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꼬리 어딨지?
마이클 그레니엣 글.그림, 최용환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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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앗 동화책이다!!
가뜩이나 책 욕심이 많은 나인데, 아들을 낳고 그 욕심이 두 배, 아니 몇 배나 더 커진 것 같다. 이젠 이런 저런 동화책과 전집에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는 중. 오늘 아침 신랑과 QT를 하면서 "요즘 내가 하나님보다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냉큼 "아이고야, 난 아마 '아람 자연이랑' 전집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라는 회개(?)가 절로 나오니 ㅋㅋㅋ 이제는 좀 자제해야 할 듯 싶다.

아무튼 그래서 보자마자 "어머, 이 책은 꼭 읽어야 해~"라고 생각했던 <내 꼬리 어딨지?>. 아기 개구리(라는게 있나? 개구리 아기면 올챙이 아닌가?) 하하하는 자신에게 없는 꼬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개구리가 꼬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데 자신에게 꼭 맞는 꼬리를 찾아 떠나겠다니... 음... 뭔가 추측되는 결말이 있었다.

남들에게 모두 있기 때문에 부러워서 꼬리를 찾아나선 하하하가 여러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은 꼬리가 없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대로가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 딱 봐도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나 웬걸.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다르다.

하하하는 원숭이나 사자의 꼬리를 보자마자 곧장 달려들어 "이 꼬리 나 가질래"라는 상당히 건방지면서도 당돌한 멘트를 날리고, 그런 하하하를 만나는 동물들 족족 주먹으로(!) 허공에(!!) 날려버린다(....... 뭔 애들 동화책이 이렇다냐). 더 재미있는건 하하하는 한번도 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또또또 도전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맞아서 아프다던가, 슬프다던가 하는 감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꼬리를 찾아서 가져야만 하겠다는 집념 뿐이다.

이거 좀 엽기 아닌가? 뭐지? 친구가 이유없이 무작정 내 것을 달라고 하면 주먹으로 쳐도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인가? 아무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깜찍한 그림체였지만 이런 반전이 숨어있을줄이야...

함께 읽던 신랑이 귀띔해준 또 한가지 사실. 하하하는 시종일관 입에 커다란 침방울을 달고 있는데, 이 침방울은 하하하가 드디어 꼬리를 찾고 나서야 사라진다 (몇 번 봤어도 난 몰랐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지... 뭔가 지나친 욕망이나 욕심을 표현한 작가의 의도일까나?

조금 더 당황스러운 건 바로 엔딩.
그 정도 맞고(?) 거부당했으면 포기할법도 한데 하하하는 찾고 또 찾아 드디어 자신의 꼬리를 발견하게 된다. 뭐... 자신의 꼬리가 아니라 도마뱀에게서 잘려나온 "버린 꼬리"이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도마뱀은 이 중 유일하게 하하하를 때리지 않는데, 그것이 친절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어차피 자기에게 필요없으니 가져가도 된다는 논리인지라 뭔가 꺼림직하다.

아무튼 그 꼬리를 자신의 엉덩이에 침으로 붙인 뒤(...) 행복해진 개구리 하하하. 그리고 그는 축하해주는 다른 개구리들과 기뻐서 계속 하하하 하며 웃었다 하는데...

진심... 이게 뭐지...??

당황스러운 내용 전개와 결말. 뭔가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라는 엄청난 교훈을 확실히 기대했던 나로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내용이다. 마치 어린이 판타지 애니메이션인줄 알고 <판의 미로>를 봤다가 면도칼에 뺨이 잘려나가는 걸 보고 식겁힌 그런 느낌? 아니, 그것보단 좀 나으려나...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체에 뭔가 교훈이 담겨있을 것 같은 스토리라도 방심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된 책.
내가 모르는 교훈과 메타퍼(metaphor)가 있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내 잘못이지만... 지금으로썬 암만 생각해도 뭔지 모르겠다는게 함정. 뭔가 작가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일 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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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최효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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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성공하기 바란다면 독신(독서의 신)으로 키워라."

귀가 닳도록 들어 식상하기까지 한 이야기지만 자녀를 사랑한다면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라고 한다. 그 땐 이치에 맞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막상 아들이 태어나고 나니 그렇게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엄습한다. 아프면서 크고, 위기를 돌파하며 성장하는 것인데 엄마 마음같아서는 그저 햇살 가득한 날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웃고 또 웃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기도하지만, 우리 인생살이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니, 오히려 하루하루 척박한 고생과 무모한 도전에 허덕이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성공하기 위해(혹은 인간다운 삶을 안위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요구되는 시대에 아이에게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이 내 아이를 험난하기 짝이없는 이 세상에서 굳건한 성인으로 만들어주고 지켜줄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물론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믿음이다. 엄마로써 꼭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건강한 신앙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 것이 아니니까 공부도 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야 할텐데, 그렇다고 내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되는 "학부모"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기에, 이제 간신히 돌을 바라보는 아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교육관과 철학으로 이 아이를 키워야할지 자주 생각하곤 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내 생각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분명하다.

