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읽는다 - 금세기 최고 멘탈리스트의 강력한 신체언어 규칙 16
토르스텐 하베너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일스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 전부터 엄청나게 기대하던 책이다. 세상에 생각을 읽는다니! 오래전 멜 깁슨 주연의 "What Women want"가 떠오른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단한 여성편력가였던 주인공이 번개에 맞은 후(?) 여성이라면 (그것이 개나 고양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생각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영화니까 그렇지 현실이었으면 어떤 여성과도 사랑에 빠질 수 없을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아마도)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싶어 한다. 함께 사는 가족이나 사귀는 연인, 친구들의 생각도 그렇지만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이나 상사들, 동료들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한편 어느 누구라도 "진짜 마음"을 알기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저자인 토르스텐 하베너는 유명한 공연예술가(책에선 "무대예술가"라고 번역되었는데 아마도 Buehnenkuenstler라는 독일어를 직역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공연예술가가 더 올바른 단어선택이 아닐까 싶다)인데, 관객의 신체언어를 통해 그의 생각을 간파하는 특별한 공연 프로그램으로 독일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성공적인 투어를 마쳤다고 한다. 아직 내가 비엔나에 살고 있었을 때부터 유명했다고 하는데도 이름을 처음 들어 궁금한 마음에 위키백과를 검색해보니, 확실히 책에 소개된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프로필이 있었던 것은 함정 ㅎㅎ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콘텐츠에 대단히 시니컬한 독일 정서답게 그는 "마술사 그리고 작가"로 소개되어 있었다. 물론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단어 멘탈리스트 역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지만, 이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라고 주장한다"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건 덤. 아무튼 현지에서는 그의 이러한 특별한 능력 및 콘텐츠 등을 하나의 놀라운 볼거리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가 현지에서 인정을 받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첫 책인 <생각을 읽는다>를 비롯, 여러 권의 저서들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초청공연과 강의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콘텐츠와 남다른 능력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그의 비밀을 조금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을 읽고 하베너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그 역시도 책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하며,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감히 말하건대 노력과 연습으로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강력한 신체언어 규칙 16"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신체언어의 비밀은 그닥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사실 신체언어의 비밀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마치 치트키처럼 알고 있기만 하면 무엇이든 공략 가능한 마법주문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가 말하는 신체언어를 읽어내는 방법을 하나로 요약하자면 "섬세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눈썰미, 그리고 수많은 경험" 정도가 될 수 있을텐데, 이것 역시 각 사람이 가진 재능이 천차만별인만큼 하베너처럼 되겠다는 야무진 꿈은 아무래도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놀라운 일은 아마 그에게도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 자신도 책에서 밝힌 바 있듯 그의 쇼는 가장 작은 디테일까지 처음부터 철저히 계산되고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 놀라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건강한 자존감의 정립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신감의 향상이다. 실제로 그가 남녀관계나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조언하고 있는 부분은 가정불화나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신선하다. 여기서도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그를 조종하려 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근본적으로 당신 자신만이 스스로를 불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위치가 안 된다. 당신만이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고 열쇠를 쥐고 있다. 당신이 화가 나서 분노하는 경우는, 상대방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행동하지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 (90 페이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든 말이다. 사실 내가 허락하지 않고선(?) 내가 화낼 일은 없다. 뭐가됐든 나 스스로가 화내길 허락했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내 감정을 다스려 화낼만한 가치도 없다고 타이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용납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감정노동을 아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상당히 이상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하베너는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특별해진 것은 아닐까?



당신의 생각은 아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멋진 것에 집중하면 당신의 몸이 다른 신호를 보낸다. 멋진 것이 아무리 만들어낸 것이라 해도 효과가 있다. 당신의 얼굴 표정은 부드러워지고 긴장이 완화되어 몸이 보내는 신호도 열린 자세가 된다. (232 페이지)



