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노부후사 >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1. 가해자와 피해자
1975년 4월의 어느 날. 어떤 사건에 연루된 8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지 20시간이 채 안 된 때였다. 사형된 시체는 온전히 가족들에게 넘겨지지 않았다. 사형시킨 사람들은 사형당한 이들의 시체를 탈취하여 멋대로 화장시켰다. 여기저기서 고문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랬다고 수군댔다. 사형시킨 사람들은 아니라고 그랬다. 사건의 총책임자였던 황산덕 법무장관은 "조사해 본 결과 고문이 행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고문이 없었다는 사실이 논리적으로 심증이 가며, 또 논리적으로 추측된다.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으면 반공법 위반으로 의법 처단하겠다" 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한국에서 형법과 법철학의 태두로 공인된 자였다. 그럼에도 이를 계속 문제삼던 한 외국인 신부는 결국 강제출국 당했다. 너무 하다고? 그렇게 엄살 떨 것 없다. 그로부터 30년도 채 안 되어서 사람들은 그 사건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으니까.
2. 피해자의 자식
“니네 아빠는 간첩이지, 그래서 잡혀간 거야. 그렇지? … 간첩은 이렇게 목졸라 죽인대." 그 아이는 느닷없이 숨겨 갖고 있던 노끈을 꺼내어, 찬이의 목에 걸고 잡아당기려고 했다.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의 <<금단의 땅>> 가운데 한 부분이다. 소설이니까 이 정도다. 세상일이 무릇 그러하듯, 현실은 훨씬 더 가혹한 법이다.
1975년에 사형당한 이들에게도 자식이 있었다. 사형당한 이들 중 한 명의 집 앞. 동네 아이들은 그 집에 사는 8살짜리 아이를 밖으로 끌어냈다. 새끼줄을 가져다 그 아이의 목에 걸고 나무에 매달았다. 빨갱이 자식은 이렇게 묶은 다음 총살시켜야 한다며 동네 아이들은 깔깔댔다. 아이들에게 이것은 놀이에 불과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 놀이를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다른 이의 자식은 어떠했을까? "이 교실 안에도 빨갱이가 있다!" 교련 선생이 학교 수업 시간에 그 아이를 노려보며 내뱉은 말이다. 교사들한테 기대 걸 것 없다. 뒤르켐이 말하듯 "교육은 사람들 자신이 건강할 때에만 건강할 수 있다... 도덕적 환경이 병들어 있을 때에는 교사들 자신이 그와 같은 환경 속에 살며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들은 학생들을 자신이 받은 영향과 다른 방향으로 교육시킬 수 없다."
법무장관 황산덕은 법무장관 퇴임 후, 22대 문교부 장관을 맡았다.
3. 가해자의 자식

[동아일보]
“떠오르는 마음을 그대로 지켜보는 훈련, 즉 ‘마음’을 객관화시켜 보는 훈련은 스트레스와 강박,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해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여류 법학자 황영채(黃永彩·65·사진)씨가 2000년부터 남방불교 수행법 중 하나인 위파사나 수행경험을 일지 형식으로 쓴 책 ‘아는 마음, 모르는 마음’(행복한 숲 간)을 펴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 황산덕(黃山德) 씨의 장녀인 황 씨는 불교를 믿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오래전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황 씨는 미얀마로 출가한 한국인 스님과 인연을 맺으면서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살림과 육아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해 한때 몸과 마음에 병이 들기도 했다는 황 씨는 수행을 통해 집착과 욕망을 털어버림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인 스님과 함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한국위파사나선원(02-512-5255)을 운영 중인 그녀는 “매순간 ‘지금 누가 이런 생각을 하는가’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 생각은 나의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바라보는 위파사나 수행은 종교와 교리를 초월한 정신훈련이자 심리치료법”이라고 소개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위빠사나고 수행이고 뭔 소용이란 말인가. 하긴 부모가 한 잘못을 자식이 어쩌랴만은. 저 황영채라는 분이 위의 저 인혁당 사건(맞나?)의 관계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괴로워했을까? 그랬다면 그의 수행을 인정할 수 있겠지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