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 미아&뭉크 시리즈
사무엘 비외르크 지음, 이은정 옮김 / 황소자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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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뭉크 첫 번째 시리즈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를 읽었다. 순서대로 책을 읽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타이밍이 맞질 않아 두 번째 시리즈를 먼저 읽게 되었다. ('올빼미'는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 '나는 혼자'는 예약도서로 신청을 해놨는데, 희망도서였던 '올빼미'가 먼저 도착하는 바람에 ㅎㅎ) 시리즈의 경우 하나의 큰 사건이 마무리가 안 되고 다음 권으로 연결되면서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이럴 경우엔 당연히 첫 권부터 읽어야 하겠지) 위 시리즈처럼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첫 권에서 마무리되고, 주인공들의 또 다른 이야기 즉, 다른 사건이 다음 권에서 진행될 경우엔 두 번째 권부터 읽어도 별 문제 없을 거라 판단해서 일단, 먼저 읽었다.


보통 북유럽 스릴러하면 뭔가 섬뜩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을 가장 먼저 받게 되는데,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라는 작품은 제목이 암시하는 상징성과 더불어 책표지에서 느껴지는 안개 낀 어두운 숲 속의 신비로운 듯 으스스 한 풍광이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응, 죽음의 새!

올빼미 깃털을 붙이고 주문을 걸면 죽은 사람이 돌아온대." 

1972년 젊은 커플이 둘만의 결혼식을 위해 한 교회를 방문한다. 남자는 선박왕이라 불리는 억만장자의 아들이고, 여자는 평범하나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둔 이력이 있다. 그러나 남자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선 자신의 가족에 다른 혈통이 섞이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다. 이 때문에 젊은 커플은 여자의 아이들을 남자의 먼 친척 집에 잠시 맡겨 두기로 한다. 아이들, 소년과 소녀는 어딘가의 허름한 지하실에 갇혀있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강제로 복용당하기도 한다. 어느 날 소녀는 오빠인 소년을 몰래 따라가다가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알몸의 소년은 새의 깃털로 온몸을 덮고 있고, 입안엔 죽은 쥐의 사체를 물고 있는데, 퀭한 두 눈으로 소녀를 응시하며 소년이 내뱉은 한마디는... "나는 올빼미다."


그리고 현재, 숲 속에서 10대 소녀가 펜타그램 모양으로 놓인 촛불들 가운데 목이 졸리고, 손이 뒤틀린 채 알몸의 사체로 발견된다. 특이한 점은 소녀 주변에 새의 깃털로 추정되는 것들이 널려 있고, 입에는 하얀 백합꽃을 물고 있다는 것. 뭔가, 오컬트 집단의 제물 의식에 희생된 모습 같기도 한데, 이 기괴한 사건은 미아&뭉크가 수사하게 된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미아는 쌍둥이 동생의 죽음으로 큰 상처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개인적으로 동생의 복수를 했다는 것도. 이는 경찰신분으로서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이었기에 정직을 당하게 되고, 이제 세상에 온전히 혼자가 된 미아는 자살을 결심하지만, 미아의 능력이 필요했던 뭉크에 의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뭉크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한 가정사를 갖고 있는데, 어쨌든 상처로 얼룩진 이 두 콤비는 사건을 진두지휘해 나간다.