어떻게 생각하면 이 책이 주는 핵심 메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내가 읽어야 할 생각은 바로 나 자신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다스릴 수 있어야 원치 않는 나의 모습을 버리고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익히 들어오던 '마인드컨트롤'의 개념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는데, 읽으면서 나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 패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베너는 부지런히 책을 출간하는 한편 신체언어를 주제로 한 강연에도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를 넘어서지 못한(혹은 그의 존재를 위협할만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의 특별한 능력이 그만큼 특별한 재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신체언어에 있어서만큼은 그야말로 보통사람인 나로서는 그의 놀라운 세계를 잠시 둘러볼 수 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더불어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암시와 긍정적인 생각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71-72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는 간단한 테스트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왼쪽"이라는 단어가 오른쪽에 적혀있을 때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라고 읽어야 하는 (즉, 뇌가 익숙한대로 읽어선 안되는) 테스트였는데, 오른쪽과 왼쪽 정렬이 틀리다보니 의미가 없어졌다. 나름 뇌과학의(?) 흥미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참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심 많은 아이로 키워라 - 상식을 뛰어넘는 29가지 육아법
헤더 슈메이커 지음, 김정은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임신하면서 한두 권씩 사서 모으기(?) 시작한 육아서적이 책장 하나를 차지하고도 남는다. 조금 늦게 엄마가 지인들에게 선물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얼추 6,70권이 되는 셈이다. 사실 이렇게 많은 육아서적이 있는지도 몰랐고 지속적으로 발간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웬만한 육아서적은 읽어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많이 읽었는데도 아기는 아직까지 나에게 "미지의 세계". 수많은 책을 읽고 깨닫게 것은 아기가 아직까지 나에게 "미지의 세계"라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왕초보 엄마로써 내가 저질렀던(?) 가장 실수는 내가 읽고 공부했던 육아의 지식들에 따라 아기가 움직여줄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숨겨진 치트와 공략매뉴얼을 손에 거머쥔 것처럼 아기를 이리저리 조종하려 했던 것이 가장 시행착오였던 같다. 아기는 도무지 어떠한 이론으로 담을 없는 신비롭고,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엄청난 존재인데 말이다.

돌이 지나고 어느 정도 고비를 넘겼다 생각했던 생각은 그야말로 크나큰 오산이었다. 자아가 생기고 스스로 걸을 있게 되면서 드디어 선배맘들이 말하던 "진짜 육아" 시작되었다. 생리현상과 부족한 잠과 싸워야 했던 지난 1년과는 달리 이젠 진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의 요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원하는 것은 세부적이 되었으며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시 벌어지는 상황 역시 엄청나게 다채로워졌다

수많은 엄마들이 (그리고 아빠들이) 이맘때쯤 고민에 빠진다. 예전에는 그저 아기가 울면 기저귀를 봐주고, 먹을 것을 주고, 안아주기 바빴다면 이젠 드디어 "안돼!"라는 말이 입에 쩍쩍 달라붙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안돼!"라는 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알아듣는 같은데도! 물건을 쏟고, 엎지르고, 던지고, 소리지르는 아기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엄마아빠는 드디어 육아가 기본적인 생리현상에서 확장되어 "교육" 지경에 도달했음을 느끼는 같다

14개월이 지난 아들은 요즘 소리지르기에 재미를 붙였나보다. 아빠를 닮아서 청아하기 그지 없지만 어마무시하게 목소리를 가진 아들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를 때마다 진심 언젠가 내가 완벽하게 청력을 잃을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까지도 높은 주파수대역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들리는 것을 보니 내가 청각 관리를 잘했다는 생각까지도). 소리에 민감하고 귀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이정도면 거의 테러 수준이다. 타이르고 싫다고 표현도 해봤지만 당분간 그만둘 같지는 않다. (책과 인터넷에 나온)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던 우리 부부는 "이것 또한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그저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아무튼 이맘때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 소리를 지르는 때문에 고민되는 엄마는 하나가 아닌가보다. 간단히 검색만 해봐도 수많은 엄마들의 아우성(!) 흘러넘치니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추천을 받은 답변들 상당수가 "아이를 체벌하고 때리라" 말하는 것이다.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기싸움에서 이길 없다나... 당최 14개월 아이의 어디를 때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자기 자식과 기싸움을 하려는 엄마의 궁핍한 정서지능이 딱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한 답변이 또다른 공감을 얻고 추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기까지 하는 극악한 범죄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마냥 남의 일이라고 넘어갈만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아직 알지 못한다고 무작정 모두 오냐오냐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 입장에선 그게 오히려 편한 일일진 몰라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확실한 훈육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훈육인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는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 누구도 확실하게 답하기 힘든 부분에 있어 "상식을 뛰어넘는" 답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 바로 <욕심많은 아이로 키워라> 이러한 주제에 있어 오늘 소개하고픈 책이다



