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 시인선 46
최승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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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소풍가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도 삶살이는 고달프다. 차 타고 가던 친구들 여섯이 떼죽음을 당하고 어린 아이들이 납치와 성폭력을 당하며 날벼락 같은 불행이 엄습하는 하루하루.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살아야 할 수 밖에... 또 그런그런 무의미를 살다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잔인한 운명. 최승호는 하늘을 원망한다. 그리고 무의미를 의미라 여겨보려 한다.

왜 사냐고 묻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살만한 인생인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모더니티의 유산인가? 모더니티의 유산은 그것에 의미를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는 주관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쉽사리 잡던 것조차 모두 손에서 놓쳐버린 채 이를 악물고 살고있다. 원망치 않으려하고 의미를 찾아야함을 알기에...

삶의 의미에 대한 저울은 분명 돈이나 명예, 권위와 억압은 아니다. 그것을 벗어던지자 이번에는 무의미가 왔다. 패배감과 억울함. 카프카의 정처없는 발걸음을 본다.  도달할 수 없는 길을 가는, 들어갈 수 없는 입구를 두드리는...길이 없다면 비켜서 서있어야하나? 그저 자연에 녹아지려하고 시간에 부서지며 웃으려한다. 그러려니한다. 언젠간 열매가 있으려니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어떻게 그 산의 모든 모습을 알까마는 우리는 보이지 않아 안달한다. 그걸 써야하는 것이 그나마 자기 삶의 이유라면 더 속을 볶는다. 언젠가는 열매가 있으리라. 내가 맺는 열매는 애시당초 아니었으니까. 그저 벼락같은 소리. 번쩍이던 섬광 아래 보였던 그 기억을 믿는다. 스스로 그걸 진짜 내가 보았던가 할 때에도 나는 웃는다. 그리고 차가운 샘물에 얼굴을 씻어 잠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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