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듯 가볍게 - 상처를 이해하고 자기를 끌어안게 하는 심리여행
김도인 지음 / 웨일북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은 나를 위해 고른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을 때만 해도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상태였으니까.

놀랍게도 - 그리고 감사하게도 - 겨우 한 주가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내 심리적 상태는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아니, 이만큼 여유롭고 균형잡힌 때가 있었나 싶게 좋다. 신기하게도 지난 몇 주간 읽었던 책들이 내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여러면에서.

그래서일까, 조금은 더 차분하고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계속해서 마음에 떠올랐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앞뒤양옆이 모두 꽉꽉 막혀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 극단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는 마지막 기로에 선 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말 따위가 먹힐 상황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꼭 읽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조언도, 위로도, 비판도, 꾸지람도 효과가 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 책이라면 어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책의 내용이 참 따뜻하다.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강렬하고, 심지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명상과 종교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명상이야말로 세상에서 말하는 종교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전까지 명상이라고 하면 그저 똑바로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명상의 놀라움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명상을 하기 위해 종교를 가지거나 바꿀 필요는 전혀 없다. 명상은 일상 속에서 스치듯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나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잡아 그것을 오롯이 느끼고,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여러 감정적 풍파를 겪었던 지난 2년동안 참 많은 사유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내 안의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특히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들은 어떠한 감정적 "상처"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강력범죄가 그렇고, 우울증과 자살이 그러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집단적 행동이 그렇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떠나보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슬픔, 미움, 분노, 후회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심리적 고통을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감정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요. 심리적 고통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감정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면 항상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것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생각하게 돼요. (45 페이지)

정말 그랬다.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혼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솔직히 희안한 일을 겪을만큼 겪었다.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소화시키고 삼킬 수 있었던 일들인데, 십대의 어린 나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서럽고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불과 얼마 전까지!) 괴롭히고 있던 일들은 그런 일들이 아니었다. 왜, 어째서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십 년이 훌쩍 넘게 지났는데도 주기적으로 꿈까지 꾸며 괴로웠던 것은 그 일 자체가 힘들고 끔찍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시우는 <맹자>에 등장하는 '때에 맞춰 내리는 비'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상처,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시우가 점점 자신을 회복하는 여정을 지켜보면서, 책을 읽는 독자도 오랫동안 자신이 짊어지고 다녔던 상처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내려놓을 기회를 얻게될 것이다. 자신의 오래된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 힘겹고 어렵다면 책에 나온 명상기법들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기만 해도 좋은 시작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어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나를 보듬어주기 위한 훌륭한 걸음이 될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창1:28).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비로소 그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에 "이름을 지을 수 있다면"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도 그것을 정의할 수 있다면 한결 극복하기 수월해질테니 말이다.

저자는 유독 "아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아는 것이 우리를 속박하기도 한다) 감정에 있어서만큼 이 말은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에 치여서, 삶에 치여서 자신의 감정을 너무 조금, 혹은 거의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 경향은 아이들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향해 공부할 줄만 알았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 앞으로의 사회가 더욱 염려될 뿐이다.

비엔나에 있을 때 만났던 심리상담사가 알려준 엄청난(!) 비법이 있다. 괴롭거나 창피한 일, 힘든 일을 당했을 때는 적어도 다섯 사람에게 (물론 믿을만한 사람이어야겠지만)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보라는 것이다. 최대한 감정을 싣지 말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여러 사람에게 말하다보면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자체가 가장 큰 압박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실제로 창피하다고,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나 나름대로의 감정 다스리기 비법이다. 이제는 이 책의 내용을 곁들여 조금 더 나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위해 노력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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