서론이 무지막지하게 길었다. 그만큼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다
일단 스물아홉 개의 "상식을 뛰어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만큼 책의 분량도 장난이 아니다. 웬만한 전공도서같은 두께에 빼곡히 담긴 육아의 지식들을 읽고 있노라면 번을 읽어 달달 외워 시험이라도 쳐야 같은 분위기다. 예전에 읽던 육아책들 대부분은 반은 아는 내용을 슬슬 넘기면서 공감하며 읽을 있었는데 책은 전혀 달랐다. '? 이게 뭔소리야?' 하며 번이나 챕터를 읽어야 때도 있었으니까


일단 책에 담긴 육아 비법은 40 전통의 SYC(School for Young Children) 유치원의 교육 철학이라고 한다. 저자인 헤더 슈메이커는 저널리스트로 육아와 가정생활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쓴다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그녀의 글은 간결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때로는 상당한 호소력과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스물아홉 개의 법칙은 또다시 여덟 개의 주제로 나뉘어지는데,

1.
자유 놀이의 부활
2.
뿔난 감정
3.
사람 나누기, 장난감 공유하기
4.
뛰어놀 있는 : 아이, 권력, 활동
5.
창조력, 인내력, 그리고 진심 없는 칭찬
6.
나쁜 , 공손한 , 거짓말
7.
민감한 주제들
8.
상식을 뛰어넘는 생활 육아 법칙

테마로 분류된다

사실 '욕심많은 아이'라는 제목으로 책의 내용을 쉽게 추리할 있지는 않다. 잘못 들으면 마치 아이에게 많은 꿈과 포부와 야망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미로 들을 있을테니까 (솔직히 내가 그랬다). 하지만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하지 않아도 것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히 여겼던, 혹은 아이들에게 당연하게 요구했던 (혹은 어렸을 어른들로부터 당연하게 요구받았던) 것들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 장난감을 나누어 쓰는 , 화가 났을 내색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 한참 놀고 있더라도 엄마가 그만하라고 벌떡 일어나는 등등.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어렸을 천사 같기만 했던 아이들은 어째서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많은 경우) 엄마아빠와 원수지간이 되어버리는걸까? 도대체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에? 마녀가 나타나 주술이라도 걸어버리는 것일까? 아들을 키우면서 청소년 자녀를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가 하는 생각이다
책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배워나가며 규칙을 알고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사회의 규범은 무엇보다도 부모가 만든 규범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집안 규범들은 임기응변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일관성이 있지도 않고, 아이들로 하여금 불만감과 불공평함을 느낄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지하고 스스로가 반박할 있을 때가 되면 더이상 " 듣는 순한 " 되길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많은 경우가 이럴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부터도 그렇다. 아들에게 하거나 하지 말라고 하는 많은 것들의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이유 역시 아들보다는 나를 위한 경우가 많다. 물론 대의적으로는(?) 아들을 위한 것일지 몰라도 결국 낮잠을 잘자고, 먹고, 놀아야 내가 편하다는 생각이 저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리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아들을 재우려 하고, 먹이려 하고, 귀찮은 것들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 번인지...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제약을 둔다면 정말 숨막혀 도망가고 싶을텐데 말이다

책은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제는 까마득한 나의 어린시절, 어른들의 모순된 행동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 정의(?) 대한 상충된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용납하긴 어렵다.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라면 더더욱! 용납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일시적으로 권력에 굴복하는 것일뿐, 자신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고개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것인가? 책을 통해 나는 "진짜 훈육"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볼 있었다. 일방적으로 "나는 엄마고 너는 자식이니 너는 조용히 말을 듣고 따르기나 !"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최소한의 것을 가르치며, 안에서 최대한 나의 개성과 자유를 누릴 있도록 해주는 . , 모든 것은 하나의 전제를 만족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남의 물건에 상처를 입히지 '. 지극히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부모라면 반드시 시도해봐야 일이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시끄럽고 무조건 이렇게 해야만 " 반복하면서 나중에 아이에게 창의적이고, 새롭고, 기발한 사고를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모순된 것이 있을까 싶다.  


