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2
스탕달 지음, 김붕구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폴레옹을 겪은 프랑스의 각 계급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믿지 않는다는 면에서 지금의 우리를 닮았다. 서민계급의 포병장교가 황제가 될 수 있다면 누구나 평등하며 권력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몇대를 걸쳐 일하던 하인들도 주인을 비웃고, 주인들은 하인들이 어느날 자신들을 살해할까 두려워하고 가족처럼 여기지 않고 잔인해진다.  주인공 줄리앙은 사랑하는 부인을 비웃고 마틸다를 비웃어 주려 애쓴다. 사실은 그들이 누리는 여유 자유 사치를 부러워하여 비웃음으로 자신을 유지하려하기 때문이다.  

 

줄리앙에게 신분의 계단을 올라가려는 그의 의지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독선이다. 나는 너희보다 도덕적으로 계급적으로 지성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어차피 딴 놈들도 다 나보다 못하거나 마찬가지인 것들뿐이니, 내가 기준이고 남은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19세기초의 프랑스는 서로를 무시하는 시대이다. 21세기초의 우리는?  정치하는 자도 종교인도 군인도 다 똑같은 권력지향적이며 물질적 안락과 사치와 설레임을 원하는 존재들 뿐이라면, 때로 이건 아닌데 싶어도 주위를 둘러보면 이 상태는 [정상]이다. 독선은 내 책임이 아니고 남이 나쁘기 때문이 된다.

 
남녀간의사랑은 이 계급 극복의 시대의 구원이 된다고 스탕달은 주장하고 싶은가? 계급의 격차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다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랑은 줄리앙의 발돋움의 덫이 된다. 스탕달은 자기자신의 분신인 줄리앙을 파멸시킨다. 부러워하면 지는거라면 이미 출발부터 지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다도대상과 같은 목표를 가졌다면, 기득층의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그 계단을 오르려 애쓰고 있다면 그는 패배의 게임을, 논리적 자충수의 연산을 시작한 사람이다. 가장 소중해야 할 것들이 경쟁과 승리, 비교와 열등감 앞에선 도구가 되었을 때, 그것은 결국 그를 파멸시키는 절망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소설은 [그 시대를 비춰주는 달리는 거울]일지 모른다. 계급의 상승, 힘의 획득이 더 가치있는 것들을 말살하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던 소설이 있는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미움과 욕설 억울함과 두려움이 무엇을 죽이고 있는지를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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