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1 - 연향
김홍정 지음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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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굽이쳐 흐르는 역사의 물길 속을 살다간 사람들. 그들에게 던 저진 세상은 늘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하여 왔다. 그 변화 속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김홍정의 '금강'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병신년 (1596, 선조 29) 유월 그믐. 금강 정지포 대장간 뒤편 토굴 속에 잠들어 있던 병장기들을 깨워 배에 실어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시 무진년 (1568년) 연향의 손자이자 훗날 창의 봉기의 주동자가 되는 창의 모습과 양지수의 모습을 통해 금강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감을 예고한다.

소설 '금강 1부'는 무오년 (1498년 연산군 4년)과 갑자년 (1504년 연산군 10년) 두 차례의 사화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반정'을 통해 진성대군이 조선 제11대 왕 '중종'이 되어 집권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묘년 (1519) 동짓달. '주초위왕' 이란 글자가 궁궐의 나뭇잎에서 발견된다. 당시 훈구파와 대립한 신진 사류를 몰아 내기 위해 조광조의 성을 파자한 사건이었는데, 바로 기묘사화이다. 이 사건으로 신진 사류 조광조, 김식, 충암 김정 등 수십여 명이 죽거나 유배되었다. 충암 김정은 모든 사림파의 스승이었으며 정암 조광조와 함께 왕도정치, 대동사회를 꿈꾸었다. 대동사회. 노인이 ​편안하고, 장년들은 쓰일 곳이 많으며, 젊은이와 어린 사람들은 쓰일 곳에 이를 때까지 의지하여 자라고, 과부나 고아, 홀로 사는 이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고,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여민동락의 대열에 뒤처지지 않는 월인천강의 세상이다. <p22> 그러나 지나치게 맑은 물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법. 그가 꿈꾼 개혁방법은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하였고 결국 기묘사화를 통해 숙청된 것이다. 소설 '금강'은 좌절된 스승의 꿈을 따르고 잇기 위해 자생적으로 조직된 '충암 동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의 후학인 남원 이돈, 정희중, 양지수 등이 주축이 되고 마찬가지로 충암 김정의 후학으로 사랑을 받고 소리꾼이라 하대하지 않은 여인 '연향' 또한 이후 상단의 행수가 되어 '충암 동계'를 지원하게 된다. 소설 '금강'은 제1부에선 연향, 제2부에선 미금, 제3부에선 부용이란 여인을 내세우는데 이는 당시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의 정면에 맞서 싸울 수 없었던 여인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권력의 정면이 아닌 권력의 뒷면에 서서 싸웠다. 연향은 소리채의 주인이자 상단의 행수였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소리채이자 상단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충암 동계'의 연락망이자 모임의 장이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본의 흐름, 자금줄이었다.

사대부들 역시 상단의 전면에 서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인 '연향'이었을 것이다. 가끔 역사 드라마를 보면 화류계에 모여드는 사내들의 언행을 감시하고 전달하는 역할은 대부분 그 옆에서 시중을 드는 여성들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반대파의 숙청을 위해 세작 노릇을 한 것인데 아무래도 여성이었기 때문에 경계심은 덜 했을 것이고, 접근성 면에서도 남성보단 더 쉬웠을 것이다. '연향'이 비록 완전한 기생은 아니었으나 이와 비슷한 역할의 중심에 있었지 않나 싶다. 비단 이런 이유로만 여성인 '연향'을 소설 속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백성들의 젓줄이자 상단의 태동, 그 중심에 있었던 '금강'은 분명 여성의 모습을 닮았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자녀들을 훈육하고 양육하는 어미의 모습, 넓게 굽이 처 흐르는 강줄기는 모든 것을 포옹하고 아우르는 어미의 품을 닮았다. 이는 분명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자 모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금강'은 남성들의 전유물인 거친 정치적 배경 속에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한' 이 깃들여 있어 당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절절하면서도 더 애달프게 읽힌다.

