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앙의 비밀 미스터리 야! 8
쿠지라 도이치로 지음, 안소현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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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식물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집 앞 마당에서 꽃과 풀을 보며 행복했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고등학생 레이. 엄마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8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가슴에 칼을 맞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며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한마디는 '루비앙'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루비앙'이라는 단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레이를 경찰은 오히려 용의자로 의심한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레이는 아버지를 살해한 진범이 누구인지 사건을 하나씩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폴린 제약과 관련이 있고, 폴린 제약이 편법을 써서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소설 '루비앙의 비밀'은 초반에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나옴으로써 사건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고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는데, 무엇보다 영화적 기법인 '장면전환'을 통해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스토리를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주인공인 레이의 평소 성격은 꽃을 좋아하는 여고생으로 소심하면서도 조용한 편인데,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선 과감한 행동력과 결단력을 보인다. 아버지와 폴린 제약의 관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혼자 폴린 제약을 찾아가는 모습이나, 폴린 제약 사장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를(꽤 먼 거리) 혼자 방문하는 모습,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아버지가 연구용으로 남긴 땅 홋카이도를 향해 한 남자와 단둘이 떠나는 장면 등은 내가 레이였다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결론은 아마 나라면 못 했을 것 같다. 그저 망연자실 경찰의 수사가 잘 진행되길 바라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또한 책의 제목이기도 한 '루비앙의 비밀'에 루비앙이 도대체 뭘까? 왜 레이의 아버지는 죽어가는 순간에 다른 말도 아닌 루비앙이라는 말을 남겼을까? 등 루비앙의 정체에 대해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쉽게 책을 놓을 수 없는데, 책의 중반부쯤에 아버지가 자주 방문했던 공원의 노숙자를 통해 독자는 루비앙의 비밀을 알게 된다. 레이는 루비앙이라는 단어가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작은 추억 속에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생각이 좀처럼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레이한테 말해주고 싶어서 미칠 노릇이다. 다만 레이는 루비앙의 실체는 모른 채,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범인의 약점이 되는 증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증거를 숨긴 장소가 루비앙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정도로만 추측을 할 뿐이다. 

 아버지가 자주 갔던 공원의 노숙자 중 한 명인 통칭 '부처'로 불리는 남자를 통해 비로소 레이는 루비앙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원망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자신이 이토록 집요하게 사건을 쫓았던 건 사실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 헤맸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소설 '루비앙의 비밀'은 오래전 헤어진 딸에 대한 아버지의 부정(父情)과 거대 제약회사의 비리, 그것을 알아챈 식물학자인 아버지의 죽음, 그 비리를 움켜쥐고 이용하려는 한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너무 무겁지 않게 그리고 있다. 아마 영어덜트 시리즈로 나온 미스터리 책이기 때문에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로 선정한 것 같은데, 그래도 굳게 믿었던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진 마지막 반전에선 꽤 놀라기도 했다. 아니면 내가 이런 추리나 반전에 약한 건지도 ㅎㅎ.

 


 끝으로, 아버지가 식물학자였던 만큼 레이도 야생화 및 풀에 관심이 많아 학교에서 '들풀 연구회'라는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하는 일은 근처 공원이나 길거리를 다니면서 봄, 마당, 길에 어울리는 혹은 자주 보이는 들풀들을 선정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야생화 및 들풀에 관심이 많아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야생화와 들풀들을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모두 확인해 보았다. '들풀 연구회'에서 정한 봄, 마당, 길에서 자주 보이는 야생화 및 들풀들은 아래와 같다.


> 봄의 7가지 풀 : 미나리, 냉이, 떡쑥, 별꽃, 광대나물, 순무, 무

> 마당의 7가지 꽃 : 민들레, 괭이밥, 큰개불알풀, 주름잎, 살갈퀴, 타래난초, 삼백초

> 길의 7가지 풀 : 질경이, 강아지풀, 개여뀌, 자주광대나물, 큰이삭풀, 새포아풀, 갈퀴덩굴


특히 레이는 '큰개불알풀'을 무척 좋아했는데 작고 푸른색이 도는 여린 꽃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름이 참 고약하다. 해서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 보았더니 큰개불알꽃 열매가 개의 불알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요즘은 조금 순화하여 '봄까치꽃'이라 부른다는데 이 이름이 훨씬 난 것 같다. 영문으로는 bird's eyes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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