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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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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인연일까.

 

같은 시대를 보낸 오랜 지기한테나 기대할 수 있는 깊은 위로를 받은 느낌.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학이후 십삼년을 보낸 서울, 도시를 떠나 산골로 돌아온

나에게 설렘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작가가 하늘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갖는 위대한 애정은 놀랍기만 하다!

그가 태양과 구름, 산, 호수, 나무, 풀 그리고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묘사하고 찬미하면,

그의 말을 통해 진실한 감정과 사색의 음향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것들조차 새롭고 고귀해진다."

- 발터 라테나우의 서평, 217쪽.

 

그렇다.

나무, 잡초, 선인장, 복숭아 나무와 흙,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다 탄 뒤 남은 재까지.

마치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뒤에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처럼

모든 자연에 열려 있는 그의 가슴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친숙한 것들조차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마 한 번도 자신의 정원을 가지는 걸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살면서 한번쯤은...'하는 꿈을 갖게 할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생활이 그저 낭만적으로 보일 만큼.

그의 말은 살아서 숨을 쉬고 춤을 추고, 당신도 어서 해보라며 손짓을 한다.

 

스스로 부딪히고 경험한 것들이 갖는 진실성.

이 책을 읽으며 '노동'에 대해 강조한 이오덕 선생의 말을 여러번 떠올렸다.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 이오덕, <무엇을 어떻게 쓸까>, 31쪽.

 

그가 정원으로 들어간 것도

가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가치 있는 생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쟁과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기계적이고 소모적인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충동으로 가득 찬 시대의 흐름에 영혼의 고요함으로 맞서"기 위해서(204쪽).

 

내가, 우리가 그토록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소비만이 추앙받는 곳에서 제대로 살 자신이 없었다.

온갖 소음과 쓸데 없는 일들에 치여 나를,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까봐 두려웠다.

그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시대의 아픔을 견디고자 했던 대문호에게도, 미천한 도시인에게도

'자연'은 그래서 그 자체로 축복이고 치유다.

 

 

 

 

그래서 떠나왔다.

내 아이가 맘 껏 걸음마를 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고,

밥상에 올릴 푸성귀를 직접 키우고 가꿀 수 있는 텃밭과

개 한마리와 닭 다섯마리와 토끼 한마리가 있는 집으로.

 

집안 어디에서든 산과 나무와 하늘이 보이고

몇걸음만 옮기면 누런 들판이 나오며

언제고 불쑥 대문을 열어제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사는 곳.

변성기를 지나는 중학생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온동네가 잠잘 준비를 하는 진짜 시골로 말이다.

 

아마 내 아이에겐 이곳이 첫 고향이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곳을 떠난 뒤에도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되겠지.

그리하여 저자가 그랬듯이 나중에 다 자라서 세상 여기저기를 나갔다가도

언제든 ‘고향’이라 부르며 돌아올 수 있는, 영혼이 머물 수 있는 진짜 집.

 

나도 저자처럼 정원을 가꾸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쉬지않고 '가치있게 사는 법'을 고민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는 토마토 이외의 모든 먹을거리는 아내에게 맡겼지만

아마 나는 그 반대가 될 것 같다.

 

"집 안에 저장해둔 씨앗과 구근을 살펴보고

정원에서 사용할 공구들을 점검하며,

잡초 한 포기 자라지 않게(12~13쪽)"

제대로 정원을 가꾸는 일은 남편에게 맡겨두고

그가 정성들여 키우고 가꾸는 밭을 들여다보며 맘껏 흐뭇해 하리라.

 

그래도 가끔은 그 일에 열심히 동참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말했듯이, 헤르만 헤세가 삶으로 증명했듯이

일을 하는 것이 없는데 글만 자꾸 쓴다면

그 글이 제대로 될 수가 없으니까.

 

 

 

 

리뷰 작성 기한일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이사와 명절, 돌배기 아이를 돌보는 틈틈히 분주히 읽었지만

한 번에 한 챕터 씩,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겠다.

 

넘쳐나는 자연의 힘, 그 사이에서 맘껏 유희하고 싶은 내가

어떤 게으름뱅이 정원사가 될 지 한껏 기대하며.

멋스런 셔츠에 우수에 찬 눈과 고집스런 주름을 갖고 있던 그를 떠올리며.

 

"재미 삼아 정원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몇 달밖에 안 되는

따뜻한 기간에 많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혹은 누군가의 부탁으로  정원을 가꾸게 된다면

온통 즐거운 것만 보게 된다.

