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앙의 비밀 미스터리 야! 8
쿠지라 도이치로 지음, 안소현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린 시절 식물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집 앞 마당에서 꽃과 풀을 보며 행복했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고등학생 레이. 엄마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8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가슴에 칼을 맞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며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한마디는 '루비앙'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루비앙'이라는 단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레이를 경찰은 오히려 용의자로 의심한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레이는 아버지를 살해한 진범이 누구인지 사건을 하나씩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폴린 제약과 관련이 있고, 폴린 제약이 편법을 써서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소설 '루비앙의 비밀'은 초반에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나옴으로써 사건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고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는데, 무엇보다 영화적 기법인 '장면전환'을 통해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스토리를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주인공인 레이의 평소 성격은 꽃을 좋아하는 여고생으로 소심하면서도 조용한 편인데,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선 과감한 행동력과 결단력을 보인다. 아버지와 폴린 제약의 관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혼자 폴린 제약을 찾아가는 모습이나, 폴린 제약 사장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를(꽤 먼 거리) 혼자 방문하는 모습,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아버지가 연구용으로 남긴 땅 홋카이도를 향해 한 남자와 단둘이 떠나는 장면 등은 내가 레이였다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결론은 아마 나라면 못 했을 것 같다. 그저 망연자실 경찰의 수사가 잘 진행되길 바라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또한 책의 제목이기도 한 '루비앙의 비밀'에 루비앙이 도대체 뭘까? 왜 레이의 아버지는 죽어가는 순간에 다른 말도 아닌 루비앙이라는 말을 남겼을까? 등 루비앙의 정체에 대해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쉽게 책을 놓을 수 없는데, 책의 중반부쯤에 아버지가 자주 방문했던 공원의 노숙자를 통해 독자는 루비앙의 비밀을 알게 된다. 레이는 루비앙이라는 단어가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작은 추억 속에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생각이 좀처럼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레이한테 말해주고 싶어서 미칠 노릇이다. 다만 레이는 루비앙의 실체는 모른 채,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범인의 약점이 되는 증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증거를 숨긴 장소가 루비앙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정도로만 추측을 할 뿐이다. 

 아버지가 자주 갔던 공원의 노숙자 중 한 명인 통칭 '부처'로 불리는 남자를 통해 비로소 레이는 루비앙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원망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자신이 이토록 집요하게 사건을 쫓았던 건 사실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 헤맸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소설 '루비앙의 비밀'은 오래전 헤어진 딸에 대한 아버지의 부정(父情)과 거대 제약회사의 비리, 그것을 알아챈 식물학자인 아버지의 죽음, 그 비리를 움켜쥐고 이용하려는 한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너무 무겁지 않게 그리고 있다. 아마 영어덜트 시리즈로 나온 미스터리 책이기 때문에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로 선정한 것 같은데, 그래도 굳게 믿었던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진 마지막 반전에선 꽤 놀라기도 했다. 아니면 내가 이런 추리나 반전에 약한 건지도 ㅎㅎ.

 


 끝으로, 아버지가 식물학자였던 만큼 레이도 야생화 및 풀에 관심이 많아 학교에서 '들풀 연구회'라는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하는 일은 근처 공원이나 길거리를 다니면서 봄, 마당, 길에 어울리는 혹은 자주 보이는 들풀들을 선정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야생화 및 들풀에 관심이 많아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야생화와 들풀들을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모두 확인해 보았다. '들풀 연구회'에서 정한 봄, 마당, 길에서 자주 보이는 야생화 및 들풀들은 아래와 같다.


