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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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여러 입장에서 해석되어질만큼 그 가닥을 잡기 어려운 작품이다. 꿈꾼 내용을 이야기 하는 듯한 분위기, 디테일은 오히려 현실보다 더 자세하다. 수많은 알레고리적 요소들이 정신분석적 구조를 형상화한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결코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나 심리적 접근으로는 풀 수 없는 카프카만의 세계에 있다. 그는 기억의 창조를 통해 무언가 자기가 싫은 것을 지우려 하고 있다. 그것은 정신분석적으로 인간의 문화사가 만들어온 외면적 억압일수도 있고, 자본주의적 비인간화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의 관심은 이런 특정 운동의 하수인으로 종결되지 않는 내적 자유를 지닌다.
 
마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판관의 비유와 같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는 대성당에서 만나는 재판소에 소속된 교도소 신부를 통해 들려주는 한 비유를 통해 이 소설과 그의 작가관에 빛을 던진다. 법률 앞에 서 있는 한 문지기는 찾아온 시골남자에게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해준다. 허가를 얻도록 기다리던 시골사람은 문 앞에서 가진 모든 것을 써버리고 죽음 직전 한 질문을 던진다. 왜 이 문에는 나만이 기다리고 있는가? 문지기는 이 문이 그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말하고 문을 닫는다.
 
이 비유에는 작가가 제시한 것 이외에도 수많은 해석이 독자의 몫으로 주어진다. 사실은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길에 주어진 경험 가능한 한번의 삶이 지독하게도 그에게 빛으로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다운 말상대 역할의 문지기는 그를 지연시키고 그 문을 지키는데 성공한다. 카프카는 이 결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개와 같구나, 그는 죽어도 치욕은 남는 것 같았다]라고...
 
실존적 인간의 절망의 표현이라는 쪽이 더 맞겠다. 어떤 이해와 포괄적 지식을 거부하고 기준으로 주어진 것 앞에서의 인간의 자가당착을 보여준다. 법률이라는 빛은 인간을 거부하며 빛난다. 그는 결코 그 곳에 이를 수 없다. 소모만이 있을 것이다. 일도 놀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생은 그 자체가 어쩌면 신경증적 리비도를 닮아있는지 모른다. 다다르지 못하면 엉뚱한 대상에 들러붙고 마는 리비도처럼 인간의 개 같은 인생도 엉뚱한 소모거리에 배회하고 자기를 소진하거나 이리저리 솔깃하여 기웃거리며 배회하고 정작 살아야 할 삶은 살지 못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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