절창. 그녀는 소리꾼이 되었다. 가슴에 그득한 한을 풀어내는 것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소리는 구김 없이 펼쳐져 물살처럼 어느 때는 천천히, 어느 때는 급하게 흐르는 금강이 내는 처절한 소리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p55> 발품꾼들이 지켜야 할 것은 물목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목숨을 버리더라도 물목들은 지켜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러나 연향은 사람이 먼저고 물목은 나중이라 했다. 장수는 연향을 보았다. 고운 여인의 자태와 기품 있는 모습이 겹쳐 있어 대하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p351> 연향은 양지수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부용'을 강천사에 맡기고 유배를 떠난 스승 충암을 모신다. 그곳에서 상술을 익히고, 갈옷을 만드는 염색법을 배우게 된다. 스승 충암이 이루고자 했던 대동사회의 한 면을 이곳 사람들과 도우며 아우르는 동안 얼핏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송사련에 의해 주도된 '신사무옥'으로 스승 충암은 사사되고,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제주를 떠나 한산에 소리채와 상단을 꾸린다. 이제 스승 충암의 후학인 남원이 '충암 동계'를 주도하게 되고 '연향'은 실질적인 대행수가 된다. 그러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감시는 여전하고 급기야 '연향'은 남원을 살리기 위해 스승 충암을 죽음으로 몬 '송사련'과의 거래를 시작하는데...

지금의 세상도 여전히 정치적 이권다툼으로 어수선하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싸움의 한복판에 희생되고, 짓밟힌 것은 백성들이었고, 국민들의 몫이다. 불통의 시대. 안타깝게도 당시 그들이 꿈꾸었던 새로운 시대, 이상향인 유토피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죽지 않았으니 죽을힘을 다해 새 세상을 이룬다. 새 세상은 인간이 하늘이고 참주인인 백성이 평안한 세상이어야 한다. 주인이 종이 되는 거꾸로 된 세상은 속히 바로잡아 창천과 창해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건다. <p104>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별천지였다. 복사꽃의 연분홍빛만으로도 한껏 달아오른 세상은 흰 배꽃과 오야꽃이 함께 섞이자 온통 꽃대궐이었다. 인간의 호사스러움이 이보다 더할 것은 없었다. 저 자연스러움에 몸을 둘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인간의 사악함이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충암 대감의 탄식이 새삼 눈에 선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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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 프레야 시리즈
매튜 로렌스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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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매튜 로렌스는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모바일 게임 회사 로비오의 '게임 디자이너 겸 작가'이다. 작가의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소설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는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화끈한 영상을 보는 것처럼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소설 속 주인공인 프레야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움과 사랑, 전쟁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라이벌 관계라 할 수 있다. 여신 프레야. 그런 그녀가 어쩌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탈출까지 하게 되었을까? 머리가 돈 건 아니다. 그녀에겐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그저 여기서 지내는 것이 편하고 좋을 뿐이다. 물론 그 속사정은 따로 있다. 한때 인간들의 굳건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권위와 직위가 유지되었던 고대의 전성기로부터 현재, 남아있는 건 산재한 신화들과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야는 이곳 정신병원에서 안전하게 지내며 마지막 믿음의 불씨를 붙잡고 미약하나마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힘의 역학관계를 논할 때 인간보다 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 속 힘의 역학관계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믿음과 신을 믿는 신도들의 수에 따라 신의 힘이 결정되는 것이다. 반대로 더 이상 자신을 믿지 않고, 심지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힌다면 더 이상 신으로서의 삶은 암울하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프레야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입니다. 아름답고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지만 하나의 뒤튼 설정이 있을 뿐이지요. 신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말이에요. 이 세계관엔 우리가 모든 신화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신들이 있어요. 문제는 신들에게 삶을 주는 건 인간의 기도와 믿음인데, 현재 우리는 그들 대부분을 믿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신들에게도 힘든 세상입니다."