> 봄의 7가지 풀 : 미나리, 냉이, 떡쑥, 별꽃, 광대나물, 순무, 무

> 마당의 7가지 꽃 : 민들레, 괭이밥, 큰개불알풀, 주름잎, 살갈퀴, 타래난초, 삼백초

> 길의 7가지 풀 : 질경이, 강아지풀, 개여뀌, 자주광대나물, 큰이삭풀, 새포아풀, 갈퀴덩굴


특히 레이는 '큰개불알풀'을 무척 좋아했는데 작고 푸른색이 도는 여린 꽃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름이 참 고약하다. 해서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 보았더니 큰개불알꽃 열매가 개의 불알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요즘은 조금 순화하여 '봄까치꽃'이라 부른다는데 이 이름이 훨씬 난 것 같다. 영문으로는 bird's eyes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여행을 꿈꾼다. 손미나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영혼을 위한 비타민'이자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부활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행은 인간의 가슴에 품고 사는 우주를 확장시키고 내면의 성장을 도와주는 '길 위의 학교'이기도 하다. 그녀의 말처럼 여행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런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지만 한편으론 삶이 녹녹치 않아 쉽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곳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멀고 먼 나라 페루라면 더더욱. 나도 지금은 그중 한 사람이다. 다행히 그녀는 이런 나에게 작은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녀가 먼저 만나 본 영혼의 땅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라는 작지만 소중한 책 한 권. 직접 갈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이렇게 책으로라도 페루라는 곳을 읽고, 보고,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

 우리에게 손미나 그녀는 ​여행작가이기 전에 아나운서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지금은 명실공히 여행작가로서 활약하고 있지만. 얼마 전 TV에서 모 방송사에 출연한 그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느 여행지에서 이태리 의사를 만났는데 그가 그녀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의 짧은 물음에 마음속 강한 충격을 느끼며 '나는 정말 행복한가?'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뭔가 가슴을 흔들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만남이 그녀가 여행작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음을 예견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지.

 아나운서라는 대한민국 남녀노소 누구나 부러워할 직업을 그만두고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의 그녀를 여행작가로서 만날 수 있고 그녀가 밟았던 많은 곳들을 한 권의 소중한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라는 책 이전에도 여러 권의 여행 에세이를 냈지만 그녀 자신이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 페루로의 여행은 다른 그 어떤 여행지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3년 전 그녀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고통들이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의 고통과 상처들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가족을 잃는 고통은 시간의 흐름으로도 옅어지지 않는 아픔이다. 그녀 역시 이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를 잃은 후 알게 되었다. 그녀 삶에 느낌표로 가득하던 우주가 아버지를 잃고 하루아침에 온통 물음표로 채워져 혼란스러웠던 그때 마음속에서 '지금이야말로 여행이 필요하다'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고 페루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역사학자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이기도 했고, 해발 30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 지대에 현세와 영원의 세계를 연결해준다는 전설 속의 새 '콘도르'를 꼭 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는 페루에서 자신과 하늘에 계실 아버지를 연결해주는 전설 속의 새 '콘도르'를 보게 되고 그 경이로움 속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다.

'딸아, 괜찮다. 두려워 말거라.

아빠는 이렇게 자유롭게 세상을 날고 있단다. 네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이렇게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니. 안심해라.

우리는 늘 함께 있다.'​

 그녀에게 위로와 치유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에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고 품어준 땅 페루. 그러나 페루라는 곳을 떠나기 위해선 준비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고 며칠 동안 힘들었던 일, 한 달간의 여정 동안 고산병으로 힘들어했던 일 등 그녀 스스로도 고산병 예방을 위해 코카 차나 무냐 차를 마시고, 혹은 호텔에서 산소통 룸서비스를 받아 가며 페루에서의 모든 일정들을 소화했다. 읽으면서 페루라는 곳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해발 몇 천 미터가 넘는 곳들을 나는 과연 그녀처럼 잘 이겨내고 여행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고, 페루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땅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그녀는 페루 여행을 철저히 준비했고 떠나야 할 이유를 가슴에 품고 떠났다. 무엇보다 페루는 스페인 유학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이야'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여행길에 한결같이 동행하는 사진작가 레이나도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친구 '이야'와의 행복한 만남과 추억, 태곳적 원시림을 간직한 아마존에서의 나날들, 남미 대륙을 호령하던 잉카인들의 문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추픽추에서의 경이로움,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티티카카 호수 사람들과의 만남, 외계인이 그렸다는 설이 있는 미스터리 한 나스카 라인 투어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웃지 못할 순간들,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바예 사그라도, 쿠스코의 파란 하늘, 여행지에서 만난 우연이 인연이 되어  페루에서 그녀의 여행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준 그레고리와의 만남 등. 그녀와 함께 페루로의 출발부터 도착까지 책을 통해 여행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 또한 설레고, 웃고, 울고, 감탄하고, 때론 고산병의 위험으로 두려운 마음도 들긴 했지만 즐거웠다.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페루, 그래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라도 신비로움이 존재하는 영혼의 땅, 페루를 마음속으로 염원해 본다.

