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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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를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되었다. 사실 그즈음 (아주 늦게) 미야베 미유키,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스타 =작가들의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분량을 상회하는 엄청난 가독성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혼자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데도 숨을 참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도서관을 다니며 그들의 또다른 멋진 책을 만나길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 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니지만, 신작이 나올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꼭 찾아읽는 작가들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중 하나다. 물론 지난 <질풍론도> 때는 기대가 너무 컸는지 약간 실망한 것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팬심(?)을 접을순 없었으니까. 새로운 신간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 자. 과연 이번엔 어떤 책이 탄생했을까? 

한참을 읽고 나서야 제목 <천공의 벌>이 Punishment가 아닌 Bee를 뜻하는 것을 알았다. 진짜인가 의아해서 겉표지를 다시 보니 거대한 벌 그림이 떡하니... 의미없는 책표지는 없다. 좀 자세히 살펴보자 이젠 ㅋㅋㅋ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처럼 이 책은 두껍다. 묵직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테마가 원전이고, 헬리콥터고, 테러다. 그리고 저자는 생각보다 디테일하게 이 생소한 테마들을 서술한다. 그래서인가, 초반에 소설로 몰입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건 뭐, 소설을 읽는게 아니라 모르는 분야에 대한 수업을 듣는 느낌이랄까.

나처럼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이봐요, 우라늄이니 플루토늄이니 고속 증식 원형로니 머리아파 다 이해 못하겠으니까 진행 좀 해달라고요!" 심지어 소설은 "전원 3법 교부금"까지도(...) 섬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정도면 거의 소설이 아닌 전과 수준.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가적 설명이 길게 이어질 때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빌보가 여행을 떠나며 네 페이지 이상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도대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맥이 뚝뚝 끊기는 그런 느낌. 내가 요즘 소설을 너무 안 읽어서 그랬던건지. 

더군다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범인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것마저 작가의 의도인가 싶었다 (애초에 테러리스트를 이해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게 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긴박한 상황의 진행보다는 부가적인 설명이 주를 이루고, 중요한 사실이 밝혀져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뱉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사실이 너무 전문적인 지식인지라 감흥이 덜하기도 하고... 아무튼 읽는 내내 뭔가 아리송했다. 예전 작품들은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뭔가 "어려운" 거지?


그러나.


마지막 몇 페이지를 읽으며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지나친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전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 될까?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은 물론 전세계가 방사능의 공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원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식이 나빠졌고 "원전 따위는 사라져야 한다!"는 무책임한 반대파만 늘어났을 뿐이다. 나 역시 같았다. 눈에 보이지도, 확인할 길도 없는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는 공포는 시간과 함께 사그라들었고, 원전에 대한 안좋은 인식만 생겼다.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 한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무관심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인류를 위협할만한 엄청난 살상무기.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류가 꼭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있다. 양날의 검같은 원전은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해야 하는 것이 아닌,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알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관심이 없을뿐더러 딱히 알아볼만한 자료도 부족하다. <천공의 벌>에 서술된 폭넓은 리서치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원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어쩌면 이 책을 쓴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면에서 소설을 읽으며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며 알게된 것은, 세상에는 선하거나 악한 것보다 이도저도 아니기에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뾰족한 답을 내놓을 수 없기에 더 첨예하게 대립하고, 싸우고, 투쟁하게 되는 그런 문제들. 한가지 중요한 건 귀찮다고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좋아질 상황마저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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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책장 속에 육아의 답이 있다 - 맹랑여사의 맹랑육아
서맹은 지음 / 세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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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문부터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엄마아빠 뿐만 아니라 보육교사와 유치원 선생님처럼 치열한(?) 육아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글을 쓴 서맹은 씨는 세 아이의 엄마이며, 16년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베테랑 원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계기는, 그녀의 첫째아들이 등교거부를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바람직한 성장과 보육에 힘쓴 그녀였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상담치료를 다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닥치는대로 심리서적과 육아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끊임없는 독서와 그를 통한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상에 자식키우기만큼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긴 하다. 남편도, 아내도, 친구도, 부모도, 자식도, 동료도... 분명 잘 하려고 했던거고 좋은 의도였는데 말도 안되게 일이 뒤틀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키우기가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건, 아마도 100% 나에게 의존해 (거의) 100% 내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억울하다고, 최선을 다했노라고, 나도 인간이지 않냐는 엄마의 외침은 공허하다. 아무리 그렇게 변명해봤자 결국 그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저자의 엄마, 그리고 어린이집 원장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이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한없이 감성적이다.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쁜 때도 있다. 그저 내 아이가 최고라고 여기다가도 별 것 아닌 일에 버럭 화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장점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그 누구보다도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설명이나 이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그런 관계. 저자는 사랑과 연민이 가득한 엄마의 입장에서 책을 읽고, 고민하고, 감동하고, 배웠다.