<작가의 말 中>
그러던 어느 날 프레야가 있는 정신병원에 가렌이라는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프레야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그녀에게 어떤 제안을 요구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녀가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협박까지 한다. 가까스로 가렌을 물리친 프레야는 더 이상 이곳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병원 직원 중 한 명인 '나단'과 함께 정신병원을 탈출하게 된다. 27년 만에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 향후 자신의 추종자가 될 나단과 함께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꿈꾼다.
내가 곧 꿈이다. 내 종족과 나, 바로 우리 신들이 인류의 형상화된 소망이자 또한 악몽인 거다.
그래서 난 잠이 들면, 당신들을 꿈꾼다. 꿈속에서 난, 인간족이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와 마법, 허영과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본다. p45
여신 프레야는 은둔 장소로 적합한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며 잃어버린 신성을 수많은 아이들의 '믿음'을 통해 되찾게 되는 기쁨을 알게 된다. 그러다 디오니소스라는 신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을 얻고자 했으나 그의 오만함과 파렴치함에 그를 이용하기로 한다. 자신을 쫓는 가렌을 디오니소스를 통해 쫓고자 한 것인데 되려 역공을 당하게 되고 결국 프레야와 나단은 가렌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 가렌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피넴디(라틴어로 '신들의 죽음'이라는 뜻)라는 곳으로 여러 신들을 수용하고 있는 거대 조직이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신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려 하는 것인데,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신들은 그저 피넴디가 제공하는 안락함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피넴디가 제시했던 그 '믿음'. 그건 독이 든 미끼다. 갇힌 몽상가들이 힘을 제공해 준다 해도, 그 대가는 끔찍하다. 결국 우린 인간들이 만들어낸 존재이고, 피넴디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애완용 신들을 그들의 힘의 원천으로 꽁꽁 묶어놓고, 그토록 매혹적인 믿음을 순응이라는 감춰진 사실로 꾸며 놓다니. 피넴디는 신들의 심장에 순종이라는 개념을 새겨넣어 그들의 신들을 노예로 삼는 걸 꿈꾸고 있다. p182
프레야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신념을 바탕으로 이곳을 파괴하기로 마음먹는다. 겉으론 피넴디에 순응하는 척하지만 속으론 자신과 뜻을 함께 할 동료들을 규합하고, 피넴디 곳곳을 조사하고 염탐하기도 한다. 마지막 결전의 날, 가렌은 그녀의 계획을 눈치채고 제압하려 하지만 프레야는 동료들과 함께 피넴디를 용암의 불구덩이 속으로 서서히 함몰시켜 버린다. 바로 이 부분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강렬한 비트 사운드와 함께 한 편의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프레야와 세크멧의 활약. 하와이 자연신들의 활약 등! 또한 피넴디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아즈텍,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등)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다만 동양신 중 일본신만 등장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우리나라 신들도 찾아보면 매력적인 신들이 많은데 말이다. 대부분의 외국작가들은 동양하면 일본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보다. 흉.
 
"정말 한 번만 생각해 봐요. 뭐가 중요한지 생각해 보라구요. 무엇을 가지고 살 건가를 찾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에요. 인생은 무엇을 위해서 살 건가를 찾는 거라고요." p242
이렇​게 소설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는 끝날 것 같았는데 끝이 아님을 암시한다. 피넴디라는 조직은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그들의 구체적인 목적도 알아내야 한다. 무엇보다 이종교배실에서 탈출한 '그 존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마지막 장에선 진심 소름 돋았다. "엄마?" 헉... 프레야와 나단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여신들의 두 번째 이야기! 기대된다. 지금은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아 잠시나마 자신들의 작은 판테온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그녀들 앞에 펼쳐질 미래가 사뭇 걱정되고 긴장도 된다. +_+ 빠른 시간 안에 그다음 이야기! 읽기를 소원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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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책을 함께 읽은 분들께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합니다!
​프레야가 마지막 결전의 날 수용소를 습격하여 그곳에 감금되어 있던 신들을 풀어주잖아요.
그런데 '데이모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입니다. 처음 프레야에게 적대적이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데이모스'는 더 이상 언급이 없어서요.

