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 - 평판으로 승자가 되는 법
데이비드 톰슨 & 마이클 퍼틱 지음, 박슬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언젠가서부터 핸드폰으로 모바일 쇼핑을 할 때 시작화면에는 날씬한 라인을 뽐내는 패셔너블한 여성 대신에 젖병과 아기옷이 나타났다. 한참 신랑과 이곳 저곳 여행을 다닐 때는 초기화면에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휴양지의 모습이 보이곤 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때맞춰(?) 시작화면까지 변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차라리 라면을 오래 두었더니 불었다던가 매일밤 야식을 먹었더니 살이 쪘다는 걸 우연으로 믿을지언정 절대 이런 류의 변화를 우연으로 믿어선 안된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조금 생소할 수 있는 "평판경제"를 다룬 책 <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의 내용이다.

물론 냉정하게 볼 때 멍청한 배너 광고 한 번 클릭했다고 취직기횔 놓칠 리는 없다. 그렇지만 사이비 과학 관련 광고나 뱀 오일 광고를 지나치게 자주 클릭한다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 잠재 고용주가 사용하는 알고리즘이 수많은 지원서 중에서 당신의 이름을 자동으로 걸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29페이지)

사소한 클릭 혹은 사소한 검색어 하나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나비효과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저자가 언급한대로 예전부터 평판은 우리에게 있어 (일반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자 명예였지만 그 범위에 있어 한정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유한한 것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기 어려운 요즘 세대에 (인터넷에서 일주일간 떨어져 있을 때의 스트레스가 이혼했을 때의 스트레스에 맞먹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하도 들어 식상할 정도다) 웹상에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기록된다는 것은 사실 소름끼치는 일이다.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은밀한 비밀들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제3자에게 남김없이 까발려지는 격이다.

'빅 데이터' 시대인 오늘날 단순히 내가 클릭한 광고를 분석하여 나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 전부라면, 곧 다가올 (혹은 이미 도래한) '거대 분석(big analysis)' 시대는 내가 어떤 광고를 무엇을 하다가 언제 어떤 맥락으로 클릭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모두가 자고 있을 한밤중에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뒤지면서 이것 저것 구경만 하고 자극적인 기사가 떴을 때 클릭하고 읽다가는 다시금 광고에 정신을 빼앗겨 이것 저것 누르고 있다면, 충동적이지 않고 건실한데다 근면한 직원을 찾는 기업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러한 조사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하거나 인사를 진행할 때 상당부분 비중을 두고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지 쌓인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만한 기술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없다고 하는데, 이미 활발하게 개발이 진행중인데다 제대로 된 기술이 나오기까지 모든 데이터가 저장매체에 빠짐없이 저장되고 있다고 하니 지금부터 무언가를 쓰거나 읽거나 클릭하기 전 한 번 정도는 더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듯 싶다.

평판경제에 있어 굳이 멀리갈 필요도 없다. 블로거들 사이에선 이미 세숫비누만큼이나 친근란 "저품질 블로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까지 네이버는 공식적으로 저품질 블로그란 없으며 그러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블스블 캠페인을 통해 저품질 블로그가 더이상 인터넷 상에 떠도는 괴담이나 네스호의 괴물이 아님이 판명났다. 결국 이 저품질 블로그도 블로거로써의 평판에 따라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공개되지 않은 어떠한 알고리즘으로 인해 내가 인터넷 환경에 스팸을 제공하며 중요한 정보보다는 홍보와 광고글을 배포한다고 컴퓨터가 인식한다면 과감히(?) 내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네이버 검색결과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다. 수많은 추측과 연구로 인해 밝혀진 (혹은 사실로 믿어지는) 알고리즘들은 하나같이 맥락을 유추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올리는 글을 판단하는 것들이다.

저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이것이 우리가 웹상에서 행하는 모든 정보에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블로그에 홍보글만 잔뜩 올리면 스팸 블로거로 낙인찍히듯, 시시껄렁한 기사를 읽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거나 요상한 물건(?)을 주문하고 악성 댓글을 달고 인터넷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이 자기소개서를 쓰듯 고스란히 내 경력에 남게 될 것이며, 오히려 스스로 써낸 자기소개서보다도 더 강력하게앞길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충분히 숨길 수 있었던 은밀한 취향이나 취미도 웹상에서의 행동에 따라 온천하에 공개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게시글들이 업무의 연장선에서 평가받고 있는데다가 미국에선 페이스북이 최초로 이혼 사유로 인정받은 해프닝까지 있었으니, 익명이라는 가면 아래 함부로 손가락을 놀려선 안될 것이다(사실 익명이라는 것을 믿는 거 자체가 엄청나게 순진한 일이지만).

흥미로웠다. 뭔가 먼 미래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데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라니. 입단속을 잘해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의무였다면 이젠 손가락도 제대로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미래를 따라가려면 내 인식부터가 많이 변해야 하고,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해야 한다는 위기의식 아닌 위기의식마저 들었다.

정말 디지털 평판으로 부를 이룩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민망하거나 원치 않은 상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신중히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나 뿐이라고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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