키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고 형태를 다듬어가는 가운데 넘쳐나는 자연의 힘,

자연 속의 형상들과 색채 사이에서 유희하고 싶은 느낌과 환상,

여러 면에서 인간적인 여운을 주는 작고 소소한 즐거운 생명(17~18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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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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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책방, 청춘의 글씨.

 

겉표지부터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죽 늘어서 있다.

'헌책방'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딱 한 명 있는데,

이 책도 그의 신작이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작가에 대한 얘기부터 해봐야겠다.

 

그의 책을 처음 본 건 2011년 가을,

내가 일하던 곳에선 일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이었다.

밤을 새도 모자라는 일더미에 파묻혀 있을 때면

왜 그리 책 생각은 더욱 간절한지.

잠은 부족하고 늘 긴장하고 있느라 벌건 눈을 하고서도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책을 읽는 기쁨이란!

 

사실 그의 책은 어지럽고 번잡한 마음을 달래줄 만큼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저자의 책과 작가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였고

그래서 꽤 어렵게 읽혔다.

 

나도 그만할 때(초등학교)는 책벌레란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그가 몇시간씩 걸어서 책방을 찾아다녔던 것 만큼

나는 열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가 언급한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고 싶은 쓸데 없는 욕망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안정을 찾아가는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회사를, 세상을 박차고 나온 용기와

이름마저 근사한, 자기가 읽고 추천하는 책만 파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그가 부러웠고, 난 그래서

그가 나와 같은 부류, 그러니까

늘 자유롭기를 갈망하고 진실한 삶에 대해 고민하며

종이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105쪽)

사람일거라고 멋대로 정의내리며 그의 친구가 되고자 했다.

여백이 별로 없던 그 책은 어쩌면

그가 세상과 나누고 싶은, 소통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전작에 비하면

상당히 대중적이라고 할 만 하다.

헌 책 속에 새겨진 편지나 문장들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어렵고 고지식하고 따분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뒤에 가려져 있는

평범하고 여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래서

정성들여 꾹꾹 눌러쓴 사랑의 증표든,

술 먹고 휘갈긴 철학의 고뇌든,

그 속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은

나의 것, 우리들의 것이다.

그들의 심정과 진심을 헤아려 소중하게 모아두고,

급기야 수십년 전 메모의 주인공까지 만난 저자의 노력이 고맙다.

 

특히 1980년대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자유와 진리, 선과 정의, 희망과 절망을 탐색하고

책에서 그 정답을, 자신에 대해 고민했던 이들이라면(69쪽)

그리하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 당신이라면,

낡고 오래되고 헌 것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당신이라면,

이 책은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가을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탈서울을 실천한 것이 무척 기쁘다.

 

이사날짜를 며칠 앞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서재 정리였다.

아이가 잠든 사이 치킨 한마리를 주문해 놓고 남편은 책장을 나는 서랍을 맡았다.

그가 크기별로 꼼꼼히 꾸려놓은 책들을 보고 있자니

한때 불꽃처럼 거세게 타올랐고

영원한 것을 찾아 헤맸던 내 청춘이 생각났다.

 

그 때 난 저렇게 책 아랫면에 이름을 써두었고,

가끔은 그가 내 대신 누구누구꺼라고 쓰기도 했다.

그건 이 책 주인이 나란 뜻이자 책 주인인 내가 그의 것이라는,

유치한 우리만의 대화법이었다.

이름 옆에 찍혀 있는 도장은 서점에서 계산을 마친 뒤 찍어준 것이다.

 

지금 난 대부분의 책을 인터넷에서 산다.

그가 책에 내 이름을 써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책이 좋다.

책을 선물하고 선물받는 것도 좋다.

 

내 청춘을 바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대신

그 영원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싶게 만든,

한결같이 내 옆에 있어준 그가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했다.

 

전에는 엽서나 편지지에 글을 적어 표지 뒤에 끼워두곤 했는데

앞으론 맨 앞 장에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보낸 날짜를 적어 두기로.

그리하여 훗날 누군가가 그 책을 다시 들춰봐도

(선물받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책을 선물하던 나의 마음을, 우리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끈질기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이 그렇게 눌러 쓰며 결심한 것처럼(216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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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가을, 청명한 하늘과 바람과 책의 계절이 왔다.

반갑고 설렌다.

 

이번 에세이 신간 목록을 준비하면서

유난히 '제목'에 눈이 가 멈추었다.

곧 출간을 앞둔 작가 혹은 편집자 입장에서의 고민이기도 했을 것이다.

 

에세이 분야의 특징이겠지만

문득 요즘 책들의 제목이 무척 길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다.