공부는 못해도 좋아, 하지만 책 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읽자!

그런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하고 유익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예담의 신간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이다.


처칠 가와 케네디 가, 네루 가, 루즈벨트 가, 버핏 가, 카네기 가, 헤세 가, 박지원 가, 밀 가, 이율곡 가 등 열 개의 명문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한 가문에 내려오는 독서 비법을 전하고 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상황에 처한 가문에서 역사에 남을 위인이 탄생하기까지 그 가문만의 특별하고 독자적인 독서 풍토가 있었다는 전제 하에서 시작하며 독서에 얽힌 각 가문의 이야기와 그로 인해 자녀들이 받았던 영향을 분석하고, 마지막에는 즐겨 읽힌 책들의 목록과 가문에서 탄생한 꼭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부끄럽지만 인도의 총리 가문 네루 가라던가 영국의 지식인이었던 존 스튜어크 밀의 밀 가는 생소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하나의 인재가 탄생하기까지 그 집안의 분위기와 부모님의 교육철학, 솔선수범하여 행동으로 보여주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본문의 내용을 다시 추려 번호와 함께 핵심을 짚어주기 때문에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복습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저자는 17년간 기자로 일하다가 칼럼니스트이자 작가로 변신하여 이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교육서를 몇 권 집필한 경력이 있는데, 책의 뒷날개에 간단한 설명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제목만 읽어도 귀가 솔깃해지는 명문가의 자녀교육법이라니... 왜 이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모든 내용에 공감할 순 없었다. 특히 자녀를 정치가로 만들고 싶으면 이 가문을, 예술가로 만들고 싶다면 저 가문을 참고하라는 저자의 말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첫째로 내가 멋대로 자녀의 미래를 결정지어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었고(자식은 포켓몬이 아니야!), 둘째로는 독서가 마치 성공을 위한 열쇠로만 치부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에 수록된 명문가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성공하기 위해서 책을 읽히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독서를 통해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나아가 인성을 키움으로써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자라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재로 키워져 큰 일을 했던 것은 아닌지... 뭐 알 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독서가 돈 많이 벌고 성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참 슬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렇게 책 읽혀서 자녀를 성공시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 수록 그동안 독서에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쩍 이것 저것 인지하는 것이 많아진 아들을 위해 좀 더 본을 보이고,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는 다짐도 했고 말이다.
저자의 다른 책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무엇이 어떻건간에 책을 읽는것이야말로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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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 - 평판으로 승자가 되는 법
데이비드 톰슨 & 마이클 퍼틱 지음, 박슬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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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서부터 핸드폰으로 모바일 쇼핑을 할 때 시작화면에는 날씬한 라인을 뽐내는 패셔너블한 여성 대신에 젖병과 아기옷이 나타났다. 한참 신랑과 이곳 저곳 여행을 다닐 때는 초기화면에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휴양지의 모습이 보이곤 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때맞춰(?) 시작화면까지 변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차라리 라면을 오래 두었더니 불었다던가 매일밤 야식을 먹었더니 살이 쪘다는 걸 우연으로 믿을지언정 절대 이런 류의 변화를 우연으로 믿어선 안된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조금 생소할 수 있는 "평판경제"를 다룬 책 <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의 내용이다.

물론 냉정하게 볼 때 멍청한 배너 광고 한 번 클릭했다고 취직기횔 놓칠 리는 없다. 그렇지만 사이비 과학 관련 광고나 뱀 오일 광고를 지나치게 자주 클릭한다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 잠재 고용주가 사용하는 알고리즘이 수많은 지원서 중에서 당신의 이름을 자동으로 걸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29페이지)

사소한 클릭 혹은 사소한 검색어 하나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나비효과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저자가 언급한대로 예전부터 평판은 우리에게 있어 (일반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자 명예였지만 그 범위에 있어 한정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유한한 것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기 어려운 요즘 세대에 (인터넷에서 일주일간 떨어져 있을 때의 스트레스가 이혼했을 때의 스트레스에 맞먹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하도 들어 식상할 정도다) 웹상에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기록된다는 것은 사실 소름끼치는 일이다.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은밀한 비밀들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제3자에게 남김없이 까발려지는 격이다.