사실 책의 내용이 살에서 일곱 아이들의 행동발달을 기준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제 겨우 14개월이 지난 아들에게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것 또한 선입견일 지금의 아들과도 충분히 연습할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아들에게 구두 편지를 쓰게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출하게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 "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다른 제안과 방법을 제시하는 (그러니까 "금지" 아닌 "제한") 지금의 아들에게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롤테이프를 좋아하는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롤테이프를 가지고 놀려고 하는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는 구강기 탓에 자꾸 롤테이프를 뜯어 먹는데 있었다. 신랑과 나는 때마다 슬며시 롤테이프를 낚아채 보이는 곳에 숨겨두곤 했는데 (물론 열에 아홉 번은 들켜 대성통곡을 들어야 했지만), 책을 읽은 뒤에는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다시 바닥에 굴려주며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물론 아들은 자꾸 입으로 가져가려 했지만 며칠 입에 가져가려 "에이~~"라고 말하면 웃으며 바닥에 굴리는 것을 보니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는 같다. 같은 말을 번이고 해야 하는 것은 번거롭지만 아들은 확실히 입에 가져가는 숫자가 줄었고 하루에 씩이라도 횟수가 준다면 충분히 만족하며 할만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56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서평에 쓰는 것은 무리도 있을뿐더러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을 읽을 때는 앞뒤 컨텍스트(Context) 살피며 문장 안에 의미를 제대로 곱씹어봐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것도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뛰어넘는"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자마자 포스트잇에 "아들이 살이 되면 다시 읽기"라고 써서 붙여두었다. 확실히 책은 읽는다고 익힐 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번이고 읽고, 실제 생활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것으로 만들 있지 않을까? 하나하나 공부해야 하니 번거롭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많이 버려야 하는 일이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아쉬운 , 그렇게 오래 두고두고 보고싶은 책임에도 제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책이 유난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여러 읽다보니 페이지가 따로따로 분리되어 나오기도 했고 (도대체 이게 언제적 마지막으로 겪었던 일인가!) 두꺼운 책임에도 넘겨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아들이 살이 되어 다시 읽을 즈음엔 날아다니는 페이지를 찾아 읽어야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정말 소중한 깨달음을 , 고마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면서 응답받는 감사기도 - 주님과 함께하는 라이팅북
유성준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의재정립이 필요한 시점...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만큼 해보지 않았던 일을 통해 힐링을 얻으려고노력해본다


사실 2016년을 시작하면서 "신약성경 필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 꾸준히 실천해나가고 있다. 살면서 수없이 읽었던 마태복음의 말씀이 필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같다. 마디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소리내어 읽는 것이, 소리내어 읽는 것보다는 필사하는 것이 집중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만나게 책이 바로 <쓰면서 응답받는 감사기도>이다. 이른바 "라이팅북" "컬러링북" 이어 대세 반열에 오른 지금 많은 라이팅북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책은 수많은 기도문을 읽고 필사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다섯 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는 책은 지친 심령을 가다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삶의 자리에서 예배할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또한 파트의 마지막에는 감사제목을 있는 공간이 있는데 스무 개의 감사내용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파트별로 순서대로 진행한다면 유용하게 쓰일 있을 같았다.

비슷한 주제로 엮인 기도문들이지만 길이도 내용도 제각각이기에 순서대로 하기보다는 가슴에 가장 와닿는 내용을 필사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과 신앙선배들, 때로는 작자 미상의 기도문과 인디언 수우족처럼 과연 이들이 말하는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었을까 싶기도 여러 출처의 기도문이 실려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에서 쓰여진 기도문을 읽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인간이 고통받는 문제는 비슷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자신의 짐이 특별히 무겁게 느껴질 , 살기 쉬운 인생은 없지 않을까.

챕터에는 각각 스물 다섯 정도의 기도문이 실려있기에 하루 100 가량 필사한다면 권을 채울 있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 하나의 기도문을 골라 천천히 필사해보기로 했다.
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아기를 재운 식탁에 앉아 가지는 필사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물론 쉬고싶고, 놀고싶고,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힐링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빠지지 않고 필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에 쓰여진 "주님과 함께하는 라이팅북"처럼 매일매일 적은 시간이라도 고요함 가운데 하루를 되돌아보고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에 감사할 있는 자신이 되기를 꿈꾸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더를 위한 세계 최고의 EQ 수업
쑤린 지음, 원녕경 옮김 / 다연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책 제목이 "세계 최고"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PR 할 수 있는걸까? "세계적인", "세계 최고", "제일" 등의 수식어에 민감한(이라고 쓰고 안좋아한다고 읽는) 나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있던게 사실이다. 게다가 부제는 "백만 불짜리 리더십 강의 10개"다보니 뭔가 허울좋은 약장사는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다름아닌 책의 목차 때문이었다. 나름 이 책 저 책 꾸준히 읽으면서 얻은 지혜 중 하나는 "목차가 실하면 평타는 친다(?)"랄까나. 아무튼 목차가 좋은 책 치고 내용이 부실한 책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한 듯 하다. 