한편 엄마로서 잃어버리기 쉬운 객관성은 어린이집 원장이 보충한다. 아무리 내 자식이 예쁘고 사랑스럽더라도 사회에 나가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객관성이 필요하다. 엄마의 무한한 사랑만으로 아이가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한 규범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아야 한다. 적절한 선을 지키며 아이를 훈육하는 것. 그것에 있어 저자의 방법을 대부분 납득할 수 있었다.



아들이 이제 두 돌이 다 되어간다. 임신한 이후 나 역시 닥치는대로 육아서를 읽었다. 오죽하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미 3,40권을 정독했으니 말 다했다. 그때만 해도 이미 나는 육아에 빠삭하고(??) 책에서 배운대로만 하면 별 문제 없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결과는... 불보듯 뻔하지만 오산도 그런 오산이 없었다. 책대로 되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었을 뿐더러, 열심히 공부한 시간과 나의 좌절감은 정비례했다. 한동안은 그래서 "그런거 읽지마. 쓸모없다니까!"라고 함부로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숨 돌리고 한결 수월해진 요즘 되돌이켜보면 결코 책들의 내용이 공허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단지 내가 경험이 없고 여유가 없어 나무만 봤지 숲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큰 오산이라고 한다면, 책을 마치 육아의 공식처럼 생각하고 아기가 울 때마다 치트키 입력하듯 그대로 따라했던 것이다. 아기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고, 그 무엇보다 나의 마음과 사랑을 갈급해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사실 지금도 하루하루 배워가는 중이다.

그래서 저자의 말이 더욱 가슴깊이 다가온다. 조금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2014년 이후의 책들이었기 때문에 저자가 인용하는 수많은 (좀 더 오래된) 책들이 흥미로웠다. 몇 권은 중고서점에서라도 사서 읽어야겠다고 체크해두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나에게 딱 맞는, 정말 필요한 책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위한 동화책은 당장에 나가 구입했다. 오늘 처음으로 피곤해 눈을 부빌 때까지 침대에 함께 앉아 책을 읽어주었는데, 앞으로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매일 이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의 책 추천도 대부분 마음에 쏙 들었기에 만족스러웠다. 꼭 아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고함쟁이 엄마>를 읽고는 한참 눈물이 났다. 엄마의 고함에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놀랍기만 했다. 마지막 엄마의 "아가야, 미안해" 한 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들에게 이 말만은 하지 않도록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의 말처럼 '다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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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부모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
에머슨 에거리치 지음, 이지혜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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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영아부에서 친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는 공주님처럼, 왕자님처럼 예쁘게 입고 다니던 아기들이 네다섯 살이 되면 누가봐도 요상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아이가 저만큼 크면 엄마들이 더이상 신경을 써주지 않나 궁금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던 중 이제 두 돌이 지난 딸을 키우며 엄마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엄마의 인형이길 거부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옷을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노라 했다. 대부분의 아기들이 "엄마", "아빠" 이후 배우는 세 번째 말이 "싫어"라고 할 정도니 이정도면 말 다한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나 역시 궁금했던 것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그러니까 이제 갓 두 돌이 지나가는 아기들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끔찍하게 아기를 위해주고 아껴주는데, 몇 살 더 먹은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와 웬수처럼 싸우며 바람잘 날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미운 네 살, 죽이고싶은(!) 일곱 살이라고 했을까. 이제 막 말문이 트이며 귀욤포텐이 터지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상황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분명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텐데, 도대체 언제부터 무엇이 바뀌게 된 것일까.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을 읽었을 때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자녀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부모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이라니... 이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니, 이것이 있다면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이 책의 원제가 <Love & Respect in the Family>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번역한 분에게 박수를 짝짝 쳐드리고 싶다 (이런게 초월번역이라는 건가). 만약 이 책의 제목이 <가족 안의 사랑과 존경>이었다면 별로 읽고 싶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 책을 쓴 에머슨 에거리치 목사님은 세 자녀의 아버지이고, 책을 쓴 시점에서 자녀들은 모두 성인이 된 상태다. 때문에 책을 집필하면서 저자는 자녀들과도 깊은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의 양육 방식과 경험을 되짚어보았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현실적인 고백이 가끔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잘못했던 부분들, 아픈 경험들, 그리고 놀랍고 소중한 순간들을 가감없이 써내려가면서 저자는 "세상에는 완벽한 부모도, 양육방법도, 자녀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다른 육아책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 책의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대부분의 육아책은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며,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 그동안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 순간순간 깜짝 놀랄 정도로 권위주의적이 되곤 한다. 겨우 돌이 좀 지났을 무렵에도 아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했다. 내 권위에 도전하거나, 날 무시하거나, 날 골탕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때 자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 않고,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화가 치밀어오르고 제대로 버릇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결국 그런 승자없는 싸움은 눈물과 후회, 그리고 상처로 끝나기 일쑤였고 과연 나는 왜, 무엇을 위해 화를 내고 아이에게 모질게 대했는지 알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막내딸 조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다. 조이는 아프다고 칭얼거리면서 아빠가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마침 나는 설교 준비 때문에 마음이 바빴지만 짜증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 옆에 누웠다. 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안아주세요." "그래, 조이. 사랑받을 시간이 필요했던 거구나." 그때 들은 딸아이의 대답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죠. 아빠라면 그 정도는 아셔야죠." (29 페이지)