'빅 데이터' 시대인 오늘날 단순히 내가 클릭한 광고를 분석하여 나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 전부라면, 곧 다가올 (혹은 이미 도래한) '거대 분석(big analysis)' 시대는 내가 어떤 광고를 무엇을 하다가 언제 어떤 맥락으로 클릭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모두가 자고 있을 한밤중에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뒤지면서 이것 저것 구경만 하고 자극적인 기사가 떴을 때 클릭하고 읽다가는 다시금 광고에 정신을 빼앗겨 이것 저것 누르고 있다면, 충동적이지 않고 건실한데다 근면한 직원을 찾는 기업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러한 조사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하거나 인사를 진행할 때 상당부분 비중을 두고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지 쌓인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만한 기술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없다고 하는데, 이미 활발하게 개발이 진행중인데다 제대로 된 기술이 나오기까지 모든 데이터가 저장매체에 빠짐없이 저장되고 있다고 하니 지금부터 무언가를 쓰거나 읽거나 클릭하기 전 한 번 정도는 더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듯 싶다.

평판경제에 있어 굳이 멀리갈 필요도 없다. 블로거들 사이에선 이미 세숫비누만큼이나 친근란 "저품질 블로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까지 네이버는 공식적으로 저품질 블로그란 없으며 그러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블스블 캠페인을 통해 저품질 블로그가 더이상 인터넷 상에 떠도는 괴담이나 네스호의 괴물이 아님이 판명났다. 결국 이 저품질 블로그도 블로거로써의 평판에 따라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공개되지 않은 어떠한 알고리즘으로 인해 내가 인터넷 환경에 스팸을 제공하며 중요한 정보보다는 홍보와 광고글을 배포한다고 컴퓨터가 인식한다면 과감히(?) 내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네이버 검색결과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다. 수많은 추측과 연구로 인해 밝혀진 (혹은 사실로 믿어지는) 알고리즘들은 하나같이 맥락을 유추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올리는 글을 판단하는 것들이다.

저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이것이 우리가 웹상에서 행하는 모든 정보에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블로그에 홍보글만 잔뜩 올리면 스팸 블로거로 낙인찍히듯, 시시껄렁한 기사를 읽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거나 요상한 물건(?)을 주문하고 악성 댓글을 달고 인터넷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이 자기소개서를 쓰듯 고스란히 내 경력에 남게 될 것이며, 오히려 스스로 써낸 자기소개서보다도 더 강력하게앞길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충분히 숨길 수 있었던 은밀한 취향이나 취미도 웹상에서의 행동에 따라 온천하에 공개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게시글들이 업무의 연장선에서 평가받고 있는데다가 미국에선 페이스북이 최초로 이혼 사유로 인정받은 해프닝까지 있었으니, 익명이라는 가면 아래 함부로 손가락을 놀려선 안될 것이다(사실 익명이라는 것을 믿는 거 자체가 엄청나게 순진한 일이지만).

흥미로웠다. 뭔가 먼 미래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데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라니. 입단속을 잘해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의무였다면 이젠 손가락도 제대로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미래를 따라가려면 내 인식부터가 많이 변해야 하고,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해야 한다는 위기의식 아닌 위기의식마저 들었다.

정말 디지털 평판으로 부를 이룩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민망하거나 원치 않은 상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신중히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나 뿐이라고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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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밤이와 안녕할 시간 스콜라 꼬마지식인 13
윤아해 지음, 조미자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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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후반을 함께 보냈던 미아가 올해로 벌써 만 일곱살이다. 의지할 데 하나 없었던 외로운 유학 생활에서 나의 든든한 친구이자, 귀여운 딸내미이자 묵묵히 고민을 들어주던 조력자였던 미아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눈에 띄게 움직임도 적어졌고, 신이 나서 뛰다가도 금새 숨이 차 주저앉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산책을 데리고 다니며 평소 체력을 길러주지 않은 내 탓이 가장 크다.


아들이 태어나고, 신랑과 나는 아들과 미아가 함께 공원을 뛰어노는 상상을 하며 괜시리 설레는 마음에 미소를 짓곤 했다.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비록 겁은 많지만 따뜻한 체온과 앙증맞은 꼬리를 기꺼이 내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가지 걸렸던 것은 바로 미아의 나이였다. 아들이 자라 뛰어놀 때가 되면 미아는 할머니 강아지가 되고 마니까 말이다. 



