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부모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
에머슨 에거리치 지음, 이지혜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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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영아부에서 친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는 공주님처럼, 왕자님처럼 예쁘게 입고 다니던 아기들이 네다섯 살이 되면 누가봐도 요상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아이가 저만큼 크면 엄마들이 더이상 신경을 써주지 않나 궁금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던 중 이제 두 돌이 지난 딸을 키우며 엄마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엄마의 인형이길 거부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옷을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노라 했다. 대부분의 아기들이 "엄마", "아빠" 이후 배우는 세 번째 말이 "싫어"라고 할 정도니 이정도면 말 다한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나 역시 궁금했던 것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그러니까 이제 갓 두 돌이 지나가는 아기들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끔찍하게 아기를 위해주고 아껴주는데, 몇 살 더 먹은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와 웬수처럼 싸우며 바람잘 날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미운 네 살, 죽이고싶은(!) 일곱 살이라고 했을까. 이제 막 말문이 트이며 귀욤포텐이 터지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상황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분명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텐데, 도대체 언제부터 무엇이 바뀌게 된 것일까.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을 읽었을 때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자녀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부모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이라니... 이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니, 이것이 있다면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이 책의 원제가 <Love & Respect in the Family>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번역한 분에게 박수를 짝짝 쳐드리고 싶다 (이런게 초월번역이라는 건가). 만약 이 책의 제목이 <가족 안의 사랑과 존경>이었다면 별로 읽고 싶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 책을 쓴 에머슨 에거리치 목사님은 세 자녀의 아버지이고, 책을 쓴 시점에서 자녀들은 모두 성인이 된 상태다. 때문에 책을 집필하면서 저자는 자녀들과도 깊은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의 양육 방식과 경험을 되짚어보았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현실적인 고백이 가끔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잘못했던 부분들, 아픈 경험들, 그리고 놀랍고 소중한 순간들을 가감없이 써내려가면서 저자는 "세상에는 완벽한 부모도, 양육방법도, 자녀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다른 육아책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 책의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대부분의 육아책은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며,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 그동안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 순간순간 깜짝 놀랄 정도로 권위주의적이 되곤 한다. 겨우 돌이 좀 지났을 무렵에도 아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했다. 내 권위에 도전하거나, 날 무시하거나, 날 골탕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때 자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 않고,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화가 치밀어오르고 제대로 버릇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결국 그런 승자없는 싸움은 눈물과 후회, 그리고 상처로 끝나기 일쑤였고 과연 나는 왜, 무엇을 위해 화를 내고 아이에게 모질게 대했는지 알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막내딸 조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다. 조이는 아프다고 칭얼거리면서 아빠가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마침 나는 설교 준비 때문에 마음이 바빴지만 짜증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 옆에 누웠다. 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안아주세요." "그래, 조이. 사랑받을 시간이 필요했던 거구나." 그때 들은 딸아이의 대답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죠. 아빠라면 그 정도는 아셔야죠." (29 페이지)

근래 있었던 나의 긍정적인 심적 변화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전에는 아들의 기분과 행동, 패턴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 롤러코스터를 타듯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면, 이젠 내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희안하게도 더이상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나는 나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가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내 삶이 180도 바뀐 것이다.

내가 깨달아 고치게 된 것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자녀는 사랑을 원하고, 부모는 존경을 원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를 골탕먹이거나 어려움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빨리 이 사실을 간과하고 매 순간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아이는 자신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좌절하고, 그로인해 반항하는 모습에 엄마는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버릇없는 행동만 보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질타와 꾸지람이 계속되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아이는 더욱 혼날 일만 반복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가족 관계의 악순환"이라 정의한다.

아이가 말을 듣고 순종하기를 바라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 그리고 이상적인 -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아이들을 훈련시키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128 페이지)"고 조언한다. 일방적인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부모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아이를 바란다면, 그 관계에서 어떤 깊은 유대감이나 존중, 이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가 존경받기 위해서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느껴야 하고, 비로소 그때 부모도, 아이도 그토록 바랐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결국 이 두 가지는 닭과 달걀처럼 무엇이 먼저인지 말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

저자는 가족 모두가 사랑과 존경을 느끼는 선순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지침을 이해하기 쉽게 G-U-I-D-E-S의 여섯가지 단계로 정리하는데,

베풀라 - Give
이해하라 - Understand
가르치라 - Instruct
훈육하라 - Discipline
격려하라 - Encourage
간구하라 - Supplicate


가 그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저자의 조언을 100% 동의할 수 없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조언에서 믿음 안에서 오랜 세월 고뇌하고 실수를 통해 배운 연륜이 느껴졌다. 유독 힘들었던 것처럼 보이는 세 남매의 성장기에서 미숙한 아버지였던 저자의 아버지의 모습이 군데군데 느껴졌다. 바람직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저자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그런 그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훌륭하게 자라난 것을 보면서 적어도 한 사람이 아이를 믿고 사랑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돌이 되어가는 아들은 본능에 충실한 개구쟁이다. 아직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지만 내 말투와 표정, 작은 뉘앙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놀랄 정도로 내 감정을 읽고, 내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아들에게 내 말과 행동은 절대적일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또 아는 다른 한 가지는 아들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이미 부모로부터 훈육이라는 명목아래 체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엄마로서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남을 대접하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만 이해했더라도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낳고 내가 키운다고 해서, 자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그 아이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플수록 나부터 올바른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을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마법같은 비책이나 치트키가 아니라, 몇 발자국 떨어지기만 해도 볼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진심으로 어떤 아이라도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보이는 아이라도 말이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부모보다 아이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부모가 부모답게, 가족이 가족답게 변화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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