근래 있었던 나의 긍정적인 심적 변화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전에는 아들의 기분과 행동, 패턴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 롤러코스터를 타듯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면, 이젠 내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희안하게도 더이상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나는 나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가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내 삶이 180도 바뀐 것이다.

내가 깨달아 고치게 된 것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자녀는 사랑을 원하고, 부모는 존경을 원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를 골탕먹이거나 어려움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빨리 이 사실을 간과하고 매 순간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아이는 자신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좌절하고, 그로인해 반항하는 모습에 엄마는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버릇없는 행동만 보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질타와 꾸지람이 계속되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아이는 더욱 혼날 일만 반복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가족 관계의 악순환"이라 정의한다.

아이가 말을 듣고 순종하기를 바라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 그리고 이상적인 -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아이들을 훈련시키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128 페이지)"고 조언한다. 일방적인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부모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아이를 바란다면, 그 관계에서 어떤 깊은 유대감이나 존중, 이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가 존경받기 위해서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느껴야 하고, 비로소 그때 부모도, 아이도 그토록 바랐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결국 이 두 가지는 닭과 달걀처럼 무엇이 먼저인지 말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

저자는 가족 모두가 사랑과 존경을 느끼는 선순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지침을 이해하기 쉽게 G-U-I-D-E-S의 여섯가지 단계로 정리하는데,

베풀라 - Give
이해하라 - Understand
가르치라 - Instruct
훈육하라 - Discipline
격려하라 - Encourage
간구하라 - Supplicate


가 그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저자의 조언을 100% 동의할 수 없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조언에서 믿음 안에서 오랜 세월 고뇌하고 실수를 통해 배운 연륜이 느껴졌다. 유독 힘들었던 것처럼 보이는 세 남매의 성장기에서 미숙한 아버지였던 저자의 아버지의 모습이 군데군데 느껴졌다. 바람직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저자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그런 그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훌륭하게 자라난 것을 보면서 적어도 한 사람이 아이를 믿고 사랑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돌이 되어가는 아들은 본능에 충실한 개구쟁이다. 아직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지만 내 말투와 표정, 작은 뉘앙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놀랄 정도로 내 감정을 읽고, 내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아들에게 내 말과 행동은 절대적일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또 아는 다른 한 가지는 아들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이미 부모로부터 훈육이라는 명목아래 체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엄마로서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남을 대접하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만 이해했더라도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낳고 내가 키운다고 해서, 자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그 아이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플수록 나부터 올바른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을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마법같은 비책이나 치트키가 아니라, 몇 발자국 떨어지기만 해도 볼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진심으로 어떤 아이라도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보이는 아이라도 말이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부모보다 아이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부모가 부모답게, 가족이 가족답게 변화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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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듯 가볍게 - 상처를 이해하고 자기를 끌어안게 하는 심리여행
김도인 지음 / 웨일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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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나를 위해 고른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을 때만 해도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상태였으니까.

놀랍게도 - 그리고 감사하게도 - 겨우 한 주가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내 심리적 상태는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아니, 이만큼 여유롭고 균형잡힌 때가 있었나 싶게 좋다. 신기하게도 지난 몇 주간 읽었던 책들이 내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여러면에서.