디오니소스가 난리 쳐서 풀어 준 신도 있는데 같은 이유일까요?
난리 치지 않았으면 풀어주지 않았을 것처럼 '데이모스' 역시...

그래도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꺼내달라고 난리칠 법도 한데.. 싶어서요. ㅎㅎ

 
 
 
* 본 포스팅은 <인터파크도서 활자중독 1기> 서평단 활동으로 체험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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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그녀
가키야 미우 지음, 김은모 옮김 / 콤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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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바람났다! 더 기가 막힌 건! 남편의 애인과 아내의 영혼이 서로 뒤바뀐 사건이다. 가키야 미우 작가의 '남편의 그녀' 제목만 봐도 불륜과 막장의 냄새가 풀풀 난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책의 표지는 어쩐지 사랑스럽다. 이 무슨 아이러니?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대략 이랬다.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조금은 흔한 설정인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뒤바뀐, 그래도 최소한 서로 애정관계로 얽혀있는데 반해 '남편의 그녀'에선 파격적으로 영혼이 뒤바뀐 것이다. 정말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 피하고 싶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인 남편의 그녀! 남편의 여자! 남편의 내연녀!로... 무뚝뚝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과 자식들을 둔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 히시코. 어느 날 컴퓨터에 남겨진 남편의 흔적을 보고 불륜을 의심하게 된다. 결국 남편을 미행하게 되고 자신보다 훨씬 젊은 여성과 나란히 걸어가는 남편을 목격하게 된다.


너 같은 아줌마한테 여자로서의 상품 가치는 더 이상 없어.

어이, 유통 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p34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인 히시코는 이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가정을 유지할 것인가,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어 친구 지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미 이혼 경력이 있는 지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절대 이혼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단, 이혼을 해도 되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첫 번째 전문직에 종사한다. 두 번째 따뜻하게 맞이해 줄 부유한 친정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위자료가 충분하다. 이 세 가지에 해당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누군가 나를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와....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새삼 나 자신을 돌아 보았다. 결혼 후 3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경력은 단절되었고, 친정 엄마는 돌아가셔서 사실상 친정이라는 공간은 없는 것과 같고,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위자료를 받을 가능성도 없고. 나야말로 이혼은 꿈에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지사의 말에 어폐가 있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할 말을 잃었다. 마치 내가 히시코라도 된 것처럼. 그렇다고 진짜 이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가끔 격하게 부부싸움을 할 때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은 있다. 물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긴다고,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잘 지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향후(?) 미래를 위해서라도(어떤 미래?ㅋ) 다시 전문직으로 복귀해야겠다.


결국 히시코는 상대 여성인 호시미를 만나기로 한다. 제발 남편에게서 떨어져 달라고 말할 생각이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의 풋풋한 호시미와 마흔을 바라보는 히시코. 서로 탐색전을 하며 남편 무기타로를 접전으로 아웅다웅하던 순간! 새빨간 롱드레스를 입은 수상쩍은 할머니로 인해 호시미와 히시코의 영혼은 뒤바뀌고 만다.


"상대의 마음을 뼛속까지 이해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p57


믿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황당함 속에서 호시미와 히시코는 사태를 파악하고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생활공간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호시미는 남편과 자식들이 있는 히시코의 집으로, 히시코는 남편과 호시미의 불륜장소인 집으로. 그렇게 서로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상대방의 생활 속으로 깊게 스며들게 된 두 사람! 과연, 그녀들은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 히시코는 호시미로부터 남편을 지켜낼 수 있을까? 따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가키야 미우의 '남편의 그녀'. 13일의 금요일 오후, 따뜻한 햇살이 비쳐든 거실의 소파에 누워서 혼자 심각해하며, 혼자 낄낄거리며, 혼자 감동의 쓰나미를 느끼며 읽었다.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 속 구절을 빌리자면 이런 문장이 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즉 교훈이든, 타인에 대한 이해든, 그 모든 것들이(타인의 아픔과 고통, 슬픔 등)내 속에서 체험된 후라야만 온전에 가까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키야 미우의 '남편의 그녀'는 영혼이 뒤바뀌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불가능하지만,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잠시나마 나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헤아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책 속 밑줄>


아무 자격도, 기술도 없는데.... 이혼하고 나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남편에게 친권을 빼앗길지도 몰라.