 

 

+

<마추픽추는 케추아 어로 '늙은 봉우리'를 의미한다.

15세기경 남아메리카 대륙을 호령했던 잉카인들이 건설한 도시.

시대를 앞서간 그들의 문명은 '키푸'라는 매듭문자가 있었지만 해석이 어려워

그들의 문명은 아직까지 신비로움으로 남아 있다.> 

 :)

 

 

 

 

 

 

+

<새들의 배설물로 뒤덮여 있는 섬 바예스타스, 이 배설물로 비료(구아노)를 만들어 페루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페루는 최상의 구아노가 만들어지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

 

 

 

 

 

+

<페루는 지형의 특성상 고산지대가 많은데, 여행하면서 고산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산소통 룸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

 

 

 

 

 

 

 

 +

 

<스페인 유학시절 절친인 '이야'와 함께 마추픽추에서.

그녀의 여행이 더 행복했던 건 페루 땅의 아름다움도 있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혼자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걸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도

큰 의미일 것이다.​

 :)

 

 

 

 

%ED%81%B4%EB%A1%9C%EB%B2%84

"미나야, 네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인생은 모든 순간이 그 고유의 가치가 있는 거란다.

겉으로 보이거나 소유하고 있는 것들과 상관없이 의지를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며

그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단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쁘다. 늘 행복해라."

 

- 여행 마지막 날 친구인 이야의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 -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루이스 캐럴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미스터리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나의 이런 호기심으로 선택하게 된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처음부터 끝까지 흡입력 있게 읽어나간 책이다. 책 속 주인공인 구리스가와 아리는 언젠가부터 연속되는 이상한 꿈을 꾼다. 자신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있는 꿈이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여서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만큼은 꿈인지 조차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꿈속에서 앨리스는 도마뱀 '빌'과 함께 '암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3월 토끼'와 '미치광이 모자장수'로부터 '험프티 덤프티'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흰 토끼'의 증언으로 '앨리스'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설상가상으로 '그리핀', '흰 토끼'마저 살해되면서 '앨리스'는 연쇄살인범으로 몰리게 된다. 한편, <지구>에서는 '오지'라는 대학 연구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같은 대학교의 대학원생인 구리스가와 아리는 그의 죽음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데, 바로 꿈속에서 살해당한 '험프티 덤프티'의 죽음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의구심을 품은 채 학회 발표 문제로 만나게 된 '이모리'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모리'역시 자신과 똑같은 꿈을 꾼다는 것과 '이모리'가 이상한 나라의 도마뱀 '빌'이며 '험프티 덤프티'가 '오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아바타'라는 개념을 도출하게 된 것이다. 현실세계에서의 '나'와 가상세계에서의 '나'가 존재하듯, 지구와 이상한 나라 역시 이러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모리'와 '아리'는 가상세계에서 살해당한 '그리핀'이 현실세계에선 누구인지 또 '흰 토끼'는 누구인지 그 밖에 가상세계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현실세계에선 누구인지 은밀하게 찾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상세계에서 살해 용의자가 된 앨리스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선 반드시 '진범'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가상세계에서 앨리스는 여왕으로부터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고 그 영향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실세계인 지구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과연 앨리스와 빌은, 아리와 이모리는 앨리스의 결백을 밝히고 무사히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자, 현실 세계에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죽이면 어떻게 될까?"

"살인죄로 체포되겠죠."

"그럼 이상한 나라에서 죽이면 어떨까?"

...


