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부엌
다카기 에미 지음, 김나랑 옮김 / 시드앤피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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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초초예민한 신생아였던 아들. 
보통 먹고 자는게 전부인 다른 아기들과는 달리, 만 10개월이 되기까지 아들은 "자기"가 정말 힘들었다. 한시간이 넘게 겨우 재워놓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수유 시간, 어떻게 먹이고 다시 재워놓으면 심지어 화장품 토너 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기도 하고...
지나갔으니 웃으며 이야기하지, 그때는 정말 등골이 서늘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ㅋㅋ

그로인해 남편과 나의 생활은 무조건! 100%! 아기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아기의 수면 스케쥴에 맞춰 닌자처럼 살았던 우리는 점점 좀비화되어갔다. 자연스레 집안 풍경은 엉망이었고 깔끔한 정리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 같았다. 방 세 개인 집인데 안방과 거실을 제외한 방 두 개는 거의 창고처럼 썼을 정도니... 아들이 돌이 되고서야 틈틈히 정리한 것이 쌓이고 쌓여 두 방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 

그랬던 때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두 돌을 바라보는 아들.
얼마 전부터는 하루에 단 몇십 분, 혹은 (심지어!) 몇 시간 내 시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확실히 인간으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집도 더 깨끗하게 가꾸고 싶었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꿈꾸게 되었다. 유아식을 슬슬 졸업해가는 아들이 이것 저것 다양하게 먹기 시작하면서 해주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던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도 차리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집안일이 괴로운 것은 매일매일 열심히 하더라도 단 몇 시간만에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엊그제 부엌을 싹 다 치웠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난장판이 되어있고, 곳곳에 쌓인 먼지와 기름때는 그나마 코딱지만큼 남아있던 사기마저 싹쓸이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살림을 한다고는 하는데 왜 매 번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걸까? 도대체 여자로 태어났으면 평생 쓸고 닦고 정리하는 운명의 저주라도 받게 되는걸까? 아기가 크면서 생겨난 황금같은 나의 자유시간이 집안일로 점철되는 것을 괴로워하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는 부엌>. 그래. 나도 생각 좀 안하고 부엌에 와보고 싶다고!!


제가 단언컨대 부엌일이 술술 풀리면 인생은 180도 달라집니다. (11 페이지)


이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다. 집안일이야 원래 끝도 없고 도대체가 셀 수도 없는게 당연하지만 그 중 가장 귀찮고, 오래걸리고, 힘들고, 고된 일은 부엌일이었다. 하루 세 끼 밥을 차리고, 반찬을 만들고, 치우고, 닦고, 청소하고... 도대체 부엌 찬장과 서랍들에는 귀신이라도 사는건지 조금만 내버려두면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고, 워낙 물을 많이 사용하는 곳이라 물때와 요리에서 나온 기름때가 시도때도 없이 쌓인다. 부엌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오늘 뭐 먹지 걱정만 덜 수 있다면 집안일의 7,80%는 해결될 것 같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읽기 시작한 이 책.


사실 부엌일의 비법을 담고 있다기엔 지나치게(?) 컴팩트한 사이즈가 영 미덥지 않았다. 뭔가 엄청나게 많은 규칙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정도 분량으로 제대로 할 수 있는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나, 우리 부엌이 달라졌어요!!



도대체 이 기분을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내 부엌은 100% 달라졌다. 내 하루일과도 100% 달라졌고 집안일의 스트레스 역시 표현 못할 정도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부엌에서 일하는게 즐거워졌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우리집 부엌이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로 넉넉하게 수납할 수 있었고, 더이상 냉장고나 냉동실에서 상한 음식을 버리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매일 자러가기 전 다시는 요리하기 싫을 정도로 깨끗한 부엌을 볼 때면 집안일이 이렇게 쉬웠나 싶기도 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그럼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ㅎㅎ



일단 이 책은 기본적인 부엌 정리에서부터 장보기, 요리하기, 냉장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식단 짜기와 요리 준비하기까지 부엌일의 모든 분야를 다 아우른다. 특히 대박인 것은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밑손질 레시피. 진짜 이대로만 준비 해놓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 한끼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급하게 아이 식사를 차려야 하는 압박을 아는 엄마들에게는 이만한 희소식이 없을듯. 물론 아이의 기호에 따라 준비해놓아야 할 요리재료가 달라져야 한다. 