나 자신을 리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목차를 읽어보니 한동안 핫 이슈였던 감성지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냉큼 읽기 시작한 <리더를 위한 세계 최고의 EQ 수업>. 막상 읽으려니 묵직한 것이 분량이 꽤 되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으로 인해 2016년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슬럼프 아닌 슬럼프, 매너리즘 아닌 매너리즘(말장난인가?)에 빠진 요즘에 나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일침이 있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었다. 

IQ의 시대가 가고 한참 EQ가 떠오르던 시절, 수많은 책들과 방송, 기사들이 EQ에 대해 떠들었고 EQ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사실 대부분은 EQ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말로 "감성지능"이라 번역되는 EQ는 주입식 교육으로 대변된 IQ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으로 떠올랐고 너도 나도 EQ를 키우는 교육이라며 선전하곤 했다. IQ를 주입식 교육과 동일시 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지만 EQ에 대한 오해는 더욱 가관이었다. 뭔가 자율성이 있고 감성적이며 기존에 틀에서 벗어난 교육은 죄다 EQ 교육이라고 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중지능"이 엄마들 사이에서 뜨겁게 각광받고 있지만 EQ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다음 챕터로 우르르 넘어가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 역시도 EQ의 개념이 모호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EQ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열 개의 챕터를 지나는 동안 저자는 끊임없이 EQ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정체불명의 코끼리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때로는 코를, 때로는 다리를, 때로는 귀를 따로따로 알려주지만, 결국 하나의 코끼리를 의미하듯 서로 동떨어져 있는 듯한 내용들도 결국 EQ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감성지능을 지닌 사람은 냉정하고 정확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적합한 길을 선택해 속도를 조절할 줄 안다. 한마디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바로 알 때 남도 관리할 수 있다. 자기관리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속의 이런저런 욕망과 감정을 제어해 착실하게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34 페이지)

저자 쑤린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그의 글을 읽으면서 중국과 미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문체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 때문일까.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동양적 문화에 (비교적) 쉽게 반영될 수 있는 예를 다룬 것도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자신의 주변인물과 피상담자들의 예를 통해 쑤린은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특징을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사실 감성지능이라고 해도 뒤에 "지능"이 붙는 바람에 "지능이 낮다"는 말이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꼬집는 "감성지능이 부족한 사람"의 모습이 나와 일맥상통할 때 더욱 그랬다. 스스로 불편하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느꼈던 성격적 약점들을 모조리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거나, 힘들어 주저앉아버리고, 무기력함에 하루하루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도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뿐, 나는 괜찮을거야'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것이 나의 낮은(!) 감성지능으로 인해 야기된 일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하긴. 그렇게 감성팔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때가 아니었으니까. 

EQ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워나가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EQ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소개되었을 뿐 감성지능의 대부분은 우리가 "인격"이라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었다. 인격이 된 사람, 인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만한 사람들은 EQ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뚝심있게 성공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결코부당하거나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들.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배려해주면서도 존경을 받는 사람들. 상상속의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 중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방에게 즐거운 사람이 되려고 했다가는 "호구잡히기" 십상이다. 저자는 여기서 EQ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감성지능이 높은 것과 그저 친절하고 좋은 성격을 가진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니 말이다. 

