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 수상록 범우문고 147
베이컨 지음 / 범우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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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1세의 영국전성기에 여왕의 고문변호사가 되며 수상록 초판을 낸 베이컨은 제임스1세의 치세 아래에서 법무부 차관, 장관,국새상서, 대법관을 거치며 이 책의 2판, 3판을 낸다. 그는 제임스1세를 위해 전매 특허권을 부정매매하기도 하고, 재판판결 때 수십만 파운드의 뇌물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 일로 58세가 되던 1621년 수뢰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파면되어 쫓겨나 노년을 마치게 된다.

그의 이런 삶은 [생각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준다. 가장 현명하고 다른 이들에게 인생의 지침을 주었던 그가 막상 그의 삶은 오점으로 마치는 것은 [일관성 있게 살기엔 너무 길고, 뜻을 이루기엔 너무 짧은] 우리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 자신도 말하듯 청년의 때는 순수한 열정이 더 많으나 사려깊지 못하고, 노년이 되면 신중하나 속세에 더 많이 젖게 된다고 했다(청년과 노년에 관하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하여 오비디우스의 [헤로이데스]에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만년의 활동은 초년과 같지 않았다.]

[최선의 충고자는 죽은 사람들, 즉 책이다.] 그의 수상록은 직접 그가 살았던 삶을 반추하며 얻는 유용한 지혜를 담고 있다. 어쩌면 수상록의 한부분과 유사한 구절로 제목을 삼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성공하려면 신처럼 혹은 야수처럼 살아라](원제; The doctrine of wisdom)처럼 영국에 있어서의 처세술을 담은 실용서의 효시 같은 책이다. (수상록에 나온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인용한 -무릇 고독을 즐기는 자는 모두 야수가 아니면 신이다-이다.)

처세술 실용서의 글이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서유럽 곳곳에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인본주의의 바람이다. 神이 準據가 아닌 인간 자신이 준거가 되기 시작했을 때,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찰에 기초한 삶의 방법에 대한 생각들이 중요성을 갖는다. 여기에 물론 과거 인본적 삶을 발전시킨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이 주의를 끌고 그 필요성을 갖게 된다. 근대성의 인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형식으로서의 에세이는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베이컨의 노년과 대비되어, 삶에 대해 [내가 주인이다]라고 외치기에는 너무 가소로운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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