그래서일까, 조금은 더 차분하고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계속해서 마음에 떠올랐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앞뒤양옆이 모두 꽉꽉 막혀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 극단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는 마지막 기로에 선 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말 따위가 먹힐 상황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꼭 읽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조언도, 위로도, 비판도, 꾸지람도 효과가 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 책이라면 어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책의 내용이 참 따뜻하다.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강렬하고, 심지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명상과 종교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명상이야말로 세상에서 말하는 종교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전까지 명상이라고 하면 그저 똑바로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명상의 놀라움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명상을 하기 위해 종교를 가지거나 바꿀 필요는 전혀 없다. 명상은 일상 속에서 스치듯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나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잡아 그것을 오롯이 느끼고,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여러 감정적 풍파를 겪었던 지난 2년동안 참 많은 사유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내 안의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특히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들은 어떠한 감정적 "상처"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강력범죄가 그렇고, 우울증과 자살이 그러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집단적 행동이 그렇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떠나보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슬픔, 미움, 분노, 후회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심리적 고통을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감정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요. 심리적 고통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감정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면 항상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것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생각하게 돼요. (45 페이지)

정말 그랬다.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혼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솔직히 희안한 일을 겪을만큼 겪었다.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소화시키고 삼킬 수 있었던 일들인데, 십대의 어린 나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서럽고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불과 얼마 전까지!) 괴롭히고 있던 일들은 그런 일들이 아니었다. 왜, 어째서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십 년이 훌쩍 넘게 지났는데도 주기적으로 꿈까지 꾸며 괴로웠던 것은 그 일 자체가 힘들고 끔찍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시우는 <맹자>에 등장하는 '때에 맞춰 내리는 비'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상처,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시우가 점점 자신을 회복하는 여정을 지켜보면서, 책을 읽는 독자도 오랫동안 자신이 짊어지고 다녔던 상처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내려놓을 기회를 얻게될 것이다. 자신의 오래된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 힘겹고 어렵다면 책에 나온 명상기법들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기만 해도 좋은 시작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어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나를 보듬어주기 위한 훌륭한 걸음이 될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창1:28).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비로소 그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에 "이름을 지을 수 있다면"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도 그것을 정의할 수 있다면 한결 극복하기 수월해질테니 말이다.

저자는 유독 "아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아는 것이 우리를 속박하기도 한다) 감정에 있어서만큼 이 말은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에 치여서, 삶에 치여서 자신의 감정을 너무 조금, 혹은 거의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 경향은 아이들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향해 공부할 줄만 알았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 앞으로의 사회가 더욱 염려될 뿐이다.

비엔나에 있을 때 만났던 심리상담사가 알려준 엄청난(!) 비법이 있다. 괴롭거나 창피한 일, 힘든 일을 당했을 때는 적어도 다섯 사람에게 (물론 믿을만한 사람이어야겠지만)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보라는 것이다. 최대한 감정을 싣지 말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여러 사람에게 말하다보면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자체가 가장 큰 압박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실제로 창피하다고,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나 나름대로의 감정 다스리기 비법이다. 이제는 이 책의 내용을 곁들여 조금 더 나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위해 노력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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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법 인생학교 How to 시리즈
올리버 제임스 지음, 김정희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알랭 드 보통이 "인생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좋아하는 분홍색 커버에 쓰여진 이 책 제목을 읽는 순간,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가장 관심있게 찾고 있는 정서적 건강은 20대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이 책은 향기가 난다. 나만 그런가? 농담이 아니라, 무슨 향수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뿌려놓은 것처럼 은은한 향기가 나는데 이게 만약 출판사(혹은 저자)의 전략이라면 투썸업! 책 제목과 내용, 겉표지 그리고 향기까지 엄청난 4박자를 맞춘 느낌이다. 만약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이 향기의 정체는 뭐지?


정서 건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지적인지, 얼마나 매력적인지, 얼마나 야심만만한지, 얼마나 부유한지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어떤 부류에 속하든 많이 성취한 사람일수록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대개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고, 직장 내에서 지위가 낮으며, 일에서의 성취보다 가정생활을 더 중시한다.
태어날 때는 거의 누구나 정서적으로 건강하다. 아기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안다. 자기가 누구인지, 언제 안전하다고 느끼며, 언제 기분이 좋은지가 늘 분명하다. 어린아이들의 놀이는 모든 성인에게 훌륭한 본보기다. 하지만 7세에서 9세 사이 학령기가 되면 정서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적응에 부담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다른 아이들과 자꾸 비교하다 보면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것이 차츰 정상으로 느껴진다. (8페이지)