마침 그 때 스콜라의 신간이 도착했다. <밤밤이와 안녕 할 시간>. 책 표지만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이미 짐작이 갔지만, 그 내용이 아니길 바랐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저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의 이름이 밤밤이가 아니길 바랐다. 주책맞게 책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울컥 솟았다. 


받아들이기 싫은만큼 우직하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이별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고 했던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상투적인 이 말에 얼마나 큰 깊이가 담겨져 있는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하곤 한다. 


주인공이 오랜 시간 함께 사랑하며 지냈던 강아지 밤밤이가 죽었다. 우린 모두 죽는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있지,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스스로 겪고 나서야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이별은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눈앞에 닥친 어마어마한 일에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행동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곤 한다. 


볼 수도, 쓰다듬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안아 줄 수도, 따뜻함을 느낄 수도 없는 것. 죽음.

어제까지만 해도 체온을 느끼며 살을 맞댈 수 있었던 밤밤이는 이제 더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

때로는 돌려돌려 말하는 것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것이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주인공에겐 떠나간 밤밤이 외에도 주인공이 올바른 이별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곰돌이가 있다(밤밤이가 살아있을 때 밤밤이 덕분에 여러 고생을 하긴 했어도). 곰돌이는 총 여덟가지 건강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고 않는 그런 방법 말이다. 물론 말처럼 된다면야 세상에 힘든 일이 있겠냐만은, 곰돌이의 조언을 듣고 있자면 그동안 나 자신부터 너무도 "건강하지 못한" 이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아를 키우기 전 동생이 키우다 내게 맡긴 햄스터를 데리고 있었다. 그 때도 혼자 살고 있었기에 햄스터를 방안에 풀어놓기도 하고, 말도 걸고 돌보면서 애틋한 정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코코리의 엉덩이 부분이 심하게 부어오를 때만 해도 뭔가 변비이거나 별 볼일 없는 것이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엉덩이 쪽에 생겨난 혹은 점점 더 커졌고, 많은 햄스터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흔한" 질병인지라 나는 그것이 악성 종양인 것을 알게 되었다. 코코리의 모래시계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던 내 동거인(?)이었던 코코리가 작별을 고할까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어느 날 아침. 부스스 잠에서 깨어 일어난 내 머릿속에 또렷한 음성이 들렸다. 


"코코리가 떠났어. 하지만 괜찮아. 괜찮을거니까 울지 마."


지금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던걸까? 황급히 아랫층으로 뛰어내려가 코코리의 집을 살폈다. 이름을 불러보아도 미동도 없었다.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는 가끔 그랬던지라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코코리가 자고 있는 집의 지붕을 살짝 열었다. 톱밥과 지푸라기로 풍성하게 이불을 만든 채로 코코리가 입을 벌리고 누워 있었다. 이미 죽은지 꽤 되었는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제서야 가슴의 돌이 쿵 떨어져버린 느낌이었다. 마치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 마냥 펑펑 울었다. 코코리를 보면서 울었고, 예쁜 상자에 톱밥과 지푸라기로 침대를 만들어 코코리를 옮기면서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훌쩍이며 마트에 큰 화분과 흙을 사러 갔고, 집으로 와 코코리를 담은 상자를 화분에 정성스레 묻었다. 화분은 침실과 연결되어 있던 테라스에 놓아두었다. 


사실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겠지만, 코코리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많이 컸던 것 같다. 몇 날 며칠을 울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불쑥 눈물이 나던 적도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모른체 하다가도 무심히 내 손에 와서 한 손만 새초롬히 올려놓던 코코리 생각이 나면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당시 내 주위에는 나의 이런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위로해주고 슬픔을 이해해주는 듯 싶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오버하지 말라며, 그만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겨우 햄스터 한마리가 죽었는데 뭐 그렇게 난리법석이냐고, 제발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듣는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미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토록 오랫동안 슬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코코리가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존재였기도 했지만, 코코리를 잃은 슬픔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던 기회나 방법을 찾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아들은 달랐으면 좋겠다. 충분히 슬퍼하고, 마음껏 추억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이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미아를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미안하기까지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인만큼 나부터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잘 알아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아보이고 매일이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 같아도 우리 삶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진짜 없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도, 변하지 말아야만 하는 것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형체를 알 수 없게 변해버리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이니까 말이다. 그 중에 있어 만남과 헤어짐은 평생동안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즐거운 만남보다도 아쉽고 아픈 이별이 많을 수 있기에, 우리는 그 때마다 제각각 지나간 사람을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지 고민하고 해내어야만 한다. 