목적이 여행에세이든 자기계발서든,

저자가 청년이든 노인이든.

제목만 들여다 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을 할 수 없을 만한 것들도 있었다.

 

선물로 치면 제목은 포장같다.

선물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줄뿐만 아니라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세밀한 감정을 드러내준다.

그래서 포장은, 제목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도 포장은 포장이지 내용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오덕 선생의 말이 생각나는 건 이 대목에서다.

아무리 포장이 좋아도 내용마저 바꿀 수는 없으므로.

 

부쩍 날카로워진 바람 때문인가.

제목에 대한 소회라고는 적었지만

사실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은 늘 한가지다.

 

어떻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어떻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좋은 글을 쓰기는 커녕 좋은 책을 고르는 일도,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가려내기도 어렵고 두려운 세상...

그래서 이번엔 그 자체로 제목이고 내용이 되어버린 작가들의 책을

(맘 편히) 골랐다.

공교롭게도 모두 외국작가들이다.

 

 

 

1.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문예춘추사, 2013, 08

 

 

나는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일상도 소설처럼 느껴지게 하는 치밀한 관찰력이나

오랜 고찰에서 나오는 깨달음,

나도 그랬다고 다독여주는 배려가 좋다.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앞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시대를 논하지 않는 작가는 결국 껍데기라고 믿으므로.
자신이 믿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므로.

 

알라딘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 가운데 일부,

<대립>에 대한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건강하고 씩씩하며 낙천적인 것, 모든 심각한 문제들도 웃으면서 대할 줄 아는 자세,

비난의 말은 거부하며, 순간을 즐기면서 얻는 생명력.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런 식으로 이 시대는 세계 대전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억을

허위(虛僞) 속에 잊어버리려고 한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과장되게 행동하고, 지극히 미국적인 것을 따라한다.

살찐 아기처럼, 분장한 배우처럼 일부러 과장되고 어리석게 굴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해하고 환하게 웃는다.

영어로 ‘스마일링smiling’이라고 하던가.

그런 낙관주의가 팽배하다.

환하게 빛나는 꽃잎들로 매일 새로운 치장을 하고
새로운 영화배우의 사진들을 걸고, 신기록을 나타내는 숫자들을 보며 즐거워한다."

 

 

 

2. <책으로 가는 문>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3, 08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그의 작품이다.

아니, 내가 본 것들의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게 더 맞겠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들이 그렇지만

그의 영화에는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아이도 노인도 남자 아이도 여자아이도 선한 쪽도 악한 쪽도.

 

많은 이들이 그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부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런 그가 말한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이런 마음을 가진 그가 추천하는 책들이니

당연히 들여다보고 싶을 수밖에.

 

 

 

3.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문학사상사, 2013, 08

 

 

노르웨이의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그리고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니.

 

이보다 더 다채로운 제목의 책을 낸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화제의 한 가운데에 있는 그의 책을 고르는 게

유행을 따라가는 것만 같아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잘 알려진 작가라고 해서 일부러 배제하는 것도

무조건 추앙하는 것 못지 않게 불공정한 것 같아 목록에 추가했다.
 

말이 필요 없는 작가들의 책을 골랐다고 해놓고는
자꾸 말이 길어지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말로 마무리를 하련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무슨 연유인지 내게 자명성을 지니지 않은 언어에

이렇게 둘러싸여 있다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슬픔과 비슷한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를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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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 남미 여행 에세이 세트 - 전3권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남미편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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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이자 작가이자 엄마인 그녀의 남미 에세이에는 다른 남미 여행기에는 없는 `엄마`의 시선이 담겨 있다. 세상에 대한 연민, 아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그녀의 책은 선배엄마의 육아 에세이자 여행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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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 남미 여행 에세이 세트 - 전3권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남미편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안정 VS 자유로움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과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은 마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마음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지만

그 자유를 경험할수록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진다는 것도 알게 되니 말이다.

 

자유로울 수는 있으나 동시에 예속되고야 마는 것.

그러기에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을 때 가장 즐거운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만약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역시 안정보다는 자유 쪽이다.

 

안정보다는 자유.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인생.

그렇다, 나는 스스로르 그렇게 규정지어 왔다.

그런데 아기가 생기면서부터 이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남편만 혼자 있을 땐 언제고 맘 편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저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 나에게 '다음' 여행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희망이 있다면

바로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자타공인 '사람여행 전문가' 오소희 작가다.

터키부터 라오스, 아프리카, 이번에 내사랑 남미까지.