희생된 소녀는 후룸란데 보육원 출신인 17세의 '카밀라 그린'으로 밝혀지고, 미아&뭉크 및 함께 하는 여러 동료들은 후룸란데 보육원을 중심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간다. 그리고 조금씩 의심을 갖게 만드는 용의자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쯤에서 독자는 궁금해질 것이다. 분명 책 초반에 나왔던 소년과 소녀가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소년과 소녀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고,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 누가 그들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읽다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엔 또 다른 반전이 있다. 당연히 범인인 줄 알았는데, 킁.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라는 작품은 '페이지 터너'라는 말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그만큼 잘 읽히는 작품인데, 뭐랄까? 책 띠지에 나와있는 '크라임의 진정한 거장'이라는 말은 조금은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단! 소재는 참 좋다. 올빼미라는 새(울음소리도 묘해~~)가 주는 묘한 분위기나, 어린 시절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린 소년의 성장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악마성의 발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광기에 찬 살해 현장 등등. 그러나! 이런 좋은 소재들을 이끌어 가기엔 소설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스토리가 조금은 심심했달까? 즉,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감이 느껴지진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정신상태에 쉽게 몰입이 되지도 않았다는 것. 최근에 읽은 샤를로테 링크의 <속임수>라는 작품은 자극적이고 광기에 찬 소재가 아니었음에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정신상태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어서 어찌나 긴장하면서 읽었던지... 그 느낌과 좀 많이 비교가 되어서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미아의 상황은 이해가 가는데, 너무 술과 약에 의존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고, 답답하고... 그리고 뭉크가 크게 평가했다는 그녀의 능력이 도대체 뭔지 솔직히 조금.. 음.. 그래도 찾아보자면, 용의자들의 상황을 잘 받아주고, 호응해주고, 뭔가 그들에게서 답을 이끌어 내려는 능력이랄까? 아! 또 하나 있다. 어떤 한 용의자(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가 툭툭 내뱉은 단어들을 추리해서 결국 범인을 잡는데 성공했다는 것! 나도 그 부분은 대충 넘겼는데 말이지. 아~ 이 자식 뭔 자꾸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하면서 ㅋㅋ. 다 읽고 나서 다시 그 부분을 찾아서 읽어보니 헐... 아주 단서들을 다 주었던 건데 말이지... 후~ 그래,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봐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만... 그래도 미아야! 술과 약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혀선 안돼!! 미아&뭉크 시리즈는 마지막 장을 보니, 다음 시리즈가 또 나올 것 같은데, 그때는 이 아픔과 고통들을 조금은 극복하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전작인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도 곧 읽어봐야겠다. 

 

어렸을 때의 천진난만함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때는 얼마나 순진하고 모든 게 아름다웠던지. 엄마는 손으로 아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고 싱긋 웃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시간. 어린시절은 그랬다. 매 순간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미리암은 커피잔을 비우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약간 졸음이 왔다.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가로등 덕분에 과거로의 아름다운 여행을 했다. 그녀는 최근 들어 10대 시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는 어른이 되는 것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제야 돌이켜보니 그 시절은 얼마나 좋았는지. -4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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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도 사랑해
구작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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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라는 말, 언제 들어도 애틋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말. 이른 아침 새벽의 미명을 맞이하며 구작가의 <엄마, 오늘도 사랑해>를 펼쳐 들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 캐릭터 '베니'와 엄마 토끼가 등장하는 책이다. 책을 다 읽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사랑스러운 내용의 일러스트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토끼 베니는 구작가 자신이었고, 엄마 토끼는 구작가의 엄마였다. <엄마, 오늘도 사랑해>는 작가의 조금은 특별한 삶의 이야기였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작가의 이력도 몰랐고, 작가의 전작인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책 역시 읽어보지 못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읽은 구작가의 <엄마, 오늘도 사랑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땐 엄마 생각과 함께 눈물이 났다.


책의 처음 시작은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별이 엄마 토끼의 뱃속으로 스며들며 시작된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토끼 베니. 엄마와 함께 한 구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사랑스러운 일러스트와 함께 수놓아진다. 선천성 청각장애를 앓았지만 엄마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한 구작가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그리고 한없이 커다란 엄마의 사랑과 희생. 토끼 캐릭터 베니의 귀가 커다란 것도 그녀, 자신은 듣지 못하지만 캐릭터 베니를 통해서라도 잘 듣고, 들리길 소망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 한다. 지금은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으로 소리에 이어 빛까지 잃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덤덤하게 용기를 내기로 했다는 구작가. 이 모든 것 뒤엔, 언제까지고 기다려준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너무도 가슴 뭉클하고, 사랑스럽고, 예쁜 책 <엄마, 오늘도 사랑해>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책을 다 읽고 뒤늦게 설거지를 하면서 무심히 창밖을 보며 든 생각들. 나에겐 더 이상 사랑한다고 고백할 엄마가 없지만, 훗날 나는 내 아이에게 큰 사랑을 주고, 묵묵히 기다리며 믿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한다면, 그 두려움과 아픔들을 구작가님의 어머님처럼, 극복하고 사랑으로 채워줄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엄마와 엄마가 된다는 것 사이에서 많은 생각들을 한 오후였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 역시 다음번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내 엄마여서 고마워.