결혼한 지 십오 년, 주부라는 자리에 불안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자리가 '남편의 사랑'이라는 불안정한 단서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p213


평범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서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는데도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는 데에만 정신을 팔았다. 주부라는 위치가 이렇게 간단하게

흔들리는 것인 줄 알았다면 고등학생 때부터, 아니 중학생 때부터

인생의 기반을 다졌을 것이다. 여차할 때 혼자 먹고살 수 있도록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p214


"그야 오랜 세월 회사원으로 살다보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는 법이지.

회사에서 구르다 보면 강해지기도 하고, 교활해지기도 해.

진창에 발을 담그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어.

여차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더러운 수단이라도 쓰는 법이고." p275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만약 지금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바꾸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야.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해 봐. 네가 변하면 상대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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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텔로 지음, 페르난도 팔코네 그림, 곽정아 옮김 / 가람어린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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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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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상상력은 삶의 원동력이자 기쁨이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표현방식을 그림으로 나타냈었다. 방안의 벽지는 내 상상력을 표출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손에 집어 든 크레파스, 볼펜, 연필, 물감 등을 가지고 온 방안의 벽지를 나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어린 동생들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로 부모 입장에서는 총체적 난국이었을 것이다. 결국 부모님은 다시 도배를 하였고, 내 입장에선 포화상태에 이른 상상력의 공간이 새롭게 리셋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벽지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서슴없이 그리곤 했는데 두 번째 희생양이 바로 식탁이었다. 식탁 위는 강화유리가 놓여 있어서 크레파스를 제외 한 다른 도구들로는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공간이 바로 식탁 밑이었다. 어린 나는 크레파스와 물감 등을 가지고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장에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ㅋ)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빨간색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식탁 밑 어둠을 먹고사는 요정을 그렸는데, 내가 그린 그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어린 나에겐 내 상상력으로 탄생한 그 존재가 무서워서 그 뒤로는 식탁 밑을 들어가지 않았다. 그땐 정말 무서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이 그려서 탄생한 존재였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어느 날, 이사하면서 방치해 뒀던 그때의 식탁을 부모님이 다시 주방에 내어 놓았던 적이 있다. 문득 어린 시절 그렸던 식탁 밑 그림이 생각나서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림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의 상상력으로 탄생했던, 그 존재 때문에 식탁 밑은 얼씬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나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던 그 존재!!! 이제 성인이 된 나는 그 시절 두려움의 대상과 마주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도대체 어떻게 생긴 존재이기에 그토록 어린 내가 무서워했던 걸까? 호기심이 명치끝을 내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긴장 반,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식탁 밑을 기어들어가 올려다 본 그 존재와 마주한 순간!!! 허탈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 그림은 그저 빨간 색깔의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어지럽게 칠해지고, 그려진 추상적인 그림이었다. 성인이 된 나의 눈엔 전혀 무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보고 그토록 무서워했던가? 허탈한 웃음과 함께 의아함이 가장 먼저 찾아왔지만, 그 뒤로 찾아온 감정은 안도감과 약간의 쓸쓸함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때의 나. 그 시절 어린아이에겐 분명 무서웠을 존재.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리고 느끼고 바라본 상상력의 존재를 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시절, 나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더불어 성인이 된 나의 눈엔 이제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그 존재는 뭐랄까? 이제는 갖고 있지 않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왕국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한동안 식탁 밑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작은 아이가 식탁 밑을 캔버스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모습을, 그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만의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한동안 지켜보았다.

