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육아 - 넘치는 육아법 때문에 삶이 피곤해진 초보맘들을 위한
번미 라디턴 지음, 김동준 옮김 / 씨앤아이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만약에 시간을 거꾸로 돌려 아들이 태어나던 그 때(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다르게 할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 무려 20권이 넘는 육아도서를 정독해가며 열심히 준비했던(?) 나였지만 막상 내게 닥쳐온 육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들이 휴지조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니 스멀스멀 여유라는 녀석이 생기나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자욱한 도로를 시속 180km로 달리는 듯 숨막히는 액션 씬이 끝나고 이제 간신히 앞 차가 보일 정도의 시야가 확보된 느낌이다. 아무튼 지금 돌이켜보았을 때 한 가지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분명 이것이다. 

어떤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신생아 때부터 신랑과 함께 쓰던 앱이 있었다. 하루에 분유/모유를 얼만큼이나 먹었고, 얼마 간격으로 먹었으며 먹은 것에 대한 총량은 물론 쓴 기저귀의 갯수와 빈도, 수면시간 그리고 아기의 기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스마트하게 기록해주고 통계를 내주는 무시무시한 앱이었기에 통제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딱 맞았다. 아마 그 때 누군가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면 주저없이 이 앱을 전도하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루안이가 만 6개월이 되기까지 엄청난 육아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거의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하루에 얼만큼을 먹는지, 얼마나 자주 먹는지, 응가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 기저귀가 얼마나 찼는지 (실제로 병원에 있었을 때는 아기가 오줌싼 기저귀를 일일히 저울에 재며 그 무게를 확인해 기록하던 엄마도 있었다. 그 엄마도 끔찍하지만 그런 용도로 여성화장실에 저울을 비치해놓은 병원 역시 끔찍하다), 이유식은 얼마나 잘 먹는지... 어떻게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엄마들에게 "걱정할 거리"를 만들어줄 뿐,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아기가 많이 먹지 않는다 한들, 우리에겐 아기가 더 많이 먹게할 수 있는 능력이 사실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가 지나치게 먹지 않거나 사용하는 기저귀 갯수가 심하게 적을 경우, 분명히 병원에 가서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일 뿐만 아니라, 설사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경우라 하더라도 특별한 치료나 보조요법 없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니 지나친 걱정은 금물이다. 사실 나도 아들이 신생아였던 때 잠을 못자면 무조건 배앓이나 성장통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먹은 모유나 분유를 개워낼 때마다 이 아이가 유문협착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배앓이에 있어서는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배앓이 분유도 사서 먹여봤고 젖병도 무려 네다섯 번을 바꿔봤지만 큰 차도는 없었다. 그저 "내가 뭔가 했다"는 엄마의 안도감이랄까나... 지금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 아들은 배앓이도 없었고 유문협착증은 더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조금 예민한 신생아였을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유가 있다. 육아를 해보니 왜 세상에 육아보다 힘든게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이건 뭐...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신세계니까. 출산 후 호르몬적인 심경변화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는" 육아의 특성 때문에 첫 6개월을 끔찍한 우울증 가운데 보냈다. 한번도 아들이 밉거나 아들을 낳은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지만,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르며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하루에도 몇 번 사로잡히곤 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도 약 6개월이 지난 뒤 비로소 이런 끔찍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 후론 육아가 고달프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몸은 만신창이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미치겠다가도 문득 아들만 보면 스르르 모든 감정이 녹아버리는 것을 보니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나보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시끄럽게 울고 보채는 소리마저 음악으로 들리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까. 