이젠 내가 안아줄게.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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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검은 밤 - 상
시바타 요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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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BL물(Boy's Love)이라 불리는 장르가 있다. 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성향 소설이나 만화를 일컫는 말이다. 시바타 요시키의 <성스러운 검은 밤>이란 작품도 넓게 본다면 'BL물'이라 할 수 있다.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때문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물론 책표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한몫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 단순한 BL물이 아니다. 평소 내가 즐겨 읽는 장르소설의 다양한 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을 구성하는 미스터리적 요소나, 서스펜스적 요소뿐만 아니라 일본소설 특유의 감성적 요소도 두루 갖춘 다채로운 성격의 소설인 것이다. 또한 <리코 시리즈>, <하나사키 시리즈>에 조연으로 등장하며 독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야마우치 렌'과 형사 '아소 류타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 <성스러운 검은 밤>에선 '두 남자의 과거'가 그려져 기존 독자 팬들에게 유례없는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품이라 한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은 <95년 현재>와 <80년대 과거>를 주축으로 교차서술된다. 등장인물들도 꽤 많은 편인데, 책을 읽어가면서도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주요 인물 소개>부분을 몇 번이나 펼치면서 읽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방을 부를 때 보통 '이름'을 부르지 '성'으로 부르진 않는다. 그에 반해 일본에선 상대방을 '성'으로 불렀다가 '이름'으로 불렀다가 하니, 일본소설을 읽으면 항상 애먹는 부분이긴 하다. 특히 등장인물이 많을 땐 더더욱.


책띠지의<천재 형사와 아름다운 용의자, 두 남자의 매혹적인 미스터리>라는 문구처럼 천재 형사 '아소 류타로'와 아름다운 용의자 '야마우치 렌'의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처음 과거시점은 '야마우치 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야마우치 렌'과 '아소 류타로'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책 속 주된 사건은 가스가 파의 핵심 간부였던 '니라사키'가 호텔 욕조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인데, 경찰 조직 내부에선 조직 간의 항쟁사건이냐 아니냐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수사1과와 수사4과는 합동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수사1과 경시청 계장 '아소 류타로'는 항쟁사건으로 보지 않고 '니라사키'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수사하던 중 '야마우치 렌'을 만나게 된다. 그 자신이 잊고있었던, 10년 전 사건의 용의자와 형사가 10년 후 다시 용의자와 형사의 신분으로 재회한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은 '아소 류타로'를 혼란스럽게 한다. 첫째, '야마우치 렌'과 '니라사키'의 관계인데, 렌이 살해당한 니라사키를 사랑했다고 고백한 것. 둘째, 10년 전 사건에서 렌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2년이라는 실형을 살았고 지금은 조직폭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때와 너무도 달라진 '렌'의 모습에 '아소'는 당혹스럽기만 한데. 도대체 10년 전 그 사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당시 관할서에서 근무했던 아소는 사건종료 후 진급과 동시에 본청으로 왔다. 그리고 잊었다. 형사에겐 늘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왜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 청년의 앞날이 그렇게나 걱정됐었는데. 자신은 야마우치가 말한 대로 차가운 인간이다. 결국은 다 업무였을 뿐이다. 체포된 사람이 그 후에 어떤 인생을 살든 형사가 관여할 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더 오지랖이 넓어서 그 청년이 지금쯤 어떻게 됐나 싶어 세타가야 서에 전화 한 통만 걸었다면 실형을 받고 복역했다는 것과 출소하여 불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니라사키가 죽기 전에 전화 한 통만 걸었다면.>