<세계 대표 작가들이 들려주는 상상력을 키워주는 동화 속의 마녀 이야기>는 성인이 된 우리가 읽기에는 전혀 무섭지도 않고 스토리 자체도 단순하다. 아무래도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쓰인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존재했던 어린아이를 깨워 읽어 나가다 보면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동화 속 마녀들​, 민담 속 마녀들 두 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화 속 마녀들은 익히 알고 있는 마녀들이 등장한다.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인어 공주 등에 등장하는 마녀들이 그렇다. 그러나 민담 속 마녀들은 나조차도 잘 알지 못했던 마녀들이 등장하는데, 새로운 민담과 그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마녀들을 알게 되어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했다. 각 장의 첫 페이지 왼쪽에는 각 마녀들의 초상화가 크게 실려있고, 오른쪽에는 마녀들의 이름, 국적, 사는 곳, 목격된 장면, 좋아하는 음식, 알려진 사실, 취미, 죄목 등 마녀들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페이지를 넘기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작가들의 디테일하면서도 신비로운 배경 그림과 삽화들을 엿볼 수 있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아이가 잠들기 전, 밤하늘의 별을 배경 삼아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면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어린 시절의 나처럼 두려움에 휩싸일 수도 있는데 어찌 보면 그 두려움을 마주함으로써 오히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담대함과 용기를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혹은 우리 삶 속에서 마녀나 악역을 맞은 사람들의 존재는 책 속 주인공과 현실 속의 우리들을 보다 더 성장하게끔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때론 평화롭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온실 속의 삶보다는 고통과 시련이 존재하는 삶이 주인공의 삶을, 우리의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들기도 하니까. 때문에 장애물을 이겨내고, 시련을 극복하고, 고통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책 속 다양한 마녀들의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나 역시 이 책을 계기로 마음속의 아름다운 판타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망울을 간직한 그런 사람으로.

『 "인어 공주의 목소리를 앗아간 심해의 마녀,

라푼젤을 탑에 가둔 마녀,

과자로 만든 집에 사는 마녀 등

동화와 전설 속 마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악한 속임수와 비밀의 주문이 가득한

마녀들의 어둠의 왕국에 들어갈

용기 있는 어린이만 책장을 넘기세요.