사실 <걸음마 육아>는 "넘치는 육아법 때문에 삶이 피곤해진 초보맘들을 위한"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진짜 초보맘들, 그러니까 이제 막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거나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어쩔줄 모르는 엄마들이 읽었다가는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겉표지에 쓰인 "2~6세 아이들이 털어놓은 솔직한 이야기"가 훨씬 걸맞다. 즉, 적어도 육아를 1~2년 해본 엄마들이라면 꼭 한번 읽었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먼저 확실히해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책은 (책의 첫부분인 10페이지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똥강아지"라 불리우는 저자의 아이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그러니까 매 페이지에 등장하는 육아 조언이나 예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적어도 7~80 페이지 정도에 들어서선 "이거 뭐야, 순전 엉터리 아냐!" 하고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2~6세 아이들이 털어놓는 솔직한 이야기"라니까!). 무서울 정도로 아이 중심의 육아방식은 물론 때때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시속 145km로 운전하면서 뒷자석 아이에게 한 손으로 귤을 까주라던가, 이마트에 가서 아이가 보채면 과자나 음료를 매장 안에서 뜯어주라는 등) 예시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지만, 결국 저자의 의도는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혹은 아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를 헤아려달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이 책에 나온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숨은 속마음은 이럴 수 있으니 그 마음을 알아주고 그에 맞게 살펴주는 것이 엄마아빠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블로그를 통해 유명해진 저자가, 무조건 블로그를 폐쇄하고 다시는 들여다보지 말라고 조언할 리는 없을테니까. 

책에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큰 유행이 되어버린 "프랑스식 육아법"도 등장한다. 워낙 육아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터라 프랑스식 육아에 대해서도 벌써 두세 권 읽어보았기에 이해하기 수월했다. 그 중 <프랑스 아이는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운다>라는 책은 정말 인상깊게 읽었고, 아들이 조금만 크면 함께 그림을그리고 공작을 할 생각에 꼼꼼히 내용정리와 스크랩을 해두었지만, 다른 책들에선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독립성"과 "자주성"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정상 아닐까? 꼬꼬마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혼자 재우고 울어도 자주 가지 말라는 교육법은 내게 그저 "나중에 뭘 알게 되면 귀찮으니까 아예 어렸을 때부터 엄마아빠는 잘 때 옆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치는게(실망시키고 포기시키는게) 편하다"고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쪼록 그런 엄마아빠들은 나중에 자식이 커서 자기 편하자고 명절이나 생일에 찾아오지 않을 때 "그럼, 그래야지"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길 바란다. 

책에 나온대로 진짜 할 수 있는 엄마가 있을까 싶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엄마가 최고의 엄마라는 보장은 없다. 천사같고 사랑스러운만큼 미숙하고 배울 것도 많은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훈육도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내 자식을 위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겠다는 유쾌한 마음이 들었다. 무작정 받아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내가 지금까지 고집해온 삶의 방식 때문에,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꺾어버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다시금 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정말 그랬다. 물론 타협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육아를 하며 부딪히게 되는크고 작은 일들은 그런 이슈들과는 대부분 관련이 없다. 낮잠을 제대로 자지 않든, 밥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먹든, 어느 날은 우유와 간식만 주구장창 먹고 싶다고 떼를 쓰든...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혀 심각한 문제도, 중요한 이슈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엄마를 스트레스의 늪으로 몰아넣는 것은 "이건 이래야만 해!"라고 고집하는 엄마 자신이 아닐까. 

뭐가 되었든간에 이 책을 읽고 "퍼버식 수면교육"이나 심지어 "타이거 맘 교육"에 혹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을 학대하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거 맘"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이미 읽어 알고 있었지만 생각할 수록 끔찍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도대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수용할 수 있을까.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아기를 어둠에 그대로 방치해 포기시키라는 퍼버 박사의 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라는 직업(?)은 참 밑지는 장사다. 하루 24시간 자신을 위해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적다. 아니, 없는 날이 태반이다. 혹시라도 아기가 깊게 잠들어 쉬려고 하다가도, 눈에 치이는 집안일과 밀린 일들, 게다가 언제 아기가 깰지 모른다는 초조함(?) 덕분에 맘편히 누울 수도 없는 것이 엄마란 자리이다. 늘상 수면부족에 근육통과 요통에 시달리는 건 기본이고. 
하지만 비로소 엄마가 된 뒤에 나 자신이 진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인내심이 무엇인지 새로 알게 되었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그렇게 열심히 엄마노릇해서 받는 보상이 무엇이냐고. 자식들이 커서 효도하는 걸 바라야 하는거냐고. 이제 겨우 일 년이 지났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보상은 이미 누리고 있노라고.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기가 존재한다는 것,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세상이 떠나갈 듯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내 품 안에 꼭 안겨 잠드는 것. 이것보다 더 큰 보상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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