​<성스러운 검은 밤>은 '니라사키'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아소 류타로'의 시선을 좇으며, 독자 역시 도대체 '범인'이 누굴까? 생각하고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책 속에 흩어져 있을지 모를 단서들을 조합하고, 주변 인물들을 의심해보지만 범인의 윤곽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1권, 2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범인의 윤곽은 2권에서나 나타날 것 같다. 그리고 '야마우치 렌'. 어쩌면 빛나는 미래를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를 유약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으나... 형 외에 다른 가족은 안중에도 없던 엄격했던 아버지, 계집애처럼 생겼다며 놀림당하던 어린 시절, 어느 순간 알게 된 자신의 성 정체성, 자신의 몸을 탐하고, 탐했던 수많은 남자들. 언제부턴가 삶의 저편으로 다시 기어오르려는 마음을 버린 남자, 야마우치 렌. <부유하며 천천히 바닥까지 떨어져 내리는 감각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바닥에 닿으면 그대로 썩어서 흙으로 되돌아가면 그만이야.>그의 이 말이 가슴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게 된 남자 '아소 류타로'. '렌'과 이야기를 할수록 알게 모르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의 욕심이었을까? '렌'은 '아소'를 위험 아닌 위험에 빠뜨리고, '아소'는 '렌'의 누나로부터 10년 전 사건의 진상에서 손을 떼라 하는데... 미우라 시온(소설가)의 <인간의 내면을 격렬하고 심오하게 그려낸 걸작>이라는 말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체감하지 못했는데, 읽고 난 후에 체감하게 됐다.


마지막, <외전>에선 어쩌면 그들의 첫 만남이었을 그 순간이 머릿속에 아련하게 그려졌다. 한 청년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욱신거림과 슬픔, 그리고 첫 여름을 장식하는 아지랑이처럼 새롭게 시작될 미래를 꿈꾸었던 청년의 모습도...

 


<책 밑줄>


아소는 차창으로 밖을 바라보다 하늘로 눈을 돌렸다. 니라사키는 이 하늘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 하지만 24시간 전에는 니라사키도 자기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그런 법이다. 아소 역시 24시간 후에 다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57page>


그 남자는 일부러 침을 튀기며 그렇게 말했다. 때로는 진짜 침을 뱉을 때도 있었다. 왜 그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렌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렌이 그 남자에게 무슨 실수를 한 기억은 전혀 없었고, 폐를 끼친 적도 없었다. 반항하며 말대꾸한 적조차 없었다. 결국 그 녀석은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였으리라. 동성애자와 동성애적 행위전반을 증오한다기보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 참 불합리한 이야기라고 렌은 생각했다. <218page>


돌아갔을 때 누군가가 '어서 와'하고 반겨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어디 가고 싶고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도미코는 어디에 얼마나 나가 있든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고, 돌아간들 반겨줄 사람도 없다. <304page>


영원히 지속되는 연심은 없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법이다. 분한 걸까. 그래, 분하다. 니라사키는 그 여자에게 사랑받으며 살다가 죽었다. 그 여자뿐만이 아니다. 사쓰키도 그랬다. 이것만 보더라도 니라사키의 인생은 자신의 인생보다 나았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나. 아소는 지금까지 대놓고 법률을 위반한 적 없이 최소한의 사회 규칙을 준수하며 살아왔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남을 불합리하게 괴롭힌 적도없다. 그런데도 여자에게 배신당했다. 니라사키는 어떤가. 그렇게 제멋대로 굴며 수많은 사람들을 울려놓고도 사랑받았다. <341page>
 