그 외에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내용들은,

1. 냉장고 정리하기 - 트레이를 이용해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식사 습관에 맞게 재료들을 정리해둔다
2. 행주 여러 장 준비하기 - 이것 만으로도 부엌 정리 반은 끝이다
3. 냉장고 달력 사용하기 - 식단 짜기, 장보기, 냉장고 정리를 한큐에!
4. 식재료 준비하기 - 시중에 파는 냉장고 용기를 이용해 식재료를 미리 손질해두면 요리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된다.
5. 설거지하기 - 드디어 제대로(!) 설거지 하는 방법을 배웠다

정도가 있다.


신기한 건 이렇게 부엌일에 요령이 생기니 냉장고 음식을 버리는 일도 없어졌고 장을 볼 때 걸리는 시간도 훨씬 줄었다. '오늘 뭐 먹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렇게나 한 끼 때울 일도 없어졌다. 정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면 미리 다듬어둔 요리재료로 맛있는 볶음밥이나 카레, 짜장밥을 해먹으면 그만이었다. 



저자의 말이 맞았다. 부엌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 끊임없는 집안일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주부들의 인생은 더더더욱 달라진다. 짬이 날 때 미리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이렇게 편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카레를 준비하며 물이 끓는 동안 양파 하나를 더 다져서 냉동해놓는 것도 그렇고, 야채를 다듬을 때 손가락 모양으로 다듬어 전용 용기에 담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지거나 깍둑썰기를 하니 시간은 물론 음식물 찌꺼기가 나오지 않아 좋았다. 

물론 전용 용기와 부엌 정리를 위한 도구들을 사느라 꽤나 지출이 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는 만큼 버려야 할 것도 참 많았다. 저자의 조언처럼 부엌을 정리하다보니 찬장에 켜켜이 쌓여있던 도구들 중 반 이상이 내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혹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미련을 버리고 모두 정리하니 매일 써야 하는 그릇과 도구들을 훌륭하게 수납할 수 있었고, 이제 이렇게 정리를 마친지 몇 주가 지났지만 한 번도 버린 것들이 필요했던 적은 없었다.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고, 조금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과감히 부엌에 투자하고 뒤집어 엎었던 것(?)이 다행이고, 이런 습관이 몸에 배어 기쁘게 집안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생각 같아서는 주변 엄마들 모두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런 방법이 맞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 생활은 확실히 180도 변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부엌, 일하는 게 즐거워지는 부엌을 꿈꾸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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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쉽게 하기 - 일본에서 소문난 정리수납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혼다 사오리 지음, 권효정 옮김 / 유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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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책을 읽고 책으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결혼하던 6년 전 집안일에 대한 책을 몇 페이지 읽고는 그대로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름 오랫동안 혼자 살았기 때문에 살림초짜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이대로 하다가는 평생 집안 청소만 하다가 죽을 것 같았다. 매일 해야하는 일도 산더미같은데 주말이라고, 간절기라고, 여름이라고, 겨울이라고 또다시 어마어마한 일을 해야하다니... 도대체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걸까? 그 사람은 자기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 착잡해진 심경으로 책을 구석에 밀어넣었다.


그로부터 6년째. 아들의 탄생과 함께 엄청나게 변해버린 내 일상은 집안일과 육아로 점철되어 있다. 치우고 또 치워도 전혀 티가 안나는 우리집. 그나마 사람사는 집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신랑과 나는 오늘도 눈썹이 휘날리도록 틈날때마다 청소를 한다. 지난 22개월동안 집안일에 들인 시간으로 논문을 썼으면 박사가 두 번은 되었겠다는 슬픈(?)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어 청소를 하건만 결과가 영 좋지 않다. 늘 청소가 안 된, 엉망인 부분들만 눈에 띄고, 그것들을 뒤집어 청소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독하게 마음먹고 뒤집어 엎더라도 며칠만에 예전 모습을 되찾아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자. 그렇다면 아이디어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 정리수납 분야 베스트셀러 1위의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꼭 읽어야만 했다. 수납 컨설턴트라니 내겐 좀 생소했지만 끊임없는 집안일에서 조금이나마 날 해방시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일본에서 소문난 정리수납 컨설턴트라는 혼다 사오리 씨의 <집안일 쉽게 하기>가 도와줄 수 있을까?