현실세계에서는 동기가 있지만 살인이 아니므로 붙잡히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동기가 없으므로 붙잡히지 않는다. 247Page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는 고전에 미스터리를 더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더 큰 매력은 따로 있는데 우선 첫 번째, 이상한 나라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상한 대화'이다. 읽고 있으면 나까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랄까? 미스터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화를 읽어나가다 보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그 유머스러움과 과장된 이상함이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긴장감을 반감시킬 수 있지만,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잔혹동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때 톡톡히 빛을 발한다.  마치 팀 버튼 감독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두 번째는 가상세계의 '어떤' 캐릭터가 현실세계에선 누구일까?를 맞춰보는 재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의 예상과 빗나간다. 이 점이 마지막 세 번째인데 <앨리스 죽이기>는 독자가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놔두질 않는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굳게 믿었던 캐릭터의 아바타가 사실은 그 아바타가 아니었다는 것, 범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캐릭터가 범인이었다는 것 등등 반전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최대 반전은 바로 이것인데 (스포이지만, 나의 생각을 얘기하기 위해선 부득이하게 밝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상세계'라고 믿었던 '이상한 나라'가 사실은 '현실'이었고, '현실'이라고 믿었던 '지구'가 사실은 '가상세계'였다는 것이다. 즉 가상세계인 '지구'에서 '나'라는 존재가 죽는다고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꿈'이고 '가상세계'이기 때문에 '현실'인 '이상한 나라'에서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진범'에게 '사형집행'을 내리기 위해선 '지구'가 아닌, '이상한 나라'에서 집행해야만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나의 '게임 캐릭터'가 아무리 죽어도 다시 접속하면 부활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밝힌 이유는 가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책 속의 결말이 얼추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이라 믿으며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사실 누군가의 꿈은 아닐까? 그의 꿈이 꽤 많은 모순들로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그는 이 세계를 부수고 잠에서 깨어나면 그만이다. 다시 잠들고 꿈을 꾸면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즉, 또 다른 지구 혹은 세계가 탄생하고 인류의 역사는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몇 번째 지구일까? 몇 번째 꿈일까? 생각하곤 했다. 지금도 이 세계는 모순투성이다. 여러 가지 부조리함과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날로 파괴되어가는 지구... 그래서 지금의 이 지구는, 그 혹은 '신'(소설 속에서는 붉은 용으로 등장)이라는 그 어떤 존재의 꿈속 거의 마지막 부분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곧 잠에서 깨어날...



ps :

이상한 나라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미스터리, 잔혹함,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재미 