서쪽 하늘로 떨어져 내린 달 옆에서 별 하나가 아주 밝게 빛났다. 아소는 왜 그 별이 이렇게 흐릿해 보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가게가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로 왔지. 나 자신과 내 인생에 정이 뚝 떨어졌거든. 첫차가 오면 다 끝난다는 생각으로 선로에 누워서 잤어." <388page>


달이 예쁜 밤이었다. 웬일로 윤곽이 선명했다. 달이 꽉 차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하나, 아니면 이지러지기 시작한 걸까. 배가 불룩한 방향을 보고 달이 차오르는 중인지 이지러지는 중인지 구분하는 방법을 과학 시간에 배웠는데 이제 다 잊어버렸다. 잊어버린 게 너무나 많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잃은 기억은 무수히 많다. <48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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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곁 -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
김선현 지음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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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참 좋아했다.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란에는 항상 '화가'라는 직업을 써놓곤 했으니. 대학도 미대 진학을 꿈꾸었지만 엄격했던 아버진 '예술 분야'로 진학을 하게 되면 소위 '피죽도 못 끓여 먹는다'라는 말씀으로 극구 반대를 하셨다. 기술 및 컴퓨터와 관련된 분야로 진학을 해야 후에 취업도 되고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서, 결국 반강제적으로 '공과대학' 원서를 넣게 되었다. 당시 나는 '그림에 대한 열정'만으로 아버질 꺾을 배짱도 용기도 없었다. 시험기간 대학 도서관에선 학과 공부 대신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재미없었던 학과 수업이었으니 졸업도 겨우 했고. 비록 '화가'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컴퓨터그래픽 분야에 매료되어 웹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걸었고, 이 직업으로 밥벌이를 했다. 솔직히 지금은 그림보단 책 그리고 독서에 더 많은 관심과 꿈을 갖고 있다. 다만, 이루지 못했던 오래전 꿈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인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그림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다. 손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 제대로 멋진 디지털 아트를 제작해 보고 싶다,라는 꿈.

그런 가운데 만나게 된 김선현 작가님의 <그림의 곁>. 이 책은 온전히 '그림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책이다. 어려운 미술 용어도 등장하지 않고, 복잡한 그림에 대한 설명들도 최소화하였다. 그저 책 속에 등장하는 80여 점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80여 점의 그림들은 세 가지 테마에 맞춰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은 설렘, 연애, 결혼 등 사랑에 관련된 그림들을 다루었고, 둘째 장은 친구, 가족, 동료 등 관계에서 나를 지켜낼 그림들을 담았다. 마지막 셋째 장에는 나, 그리고 '내 안의 나'와 둥글게 살아가기 위한 그림들이 실려있다. 에두아르 마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앙리 마틴, 구스타프 클림트, 타마라 렘피카 등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컸지만, 내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알게 되고 감상하는 즐거움도 무척 컸다. 그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점 찾아 첨부해 보았다. 물론 책 속 이미지를 촬영하여 첨부할 수도 있었으나, 책의 특성상 그림이 약간 휘어질 수 있기에 위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사무엘 루크 필즈>

: 평화로우면서도 낭만적인 그림이라, 마음이 잔잔해지고 고요해짐을 느낀

사무엘 루크 필즈의 그림

:)

 

 

 

<알렉산더 에버린>의 작품들

: 아름다운 엄마와 귀엽고 작은 아이가 주로 등장하는 알렉산더 에버린의 작품들은

알게 모르게 가슴이 찡해진 그림들이다.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랄까?

:) 


 

 

윌리엄 존 헤네시 <완벽한 사랑>

: 당당하고 여유로운 여인의 뒷모습에 매료된 그림

그리고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 정원은 고요하고 어디선가 작은

새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꽃들도 연인의 모습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것 같다.