일단 이 책은 상당히 얇다. 게다가 책 내용 중 3분의 2는 족히 사진이다. 글밥이 두려운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 모든 노하우는 한 장 이상의 사진과 짧은 설명으로 소개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그 예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집안의 정리정돈을 넘어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다음 날의 스케쥴을 준비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관리하는 법. 건설적인 메모와 할 일 정리까지 알려주고 있는데,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았다. 의외였던 것은 저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책에 소개된 사진 중 아이폰이 잠시 등장한다) 90년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수첩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고객정보나 중요한 연락처 등도 매 년 수첩에 새로 적는 것 같았다. 다이어리 쓰는 데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릴만한 마스킹테이프와 포스트잇, 형광펜과 색색깔의 볼펜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수첩 사진도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저자가 예로 보여주는 저자의 집이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수납정리 책을 읽었을 때였는데, 다른 집 거실과 맞먹는 크기의 드레스룸이나 우리집 안방보다 큰 아이방을 키즈카페처럼 꾸며둔 사진을 보면서 적잖이 괴리감을 느꼈던 터였다. 이건 뭐 마치 "이렇게 정리하세요"가 아니라 "돈 벌어서 5,60평대 아파트로 이사하세요"의 느낌이랄까나 ㅋㅋ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심지어 저자의 집은 우리나라 기준에서도 상당히 작고 수납공간도 부족한 편에 속한다. 우리집이 저랬다면 이 많은 물건들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심란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조언과 팁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좁은 주방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부족한 수납공간을 활용해 이불이나 겨울옷 같은 큰 부피의 짐들을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주부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집안일 노하우라도 모든 사람에게 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지만, 다 내게 맞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방법도 참조하되 좋다고 생각되면 따라 해 보고,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으면 바꿔본다. (13 페이지)


그녀의 말처럼 책에서 내 생활에 맞을 법한 내용만 따로 정리해두었고, 그동안 내가 (나름) 실천했던 정리 노하우와 비교해보았다.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바꿀 것은 과감히 바꿔보도록 했다(그러면서 부엌정리를 위한 아이템만 몇십 만원 지른 건 비밀).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처럼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하려면 물건이 적어야 한다. 한참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이김에 차근차근 필요없는 물건을 처분하고 집안 분위기를 바꿔봐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일단 저자가 아이 없이 부부만 살고 있는 집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육아맘들이 실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 많다(나도 이렇게 심플하게 살고싶다고! 하지만 현실은 온집안의 키즈카페화). 또한 특이하게도 저자는 자신이 사용한 모든 정리도구나 소품의 브랜드와 모델명까지 소개하고 있는데(심지어 3M테이프까지도), 상당히 가격대가 있는 편이다. 물론 예쁘고 깔끔한 건 인정! 그중에는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제 아들이 22개월. 늦어도 내년에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나도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있는 아로마 디퓨저에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이번 주 스케쥴을 정리하며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기고,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가 작품 구상을 할 시간도 생기겠지(아마도. 아닌가?). 저자가 소개하는 삶은 하루하루 전투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하는 육아맘에겐 로망같이 들린다. 한번에 다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씩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춰가면서 효율적인 집안일 패턴을 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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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와 나누는 대화
허우원용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연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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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났다. 우리 앞에 놓인 고난과 좌절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배우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들 아닐까? 인생은 이처럼 각자 다른 모습이지만 공평하게 배움의 기회를 준다. 만약 인생에서 고통과 시련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아직 극복하는 법을 완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28 페이지)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죽기살기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잠깐 아차하는 사이 찾아와버린 요요가 얼마나 무서운지. 예전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여기저기 덕지덕지 살을 붙여주니, 이것보다 더 애통한 게 있을까 싶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고무줄의 탄성처럼 (살기위해) 이전 몸무게로 돌아가려는 우리 몸의 성질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내 몸에 소리친다. "이봐! 그게 아니라고! 돌아가지 말라고! 괜찮다고!!"


반 농담으로 들어본 예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끝까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렇게 열심히 뺀 살을 도루묵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역시 나니까 말이다). 살아보니 참 신기한 것이 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뭣도 모를 때라는 것이다. 공부를 해보니 그렇고, 직업에서 그렇고, 사람을 만나면서 그렇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면 그런 내게 가장 패악스런 존재 역시 나였던 것 같다. 스스로 용기를 꺾고, 좌절하며, 악담을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사실 내가 나에게 비아냥대는 걸 생각하면 간혹 듣는 주위사람들의 비판은 새 지저귀는 소리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무지하게 열심히 능률 오르게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뭔놈의 기준만 그렇게 높은지 모르겠다 (봐. 또 그러잖아). 