자 이제 마녀의 세계로 함께 떠나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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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인 1
최지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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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인'이란 무엇인가? 조금은 생소한 단어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흡혈귀' 또는 '뱀파이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흡혈귀라는 비속한 명칭 대신 아주 오래전, 불로불사의 열혈 전사 '하일랜더' 즉, '고지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사실 흡혈귀나 뱀파이어의 경우 동양보다는 서양 쪽이 더 잘 어울린다 할 수 있다.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사실 여부를 떠나 어원이나 기원 및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곳이 바로 서양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토리 진행상 조선 또는 동양권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흡혈귀의 존재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서양과의 교류나 접촉을 통해 흡혈귀의 존재가 유입되는 형식이다. 그것이 스토리 진행상 또는 이해하고,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덜 어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지인'의 경우도 그렇고 작년에 종영한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또한 그렇다. 단순히 두 작품만을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만큼 흡혈귀라는 존재는 동양권에서는 어색한 존재임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혈귀 또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고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영원한 젊음, 매력적이고 창백한 얼굴에 붉은 입술, 영원불사, 불상불사의 운명.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말은 육체적으로 영원한 젊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흡혈귀나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 '젊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정말로 이런 삶을 부여받는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 삶은 축복일까? 더불어 끊임없이 갈구하게 되는 흡혈 갈증까지 더해진다면? 분명 그런 삶은 극도로 고독하고 철저하게 외로운, 저주받은 불행한 삶일 것이다.    
"이따위 영생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우리의 영생은 다른 이의 목숨을 앗는 데서 비롯되네. 극악한 저주일 뿐이지." p.154
소설 ​'고지인'은 기독교 역사 및 로마 역사에 팩션을 가미하여 '고지인'의 탄생과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때는 조선 후기 1654년 효종 재위 시절 '제주도 연쇄 살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종사관 '염일규'가 급파된다. 주인공 '염일규'는 조선 중기 인조 재위 시절, 가문이 숙청의 대상이 되어 멸문지화를 입었다. 그의 형은 소현세자를​ 호위하던 무관이었는데, 역모로 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의 측근으로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일로 가문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되었으나, 후에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간청으로 당시 어린 '염일규'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효종의 배려로 성인이 된 '염일규'는 '시구문(시체를 내가는 문)' 밖 치안과 경비를 맡아 보는 하급 관리로나마 호구지책을 마련하게 된다. 역적의 자식으로 죽음을 피한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시체를 마주해야 하는 삶은 그의 마음을 헛헛하게 했다. 그래서 일까? 주인공 '염일규'는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망나니 삶을 지속한다. 그래야만 이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멜이 표착한 제주에 의문의 변사체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염일규'는 종사관이라는 높은 벼슬을 재수 받아 제주로 떠나게 된다. 그 누구도 유배지와 다름없는 제주로 가길 원치 않았으니까. 제주에 도착한 '염일규'는 의문의 사건을 조사하며 만나, 자신을 도운 관비 '아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결국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 '아리'. 한편 감금되어 있던 하멜 일행 중 '나선인' 한 명이 탈출과 동시에 연쇄 살변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데, 제주 목사와 '염일규'는 서로의 거래 조건으로 이 사건을 종결 짓는다. 어느 날 조정으로부터 하멜 일행을 한양으로 압송하라는 명이 떨어지고, 신분의 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염일규'는 '아리'와 함께 제주를 떠난다.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아리'와 함께 숨어 살기로 결심한 '염일규'. 그러나 제주에서 탈출한 줄로만 알았던 '나선인'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염일규'는 그에게 목이 물려 쓰러지고 마는데... 가까스로 '고지인'인 왜인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염일규'. 그는 그 왜인으로부터 '고지인'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도 '고지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고지인'이 된 '염일규'의 목숨을 노리는 또 다른 '고지인' 흑도. 과연 '염일규'는 끊임없이 인간의 피를 갈구하는 이 저주받은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과 사랑하는 여인 '아리'를 지킬 수 있을까? '염일규'의 목숨을 노리는 또 다른 '고지인', '흑도' 그는 누구인가?
제2권으로 이어지는 '고지인'은 향후 두 남자 '염일규'와 '흑도'의 대결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조선이라는 실제 역사적 배경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쓰인 '고지인'. 조선 중기에서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서인과 남인들의 붕당정치는 심화되고 변질되는데,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서인을 필두로 조정에선 권력싸움이 한창인 시절. 소설 '고지인'은 그 시대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고지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적 배경에 '고지인'이라는 존재를 더해선지 흡입력 있고 빠르게 읽힌다. 다만 완결이 아니기 때문에 1권에선 큰 긴장감은 없지만 흑도의 출현과 더불어 2권에선 두 남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배경이 조선시대인 만큼 '한자 어구'와 '주석'들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며 빠르게 읽어나가는 데 약간의 걸림돌이 되긴 했다. 나의 무지를 탓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책 속 밑줄>
그래도 시체들을 태우고 해거름쯤 돌아올 때면 아무래도 헛헛한 게 사내의 심정이었다.
그때마다 그립고 고픈 건 따뜻한 여인네의 품,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근처의 색주가를 찾았다.
몸 파는 계집들의 푹신한 젖무덤에 얼굴을 묻으며 그는 여태껏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음을 묻고 기댈 만한 상대로는 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와 상대하는 계집들도 몸뚱이로는 그를 안아주되 가슴으로 품으려 들지는 않았다. p.23
 
이고르는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는 악인이었다. 그러나 흑도의 악성은 그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이고르는 설마 흑도가 자신의 목과 영기마저 노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염일규의 뒤를 쫓으며 영기를 노렸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흑도의 사냥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서둘러 녀석보다 강한 힘을 갖춰야 했던 것이다.
약한 놈은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양육강식의 세계, 그것이 고지인들의 생태계였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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