오소희 작가의 여행 동행자인 그녀의 아들 중빈, JB는 너무 익숙해서

바로 옆 집에 사는 아이처럼 느껴진다.

 

넘쳐나는 여행 에세이, 글 잘 쓰는 작가들 사이에서

오소희 작가만의 개성이자 강점은 바로 JB다.

어쩌면 그와 함꼐 여행을 다니면서부터 여행작가가 되었으니

그녀에게 그는 꿈을 실현시켜준 통로이자 기회였으리라.

내가 준영이를 통해 작가가 되고 싶은 오랜 꿈에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따라서 여행가이자 작가이자 엄마인 그녀의 남미 에세이에는

지금까지 재밌게 읽은 다른 남미 여행기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마'의 시선이 담겨 있다.

세상에 대한 연민, 아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그녀의 책은 선배엄마의 육아 에세이자 여행 에세이다.


 

이러고저러고 덧붙일 것 없이,

오늘은 오롯이 그녀의 글을 옮겨적어 본다.

 

 

#1

"엄마들은 참 이상하다.

수목이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세상의 아이들이 때가 되면 해내는 자연스러운 성장을

매번 울보가 되어 새삼스러운 격정으로 맞이한다.
그제야 알았다.

내 몸을 빠져나온 저 아이가 어느덧 나보다 큰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겁에 질려 나가가지 못하는 순간에 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내가 오르지 못하는 언덕에 오르는 사람.

나는 이제 저 아이를 함부로 재단하거나 혼낼 수는 없겠구나."

 

#2

"결국 어린 아이도 알아가는 것이다.

존재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내재한 것들 때문이란 걸,

외관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그럴싸해도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망가지거나, 망가지지 않더라도 보는 이를 질리게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가슴속 마음 조각에 있다.

내 마음 한 조각을 누군가에게 떼어주면 그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 머무는 그곳도 아름다운 곳이 된다.

그래, 정말 아름답구나.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3

"중빈은 방언이 터졌다...... 방언은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런 열정에 깜짝 놀라서

나는 한 번도 그리스 신화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었다.

늘 밀착해 지내던 사람들도 여행 중에는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 순간, 나는 그곳의 그림 가운데 하나를 바라보듯 아이의 새로운 면모를 바라보았다.

울면 안아주고, 넘어지면 약을 발라주고,

책을 꺼내면 만사 제치고 읽어주던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 여기 아이가 하나의 그림으로 우뚝 서 있구나.

이 그림의 참된 아름다움은 계속해서 섞이고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명화가 아니어도 좋다.

나는 열린 자세와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아이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한 채 걸었다."

 

#4

"가슴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여성’이라는 입지가 그야말로 유리하다.

자신 안의 모성을 발견하는 순간 절로 가슴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늦된 사람이라. 어미가 되고서야 제대로 가슴을 쓰는 법을 배웠다.

늦은 만큼 통렬히 배웠다.

젖꼭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젖을 먹이면서,

자의식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서, 오늘처럼 똥 묻은 오렌지를 주우면서.
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지만 나름 공평한 구석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누구에게나 새로운 성장의 국면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처럼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성장의 국면 속에서

나탈리는 어쩌면 자신도 한때 이득 될 것 없는 어린 사람이었으며,

세상의 너그러운 보호가 자신을 돌보았다는,

그 아름답고 감사한 순환의 원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저절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소중히 챙기게 될 것이다."

 

#5

"나는 한동안 집이 어색했다.

값비싼 물건은 없는 공간이었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 중복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여겨졌다.

비슷한 제목의 책, 비슷한 크기의 그릇....

어수선한 욕망과 채집 욕구가 집안 구석구석 고스란히 배어 있어 부끄러웠다.

줄 서서 들어갈 필요가 없는 화장실은 물론 거의 비어 있었고,

그 또한 묘한 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핸드폰은 오래전 방전되었지만 충전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이 없고 차가 없고 가방 하나 정도의 짐으로 충분했던 시간들.

공간을 나눠 쓰고 소유하지 않던 시간들.

내가 핸드폰을 버리고, 차도 팔 것이며, 집을 원룸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남편은 입을 조금 벌리고 나를 쳐다볼 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다. 내가 긴 여행에서, 특히 제3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때면

언제나 같은 단계를 밟아, 천천히 일상에 합류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우리 부부는 중대한 합의를 했다.

호주일주 에세이를 출간한 뒤

다시 떠나기로.

 

호주로 갔던 3년 전부터

내 마음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그곳,

내사랑 나의 꿈 남미로.

 

내일은 없는 것처럼 치열하게 살기 위하여.

떠남은 언제나 옮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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