육아로 인한 삶의 변화와 (아직까지도 완벽히 적응 못한) 달라진 일상, 경기침체로 인해 부담이 가중되어 가는 작품활동과 경제활동, 나이가 들수록 그 무게가 더해지는 책임감과 죄책감 등으로 인해 힘든 요즘, 내게 꼭 필요한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을 건설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책, 힐링과 배움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참 귀한 책이었다. 바로 <내 안의 나와 나누는 대화>다. 


세상에 저자같은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저렇게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도 "중요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시간을 내어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진심으로 상담해주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도 사람이고, 한정된 시간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을텐데 말이다. 책 전반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이타적인 삶이 처음에는 그리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솔직히 내 머릿속엔 괜히 다른 사람의 일에 휘말려 "인생이 꼬인" 많은 사람들의 예가 떠올랐다. 저자의 높은 인성에 놀라면서도, 나 자신도 그렇게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책 중반쯤 읽었을 때였나, 갑자기 책을 처음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인생의 문제에 대해 저자와 함께 사유하면서 느긋하고 편안하게 읽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때문에 따로 메모나 아웃라인을 하지 않았다. 책 중반에 와서야 이 책이 그렇게(?) 읽어서는 안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이 밀려왔고, 저자의 조언을 통해 그동안 나를 억눌러왔던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노트북을 열어 필사하며 아웃라인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중요한 몇몇 내용만 적을 생각이었는데 끝까지 적고 나니 무려 만 자가 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필사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시간적 여유만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1. 나는 정말로 돈을 사랑하는 것일까? 

2. 취미를 직업으로 삼아도 될까?

3. 레더호젠이라는 반바지 

4. 기분이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5. 긴장이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6.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7. 문학 서적을 읽는 것이 고리타분한 일일까?

8. 어쩌면 나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9. 사물의 본질로 돌아가다 

10. 우리는 모두 문턱값 3의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열 가지 질문이자 이슈들이다. 제목만 쭉 읽어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만나고 매일 부딪히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문제 말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게으르고 무능한 자기 자신에게 진력이 났을 때, 자신이 한 선택에 자신이 없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계속 밀고 나가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을 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될 조언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그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그런 조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의 메시지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역시 대단했다. 제법 두꺼운 굵기의 책이었지만 하룻밤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예시와 재미있는 농담, 감동이 전해지는 이야기가 더해지며 메시지는 힘을 얻었고, 더욱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그가 책에 쓴대로) 문학 서적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일인지 몸소 증명해보였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마치 새로운 멘토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직접 마주하고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더 좋겠지만, 때로는 내용을 통해 나 자신을 묵묵히 비춰볼 수 있는 책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이 책은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바라건대) 조금씩 지혜가 생길수록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책이었다. 답답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현실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진취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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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 - 열심히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당신을 위한 현실 심리학
가타다 다마미 지음, 전경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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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진실이 "아는 것이 힘" 쪽에 가까운지 "아는 것이 독"에 가까운지가 아닐까 싶다. 

6년 전 한국에 올때만 해도 나는 "아프리카 한가운데에 떨어져도 엄청난 생명력과 긍정의 힘으로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뭐든 도전하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건 그의 "좋은 면"만을 믿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20대의 패기와 순수함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기억하기로 내가 막연한 우울감에 빠지기 시작한 건 의외로 "음식" 때문이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나 과도한 농약 살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마지막으로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먹거리들이 사실은 각종 화학첨가물 칵테일인 것을 알게된 이후 내 삶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채식을 선언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다는 로푸드(Raw Food)를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너란 사람은 왜 이렇게 유별난거야!"라는 주변의 등살에 1년도 못가 막을 내리긴 했지만.


아이를 낳고는 그 분야가 좀 더 다양해졌다. 유기농이라는 말을 믿을수가 없어 이유식을 시작한 이후 하나하나 다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고(요리솜씨가 있으면 말을 안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이후로는 나의 불신이 각종 세제와 비누, 생활용품에까지 번져버렸다. 온 집안의 세제란 세제는 모두 버린후 세제와 비누, 화장품 등을 직접 만들어쓰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용기와 장난감들을 미련없이 버렸다. 엄청난 힘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드는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나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그 모든 것을 알게된 후로 내 삶이 좀 더 "우울해졌다". 


