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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헌책, 책방, 청춘의 글씨.
겉표지부터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죽 늘어서 있다.
'헌책방'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딱 한 명 있는데,
이 책도 그의 신작이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작가에 대한 얘기부터 해봐야겠다.
그의 책을 처음 본 건 2011년 가을,
내가 일하던 곳에선 일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이었다.
밤을 새도 모자라는 일더미에 파묻혀 있을 때면
왜 그리 책 생각은 더욱 간절한지.
잠은 부족하고 늘 긴장하고 있느라 벌건 눈을 하고서도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책을 읽는 기쁨이란!
사실 그의 책은 어지럽고 번잡한 마음을 달래줄 만큼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저자의 책과 작가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였고
그래서 꽤 어렵게 읽혔다.
나도 그만할 때(초등학교)는 책벌레란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그가 몇시간씩 걸어서 책방을 찾아다녔던 것 만큼
나는 열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가 언급한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고 싶은 쓸데 없는 욕망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안정을 찾아가는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회사를, 세상을 박차고 나온 용기와
이름마저 근사한, 자기가 읽고 추천하는 책만 파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그가 부러웠고, 난 그래서
그가 나와 같은 부류, 그러니까
늘 자유롭기를 갈망하고 진실한 삶에 대해 고민하며
종이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105쪽)
사람일거라고 멋대로 정의내리며 그의 친구가 되고자 했다.
여백이 별로 없던 그 책은 어쩌면
그가 세상과 나누고 싶은, 소통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전작에 비하면
상당히 대중적이라고 할 만 하다.
헌 책 속에 새겨진 편지나 문장들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어렵고 고지식하고 따분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뒤에 가려져 있는
평범하고 여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래서
정성들여 꾹꾹 눌러쓴 사랑의 증표든,
술 먹고 휘갈긴 철학의 고뇌든,
그 속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은
나의 것, 우리들의 것이다.
그들의 심정과 진심을 헤아려 소중하게 모아두고,
급기야 수십년 전 메모의 주인공까지 만난 저자의 노력이 고맙다.
특히 1980년대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자유와 진리, 선과 정의, 희망과 절망을 탐색하고
책에서 그 정답을, 자신에 대해 고민했던 이들이라면(69쪽)
그리하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 당신이라면,
낡고 오래되고 헌 것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당신이라면,
이 책은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가을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탈서울을 실천한 것이 무척 기쁘다.
이사날짜를 며칠 앞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서재 정리였다.
아이가 잠든 사이 치킨 한마리를 주문해 놓고 남편은 책장을 나는 서랍을 맡았다.
그가 크기별로 꼼꼼히 꾸려놓은 책들을 보고 있자니
한때 불꽃처럼 거세게 타올랐고
영원한 것을 찾아 헤맸던 내 청춘이 생각났다.
그 때 난 저렇게 책 아랫면에 이름을 써두었고,
가끔은 그가 내 대신 누구누구꺼라고 쓰기도 했다.
그건 이 책 주인이 나란 뜻이자 책 주인인 내가 그의 것이라는,
유치한 우리만의 대화법이었다.
이름 옆에 찍혀 있는 도장은 서점에서 계산을 마친 뒤 찍어준 것이다.
지금 난 대부분의 책을 인터넷에서 산다.
그가 책에 내 이름을 써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책이 좋다.
책을 선물하고 선물받는 것도 좋다.
내 청춘을 바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대신
그 영원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싶게 만든,
한결같이 내 옆에 있어준 그가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했다.
전에는 엽서나 편지지에 글을 적어 표지 뒤에 끼워두곤 했는데
앞으론 맨 앞 장에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보낸 날짜를 적어 두기로.
그리하여 훗날 누군가가 그 책을 다시 들춰봐도
(선물받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책을 선물하던 나의 마음을, 우리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끈질기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이 그렇게 눌러 쓰며 결심한 것처럼(216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