감정지능이 높은 사람은 너그럽고 긍정적이며 진취적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감정을 조절할 줄 알며 일상생활 중에 발생하는 갈등을 적절하게 해소할 줄 안다. 그들은 긍정적인 태도와 유머를 앞세워, 필요한 순간 긴장감을 걷어내고 타인과 자연스럽고 편안한 대화를 나눈다. (302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비즈니스와 외적 삶에 그치지 않고 내적 관계, 즉 연애의 기술과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EQ가 단순히 사업에 성공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남용되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Q가 높다는 것은 밖으로 보이는 실력과 능력, 자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볼 수 없는 내면의 연륜과 따스한 감성까지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이 아닌 진짜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척박한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쉽게 포기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우리 세대에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EQ, 즉 감성지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한 번 정독한 후에 미리 표시해둔 부분들을 다시 읽으면서 요점정리를 했다. 그래야만 하는 책이었다.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유없는 패배의식과 매너리즘에 빠졌던 내 자신을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동기가 되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016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현할만큼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뚝심이 있는 나 자신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음마 육아 - 넘치는 육아법 때문에 삶이 피곤해진 초보맘들을 위한
번미 라디턴 지음, 김동준 옮김 / 씨앤아이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만약에 시간을 거꾸로 돌려 아들이 태어나던 그 때(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다르게 할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 무려 20권이 넘는 육아도서를 정독해가며 열심히 준비했던(?) 나였지만 막상 내게 닥쳐온 육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들이 휴지조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니 스멀스멀 여유라는 녀석이 생기나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자욱한 도로를 시속 180km로 달리는 듯 숨막히는 액션 씬이 끝나고 이제 간신히 앞 차가 보일 정도의 시야가 확보된 느낌이다. 아무튼 지금 돌이켜보았을 때 한 가지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분명 이것이다. 

어떤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신생아 때부터 신랑과 함께 쓰던 앱이 있었다. 하루에 분유/모유를 얼만큼이나 먹었고, 얼마 간격으로 먹었으며 먹은 것에 대한 총량은 물론 쓴 기저귀의 갯수와 빈도, 수면시간 그리고 아기의 기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스마트하게 기록해주고 통계를 내주는 무시무시한 앱이었기에 통제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딱 맞았다. 아마 그 때 누군가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면 주저없이 이 앱을 전도하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루안이가 만 6개월이 되기까지 엄청난 육아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거의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하루에 얼만큼을 먹는지, 얼마나 자주 먹는지, 응가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 기저귀가 얼마나 찼는지 (실제로 병원에 있었을 때는 아기가 오줌싼 기저귀를 일일히 저울에 재며 그 무게를 확인해 기록하던 엄마도 있었다. 그 엄마도 끔찍하지만 그런 용도로 여성화장실에 저울을 비치해놓은 병원 역시 끔찍하다), 이유식은 얼마나 잘 먹는지... 어떻게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엄마들에게 "걱정할 거리"를 만들어줄 뿐,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아기가 많이 먹지 않는다 한들, 우리에겐 아기가 더 많이 먹게할 수 있는 능력이 사실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가 지나치게 먹지 않거나 사용하는 기저귀 갯수가 심하게 적을 경우, 분명히 병원에 가서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일 뿐만 아니라, 설사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경우라 하더라도 특별한 치료나 보조요법 없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니 지나친 걱정은 금물이다. 사실 나도 아들이 신생아였던 때 잠을 못자면 무조건 배앓이나 성장통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먹은 모유나 분유를 개워낼 때마다 이 아이가 유문협착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배앓이에 있어서는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배앓이 분유도 사서 먹여봤고 젖병도 무려 네다섯 번을 바꿔봤지만 큰 차도는 없었다. 그저 "내가 뭔가 했다"는 엄마의 안도감이랄까나... 지금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 아들은 배앓이도 없었고 유문협착증은 더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조금 예민한 신생아였을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유가 있다. 육아를 해보니 왜 세상에 육아보다 힘든게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이건 뭐...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신세계니까. 출산 후 호르몬적인 심경변화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는" 육아의 특성 때문에 첫 6개월을 끔찍한 우울증 가운데 보냈다. 한번도 아들이 밉거나 아들을 낳은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지만,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르며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하루에도 몇 번 사로잡히곤 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도 약 6개월이 지난 뒤 비로소 이런 끔찍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 후론 육아가 고달프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몸은 만신창이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미치겠다가도 문득 아들만 보면 스르르 모든 감정이 녹아버리는 것을 보니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나보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시끄럽게 울고 보채는 소리마저 음악으로 들리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까. 

