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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우연일까. 인연일까.
같은 시대를 보낸 오랜 지기한테나 기대할 수 있는 깊은 위로를 받은 느낌.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학이후 십삼년을 보낸 서울, 도시를 떠나 산골로 돌아온
나에게 설렘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작가가 하늘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갖는 위대한 애정은 놀랍기만 하다!
그가 태양과 구름, 산, 호수, 나무, 풀 그리고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묘사하고 찬미하면,
그의 말을 통해 진실한 감정과 사색의 음향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것들조차 새롭고 고귀해진다."
- 발터 라테나우의 서평, 217쪽.
그렇다.
나무, 잡초, 선인장, 복숭아 나무와 흙,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다 탄 뒤 남은 재까지.
마치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뒤에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처럼
모든 자연에 열려 있는 그의 가슴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친숙한 것들조차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마 한 번도 자신의 정원을 가지는 걸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살면서 한번쯤은...'하는 꿈을 갖게 할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생활이 그저 낭만적으로 보일 만큼.
그의 말은 살아서 숨을 쉬고 춤을 추고, 당신도 어서 해보라며 손짓을 한다.
스스로 부딪히고 경험한 것들이 갖는 진실성.
이 책을 읽으며 '노동'에 대해 강조한 이오덕 선생의 말을 여러번 떠올렸다.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 이오덕, <무엇을 어떻게 쓸까>, 31쪽.
그가 정원으로 들어간 것도
가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가치 있는 생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쟁과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기계적이고 소모적인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충동으로 가득 찬 시대의 흐름에 영혼의 고요함으로 맞서"기 위해서(204쪽).
내가, 우리가 그토록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소비만이 추앙받는 곳에서 제대로 살 자신이 없었다.
온갖 소음과 쓸데 없는 일들에 치여 나를,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까봐 두려웠다.
그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시대의 아픔을 견디고자 했던 대문호에게도, 미천한 도시인에게도
'자연'은 그래서 그 자체로 축복이고 치유다.
그래서 떠나왔다.
내 아이가 맘 껏 걸음마를 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고,
밥상에 올릴 푸성귀를 직접 키우고 가꿀 수 있는 텃밭과
개 한마리와 닭 다섯마리와 토끼 한마리가 있는 집으로.
집안 어디에서든 산과 나무와 하늘이 보이고
몇걸음만 옮기면 누런 들판이 나오며
언제고 불쑥 대문을 열어제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사는 곳.
변성기를 지나는 중학생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온동네가 잠잘 준비를 하는 진짜 시골로 말이다.
아마 내 아이에겐 이곳이 첫 고향이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곳을 떠난 뒤에도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되겠지.
그리하여 저자가 그랬듯이 나중에 다 자라서 세상 여기저기를 나갔다가도
언제든 ‘고향’이라 부르며 돌아올 수 있는, 영혼이 머물 수 있는 진짜 집.
나도 저자처럼 정원을 가꾸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쉬지않고 '가치있게 사는 법'을 고민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는 토마토 이외의 모든 먹을거리는 아내에게 맡겼지만
아마 나는 그 반대가 될 것 같다.
"집 안에 저장해둔 씨앗과 구근을 살펴보고
정원에서 사용할 공구들을 점검하며,
잡초 한 포기 자라지 않게(12~13쪽)"
제대로 정원을 가꾸는 일은 남편에게 맡겨두고
그가 정성들여 키우고 가꾸는 밭을 들여다보며 맘껏 흐뭇해 하리라.
그래도 가끔은 그 일에 열심히 동참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말했듯이, 헤르만 헤세가 삶으로 증명했듯이
일을 하는 것이 없는데 글만 자꾸 쓴다면
그 글이 제대로 될 수가 없으니까.
리뷰 작성 기한일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이사와 명절, 돌배기 아이를 돌보는 틈틈히 분주히 읽었지만
한 번에 한 챕터 씩,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겠다.
넘쳐나는 자연의 힘, 그 사이에서 맘껏 유희하고 싶은 내가
어떤 게으름뱅이 정원사가 될 지 한껏 기대하며.
멋스런 셔츠에 우수에 찬 눈과 고집스런 주름을 갖고 있던 그를 떠올리며.
"재미 삼아 정원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몇 달밖에 안 되는
따뜻한 기간에 많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혹은 누군가의 부탁으로 정원을 가꾸게 된다면
온통 즐거운 것만 보게 된다.
키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고 형태를 다듬어가는 가운데 넘쳐나는 자연의 힘,
자연 속의 형상들과 색채 사이에서 유희하고 싶은 느낌과 환상,
여러 면에서 인간적인 여운을 주는 작고 소소한 즐거운 생명(17~18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