:)


김선현 작가님의 <그림의 곁>은 이렇듯 아름답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넣어진 질문들을 읽어보고, 직접 작성해보면서 스스로의 내면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만, 책에 직접 쓰는 것은 어쩐지 아까워서 별도의 노트에 작성해 보기로 했다. 또한 그림과 글이 연결되는 곳에 마음을 매만질 명언들도 실려있다. 여러 번 곱씹어 보면서 마음속에 새겨두었다가 언젠가 힘이 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꺼내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서, 힘이 되는 글을 읽으면서 내 내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사 후 정신없이 정리하고, 치우고 하느라 살짝 여유가 없긴 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정리도 되었고, 이 봄이 가기 전에 우리 집 거실 벽에 걸어 둘 그림 하나 장만해야겠다. 가만가만, 조용조용 그저 바라만 보아도 내 마음을 안아주고 위로해 줄 그런 그림으로.


<사람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없다.>

- 그레이엄 그린​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사랑이다.>

- 소포클레스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비로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 조지 엘리엇

 

<그대 자신의 내면을 읽지 않는 한 휴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은 없다.

휴식이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가 사라져버린 상태다.

휴식이란 다름 아닌 '행위의 부재'를 의미한다.>

- 오죠 라즈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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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아야세 마루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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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를 가득 메운 벚꽃 무리, 그 벚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순간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얗게 반짝이는 작은 꽃송이들을 숨죽여 바라보곤 했었는데. 이젠 연초록 새싹을 틔워낸 벚나무들. 아쉽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펼쳐든 아야세 마루의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읽는 내내 봄의 싱그런 향기가 나고, 머리 위에선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졌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오면 꽃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는 나비처럼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속의 다섯 가지 이야기도 신칸센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향기롭게 그려진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곳은 일본 토호쿠 지방이다. 도쿄 위쪽, 일본 동북부 지역으로 신칸센 노선도를 따라가면 <우츠노미야>, <후쿠시마>, <센다이>, <하나마키>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다른 지역들에 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사고 이전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으며 누군가에겐 여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고향이자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츠이의 센본자쿠라>, 옛 지방 영주의 묘지인 <즈이호우덴>, <호빵맨 박물관>, 미야자와 켄지를 기념하는 <동화마을> 등등. 책 속에 등장하는 이곳들을 각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떠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


첫 번째 이야기 <목향장미 무늬 원피스>. 토모야는 <우츠노미야>에 살고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지냈던 할머니에게 뒤늦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 예쁘다는 말에 소녀처럼 얼굴이 빨개졌던 할머니. 그 사람을 따라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을 때 가족들은 찬성과 반대로 다툼이 심했는데,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낯설지만 이곳에 정착한 할머니. 그럴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궁금하기만 한 토모야에게 할머니의 한 마디는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새로 산 예쁜 원피스를 입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 오랫동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단다." 어느 순간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뒤치다꺼리를 당연시했다. 부모라는 단어는 희생의 또 다른 말인 것처럼. 새로 산 나의 옷을 당신의 몸에 대면서 아이처럼 좋아했던 엄마. 그 시절 나는 나 자신을 꾸미기에만 급급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를 위해 예쁜 원피스 한 벌 사준적이 없었다. 이제와 후회하고 눈물 흘려도 예쁜 원피스를 입을 엄마는 없다. 사랑받고 싶고,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은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사방을 둘러싼 봄의 산이 부드럽게 자신을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은 꽃이 핀 화창한 공원이었다.

토모야는 발길을 되돌려 이제 막 건너온 다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푸른 산을 등지고 있는 듯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꽃이 그려진 원피스가 팔랑거렸다.'


두 번째 이야기 <탱자 향기가 풍기다>. 약혼자인 유키토와 함께 그의 부모님을 뵈러 <후쿠시마>로 떠나는 리츠코. 원전사고가 났던 곳이라 그들의 삶은 어떨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대화를 나눌 때에도 미리 공부해 간 방사능 수치에 대해 얘기하지만,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생선초밥을 먹을 때에도 주저하게 되는 리츠코. 그러다 집안 어딘가에서 부드러운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집 뒤편 산울타리에 하얀색 꽃이 피는 탱자 향이다. 매스컴을 통해 듣는 후쿠시마의 안 좋은 소식들과는 대조적으로 유키토의 가족은 탱자 향이 가득한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관광명소 이야기를 할 때 어제보단 한결 밝아진 분위기를 보면, 그녀 혼자 너무 의식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번 유키토네 집에 가 보니......... 뭐랄까,

다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고, 상냥하고,그러면서도

우리 일가친적들과 마찬가지로 귀찮은 부분도 있는 거야. 그게 당연한 거지만.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후쿠시마의 피해자들'같은

이상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어."