아들보다도 내가 먼저 잘 읽어야 했던 책이었다.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보면 몸이 큰다고 마음이 함께 크는 것은 아닌가보다. 아직까지 내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많은 감정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건재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슬플 땐 슬퍼하기. 하지만 때가 되면 놓아주고 다시 행복해지기. 어쩌면 이 책은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배워야만 하는 중요한 지혜를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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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야기 그림성경 - 엄마아빠랑 함께 나누는
줄리엣 데이빗 글, 제인 히예스 그림, 오애리 옮김 / 더드림주니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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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을 때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읽어주려고 샀던 첫 아기 성경을 시작으로,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으며 주신 아기 성경, 그리고 오늘 소개할 <매일 이야기 그림성경>까지... 아들은 10개월이 채 안되어 벌써 세 권의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안의 알록달록한 그림에 관심을 보이거나, 그보다도 종이를 먹어버리는 데(...) 더 큰 재미를 느끼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책을 바닥에 놓고 잠시 자리를 떴다가 돌아왔을 때 이미 아들에게 먹히고 있는(!)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황급히 책을 피신시켰다. 다행히 글이 없는 여백이었던지라 외관만 제외하곤 잃은 것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보드북이 아니라면 더 각별히 주의해야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두 권의 아기성경과는 달리, <매일 이야기 그림성경>은 제목 그대로 매일 한쪽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다. 일 년이 365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366일인 때도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선 총 366개의 이야기가 눈에 쏙 들어오는 삽화와 짧은 본문으로 엮어져 있다. 영어로 된 원제목이 말하고 있듯 이 책은 Baby가 아닌 Children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페이지도 보통의 얇은 종이로 되어있고, 모서리도 둥글게 처리되어 있지 않아 아기들이 함부로 만지다간 다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하루에 한 쪽(혹은 한 장)씩 읽을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라 오래오래 간직하며 아들과 함께 읽고 싶은지라 향후 몇 년간은 간수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가 한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만 두껍긴 두껍다. 1일차부터 245일차까지는 구약이, 그 이후는 신약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구약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서 놀랐다. 물론 양적으로 구약이 훨씬 많긴 하지만 보통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기성경과는 차이가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다보니 366일째 되어서도 겨우 사도행전에서 끝이 나버린다는 것이다. 적어도 바울서신의 중요한 부분이나 요한계시록의 시작과 끝 정도는 나올 것이라 기대했는데 뭔가 생각치 않은 곳에서 뚝 끊긴 느낌이랄까. 일 년이 365일 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나. 아무튼 아쉬움이 남는다. 



삽화는 정말 예쁘다. 너무 아기스럽지도 않고, 아들이 조금 큰 후에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삽화의 비중이 커져 한 페이지가 아닌 두 페이지에 걸쳐 하나의 스토리가 엮어져 있다. 실제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짧은 본문과 멋지게 어우러져 서로를 채워주고 있기에 읽는 내내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웠다. 

하나의 제목 아래 한 단락 정도의 짧은 본문이 이어지고, 옆에는 관련 성경 구절이 쉬운 성경으로 한두절 정도 소개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QT를 하며 생각해볼만한 짧은 문장이 곁들여져 있어 이대로 활용한다면 제법 짜임새 있는 QT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상깊었던(?) 금발이 아닌 짧은 머리(!)의 예수님 모습 ㅎㅎ 어쩔 수 없는 선입견 때문인가 일반적으로 헤어샴푸 모델마냥 일정하고 윤기있는 웨이브 머리가 찰랑찰랑 어깨까지 내려오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과는 달랐다 (그래도 더부룩한 수염은 역시 어쩔 수 없는건가?). 


처음 성경을 접하면서 글로만 읽었을 때 그 내용을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시작이 될 것 같은 책이다. 물론 본문의 내용은 분량제한으로 인해 지나치게 간소화되어 있지만, 이것으로 성경을 공부할 것도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장씩 짧게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아이에게도 QT가 지루하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즐거운 기회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엄마아빠의 일관성있는 노력과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처음엔 차라리 날짜가 적혀 있어 찾기 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시작했느냐에 따라 읽는 부분이 달라지는 것보다 차라리 아예 날짜가 정해져 있는게 낫지 않았을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면 하루 이틀 어쩔 수 없이 거르게 되었을 때 며칠치를 한꺼번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책의 구조가 좋을 것 같았다. 하루를 거르더라도 그 다음 기회에 다음 이야기를 읽는 것이 훨씬 나을테니까 말이다. 

단, 매일 한 장씩 읽는 특성상 책갈피 하나 정도는 꼭 만들어주었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ㅠㅠ 매번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기도 그렇고, 책날개가 없으니 다른 소품(?)이 없이는 읽은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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