사실 <걸음마 육아>는 "넘치는 육아법 때문에 삶이 피곤해진 초보맘들을 위한"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진짜 초보맘들, 그러니까 이제 막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거나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어쩔줄 모르는 엄마들이 읽었다가는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겉표지에 쓰인 "2~6세 아이들이 털어놓은 솔직한 이야기"가 훨씬 걸맞다. 즉, 적어도 육아를 1~2년 해본 엄마들이라면 꼭 한번 읽었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먼저 확실히해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책은 (책의 첫부분인 10페이지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똥강아지"라 불리우는 저자의 아이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그러니까 매 페이지에 등장하는 육아 조언이나 예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적어도 7~80 페이지 정도에 들어서선 "이거 뭐야, 순전 엉터리 아냐!" 하고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2~6세 아이들이 털어놓는 솔직한 이야기"라니까!). 무서울 정도로 아이 중심의 육아방식은 물론 때때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시속 145km로 운전하면서 뒷자석 아이에게 한 손으로 귤을 까주라던가, 이마트에 가서 아이가 보채면 과자나 음료를 매장 안에서 뜯어주라는 등) 예시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지만, 결국 저자의 의도는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혹은 아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를 헤아려달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이 책에 나온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숨은 속마음은 이럴 수 있으니 그 마음을 알아주고 그에 맞게 살펴주는 것이 엄마아빠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블로그를 통해 유명해진 저자가, 무조건 블로그를 폐쇄하고 다시는 들여다보지 말라고 조언할 리는 없을테니까. 

책에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큰 유행이 되어버린 "프랑스식 육아법"도 등장한다. 워낙 육아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터라 프랑스식 육아에 대해서도 벌써 두세 권 읽어보았기에 이해하기 수월했다. 그 중 <프랑스 아이는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운다>라는 책은 정말 인상깊게 읽었고, 아들이 조금만 크면 함께 그림을그리고 공작을 할 생각에 꼼꼼히 내용정리와 스크랩을 해두었지만, 다른 책들에선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독립성"과 "자주성"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정상 아닐까? 꼬꼬마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혼자 재우고 울어도 자주 가지 말라는 교육법은 내게 그저 "나중에 뭘 알게 되면 귀찮으니까 아예 어렸을 때부터 엄마아빠는 잘 때 옆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치는게(실망시키고 포기시키는게) 편하다"고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쪼록 그런 엄마아빠들은 나중에 자식이 커서 자기 편하자고 명절이나 생일에 찾아오지 않을 때 "그럼, 그래야지"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길 바란다. 

책에 나온대로 진짜 할 수 있는 엄마가 있을까 싶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엄마가 최고의 엄마라는 보장은 없다. 천사같고 사랑스러운만큼 미숙하고 배울 것도 많은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훈육도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내 자식을 위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겠다는 유쾌한 마음이 들었다. 무작정 받아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내가 지금까지 고집해온 삶의 방식 때문에,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꺾어버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다시금 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정말 그랬다. 물론 타협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육아를 하며 부딪히게 되는크고 작은 일들은 그런 이슈들과는 대부분 관련이 없다. 낮잠을 제대로 자지 않든, 밥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먹든, 어느 날은 우유와 간식만 주구장창 먹고 싶다고 떼를 쓰든...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혀 심각한 문제도, 중요한 이슈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엄마를 스트레스의 늪으로 몰아넣는 것은 "이건 이래야만 해!"라고 고집하는 엄마 자신이 아닐까. 

뭐가 되었든간에 이 책을 읽고 "퍼버식 수면교육"이나 심지어 "타이거 맘 교육"에 혹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을 학대하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거 맘"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이미 읽어 알고 있었지만 생각할 수록 끔찍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도대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수용할 수 있을까.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아기를 어둠에 그대로 방치해 포기시키라는 퍼버 박사의 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라는 직업(?)은 참 밑지는 장사다. 하루 24시간 자신을 위해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적다. 아니, 없는 날이 태반이다. 혹시라도 아기가 깊게 잠들어 쉬려고 하다가도, 눈에 치이는 집안일과 밀린 일들, 게다가 언제 아기가 깰지 모른다는 초조함(?) 덕분에 맘편히 누울 수도 없는 것이 엄마란 자리이다. 늘상 수면부족에 근육통과 요통에 시달리는 건 기본이고. 
하지만 비로소 엄마가 된 뒤에 나 자신이 진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인내심이 무엇인지 새로 알게 되었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그렇게 열심히 엄마노릇해서 받는 보상이 무엇이냐고. 자식들이 커서 효도하는 걸 바라야 하는거냐고. 이제 겨우 일 년이 지났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보상은 이미 누리고 있노라고.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기가 존재한다는 것,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세상이 떠나갈 듯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내 품 안에 꼭 안겨 잠드는 것. 이것보다 더 큰 보상이 어디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