세 번째 이야기 <유채꽃의 집>.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고향을 방문한 타케후미. 한때 어머니가 살았던 집이지만, 이제는 큰형 부부가 살고 있다. 어머니가 가꾸었던 일본식 정원은 형수의 손길로 유채꽃 밭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하듯, 자신의 기대대로 어머니가 변할 줄 알았는데 그전에 돌아가실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래된 마을 풍경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또한 흘러 지나갔다. 화해도 결론도 없는 희미한 혼란만을 남기고. 어머니 살아생전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을 떠올리는 타케후미. 진정 어머니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에 힘들어했는지 이해하려 하기보단 귀찮아하고, 피하기만 했던 자신이다. '어머니'니까 당연시했던 것들...

 

'어머니도 불단 위에서 시들어 버린 동백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것을 먹었음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해 가리라.

언젠가 열반의 길에 들어 만날 때까지'

 

 

 

네 번째 이야기 <백목련 질 때>. 함께 어울렸던 학교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속에 큰 상처와 두려움을 갖게 된 초등학생 치사토의 이야기. 어린 치사토의 심리묘사가 강한 인상을 준 작품이며,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꿈, 환생과 같은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누군가의 죽음은 슬픔과 아픔보단 어쩌면 큰 트라우마를 동반한 두려움이 더 클지 모른다. <치사토는 사실 자신이 미도리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는 게 아니라, 미도리처럼 되어 버리면 어쩌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사토가 꾸는 꿈속 다양한 생물로 태어나길 반복하는데, 이는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좀 더 강한 생물로 태어나길 갈망하는 치사토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리라. 피어 있는 시간이 짧아 더 소중하단 백목련을 좋아한다는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동화마을, 그곳에서 어머니가 읽어준 여동생의 죽음을 기리며 썼다는 켄지의<영결의 아침>이라는 시를 통해 치사토는 조금씩 마음 속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해 간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꽃 백목련의 모습에서, 무섭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눈앞의 반짝임을 절대 놓치지 않고 확실히 붙잡아 끌어안은 켄지의 시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앞서 네 편의 이야기 속에 잠깐씩 등장한 신칸센 차내 판매원 사쿠라의 이야기다. 어렸을 적 늘 다투던 부모님. 불안한 환경속에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사쿠라와 남동생 슈지. 급기야 성인이 되자마자 이혼한 부모님. 사쿠라 그녀에겐 따뜻한 가정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신칸센 열차를 타고 고향을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을 보며, 그들의 고향에 대해, 가정에 대해 상상하면서, 그녀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가정을 그려볼 뿐이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는 슈지 또한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그 자신이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데, 그런 슈지에게 사쿠라는 말한다.


"내가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해 줄 테니

누군가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저 먼 곳에서 신칸센을 타고 와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발견한 예쁜 것을 함께 보고 즐겨 주었으면 좋겟어.

그런 걸 해 보고 싶어서 가족이 가지고 싶은 걸지도 몰라."


 

 


책도 얇고 이야기는 길지 않았지만 긴 호흡으로 읽어나간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다섯 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처음 벚꽃이 만개했을 때 느꼈던 소소한 감동이 가득 차올랐다. 특별할 것 없는, 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그들의 섬세한 감정선에 닿아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열차 창밖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들은 복잡한 도심 속 빌딩에 가려 보지 못했던 것들로, 지금 당장이라도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은 벚꽃이 지고 없지만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다시 돌아올 벚꽃의 계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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