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만난 예술 교육 - 예술이 교육이다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총서 3
곽덕주.남인우.임미혜 지음 / 이안재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문화기본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화기본법이란 "교육을 받을 권리나 직업을 가질 권리처럼 문화권, 즉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도 국민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것이다(157페이지). 하지만 아마도 국민 대부분은 이런 법안이 제정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건, 이런 법안이 제정되었다고 할지라도 "문화예술"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답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것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기 만무하다. 특히 아직까지도 문화예술을 사치스러운, 일부 부르주아 층의 것으로 인식하거나, 10대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콘서트 정도로 오인하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가 넘어서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저자가 책 서두의 여는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 때문에 가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혁신의 프론티어들을 만나 영감을 얻는 것(6페이지)"이라니,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교육학자와 프로듀서 그리고 실무자들이 미적체험을 위해 떠난 유럽 여행의 보고서이다. 실제로 이 책을 집필한 사람은 세 사람인데, 같은 재단이나 교육 시스템에 각각 두 사람씩 따로 글을 적고 있어 색다른 공동집필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쓰여진 것이 이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함께 여행하고 인터뷰한 두 사람이 각각 같은 정보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같은 것을 보고서도 어떤 면에 중점을 두는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시선과 글로 두 번 접하게 되기 때문에 마치 책을 두 번 읽은 것같은 '복습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대상이 된 것은 핀란드와 스웨덴, 영국 그리고 벨기에이다. 처음 "유럽에서 만난 예술 교육"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흔히 우리가 예술 교육의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반드시 등장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경험한 교육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옮겨왔을지가 궁금했었으니까) 조금은 의아했던 부분이었다. 영국이야 워낙 오랜 전통으로 유명한 것을 알고 있었는데 핀란드와 스웨덴, 그리고 벨기에라니! 패션에도, 라이프스타일에도 어김없이 불고 있는 스칸디나비안 열풍이 교육에선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15년간 유럽에 살았던 내게도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핀란드의 아난딸로 아트센터(Annatalo Arts Center), 스웨덴의 서커스 시르쾨르(Cirkus Cirkoer), 영국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그리고 벨기에의 ABC(Art Basics for Children)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는 당장이라도 이 네 곳의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고, 우리나라의 답답한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나야 그렇다 치지만 이제 무럭무럭 자라나 '교육'을 받아야 할 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우리나라가 무조건 나쁘고, 잘못되었고, 열등하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그저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그들의 성숙한 예술의식이 부러웠고, 그것으로 인한 풍부한 지적, 감성적, 그리고 예술적 교육이 탐이 났던 것이다. 

책 제목이 이미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술이 교육이다". 사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정의를 내려도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응 그럼 그럼 예술 배우면 좋지 그럼. 교육이고 말고. 근데 먹고 살라면 뭔놈의 예술이야. 수능 공부는 제대로 했니? 영어 토익 점수는 어디까지 올려놨고?' 정도일까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예술이 '시간 남는 사람들(혹은 어리석게도 예술가로 성공해보겠다는 불쌍한 중생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때 피아노나 미술을 배우다가도 학교 공부가 어려워지면 곧장 그만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인식에 정면으로 맞서듯 저자들은 여는 글에서부터 "예술이 어떻게 교육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방문한 네 나라에서 그들이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으로서 일상적으로 특별한 예술 경험(11페이지)"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우리가 미처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여러 사실이 숨겨져 있다.


1. 예술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이다.

2. 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이다.

3. 예술은 경험이다. 


간단하게 비교해보자면,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어쩌면 의무적으로)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미술을 배우게 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굳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행해지는 교육은 아니다. 좀 배웠다 소리 들으려면 악기 한두개 정도는 다뤄야 하고, 그림 좀 그려봐야 오감이 발달된다는 생각이 팽배한데, 이 오감이 발달되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감이 빨리 발달하여 머리가 좋아지고, 영재가 되고,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승전명문대라고 할까나. 아니, 좀 더 긴(?) 시선으로 보자면 기승전대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헌데 이런 이유에서 배우기 시작한 예술에서 아이들이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어머나, 우리 아이가 제2의 김연아가 되려나 봐'하는 마음에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나 피겨스케이팅, 미술, 발레는 갑자기 "목숨걸고 해야 하는 일"로 바뀐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학원에 다니느라 고달팠다면, 이젠 하루에 어느 정도의 연습량을 채우지 않으면 엄마와의 전쟁이 일어나곤 한다. 경험을 쌓기 위해 나갔던 대회에서 좋지 않는 성적이라도 거두게 되면 집안이 초상집 분위기가 되기도 한다.


너무 자극적인 비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은 그저 남들 다 하니까 구색을 맞추어야 하는 장단 정도로 치부되거나, 죽어라고 노력해서 탑이 되어야 하는 끔찍한 고난의 길이 되기도 한다. 굳이 양쪽 다 아니더라도 몇 년 레슨비를 내가며 가르쳤는데 피아노는 여전히 바이엘 하권을 떼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난해한 선과 원으로 점철된 그림을 집에 가지고 온다면 '그래, 그래도 네가 좋아한다니 정말 기쁘구나. 계속 하렴'이라 말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예술을 가르치는 순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계속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과 돈을 좀 더 실용적(?)인 곳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난딸로 아트 센터의 설립자 마리안나에게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예술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이유는, 예술교육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교육입니다. 예술교육에서 실패자란 있을 수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예술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답이 있지도 않고, 또 잘 배웠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예술은 진정한 배움을 스스로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누구에게나 제공할 수 있습니다." (39-40 페이지)


저자는 덧붙인다.


"아이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든지 판단 받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움을 배우게 되고, 또한 어른들이 자신들을 존중해주는 방식을 통해서, 이 자유로움의 표현이 무엇이든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성인들의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 그런만큼 자신들의 자유로운 표현은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 그리고 진지한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을 꺠닫게 되는 것이다."(35 페이지)


이어지는 스웨덴의 서커스 시르쾨르, 영국의 로얄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벨기에의 ABC 프로그램도 각각의 개성과 고유한 예술철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교육적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즉, 이들에게 예술은 진정한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정신적 풍요로움을 알려주는 중요한 매개체였고, 그러함에 있어 타인의 판단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네 단체를 막론하고 이렇게 멋진 프로그램과 예술적 바탕을 누리는 아이들의 실력이 "그렇게 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프로그램들은 "실패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지원과 재정적 도움을 받으면서도 결론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즉 "특출나지 않은" 아이들을 배출해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리안나의 설명을 듣고는 오히려 슬퍼졌다. 예술에야말로 실패자가 있고, 예술이야말로 객관적으로 잘 배웠는지 증명해야만 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쟁 이후 어마어마한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하다. 안타까운 것은 기술적, 경제적 성장만큼 정서적, 예술적 성장을 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배경이다. 마치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졸부(?)의 느낌일까나. 기회는 많지만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이 책을 집필한 사람들, 이러한 경험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사람들이 다름아닌 서울문화재단의 실무자들이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온 그들의 경험을 책으로나마 우리가 만나보면서, 간접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러한 작고 큰 움직임들이 모여 사회를 다시 빚어나간다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우리나라의 저력으로 보건데,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서는 조금 더 나은 것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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