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 - 열심히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당신을 위한 현실 심리학
가타다 다마미 지음, 전경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진실이 "아는 것이 힘" 쪽에 가까운지 "아는 것이 독"에 가까운지가 아닐까 싶다. 

6년 전 한국에 올때만 해도 나는 "아프리카 한가운데에 떨어져도 엄청난 생명력과 긍정의 힘으로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뭐든 도전하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건 그의 "좋은 면"만을 믿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20대의 패기와 순수함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기억하기로 내가 막연한 우울감에 빠지기 시작한 건 의외로 "음식" 때문이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나 과도한 농약 살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마지막으로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먹거리들이 사실은 각종 화학첨가물 칵테일인 것을 알게된 이후 내 삶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채식을 선언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다는 로푸드(Raw Food)를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너란 사람은 왜 이렇게 유별난거야!"라는 주변의 등살에 1년도 못가 막을 내리긴 했지만.


아이를 낳고는 그 분야가 좀 더 다양해졌다. 유기농이라는 말을 믿을수가 없어 이유식을 시작한 이후 하나하나 다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고(요리솜씨가 있으면 말을 안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이후로는 나의 불신이 각종 세제와 비누, 생활용품에까지 번져버렸다. 온 집안의 세제란 세제는 모두 버린후 세제와 비누, 화장품 등을 직접 만들어쓰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용기와 장난감들을 미련없이 버렸다. 엄청난 힘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드는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나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그 모든 것을 알게된 후로 내 삶이 좀 더 "우울해졌다". 


생각해보면 오늘 쓸 돈이 있고 맛있게 먹을 음식이 있고, 편하게 발 뻗고 잘 내 집이 있는데 나는 왜 이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성격이 유별나고 괴팍해서일까? 유난히 예민하고 까다로워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 책 제목부터 확 와닿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이 자기 인생의 지배자여야 한다는 사고가 퍼졌다. (...)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갈 가능성을 지녀야 한다. 단, 이런 삶을 살기로 선택한 개인이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11~112 페이지)


참 이상하다. 우리는 분명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어째서 우리의 앞날은 더 캄캄한걸까? 우리 부모님 세대에만 해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나오면 어느 정도 좋은 직장이 보장되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갖은 노력으로 일류 대학에 진학해 유학을 다녀와도 나와 비슷한 스펙을 가진 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머리터지게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죽자 살자 노력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그나마 평타라도 치는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를 신랄하게 분석한다. 그 통찰력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 그래. 맞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알겠네. 연신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도대체 저자는 어떻게 우리 사회의 가장 알고 싶지 않는 치부까지 꿰뚫어보고 있는 것일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돈많은 사람은 돈많은대로 우울한 세상. 최저생계비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4억대 아파트와 몇 억 잔고가 있는 통장을 가지고서도 생활고를 비관해 가족 모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기 자신도 투신하는 세상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막연한 (그리고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성공관과 가치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운명에 거슬러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의 이면에는 "그렇지 못한 패배자들이 가득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던 것이다. 


결혼만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든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정해진 행동이나 태도를 취하면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었던 사회적 매커니즘이 붕괴된 탓이다. 결혼, 취직, 노동형태, 교육, 건강관리 등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 현저하게 늘었고, 그 모든 것에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사회로부터 가차 없이 내몰리고 있다. (117 페이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은 현대인은 어쩔 수 없는 신형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책 전반부에 저자는 이 "신형 우울증"을 심도깊게 다루고 있는데 적잖이 찔리는 부분이 많았다.


신형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은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타책 경향이다. '이렇게 되고 싶다'는 자기애의 이미지와 '이것밖에 안 되는' 현실의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6 페이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기대와 요구.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의 괴리감. 그 안에서 현대인은 신형 우울증에 빠져 자기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머릿속에는 손에 닿을 것 같은 이상이 팽배하지만 좀처럼 어느 곳으로 발을 옮겨야 할지 알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무한경쟁 탓인지 주변 사람들은 조력자보단 경쟁자, 나를 방해하고 쓰려뜨려야 할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론 저자의 말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극단적이거나 독선적인 판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것이 10이라면 그 중 (적어도) 2나 3 정도가 내 안에 잠재되어있다는 확신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꽁꽁 감춰두었던 비밀을 들킨 기분이랄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실태를 알게된 것도, 화학제품의 위험성이나 플라스틱 장난감의 해악에 대해 알게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저 나라에서 이렇다 하면 믿을 수 있을 때가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양한 경로와 경험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꼭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광고를 해도, 믿고 걱정하지 말라는 정부의 말에도, 예전처럼 "아 그렇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이 져야하는 것이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내가 알아보고, 확인하고,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도무지 어떤 것도 믿을 수가 없으니 확실하게 증명된 몇 가지의 방법으로 대안을 마련해야만 했다.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비싸게 주고 산 세탁기는 거의 헹굼과 탈수만을 위해 사용하는데다가 온갖 것을 스스로 만드려다 보니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물론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내일 죽을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내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알면서 방관하는 것은 일종의 끔찍한 직무유기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인터넷에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이 모든 것을 거뜬히 해내며 가족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들의 포스팅이 넘쳤다. 어쩌면 내 머릿속에 "좋은 엄마, 좋은 아내는 반드시 이래야 해"라는 족쇄같은 선입견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고, 놀라고,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근간 읽은 책 중 가장 소름끼치는 통찰력을 보여준 책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그 결말은... 과연 이 결론이 최선이었을까,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은 이렇게 끝나고야 마는것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한가지 확실한 건 철저히(?) 회의론에 기반하여 도출된 결론이라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겐 "그냥 인정해. 종말이 다가오는 거야" 정도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신형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 썩 용기가 되는 말은 아니다.


우울한 끝맛에도 불구하고 벗어나기 힘든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꺼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임을 알면 아이러니하게도 위안을 얻지 않을까 싶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지, 자신의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그것은 본인이 알아서 "긍정적으로" 다시 내렸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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