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가을, 청명한 하늘과 바람과 책의 계절이 왔다.
반갑고 설렌다.
이번 에세이 신간 목록을 준비하면서
유난히 '제목'에 눈이 가 멈추었다.
곧 출간을 앞둔 작가 혹은 편집자 입장에서의 고민이기도 했을 것이다.
에세이 분야의 특징이겠지만
문득 요즘 책들의 제목이 무척 길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다.
목적이 여행에세이든 자기계발서든,
저자가 청년이든 노인이든.
제목만 들여다 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을 할 수 없을 만한 것들도 있었다.
선물로 치면 제목은 포장같다.
선물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줄뿐만 아니라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세밀한 감정을 드러내준다.
그래서 포장은, 제목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도 포장은 포장이지 내용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오덕 선생의 말이 생각나는 건 이 대목에서다.
아무리 포장이 좋아도 내용마저 바꿀 수는 없으므로.
부쩍 날카로워진 바람 때문인가.
제목에 대한 소회라고는 적었지만
사실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은 늘 한가지다.
어떻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어떻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좋은 글을 쓰기는 커녕 좋은 책을 고르는 일도,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가려내기도 어렵고 두려운 세상...
그래서 이번엔 그 자체로 제목이고 내용이 되어버린 작가들의 책을
(맘 편히) 골랐다.
공교롭게도 모두 외국작가들이다.
1.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문예춘추사, 2013, 08
나는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일상도 소설처럼 느껴지게 하는 치밀한 관찰력이나
오랜 고찰에서 나오는 깨달음,
나도 그랬다고 다독여주는 배려가 좋다.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앞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시대를 논하지 않는 작가는 결국 껍데기라고 믿으므로.
자신이 믿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므로.
알라딘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 가운데 일부,
<대립>에 대한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건강하고 씩씩하며 낙천적인 것, 모든 심각한 문제들도 웃으면서 대할 줄 아는 자세,
비난의 말은 거부하며, 순간을 즐기면서 얻는 생명력.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런 식으로 이 시대는 세계 대전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억을
허위(虛僞) 속에 잊어버리려고 한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과장되게 행동하고, 지극히 미국적인 것을 따라한다.
살찐 아기처럼, 분장한 배우처럼 일부러 과장되고 어리석게 굴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해하고 환하게 웃는다.
영어로 ‘스마일링smiling’이라고 하던가.
그런 낙관주의가 팽배하다.
환하게 빛나는 꽃잎들로 매일 새로운 치장을 하고
새로운 영화배우의 사진들을 걸고, 신기록을 나타내는 숫자들을 보며 즐거워한다."
2. <책으로 가는 문>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3, 08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그의 작품이다.
아니, 내가 본 것들의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게 더 맞겠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들이 그렇지만
그의 영화에는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아이도 노인도 남자 아이도 여자아이도 선한 쪽도 악한 쪽도.
많은 이들이 그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부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런 그가 말한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이런 마음을 가진 그가 추천하는 책들이니
당연히 들여다보고 싶을 수밖에.
3.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문학사상사, 2013, 08
노르웨이의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그리고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니.
이보다 더 다채로운 제목의 책을 낸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화제의 한 가운데에 있는 그의 책을 고르는 게
유행을 따라가는 것만 같아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잘 알려진 작가라고 해서 일부러 배제하는 것도
무조건 추앙하는 것 못지 않게 불공정한 것 같아 목록에 추가했다.
말이 필요 없는 작가들의 책을 골랐다고 해놓고는
자꾸 말이 길어지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말로 마무리를 하련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무슨 연유인지 내게 자명성을 지니지 않은 언어에
이렇게 둘러싸여 있다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슬픔과 비슷한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를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