생각해보면 오늘 쓸 돈이 있고 맛있게 먹을 음식이 있고, 편하게 발 뻗고 잘 내 집이 있는데 나는 왜 이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성격이 유별나고 괴팍해서일까? 유난히 예민하고 까다로워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 책 제목부터 확 와닿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이 자기 인생의 지배자여야 한다는 사고가 퍼졌다. (...)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갈 가능성을 지녀야 한다. 단, 이런 삶을 살기로 선택한 개인이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11~112 페이지)


참 이상하다. 우리는 분명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어째서 우리의 앞날은 더 캄캄한걸까? 우리 부모님 세대에만 해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나오면 어느 정도 좋은 직장이 보장되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갖은 노력으로 일류 대학에 진학해 유학을 다녀와도 나와 비슷한 스펙을 가진 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머리터지게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죽자 살자 노력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그나마 평타라도 치는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를 신랄하게 분석한다. 그 통찰력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 그래. 맞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알겠네. 연신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도대체 저자는 어떻게 우리 사회의 가장 알고 싶지 않는 치부까지 꿰뚫어보고 있는 것일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돈많은 사람은 돈많은대로 우울한 세상. 최저생계비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4억대 아파트와 몇 억 잔고가 있는 통장을 가지고서도 생활고를 비관해 가족 모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기 자신도 투신하는 세상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막연한 (그리고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성공관과 가치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운명에 거슬러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의 이면에는 "그렇지 못한 패배자들이 가득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던 것이다. 


결혼만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든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정해진 행동이나 태도를 취하면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었던 사회적 매커니즘이 붕괴된 탓이다. 결혼, 취직, 노동형태, 교육, 건강관리 등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 현저하게 늘었고, 그 모든 것에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사회로부터 가차 없이 내몰리고 있다. (117 페이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은 현대인은 어쩔 수 없는 신형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책 전반부에 저자는 이 "신형 우울증"을 심도깊게 다루고 있는데 적잖이 찔리는 부분이 많았다.


신형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은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타책 경향이다. '이렇게 되고 싶다'는 자기애의 이미지와 '이것밖에 안 되는' 현실의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6 페이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기대와 요구.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의 괴리감. 그 안에서 현대인은 신형 우울증에 빠져 자기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머릿속에는 손에 닿을 것 같은 이상이 팽배하지만 좀처럼 어느 곳으로 발을 옮겨야 할지 알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무한경쟁 탓인지 주변 사람들은 조력자보단 경쟁자, 나를 방해하고 쓰려뜨려야 할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론 저자의 말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극단적이거나 독선적인 판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것이 10이라면 그 중 (적어도) 2나 3 정도가 내 안에 잠재되어있다는 확신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꽁꽁 감춰두었던 비밀을 들킨 기분이랄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실태를 알게된 것도, 화학제품의 위험성이나 플라스틱 장난감의 해악에 대해 알게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저 나라에서 이렇다 하면 믿을 수 있을 때가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양한 경로와 경험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꼭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광고를 해도, 믿고 걱정하지 말라는 정부의 말에도, 예전처럼 "아 그렇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이 져야하는 것이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내가 알아보고, 확인하고,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도무지 어떤 것도 믿을 수가 없으니 확실하게 증명된 몇 가지의 방법으로 대안을 마련해야만 했다.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비싸게 주고 산 세탁기는 거의 헹굼과 탈수만을 위해 사용하는데다가 온갖 것을 스스로 만드려다 보니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물론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내일 죽을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내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알면서 방관하는 것은 일종의 끔찍한 직무유기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인터넷에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이 모든 것을 거뜬히 해내며 가족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들의 포스팅이 넘쳤다. 어쩌면 내 머릿속에 "좋은 엄마, 좋은 아내는 반드시 이래야 해"라는 족쇄같은 선입견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고, 놀라고,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근간 읽은 책 중 가장 소름끼치는 통찰력을 보여준 책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그 결말은... 과연 이 결론이 최선이었을까,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은 이렇게 끝나고야 마는것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한가지 확실한 건 철저히(?) 회의론에 기반하여 도출된 결론이라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겐 "그냥 인정해. 종말이 다가오는 거야" 정도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신형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 썩 용기가 되는 말은 아니다.