정서적 건강은 정신적 건강과는 다르다. 또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하는 삶이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과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내가 얼마나 정서적으로 건강한지 궁금했었는데, 정서적 건강의 정의를 읽는 순간 나와는 천 년 만 년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기준삼은 가치나 '좋은 것'들을 무참히 부수어버리는 책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향해 내 모든 것을 걸고 매진하면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다. 사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진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한하다. 어느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지금같은 정보력과 기술을 가질 수 없었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엄청난 능력들이 이제는 평준화되었고 일반화되었다. 손 안의 스마트폰에서 세계가 펼쳐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고 있는 너는 진정한 루저!'가 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비교할 수 없는 기술과 정보를 가진 이 세상에서, 하다못해 학력, 경력, 재력 하나 없어도 아이디어로 억만장자가 되는 이 시대에 자신의 꿈 하나 펼쳐보지 못하고 아등바등 사는 것은 도대체 얼만큼 비참한 일인지. 그것 때문일까? 현대인은 불행하다. 전대미문의 발전만큼 전대미문의 불행의 시대 아닐까.


이 책은 정서적인 건강을 다섯 가지 핵심적인 요소로 정리한다. 마음챙김과 현재에 충실한 삶, 쌍방향 관계, 일과 진정성, 마지막으로 육아 활동에서의 놀이성과 쾌활함이 그것이다. 사실 소제목만 읽으면 어떤 내용인지 확실히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의 핵심요소는 뒤로 갈수록 앞의 요소가 심화되는 상관관계에 놓여있다.


먼저 "마음챙김"이란 지금의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존재인지 인정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존재와 역할, 부모님이 미친 영향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나 자신을 만든 과거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실상 이 부분에선 부모님이 우리에게 미친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주과제인데, 완벽한 어린시절이 존재할 수 없듯 실수없이 아이를 키운 부모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로인해 좌절하거나 부모님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거를 인정하고 정리함으로써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자신의 과거를 인정했다면 이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아감이다. 때로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해서, 때로는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사람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그것이 심각한 정신적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정신적 (혹은 정서적) 장애는 사회적인 성공 혹은 존경과는 관계가 없었는데 오히려 '성공한 사람들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페르소나를 통해 살아간다'고 한다(77 페이지). 문제는 그들의 정서적 건강은 이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잇따른 자살 소식이나 가정 불화 등을 생각해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세 번째 챕터인 "쌍방향 관계"에서는 다시 부모님이 등장한다. 일관되지 못한 양육방식과 무방비 상태의 자녀들에게 일방적으로 쏟아진 부모의 스트레스는 아이가 자랐을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특히 이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놀랍게도 "타인이 나에게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생후 6개월에서 3년 사이, 즉 걸음마기에 거의 판가름난다"고 한다(93 페이지). 여러 연구 결과, 부모의 부정적인 성향이나 상충되는 요구 등 올바르지 못한 양육방식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이성과의 관계에서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4장인 "일과 진정성"에서는 정서의 주축을 이루는 가치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부모가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부모의 바람직한 특성을 자기 스스로 취하는 "가치의 동일시"와, 강압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런 척하는 "가치의 내사화"로 나뉘게 되는데, 가치의 동일시를 거친 아이들은 내재적 동기를 가지고 건설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반면, 가치의 내사화를 겪은 아이들은 하는 일의 목적과 이유를 찾지 못한채 외재적 목표와 동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육아 활동에서의 놀이성과 쾌활함"에서 이 책은 순식간에 육아서로 변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두 손 벌려 환영할 일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겐 뜬금없는 상황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가슴 속에 "어린 나 자신"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여기에서의 아이는 진짜 내 자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내가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내 안의 어린 나로 이해해야 맞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진짜 육아에서의 활용도가 더 높겠지만 적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다리가 되어줄 것 같았다.


문득 "인생 학교"라는 단어가 참 적절하단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 중 "Sein heisst Werden, Leben heisst Lernen"이라는 가사가 있다. 번역하자면 "존재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배운다는 것이다" 정도가 되겠다. 정말 그랬다. 뭔가 "된" 것은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그것이 발전이든 퇴보든)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는 무언가를 깨닫고 배워갈 때가 아닌가 싶었다. 

책을 읽고 또다시 떠올린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정서적인 건강" 역시 책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거쳐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자아(Selfhood)의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 현저히 줄어드는 것"(83페이지)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다른 "인생 학교"들이 궁금해진다. 다른 책들도 시간이 나면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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