그리고 마지막엔

철학적(?) 생각까지 하게 된 소설이다.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마워요 - 백성현 포토 에세이
백성현 지음 / 시그마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코요테의 래퍼 빽가 그리고 지금은 by100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백성현의 두 번째 포토 에세이가 7년 만에 나왔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그의 아픔도 몰랐고, 그가 사진을 사랑하고 사진에 몰두하는 사진작가라는 것도 몰랐다. 2012년부터 나 역시 사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캐논 DSLR 카메라를 11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입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었고 당시 내 월급으로 고가의 카메라를 일시불로 구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매달 청구되는 할부금에 허덕이면서도 묵직한 그립감의 카메라가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다. 사실 그전에도 파나소닉 하이앤드급의 카메라를 구입했었지만 지키지 못하고 중고로 팔아버려야 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캐논 카메라만은 지키고자 했다. 덜 쓰고 덜먹고 카드 결제금액에서 카메라 할부금 외에 기타 다른 결제금액들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그것이 힘든 노동시간과 쥐꼬리만한 월급쟁이 생활에서 내가 버텼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11개월이라는 시간은 결국 흘러갔고 이제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된 카메라. 카메라 속 뷰 파이더로 바라보는 풍경들을 나는 나만의 감성으로 찍고 또 찍었다. 그런 가운데 알게 된 것이 백성현의 포토 에세이이다. 평소 책 읽기를 즐겨 하고 사진도 좋아하는 나에게 코요테 래퍼 빽가가 아닌 사진작가 백성현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의 사진들이 궁금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겨 본 그의 이야기는 빠르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뇌종양이라는 무섭고도 아픈 병마와 힘겹게 싸웠던 백성현. 자기 걱정보다 자신의 병마로 더 고통받을 주변 사람들을 더 걱정했던 백성현. 무엇보다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그가 막상 자신을 찾아온 부모님의 모습과 조우한 순간, 굳게 먹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린 모습에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나도 펑펑 울어 버렸다. 그런 그의 아픔 따윈 아랑곳없이 그저 자신들의 밥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의 행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분노했을까? 당시 그의 고통과 그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참담하고 마음 깊숙이 이해가 되어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 했다. 그의 아픔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3년 유방암 말기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당시 아버지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어머니 간병을 했는데, 자신의 아픔보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과 딸에게 미안하다며 일어나지도 못하는 병상의 침대 위에서 울었던 어머니. 백성현의 마음도 그랬겠지. 자신의 아픔보다 자신 때문에 눈물 흘리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더 많이 아팠겠지...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시력을 잃을 수도, 한쪽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냉정한 의사의 말에 사진만은 찍을 수 있게 해달라고, 검지와 한쪽 눈만은 지켜달라고 기도했던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사진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후유증은 남았지만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이후 백성현의 삶은 조금씩 변화되었다. 자신은 이기적이고, 부정적이고, 외골수에 아웃사이더라는 그의 고백.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하는 마음뿐이라고. 한 차례 큰 폭풍우가 지나가고 그의 몸엔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남았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은 더 견고해지고 따뜻해졌다.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이 정확한 구도와 노출 등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이었다면, 아픔 이후 찍은 사진들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의 감성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어서 더 마음에 들고 사진 찍는 것이 한결 더 편안해졌다는 그의 고백에서 나도 나의 사진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너무 잘 찍으려 애쓰진 않았는지, 남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찍지는 않았는지, 정말로 나의 감성이, 나의 스토리가 내 사진엔 들어 있는지. 그리고 다시 사진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아프기 전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사진 강의도 했고, 지금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강의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달란트가 이것이 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거란다. 2016년이면 사진작가로서 10년이 된다는 백성현. 큰 아픔을 겪었지만 그 아픔 이후 그의 삶은 지난 시간보다 더 빛날 거란 생각이 든다.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때문에 매일 밤 오열을 하는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 한 통을 몇 번이고 되뇌어 읽었다.

힘든 인생의 굴곡을 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역경과 고난은 생길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런 일이 찾아오지 않으면 정말 좋겠지만 뜻하지 않아도 우리의 고민거리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는 걸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 듯, 마찬가지로 이겨낼 수 있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라는... 그런 인정들이 우리를 버티게 하고 그것들의 반복은 우리를 조금씩 더 단단해지게 한다는 걸. 당신도 나도 조금씩 단단해지는 과정에 있는 것뿐이라는 걸.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무슨 내막인지 안다면

내가 아는 선에서 좀 더 따뜻하게 대화를 나눠줄 수 있을 텐데

난 과거에 있는 사람이니

힘내요,

이겨내요,

이 말밖에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진심이에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힘내요."



<많이 아팠던 그가 더 많이 아팠을 나에게,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2015.09.03 아침 6시 37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에 소원을 빌어요
이누이 루카 지음, 홍성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신비롭고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책의 겉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숲에 소원을 빌어요'. 무언가에 이끌린다는 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이 그것을 원하고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책 속 7명의 등장인물들도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도심 속, 어둠처럼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원시림의 숲에 이끌려 이 숲을 방문하게 된다. 각자의 아픔과 고통, 슬픔, 상처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숲에 발을 디딘 그들에게 마법처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숲이 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울창한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지저귐,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의 손길, 고요함 속에 느껴지는 숲의 포근함, 숲의 향기를 머금은 맑은 공기. 도심 속에서는 느낄 수 없던 벅찬 감동들을 그들은 숲을 통해 느끼고 교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 숲을 지키는 유일한 한 사람 '숲지기'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그들은 마음을 열게 되고, 상처, 고통, 슬픔, 아픔도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숲은 어머니의 품처럼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따뜻하게 품어준다. 어린 새들이 어미 새의 품속을 벗어나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처럼, 숲을 방문한 그들 역시 숲 속을 벗어나 다시금 세상에 나설 용기를 얻게 된다.