우울한 끝맛에도 불구하고 벗어나기 힘든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꺼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임을 알면 아이러니하게도 위안을 얻지 않을까 싶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지, 자신의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그것은 본인이 알아서 "긍정적으로" 다시 내렸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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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건강한 아이 - 아이 뇌를 건강 체질로 만드는 생활습관 35
구보타 기소 지음, 조민정 옮김 / 니들북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사실 "똑똑하게 키운다는" 것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똑똑하다"라는 것은 마치 학교 공부에 뛰어나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대기업에 입사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그럴까나.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뇌가 똑똑한 아이, 뇌가 뛰어난 아이가 아니라 <뇌가 건강한 아이>라니 말이다. 

최근 발간된 우리나라의 몇몇 서적도 그렇지만, 일본 서적을 읽을 때 (특히 그것이 육아서적이라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마치 읽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듯한 따뜻한 문체가 아닐까 싶다. 보통 이런 육아서적을 읽다보면 대부분 "그러니까 결국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다 엄마 탓"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기 마련인데 (뭔가 억울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이렇게 하지 마세요" 보다는 "이렇게 해보면 참 좋겠죠?"의 느낌을 받았다. 뭐가 됐든 읽는 엄마 입장에선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들이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는 상투적인 말이고, 지금 돌이켜보면 영원히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것처럼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잠 못자던 날들, 뭐가 뭔지 알수가 없어 같이 울고 좌절하고 힘들었던 시간들... 출산 전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돌을 바라보는 아들을 볼때면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뭉클할 때가 있다. 아마 겪어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고작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아기인데 벌써부터 주변 엄마들이 심상치가 않다. 어떤 어린이집이 프로그램이 좋다더라, 어느 어린이집은 영어와 중국어까지 가르쳐준다더라 (얘네들 아직 한국말도 안되지 않나?), 특별활동으로 어느어느 수업을 들어야 오감개발이 되고 뇌발달에 좋다더라 등등... 조기교육의 열풍은 초등학생을 넘어 유치원생, 어린이집 아기들에게까지 닿았나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한편으로는 성질이 솟구치기도 한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의 머리에 뭘 쑤셔넣고 싶은 것인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유난히 언어발달이 늦은 아들을 보면서 "혹시 엄마인 내가 언어 노출을 잘 안시켜줘서 그런가?" 하는 막연한 걱정이 드는걸 보면, 줏대 없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게 나인가보다.

사실 수면, 식사, 운동, 학습, 교육 등 분야마다 전문가는 있지만, 이 모든 분야와 깊이 관련된 '뇌'에 대해 잘 파악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연구한 뇌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아이의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서, 두뇌가 명석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특별한 교육법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의 생활습관을 통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머리말 중)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좀 특별하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초등하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사실 학교에 들어간 자녀들에게는 조금 늦은 감이 있고 아이가 아직 미취학생일 때, 그러니까 엄마아빠와 비교적 오랜 시간을 보낼 때 사용할 수 있는(아니, 사용해야만 하는) 방침들이 소개되어 있다. 

흔히 영재 교육이라고 하면 특별한 학교에 보내거나, 특별한 수업에 참여시키거나, 남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활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충분히 뇌를 자극하고 문제해결력을 키워나가며 사회를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한동안 "엘리트 교육"에 기울었다가 근래에 "인성 교육"에 관심이 커지는 우리나라 교육 트렌드와도 맞는 접근법인 것 같다. 

저자는 지나치게 치우친 교육으로 인해 (예전에는) 생활을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었던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설거지나 간단한 요리를 도우며 충분히 배울 수 있는 협동심과 문제처리능력을 학원에 보내 배우게 한다던가 아이들과 놀고 다투고 싸우는 과정을 가로막아 인간관계에 필요한 경험을 쌓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다. 책을 읽어보니 나 역시 아이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발달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느긋하고 좀 더 여유롭게 지켜봐줄 수 있어야겠다. 

특히 영유아기의 어린 아이들을 가진 엄마아빠들이 읽으면 정말 유용할 것 같다. 미리 모든 것을 알아서 완벽하게 키워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을 사랑과 여유로 보듬어줄 수 있으려면 엄마아빠가 먼저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또한 갓 학교에 들어간 자녀 덕분에 사교육과 특별활동, 학원수업 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엄마아빠에게도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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