화속에서나마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들(혹은 딸)을 사랑하시나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엄마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이 사람, 제정신인가?'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네, 당연하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굳이 말로 해야 할 필요도 못 느끼는 사실인데 말이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아들(혹은 딸)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나요?"

엄마로써, 아빠로써 내 자식을 사랑하는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내 사랑의 방식은 어떤 방식일까 묻게 되면 아까 질문처럼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부모의 사랑을 "조건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 제발 날 사랑해주세요" 하며 부탁하지 않아도 엄마는 아기를 사랑한다. 아기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활패턴이 완전히 무너지며 체력적 한계에 놓일 정도로 고단한 하루하루가 이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특별히 엄마의 희생에 보답해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주고, 때때로 엄마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하다. 다른 곳에선 찾을 수 없었던 행복감과 기쁨이 밀려온다. 진짜 이럴까? 정말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건적으로 그렇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는 참 변덕스러우면서도 엉뚱한 아이인가보다. 어떤 때는 코뿔소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낙타, 돼지, 야생 조랑말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아이의 "진짜" 모습은 동화 속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는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며 

그 때마다 엄마는 코뿔소의 멋진 미소에서, 낙타의 씩 웃는 웃음에서, 돼지의 귀여운 턱에서, 야생마의 발소리에서 아이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아무리 자기의 모습을 바꾸어도 엄마는 아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기발하다고 느낀 것이 이 부분이었다. 겨우 만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실감했다. 그 정도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장의 과정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엄마로써 느끼는 것은 확실히 "아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고, 얼마 후 다시 좋아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노는 것도 패턴이 수시로 바뀌곤 한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커버리기도 하지만 신생아 꼬꼬마적 모습이 문득 스쳐지나가는 것. 그것이 육아의 마법같은 순간들이 아닐까. 

아들이 좀 더 자라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며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언제 무엇이 변했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갈지도 모른다. 하루는 조랑말로, 하루는 올빼미로, 하루는 사자로 변신을 거듭하더라도 언제나 그 안에서 아들의 고유한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것, 어쩌면 이 세상에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엄마와 아빠 둘 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들이 어떤 모습이 되길 원했을까? 

뭐가 되었든지간에 푸른발부비새는 아니었을 것이다. 집에 들어오게 하기도 부담스러운 코뿔소나 냄새나는 낙타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겉모습은 귀엽지만 고집세고 사나우며 제멋대로인 너구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밀림의 제왕이고 힘이 센 영웅같은 사자도, 막상 함께 한 집에서 살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어쩌면 엄마는 그저 "말 잘 듣고 자기 방을 깨끗하게 치우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아들"이 가장 편할지 모른다. 


내가 느끼는 이 동화의 핵심은 여기 있었다. 엄청나게 귀엽게 표현된 동물이라 하더라도 엄마가 원치 않았던 모습일 수 있다. 시시각각 제멋대로 변신해버리는 아들이니 엄마가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원할지 생각할리 만무하다. 그저 내키는대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런 저런 동물로 변신하고 있을 것이다. 질릴 때까지 변신하고 또 변신하다가 언젠가(?) 다시 사람으로 오는 그 때까지 말이다. 


"네가 기린이 되든 곰이 되든 우린 널 사랑해"


동화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널 알아볼거야. 그리고 우린 널 사랑한단다. 엄마아빠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 중,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을까.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려면 아이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말을 잘 들을 때만, 내 눈에 찰 때만, 자랑스러울 때만, 남들에게 칭찬받을 때만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혀 바라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도,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도, 원치않는 길을 가고 반항할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네가 내 아이라는 것을 알아. 네 모습을 인정해. 그리고 널 사랑해. 조건없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엄마와 아빠, 단 두 사람일테니까 말이다. 


엄마는 온 마음으로 널 알고 있어.

그러니 널 못 알아볼 리가 없지.

- 본문 중 



지금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참 쉽다. 엉뚱한 말을 하거나 학교에서 욕설을 배워와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멀리 놀러가겠다며 떼를 쓰지도 않고, 몇 십만원짜리 옷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그저 잘 때 안 자고 울거나 안 먹겠다고 짜증내는 것이 전부이니,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애교 수준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아들을 향한 내 마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정말 드러나는 순간은 아마도 아들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때일거라고. 나는 토끼, 고양이, 강아지, 사슴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티라노사우르스, 하마, 시조새와 하이에나가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 말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는 엄마아빠가 바라는대로 자라주는 다마고치 인형이 아니니까 말이다. 


뭔가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 아들이 잊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네가 기린이 되더라도, 곰이 되더라도, 냄새나는 낙타나 시끄러운 푸른발부비새, 얍삽한 너구리가 되더라도

엄마아빠는 한결같이 너를 알아보고,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할 것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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