 '숲에 소원을 빌어요'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고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녀만의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 나간다. 왕따를 당한 사람, 실직한 사람, 불치병에 걸린 사람, 자신의 자릴 잃어버린 사람, 중년의 서글픔을 간직한 사람 등 총 7가지 무지개색처럼, 7가지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져 공감하며 읽게 되고 마지막 그들의 상처가 아물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때에는 마치 나의 고민과 상처들이 해결되고 치유된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감동으로 벅차오르기도 했다.

 이것이 숲만이 가질 수 있는 마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답답한 일상 속에서, 이별의 상처 속에서 내가 찾아갔던 숲도(비록 이 숲 속의 숲지기는 없었지만)치유의 공간으로 나를 가득 채워주었다. 밤하늘 달빛이 고요하게 비치는 숲 속의 공간은 혼자서 눈물 흘려도 힐긋힐긋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 편했다. 천천히 숲을 걷다 보면 내 안에 쌓여있던 것들이 내 몸 바깥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고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롯이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자연은, 숲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설픈 위로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크나큰 위로를 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모습은 이곳에 잘 왔다고 나를 반겨주는 그리운 이의 손길 같고, 풀 속 어딘가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그 마음 이해한다며 같이 울어주는 다정한 이의 울음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책속의 숲처럼 울창한 원시림은 없지만,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 소소하게 나마 심어져 있는 나무와 풀들 사이로 난 길을 나는 가끔 걷곤 한다.

 걷다 보면 알게 모르게 마음속 응어리들이 살살 풀리는 느낌이다. 다만 이곳도 책 속에 등장하는 테너 톤의 맑은 목소리를 간직한 숲지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세요! 산책하세요? 저 쪽 정자에도 한 번 가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또 오셨네요."라고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따뜻하게 미소 짓는 그런 숲지기가.


 

 

<책 속 따뜻한 문장들>


: "뭔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멋진 일이에요. 이 숲은 거울 같아요.

숲의 나무와 풀, 꽃과 새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을 사랑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

나는 그렇게 믿어요. 호타카는 잎을 억지로 따려 하지 않고 저절로 떨어질 때를 기다려 주었어요.

그래서 착한 아이라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래요. 호타카는 '때'를 알고 있었어요.

숲의 나뭇잎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때를! 사람의 심장이 사랑으로 물드는 때를!" -50페이지-


 

: "저 자작나무는 스스로 일어설 수도 없고 구를 수도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구르고, 쓰러졌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바꿔 말하면...."

"자신이 넘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스스로 일어설 수 없어요, 영원히.

그러니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비참하게 쓰러졌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는 경험이 인생의 자양분이 됩니다." -92페이지- 


: 그렇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일제히 반짝거렸다. 단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

엷게 낀 구름 사이를 빠져나와 한 줄기 빛이 자작나무 위로 떨어진다.

빛은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하나, 또 하나의 숲으로, 초원으로 비쳐든다.

"................ 보였어!"

단은 깨달았다. 이것이 죽어 가는 자의 눈이다.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눈 채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절실히 바라는 자의 눈.

단은 다시 소리 내어 울었다. 한참 동안 그는 서럽게 울었다. 마지막 눈물이 그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오열로 일그러져 있던 단의 입은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순간, 그의 얼굴에 왜 미소가 지어졌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단은 지금 이 순간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잊지 않도록. - 140페이지 -

 

 

 

: "아무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얼 하든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다,라고.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두고 무리인지 어떤지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선생님도 그래요. '이 나이에'라든가, '다 늦었다'라고 생각해도 선생님의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때죠."

반짝이는 가랑눈 알갱이가 청년의 벤치 코트를 스치듯 지나갔다. -239페이지 -

 

 

 

: 종달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하늘 높이, 멀고 먼 저편으로, 빛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아름다운 세계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살아 있고 웃을 수 있어요......... 이것도 행복의 한 조각이에요." -293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