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밤이와 안녕할 시간 스콜라 꼬마지식인 13
윤아해 지음, 조미자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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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후반을 함께 보냈던 미아가 올해로 벌써 만 일곱살이다. 의지할 데 하나 없었던 외로운 유학 생활에서 나의 든든한 친구이자, 귀여운 딸내미이자 묵묵히 고민을 들어주던 조력자였던 미아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눈에 띄게 움직임도 적어졌고, 신이 나서 뛰다가도 금새 숨이 차 주저앉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산책을 데리고 다니며 평소 체력을 길러주지 않은 내 탓이 가장 크다.


아들이 태어나고, 신랑과 나는 아들과 미아가 함께 공원을 뛰어노는 상상을 하며 괜시리 설레는 마음에 미소를 짓곤 했다.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비록 겁은 많지만 따뜻한 체온과 앙증맞은 꼬리를 기꺼이 내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가지 걸렸던 것은 바로 미아의 나이였다. 아들이 자라 뛰어놀 때가 되면 미아는 할머니 강아지가 되고 마니까 말이다. 



마침 그 때 스콜라의 신간이 도착했다. <밤밤이와 안녕 할 시간>. 책 표지만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이미 짐작이 갔지만, 그 내용이 아니길 바랐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저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의 이름이 밤밤이가 아니길 바랐다. 주책맞게 책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울컥 솟았다. 


받아들이기 싫은만큼 우직하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이별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고 했던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상투적인 이 말에 얼마나 큰 깊이가 담겨져 있는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하곤 한다. 


주인공이 오랜 시간 함께 사랑하며 지냈던 강아지 밤밤이가 죽었다. 우린 모두 죽는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있지,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스스로 겪고 나서야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이별은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눈앞에 닥친 어마어마한 일에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행동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곤 한다. 


볼 수도, 쓰다듬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안아 줄 수도, 따뜻함을 느낄 수도 없는 것. 죽음.

어제까지만 해도 체온을 느끼며 살을 맞댈 수 있었던 밤밤이는 이제 더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

때로는 돌려돌려 말하는 것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것이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주인공에겐 떠나간 밤밤이 외에도 주인공이 올바른 이별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곰돌이가 있다(밤밤이가 살아있을 때 밤밤이 덕분에 여러 고생을 하긴 했어도). 곰돌이는 총 여덟가지 건강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고 않는 그런 방법 말이다. 물론 말처럼 된다면야 세상에 힘든 일이 있겠냐만은, 곰돌이의 조언을 듣고 있자면 그동안 나 자신부터 너무도 "건강하지 못한" 이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아를 키우기 전 동생이 키우다 내게 맡긴 햄스터를 데리고 있었다. 그 때도 혼자 살고 있었기에 햄스터를 방안에 풀어놓기도 하고, 말도 걸고 돌보면서 애틋한 정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코코리의 엉덩이 부분이 심하게 부어오를 때만 해도 뭔가 변비이거나 별 볼일 없는 것이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엉덩이 쪽에 생겨난 혹은 점점 더 커졌고, 많은 햄스터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흔한" 질병인지라 나는 그것이 악성 종양인 것을 알게 되었다. 코코리의 모래시계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던 내 동거인(?)이었던 코코리가 작별을 고할까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어느 날 아침. 부스스 잠에서 깨어 일어난 내 머릿속에 또렷한 음성이 들렸다. 


"코코리가 떠났어. 하지만 괜찮아. 괜찮을거니까 울지 마."


지금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던걸까? 황급히 아랫층으로 뛰어내려가 코코리의 집을 살폈다. 이름을 불러보아도 미동도 없었다.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는 가끔 그랬던지라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코코리가 자고 있는 집의 지붕을 살짝 열었다. 톱밥과 지푸라기로 풍성하게 이불을 만든 채로 코코리가 입을 벌리고 누워 있었다. 이미 죽은지 꽤 되었는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제서야 가슴의 돌이 쿵 떨어져버린 느낌이었다. 마치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 마냥 펑펑 울었다. 코코리를 보면서 울었고, 예쁜 상자에 톱밥과 지푸라기로 침대를 만들어 코코리를 옮기면서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훌쩍이며 마트에 큰 화분과 흙을 사러 갔고, 집으로 와 코코리를 담은 상자를 화분에 정성스레 묻었다. 화분은 침실과 연결되어 있던 테라스에 놓아두었다. 


사실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겠지만, 코코리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많이 컸던 것 같다. 몇 날 며칠을 울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불쑥 눈물이 나던 적도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모른체 하다가도 무심히 내 손에 와서 한 손만 새초롬히 올려놓던 코코리 생각이 나면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당시 내 주위에는 나의 이런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위로해주고 슬픔을 이해해주는 듯 싶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오버하지 말라며, 그만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겨우 햄스터 한마리가 죽었는데 뭐 그렇게 난리법석이냐고, 제발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듣는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미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토록 오랫동안 슬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코코리가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존재였기도 했지만, 코코리를 잃은 슬픔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던 기회나 방법을 찾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아들은 달랐으면 좋겠다. 충분히 슬퍼하고, 마음껏 추억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이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미아를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미안하기까지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인만큼 나부터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잘 알아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아보이고 매일이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 같아도 우리 삶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진짜 없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도, 변하지 말아야만 하는 것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형체를 알 수 없게 변해버리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이니까 말이다. 그 중에 있어 만남과 헤어짐은 평생동안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즐거운 만남보다도 아쉽고 아픈 이별이 많을 수 있기에, 우리는 그 때마다 제각각 지나간 사람을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지 고민하고 해내어야만 한다. 


아들보다도 내가 먼저 잘 읽어야 했던 책이었다.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보면 몸이 큰다고 마음이 함께 크는 것은 아닌가보다. 아직까지 내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많은 감정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건재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슬플 땐 슬퍼하기. 하지만 때가 되면 놓아주고 다시 행복해지기. 어쩌면 이 책은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배워야만 하는 중요한 지혜를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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